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형 - 진실에 접근한 빛나는 상상력과 조선인의 비극
10-07-22 교사형 - 진실에 접근한 빛나는 상상력과 조선인의 비극
‘교사형’ 오시마영화를 몇편 보지 못햇지만 살짝 지겨워지려고할 때에 ‘이런 영화도 있어’하면서 보여준 영화. 자칫하면 코믹물로 빠지기 쉽고, 아님 정치물이 되거나 민족적 차별 문제로 몰아갈 수 있는 경계를 교묘히 빠져나오면서 관객에겐 연극의 맛과 블랙코메디의 진수와 일본의 정치적 현실을 담은 싸고 맛있는 천원짜리 거대한 밥상을 오시마 감독은 만들어 내었다.
영화가 끝난 뒤 몸이 떨려 바로 일어나기 어려울 만큼 내겐 충격적이었다. 한 무대에서 영화를 거의 끝까지 끌어낸 힘과 산만하기 쉬운 내용을 무대 한군데에서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내어 놓은 아이디어가 너무 경이로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중 어떤 글을 보니 천만엔(지금 우리 돈으로 2억 정도 - 화폐가치의 하락 까지 생각해 주면 20억 정도?)의 저예산 때문에 아이디어로 승부를 건 작품이라고 한다. 결핍이 만들어 준 예술적 승리로 표현해도 아무 문제없을 듯 하다.
시작하면 하늘에서 교도소를 잡아내고 교도소 내에 있는 아주 아담한 가정집 같은 또 다른 공간을 비추면서 그 집으로 들어가 방의 구조 크기 색상 도구 등등을 아주 자세히 묘사해 준다. 비록 흑백으로 촬영되엇지만 그 집은 매우 아늑하고 화려하지 화려하진 않더라도 매우 깔끔하게 장식되었음을 볼 수 있다. 조금 더 들여다 보면 2층 구조이고 1층과 2층이 계단도 잇지만 가운데 다락방 문처럼 보이는 조그만 열게도 잇다. 그리고 그 위에는 단단한 동아줄이 연결되어있다. 줄의 뚜께와 크기 연결구조도 설명한다. ‘교사형’의 첫장면이요, 사형수를 교사시키는 공간이며 여기서 영화의 95%가 이루어진다.
사형수를 교사 시켰는데 죽지 않았다면 어이해야 하는가? 이런 난감한 설정은 일본 법률은 사형수가 본인의 죄를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이면 사형시킬 수 없다는 법리적 해석을 두고 재사형 시키기 위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게 한다. 이 문제를 두고 법 위반을 할 수 없다는 교도소 측의 법리 해석, 한번 죽어 영혼이 신에게로 갔는데 다시 기도할 수 없다는 신부, 사형이 임무이니 다시 죽이자는 중간간부, 여러 주장을 거의 듣기만 하면서 매우 큰 일장기를 뒷 배경으로 굳게 입을 다문 법무부 사람, 이들의 행동과 사형수를 다시 사형시키려는 노력이 법적해석과 신과 인간의 문제 병리학적문제, 일본의 군국주의의 모습 등을 다큐적 수법으로, 회상과 이야기식으로 풀어나간다.
사형수이자 제일한국인인 R은 영화가 종반으로 가기 전까지 표정없는 모습으로 대사도 거의 없이 일관된 동작을 보여준다. 자신이 R인지를 모르니 재사형 시키기 위해선 R이 R임을 알아야만 가능하다. 교도소 관계자는 이를 인식시키기 위해 자신들의 몸으로 R이 그동안 태어나고 살아왔던 환경과 두차례의 살인을 하게된 배경과 행동을 보여준다. 타인의 몸짓으로 본인의 삶을 보여 주고 본인이 본인임을 인정하게 하는 행동이니 발상이 대단하지 않는가?
이 행동 속에서 제일 한국인의 역사적 배경과 군국주의의 뿌리가 탄탄한 이유, 일본의 미래 등등을 다 표현한다. 당연히 연극적 요소가 클 수 밖에 없고 남자가 여자를 연기하고 엄마를 연기하고 비참한 삶을 보여주니 코믹적 요소가 더욱 넘쳐난다.
영화는 관객을 웃게 하지만 아무도 마음 놓고 웃을 순 없다. R이 이런 모습을 보면서 자신을 R로 인정하느냐 아니면 계속 모르느냐 문제는 R의 재사형과 결부되어 곧 교수 장면을 봐야할 관객의 운명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삶의 비참함과 군국주의에 대한 분노가 한국인 관객을 쉽게 웃을 수 있게 두지도 않는다.
