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 '떡 하나주면' 전래동화와 현재가 적절히 어울진 교육극
10-07-08 떡 하나주면 - 극단 ‘조명이 있는 교실’
오랜만에 연극 한 편 보았다. 부산에 있는 교사극단 ‘조명이 있는 교실’에서 무대에 올린 ‘떡 하나주면’이다. ‘떡 하나주면’ 꼬마 때 들어보거나 책에서 본 호랑이와 엄마와 자식들의 이야기다.
극단은 교사들로 구성되어있고 상연한 극들은 대부분 아이들과 함께 하는 교육극 중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나치게 깊이 있는 내용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이며 극단의 이념과도 맞지 않을 것 같다.
무대를 천으로 산을 만들어 산골의 맛을 내고, 육면체의 나무와 우물, 무쇠솥, 의자 이것이 소품의 대부분이니 20년 가까이 갈고 닦은 고민과 솜씨가 그냥 이뤄진 것은 아이었음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단순성이 빛나는 아이디어로 변하면서 관객(아이들과 교사가 대부분일 듯)들은 부담없이 함께 호흡하고 웃고 슬퍼하고 분노할 수 있는 마당극과도 닮은 연극의 장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진행되는 내용은 좀 더 흥미롭다. 호랑이가 나타난 마을의 이야기 - 마을 사람들의 두려움과 동요, 마을 사또의 무관심과 백성의 피폐, 아낙을 거느리는 사람과 남의 집 일을 하여 아이와 생계를 꾸리는 엄마의 희망과 고통 - 들을 좁은 무대에 잘 표현해 낸다.
배우들은 배우가 되어 대사를 쳤다가 소품으로 변하기도 하며 춤을 추어 백댄서가 되기도 하고 무대에 양껏 흥을 도워준다.(위의 부족한 소품들을 배우가 몸으로 메워내는 맛이 가히 환상적이다.- 조금 지나친 칭찬일까?) 아이들은 즐거워하고 박수를 치면서 호응하기도 하여 마치 또 다른 마당극을 보는 듯한 기분까지도 만들어 주니 매우 즐겁지 아니한가!
영화로 치면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를 볼 때의 즐거움과 경이로움을 경험한 듯하다.
1장은 즐거움과 재미에서 출발하여 먼길을 다닐 수밖에 없는 ‘어린백성(아이들의 엄마)’과 그 엄마를 기다리는 배고픈 아이들의 죽음으로 마감을 한다. 희망 보다는 현실의 처참함을 표현한 것 같다.
2장은 과거의 산골에서 현대의 교실로 옮겨간다.
이것은 어떤 연관을 가졌을까?
아마 지금의 아이들도 엣날 산골에 살던 아이처럼 불가항력의 세상에서 수동적으로 살 수 밖에 없었음을 표현하고 싶지 않았을까?
우리나라의 교사와 학생들은 외국에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걱정하며 산다. 그리고 하고픈 일들은 모두 대학가서 하면 된다고 교훈되어지는 세상에서 가쁜숨을 쉬고 있다.
모든 학생의 활동은 교장에게 허가를 받아야하고 대학을 위한 시험 점수 외에는 부정되어지는 점수의 시험지에 갖혀 산다. ‘클래스’(로랑캉테 감독)에서의 아이들은 가난하고 이주노동자이거나 원래 타국의 자제들임에도 교사에 대한 당당함을 볼 수 있다. 자기주장을 꺾을 생각도 없고 교사 앞에 지는 척 할 필요도 없이 하나의 인격체로 자기 주장을 펼친다. 우리 눈에는 너무 이상하지만 그것이 진짜 교육이며 이런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것이 교사가 있는 이유이다. 직원회의에서 교사들은 자기 생각을 충분히 말하고 대화를 나눈다.
우리에겐 모든 것이 명령과 시행의 요구뿐이다. 짧은 시간에 무대는 이것들을 다 표출한다. 인권에 대해 뭔가 발표를 준비하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전혀 인정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학교를 떠나기를 강요당하지만 아이들은 발표회를 통해 자신을 찾고 살아있는 이유를 느끼면서 사회에 당당히 서려는 몸부림을 보인다.
잘될까? 1장의 아이는 호랑이 뱃속에서 엄마와 만났을 것이다. 2장의 아이들과 이를 지지하는 교사는 지금 같으면 교사는 해직되고 아이들은 전학되어져 사회에서 다시 만나게 되겠지.
‘조명이 있는 교실’은 2개의 장을 통해 불가항력의 현실과 이제는 그것을 넘어야 할 시대라는 방향을 해학으로 잘풀어내었다. 대학로에서 본 어설픈 연극 보다는 뜻과 내용이 명확하고 관객과의 호흡도 수준급이다. 간만에 만난 좋은 연극이다.
아래 동영상 2장면은 허락받지 않고 찍은 것이다. 연극을 본 다음날 블로그에 올리기 위해 다시 가서 살짝찍다가 들킨 것이다. 멀리서 똑딱이로 찍은 것이라 화질 등이 않좋다. 그래도 그냥 참고로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