반야사 :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그리고 총 들지 않은 독재자가 떠오른다.
20-04-24 반야사 :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원래 함양 박형님께 가서 뽕잎 등을 따기로 했다.
날이 갑자기 춥고 바람이 많아 나오든 잎도 다 들어갔단다.
그래서 함양엘 안가고 다른 곳에 들려 보자는 말씀에 어딜 가꼬 고민을 많이 했다.
함창 ‘카페 버스정류장’은 근래 너무 자주 가서 이번엔 들리지 말자 하신다.
목요일 밤 주무시는 동안에 <다음 지도(카카오맵)>를 기웃거리다가 <황간>이 떠올라 근처를 검색해 본다.
<반야사> <월류정>
몇 지역이 나타나고 먹거리도 몇군데 잡는다.
부산 내려올 때 경부고속 타는 것은 참 어리석은 짓이다. 대전 까지 걸리는 시간이 차량 때문에 장난이 아니다.
이전에 애란형수랑 서울에 아이(우선,지선)들 방구하러 답사하고 밤에 내려오다가 도로가 밀려 버스 전용 풀릴 때 까지 만남의 광장에서 푹쉰 적도 있다. 지금은 낮이지만 비슷할거다.
그래도 코로나 시대라서 용기내어 정리한 길로 내려간다.
아, 이런 용기는 만용이다. 도로에서 가다서다를 반복한다. 2시간 반이면 충분히 갈 길을 3시간 반 넘어 걸린다. 같이 욕해 가면서 궁시렁궁시렁....
바로 내려가도 된다는 말씀에도 굳건히 견디며 반야사로 간다.
영동 IC 내려가 황간으로 들어서니 길이 참 좋다. 마을 느낌도 좋다.
반야사 가는 길은 참 깊숙하다. 강 따라 가는 길도 좋다.
<반야사>에 도착하니 안내판부터 예사롭지 않다.
절 안 길안내 판에 <노근리 평화공원>이 표시되어 있다.
이게 뭐 신기한 일이냐고?
명박이 때의 지랄같은 행정은 대단했다.
차량 안내 엡에 절을 지워 버린 것도 유명하지만 서울 전철 안내판에 종이쪼가리로 교회 위치를 다 붙였다.
자신의 종교를 가지고 국민들에게 강요하는 엄청난 사건이다. 게다가 인사동 가운데 돌하루방 같은 작품도 불교 색체가 난다고 없애버리고 나무 한그루 달랑 심었지.
자기를 약간이라도 반대하면 그 사람은 물론 그 대상자와 가까운 사람들 까지 세무조사로 사람을 아작내었다.
내 단골 치과 의사는 제법 사회적 활동을 하는 사람이다. 명바기에게 6개월 가까이 세무조사를 당한다.
특별한 잘못 없으면 괜찮지 않냐고?
모르시는 말씀. 세무조사를 하면 영업을 제대로 못한다. 당시는 정치적 강압에 의한 조사니 세무서직원들도 어이하기 어려웠을거다. 상주하면서 조사하면 모두가 다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고 모든 장부를 색출한다. 그리고 괴롭힌다.
<명박산성>을 쌓아 국민의 저항을 무력화 시키려는 몸부림.
이런 짓거리들이 독재다.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 지는 것도 자신에게 유리한 것이 된다면 작은 진실 조차 철저히 감추고 , 거짓을 드러내어 진실처럼 꾸민다.
심각한 부정부패는 뒤로 하더라도 누군가, 국민들이 죽는다. 어떤 일로든.
맹바기와 근혜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노!
모두 억울한 죽음이지만 그냥 일반인들이 죽는다.
그리고 어떤 일에 대해서든 탄압을 한다. 무리한 공사를 한다. 무리한 법을 만들려 한다.
문재인독재?
참으로 웃기는 자슥들이다.
독재가 뭔지 눈꼽만큼도 모르는 개무식이다.
탄압 받는다는 것이 뭔지도 모르고 떠들기만 하는, 바이러스 같은 놈들의 소리다.
미친 대통령의 시대였으면 저리 지랄발광하는 것들은 감옥에 꼴백번도 더 갔을 거다.
독재자들은 죄없는 사람 죄만들어 구속시키는 재주는 세계에서 으뜸이었다. 부정부패의 방법도 으뜸이지만...
변종매국친일파 대통령 때면 저런 간판 못건다는 이야기다.
깊은 산속인데도 평지로 이뤄진 곳에 절이 있다.
신라 삼층탑은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는 팻말도 같이 있다.
이 땅의 평화와 젊은이들의 앞날을 생각하는 모습에서 진정한 종교의 품격이 느껴진다.
삼층탑 바로 뒤 배롱나무는 크기가 대단하다. 탑을 지키는 수호신인양 서 있는 위용이 눈부신 가지로도 충분히 느껴진다.
호랑이가 산다는 절.
재밌는 것은 입구에서 탑 뒤쪽 산을 보면 흘러내리는 듯한 돌무더기들이 많이 있다.
그 돌들이 멀리서 보면 호랑이 형상이다. 꼭대기로 호랑이 꼬리가 주욱 뻗어있다.