아,아~ 그냥 비참하다. 일본으로 끌려와 평생을 미래없는 노동으로 지친 남자는 생을 포기하고 술과 구타와 폭행으로 세월을 보내며 자식은 그 뒤를 밟는 조선인들의 숙명적인 듯한 삶. 최양일은 ‘뼈’에서 지긋지긋한 폭행을 보여줬지 않는가? 그것이 영화를 보면서도 되살아난다. ‘교사형’은 겨우 말로 하는 폭력인데도.
전쟁으로 사람을 무수히 죽인 일본인들(여기선 교도관,의사 등등이다)은 이 모든 것이 국가를 위한 것이었다고 자위를 하고 R의 범죄는 파렴치하고 죽어 마땅하다는 논리를 앞세운다. R의 죄를 추궁하다 보니 자기들 죄가 자꾸 나오니 스스로 합리화로 입막음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엔 여성이 한명 교도소에 나타난다. 이 사람은 실제로 R의 모델인 이진우와과 많은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그가 한국인이며 민족의식에 눈뜨길 원하고 이진우를 깊이 생각해준 북한계 여성저널리스트 박수남이라 한다.(영화도 이 편지를 엮은 책에 많은 모티브를 받았다 한다.)
이 여성은 이상하게 몇몇 사람의 눈에만 갑자기 보인다. 그런데 조금씩 물들어 가듯 이 여성을 볼 수 있는 사람이 하나씩 늘어난다. 재미있는 것은 군국주의적 요소가 약하고 인간애에 강한 동정을 가진 사람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이 여성은 일본의 잔혹함과 조선의 위대함(김일성에 관한 노래도 부른다.) R이 조선임임을 알리고 당연히 사형 받을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친다. 여기엔 역사적 민족적 분노가 베여 있다.
설명이 너무 길었다. 심하게 머리를 두들겨 맞았는데 감명에 대한 것 보담 줄거리를 주저리 적는다. 표현할 길은 없고 뭔가 적고 싶어서인 모양이다.
국가의 부조리함을 부르짖으나 벗어날 길 없는 국가에 대한 발부둥과 인간의 고뇌를 듬뿍 담은 ‘교사형’은 오시마의 섹스에 지친 나를 다시 그를 깊이 존경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그는 단순히 영화를 만드는 장인은 아니었다. ‘청춘잔혹 이야기’를 보고 ‘가까이도 못가면서 늘 가까이 있는 척하는 운동권 출신’이란 표현을 취소한다. 그는 언제나 그 속에 있었다. 그의 모든 영화는 그 속에서 숨을 쉬고 있다. 표현이 어떠한 방식으로 보여졌든.
‘교사형’ 한편에 그냥 무릎 꿇는다.
1. 한국은 유교적 장유유서가 뿌리 깊다는 말을 한다. 이직도 그러하다만 일본은 상대적으로 덜한 모양이다.
2. 재일 한국인의 문제는 과거가 아니고 현재 진형형이다. 박정희의 한일협정이후 우리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절대 보이지 않는다. 외교적으로 하기 어려우면 다른 형태로 이 문제를 적극 풀어내려는 단체에 지원을 하면 된다. 그런데 정부는 오히려 방해꾼이다. 민족을 버리는 국가의 모습. 이게 우리의 현주소인가? 우린 절대 라이언 일병을 구하지 않을 것인가? 그는 적진에 좋아서 갔기에 죽어도 무방하다. 이게 우리정부의 공식적 입장인 것 같다. 문제가 일어난 모든 것은 당사자의 문제일 뿐이다.
3. 오시마 나기사는 제일한국인 문제를 그냥 식민지인의 비극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제국주의의 문제에서 출발하여 모든 대한 억압적 문제로 생각하는 것 같다. 작은 탄압은 결국 큰 탄압의 대변이다는 논리다.
http://www.youtube.com/watch?v=uhCuGBwoXe8
아래에 이 내용에 대한 번역을 두었다. 감독이 영화를 만든 이유 등도 나온다. 참고로 보시면 좋겟다. 조카가 해 준 번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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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형 (1968) 絞死刑 Death by Hanging
요약정보 드라마 | 일본 | 119 분
감독 오시마 나기사
출연 우에노 다카시, 오시마 나기사, 토우라 마츠히로, 코마츠 호세이, 이시도 토시로
줄거리 : 교수형에 처해질 운명의 재일 한국인 ‘R’은 사형집행에도 불구하고 살아난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 일어난다. R이 자신이 누군지에 대해 전혀 기억을 못하는 것이다. 사형 집행관들은 R의 기억을 되살려 자신이 저지른 살인행위를 일깨우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R에게 살인행위를 재현하도록 하고 R의 주변인들을 동원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재일 한국인에 가해지는 일본사회의 차별과 국가의 역할, 극단적인 민족주의, 상상과 현실의 관계 등이 풍자적으로 그려진다.
