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춘가고 - 세대의 단절을 노래한
10-07-15 일본춘가고 - 세대의 단절을 노래한
‘일본춘가고’를 우리로 치면 무엇이라 해야 할까? 일반 민중들에게 전래되어 내려오는 ‘전래 음담패설’이라해야하나? 뭔가 비슷한 것이 있을 듯한데 기억이 잘안난다. 1592년 조왜전쟁 이후 유행하기 시작하던 사설시조나 고려 속요 등이 해당은 될 듯하다. 어쨌든 매우 외설적인 노래이고 이 노래를 일본을 대표한다 하긴 거시기하지만 일반 민중들의 입에서나 부르든 노래이지 점잖은 사람이 입에 담을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군국주의를 대표할 군가나 지식인의 악세사리 역할을 해오던 클래식 등에 대한 반대의 개념으로 보면 될 것이다.
오시마 영화를 보면서 서민과 섹스는 가장 민중적이며 일본의 군국주의나 권력에 항거하는 모습으로 까지 비치는 것 같다. 그런데 ‘일본춘가고’는 일본의 ‘왕절의 부할’을 기점으로 비장하게 출발하나 고교졸업생들의 ‘강간상상’과 대상자가 직접 해 보라는 ‘상상의 확인’의 과정들이 매우 곤혹스럽다.
상상을 실현하는 시험장에서 강의를 하는 아이들 선생의 애인은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한 배치였다 하더라도 이해 부족이다. 아래 줄거리에 잠시 적혀있듯 ‘일본은 신라에서 유래되었다’하는 강의는 함국인으로서는 반가운 말이다. 삼국유사와 일본서기에도 기록되어 있지만 일본인의 입에서 감독이 이 말을 하는 것은 매우 기쁘다. 그렇다하여 영화가 잘 이해되어지는 것은 아니니 이거 미칠 노릇 아닌가?
개스 질식으로 죽어가는 교사에 대해 학생이 그를 구하질 않고 그가 부른 춘가고를 부르는 장면은 지식인에 대한 반발의 표출로 보아져 이상할 것은 없다. 여학생의 인기를 한몸에 받는 그는 가장 심한 질투의 대상이니 그의 죽음이 비록 현실이더라도 구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있지 않겠는가? 군국주의에 반대하고 군가에 대해 춘가고로서 계급적 분노를 표출한 정의로운 교사가 철부지 학생의 묵과로 죽는다. 그것도 그가 즐겨부른 노래를 단지 호기심으로만 받아드리는 제자의 입에서 꺼구로 흘러나오는 묘한 죽음의 장면. 정의를 주장하는 세대도 시대도 이렇듯 허무하게 막을 내리는가?
구세대들은 ‘일본 왕절의 부할’에 대한 반대로 검은 일장기를 들고 시위를 한다. 베트남전 반대를 위한 데모와 모금운동, 서명 운동을 한다. 낮설지 않다.
그러나 신세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관여하고 싶지도 않다. 오로지 남자아이들은 여자에 대한 관음과 강간을 상상한다. 춘가고를 부르는 이유도 성적 호기심의 자극에 대한 것이지 교사의 주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신구의 단절은 이렇듯 한순간에 칼 베듯 찾아온다. 그리고 전혀 다른 세상으로 흘러간다. ‘고하토’에서 도시죠가 화려한 벚꽃나무를 단칼에 절단 내는 것도 이러한 세대 단절과 연관될까?
베트남전 반대를 위한 모임은 거의 재벌에 가까운 아이(이 아이가 수험번호 469이며 남학생들의 상상강간 주 대상이다.)의 집에서 펼쳐짐은 뭔가 역설하고픈 것이 있는 듯한데 난 잘모르겠다.
오시마 감독의 영화를 몇편 보면서 조금씩 드는 의문은 너무 남성 중심적이란 점이고 ‘춘가고’는 고등학생의 관음과 강간 까지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많이 불편하다. 열정의 제국에서도 아내 세키에게 카메라를 충분히 줄만 한데도 그러질 않는다. 섹스를 영화에 중심에 두나 여성은 언제나 대상이다. 어떤 화법인지는 궁금하다.
노태우 정부 중간 까지만 해도 많은 군중들의 데모나 양심선언 등은 범국민적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김영삼의 변절 이후 부산은 180⦁변한다. 정부여당에 선거 운동을 하든 젊은이는 ‘옛날엔 돈 때문에 여당을 위해 뛰어도 찝찝햇는데 이젠 떳떳해요.’라 말하는 것을 직접 듣고 난 뒤 ‘한 사람의 변절이 단순히 한사람으로 끝나지 않는구나. 그의 변절은 변절하고픈 욕구를 가진 눈치 보는 모든 이들의 부담을 없애고 변절의 시대로 가게했구나 ’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대의 단절이다. 오시마 감독은 춘가고를 통해 그 단절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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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명 : 일본춘가고
(日本春歌考 / Sing a Song of Sex)
감 독 : 오시마 나기사 / 大島渚 Oshima Nagisa
등 급 : 15세 이상 관람가
출 연 : 아라키 이치로 (나카무라 토요아키 역), 코야마 아키코 (타니가와 타카코 역), 타지마 카즈코 (후지와라 마유코 역), 이타미 쥬조 (오오타케 역), 이와부치 코지 (우에데 히데오 역)
정 보 : 1967 | 103min | 일본 | 16mm | Color
세 명의 시골 고등학교 학생들이 대입고사를 위해 도쿄로 향한다. 시험장에서 그들은 주위에 앉은 여학생들을 보며 성적 환상에 빠져든다. 세 소년은 외설적인 노래를 부르며 자신들의 절망과 ‘부모들의 이상주의’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표현한다. 하지만 노래의 반항적인 힘은 한국계 일본인 여대생이 부르는 종군 위안부의 만가를 듣는 순간 사라져 버린다. 시험의 마지막 시간에 일본 민족이 한국에서 유래했다는 강의를 들으며, 그들은 환상의 대상이었던 소녀를 목 졸라 죽이는 상상을 한다. 꿈과 현실 그리고 의식의 흐름에 따른 독백이 교차되는 <일본춘가고>는 정해진 시나리오 없이 촬영을 진행하면서 작가와 배우들이 함께 만들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