절 뒤로 하여 강따라 걸으면 세조가 목욕하여 문둥병(나병으로 불렀다가 한센병으로 바뀐다. 임목사님은 우리말은 안되고 외래말은 되느냐고 한번씩 반문하신다.)이 나앗다는 전설을 가진 곳이 나온다.
살다보면 늘 선택해야할 일들이 생긴다. 심각한 경우도 많다. 걷다가도 선택 문제가 생긴다. 별심각하진 않지만.
우린 문수암 가는 길은 높아 보여 포기하고 강 돌길 따라 걷는다.
강건너편은 길이 좋아 보이고 걷는 사람들이 하나 둘 보인다. 그림이 마치 수행자들 곁으로 흐르는 강물처럼 눈부시다. 좀 있다가 저리로 걸으리.
돌 끝까지 다다르니 길이 없다. 조금 오르면 길과 마주칠 것 같은데 나무들로 시야가 가린다. 산 위쪽으로 보니, 우아~ 문수암이 높은곳에 참으로 고고하게 있다. <고고>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힘들더라도 올라가야 겠다.
다시 돌을 밟고 돌아가 문수암이라 안내하는 팻말 따라 반발하지 않고 걷는다. 아까 숲을 치고 올라가까 고민했던 막다른 곳이 눈 앞에 보인다.
한치 앞도 모르는 내 모습도 본다.
세조가 목욕한 곳은 고요하다. 주변에 남자 여럿이 이야길 나눈다. 도란도란 소리가 들리는 듯.
이제부터 오르막, 가파른 계단을 줄 잡고 오른다. 마눌님은 배가 고픈지 좀 힘들어 한다.
긴 시간 차를 타면 자연 몸은 구부러진다. 앉아 있으니 배가 접혀지고 공명이 살짝 막힌다. 이럴 때 마눌님 같이 등이 굽은 사람은 허기와 피곤을 많이 느끼게 된다. 김철사부님 말씀이다.
힘들었지만
문수암은 경이롭다. 바위 끝에 금방 떨어질 듯 자리잡은 위치도 그렇지만 내려다 보는 풍광은 아찔함 보다는 순간적 도를 통할 느낌이 더 강하다.
강 아래에 학 두 마리가 유유히 날다가 멈추다가 하고 구름 두점은 푸르름을 더 빛내준다.
내려오는 길은 짧은 코스를 선택한다. 긴 계단이 가파르지만 별로 멀지 않아 수월타. 그래도 길은 우리처럼 잡는게 풍광과 느낌을 많이 가질 것 같다. 사진 찍기도 좋고.
절 입구에 약수터가 있고 용을 조각했다. 용 입에서 나오는 물은 바람으로 마구잡이 흔들리면서 아래로 흩날린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사람이 침을 질질 흘리는 것 같다. 시주한 사람은 부산 사하구 사람이다. 반갑다.
배는 고프지만 백화산 둘레길 가는 돌다리를 건넌다.
아까 본 건너편 풍광 좋은 그 길을 걸어볼 참이다. 근디, 더 걸으면 안될 것 같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돌아나온다. 강 주변에 돌탑들이 여기저기 있다. 여기 돌탑은 다른 곳 과는 달리 더 순수하게 보인다. 별볼일 없어 보이는 길거리 아무 돌을 하나씩 올려두니 하나로 모여 하늘을 올라가는 백성들의 염원이 담긴 듯 하다. 이쁜게 하나도 없지만 모든게 다 이쁜 반야사의 작은 돌탑들.
우린 기도 하듯 사진 찍고 이제 <월류정>으로
근처에서 매운탕 먹고 월류정 건너려 했는데 가격이 만만찮고 바람도 많다. 피곤이 밀려 온다. 송시열 유허비와 서원도 봐야는데 시간을 너무 잡아먹으면 부산 가는 길이 힘들다.
계획했던 <인터식당>으로 골뱅탕 먹으러 가다가 어탕국수집 발견하곤 마 그리로 간다.
국물은 진한데 뭔가 하나가 빠진 느낌, 빙어튀김도 몸에 가루가 너무 두껍게 발려 식감이 덜하다. 그래도 한끼 식사로 황간에서의 한나절은 마무리.
길이 밀려 고생 좀 하고, 황간에서 제법 시간을 보냈지만 우리 선택은 늘 잘한다. 잘못 간 곳도 오히려 즐거움을 더해 주니 좋다. 여럿이 움직이면 칼같이 해야 모두 좋아한다. 우리 둘이 자니는 최고의 장점은 마음가는 대로가 가능하다는거다.
코로나로 인해 모두들 몸과 마음의 문을 잠그고 있을 때 우리 부부는 참으로 많이 돌아다녔다. 이 시기에 거의 10,000키로를 탔으니 일반 사람 1년 넘는 거리다.
힘들고 어렵지만 사부작대면서 몸과 마음을 다른 차원으로 돌린다.
계획
황간 210키로. - 5키로 인터식당: 황간면 마산리 7-1 - 커피그림 : 남성리 572-1
- 3.3 월류봉광장: 원촌리 261(한천정사 : 원촌리 50, 월류정: 원촌리 산 20-1, 우암유허비 : 원촌리 111)
- 머금을 함(커피) 우매리 170-6
- 6.9 반야사 우매리 산3
- 211키로 구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