이영화의 키워드 : 사형수, 인종문제, 블랙코미디
제작노트1958년에 일어났던 실제 사건을 실험적 기법으로 다룬 일본 누벨바그의 기수 오시마 나기사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판타지와 리얼리즘이 뒤섞이는 형식적 반란이 돋보이며, 음울하면서도 유머가 살아있는 문제작.
(시네마테크부산)
* 1969년 키네마준보 각본상 수상
** 위 유튜브의 내용에 대한 번역이다. 조카를 시켜서 번역했다. 감독이 영화를 만든 이유 등이 나온다. 관심 있으면 읽어보시라.
Death by Hanging(1968)
일본인의 71%는 사형을 선호한다(사형제도에 찬성한다) 16%는 반대한다
이것은 사형제도의 폐지가 대다수의 일본인들이 선호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형제도를)선호하는 사람들 중에 사형이 행해지는 것을 본적이 있느냐?
사형의자(전기의자나 사형을 행할 때 사용하는 의자)를 본적이 있느냐?
이 모든 것을 보지 않고, 당신이 간단히 믿는다면 킬러(피의자)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죽어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왜 당신이 사형제도의 폐지에 반대하는 이유이다. (이 때문에 당신은 사형제도의 폐지를 반대한다)
이 영화는 카마츠수가와 고등학교에서 1958년에 일어난 실제 케이스를 묘사한 것이다.
이진우라는 이름의 한국인이 학교 여학생을 죽였다.
엄청난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곧 사형되었다.
나는 이진우가 감옥에서 자신의 의식을 가졌다고 믿는다
이진우를 기본으로 우리는 캐릭터(주인공)R을 창조했다
그러나 우리영화 안에서 그는 사형 후에 죽지 않고 삶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모든 죄수공무원(사형집행하는 사람들)은 부활한 이진우를 다시 죽이려 시도한다.
그의 범죄를 기억하고 그의 유죄를 인정하는 모든 이들은 R이라는 캐릭터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을 걱정하며 그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고 한다.
우리는 이 가상의 영화를 이진우라는 실존인물 보다 더 추상적인 R과 함께 사형제도를 비판하기 위해 만들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를 위협한다>
그러나 제발 우리 영화가 유일한 이론이라고 생각하지는 말라.
R을 납득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형집행원은 그가 바로 R이다.
이러한 시도는 상당히 웃기고 이상하고, 그리고 내 생각에 매우 일본인스럽다.
관중은 즐거워해야만 함과 동시에 깊게 터치(접근)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심스럽게 그 과정과 장소에 조사(접근)해야한다.
우리는 정확하게 그 사형의자를 재설계하고 최대한 진짜처럼 사형을 묘사했다.
그래서 당신이 여전히 미래에 사형제도의 폐지에 반대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의 목적이다. 이것이 예술영화이다.
그러나 우리는 예술을 만드는게 아니다.
제발 이것이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 생각하지 말아라.
우리영화는 당신의 길거리 의견(그냥 평범한 사람들의 의견)처럼 만들어졌다.
어떠한 경우에도 당신이 길거리에서 놀고, 일하고, 싸우고, 싫어하고 사랑하는 방법으로 영화를 봐라 (그냥 평범한 당신의 평소의 모습으로 영화를 감상하라)
내 생각에 우리영화를 보는 것은 하나의 행동(액션)이어야 한다.
왜 법이라는 이름아래 사람을 죽이는 것이 허용가능하다고 믿는가?
어떠한 권리로 사람을 죽이는 것인가?
비록 우리가 사형선고를 하더라고 우리는 죽이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수백만명의 사람을 죽이는 국가전쟁에서 사람이 죽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 진술이 존재하는 한 모든 것은 허용되어진다.
이 진술은 항상 죄책감이며 우리는 아니다.
맞다! 이 진술은 항상 죄책감이나 우리는 절대 아니다.(아닌 것으로 생각한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
+) 일본어를 영어로 누가 번역해서 적었는데 이 번역이 정확하지 않아서 한국어로 다시 옮기려니 말이 이상하네요 그래도 최대한 영어를 바탕으로 번역하려고 해서 아마 좀 어리둥절한 표현도 많을거예요 그래도 대충의 내용파악은 도움이 되시리라 믿습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