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임락경 목사님 그리고 준호네 생선, 준호네 사랑방

무거운 빈가방 2020. 9. 15. 00:18

 

간이 생기다 말았는지 가슴이 늘 쿵쾅댄다.. 이건 심장인가?

작은 일에도 이리 마음이 졸아지는 듯하면서 쿵대니 약간의 일만 있어도 참 힘들다.

내가 벌여 놓은 일 숫자 만큼 문제가 생길 수 있고 그 만큼 맴이 졸아드니 이거 어디 숨이라도 제대로 쉬겠나!

 

살아가는 방법이 각자 다양하겠지만 자기가 처한 환경에서 저기 잣대가 자라기 마련이다. 부지런히 산 듯 하였으나 뚜렸한 자기 주관이 부족하고, 목표도 약하니 늘 가는 길에서 길을 잃는다.

여기가 어딘지?

앞은 안개속이요 뒤는 보이질 않는다. 돌아가기 어려우니 그냥 꾸역꾸역 길을 걷는다. 정강이 쪽으로 날카로운 풀이 이 스쳐지나가면서 가끔 상채기를 만들지만 그게 어떤 고통인지 잘모른다.

 힘드니 뒤를 돌아보며 궁시렁거린다. 돌아갈 수 없으나 집착이 달라붙어 과거를 원망한다. 길을 잘못들었어. 아까 그 옆길로 가야했어..

주위에서 즐겁게 웃는 소리가 들린다. 웃음 속에 동무들의 소리도 있다. .. 난 어이 저리가지 못했을까?

 바람이 나무를 흔들고, 나무는 가지나 열매들을 나에게로 던진다. 놀란 가슴이 나를 쬐어오고 난 두려움에 떤다. 힘겹다. 즐거움이 뭔지 기억도 안나고 그게 가까이 있어도 냄새와 형체가 없으니 맡을 수도 볼 수도 없다.

여수 준호네에게 전화가 왔다. 금요일 저녁 식사에 초대한단다. 여수까지 저녁먹으러!...

목사님도 오신단다. 그리고 초대 하고 싶단다..

갈길이 멀어 힘든 것과 여름에 여수에서 먹은 맛있는 회가 동시에 떠오른다. 게다가 어마무시한 가오리와 애도 떠오른다.

강도사에게 초대받았다고 메세지 보내니 흔쾌이 가자한다.

 

 여름 여수에서 강도사는 준호의 이전 삶과 살아가고 있는 모습에 칭친을 가장 많이 했다. 그리고 귀한 사람이라 한다.

 같이 간다고 메세지 보내니 좋아라하는 모습이 답메세지에서도 전해진다.

비대면 시대에 학교도 하릴이 별로 없는 경우가 많다. 좀 일찍 나온 강도사와 여수로 향한다.

 

우리의 공동 관심사는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은 바뀐다. 살아온 여정을 돌아보면 이리되면 안되는데 현실엔 유희에 머문다. 이것이 많은 갈등을 일으키고 내 스스로 나를 부정하면서 고통을 일구기도 한다. 뛰어넘지 못하는 슬픔이 나를 감싸 조아온다. 그래서 많이 고통스럽기도 하다. 이율배반의 이 마음은 어디까지 멀리멀리 갈것인가!

 뛰어난 꾼의 이야기, 스스로에게 기특한 이야기를 차에서 듣는다. 마냥 부러울 뿐이다.

금요일 오후 여수시는 퇴근 차량으로 가득하다. 산업단지이니 멀리 가는 차들도 많을게다. 천천히 나가는 강도사 운전은 시간을 좀 더 늘린다. 낑겨드는 차들은 찬스를 놓칠리 없다. 바로 앞에 차가 저 멀리 가물거리고 사라진다.

 롯데케미칼에 대해 노동자들의 플랭카드 시위가 있다.

이 땅엔 저 시위는 멈추질 않는다. 아니 멈출 수 없다.

 

철저히 기업을 위한 나라라서 시위한들 잘들어주지 않지만 그래도 그냥 멍청이 당할 수만은 없지 않는가. 이 매연의 숲에서, 주말도 없이 서 있는 저 사람들은 이 땅의 사람들이 아닌가?

 - 저 사람들을 보면서 의사들 파업에 얼릉 꼬리 내루는 정부의 모습이 떠올라 헛웃음만 나온다.  총맞은 것 처럼 가슴이 아파오지만....

 - 선별지원금이 또 생각난다. 노동자에겐 단 한푼도 지급하지 않는 비정한 방법.

트럼프나 아베 보다 억만배 못한 이 행정처리는 비참함을 넘어 분노가 치민다.

 

차 밖으로 멋진 강도사 카메라를 내어 사진찍으니 그들은 우릴 본다. 어떤 생각을 할까? 카메라가 고급으로 보이니 짭새처럼 볼까?

이전 우리가 농성하거나 시위 하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모이면 꼭 날파리들이 주변에 있었다. 그러니 가까이 보이는 모르는 사람들은 다 짭새로 의심이 든다. 물론 아는 날파리들도 있다.

이들의 농성이 보람있길 빌면서 빌빌거리며 간다.

주소 설정 잘못으로 한바퀴 더 돌았지만 제시간에 도착...

 

2/3는 모르는 사람이다. 가볍게 인사 나누고 상차리길 기다린다.

노인네 한분이 준호네 사랑방 방문 기념으로 방명록을 적고 있다. 서명을 하는데 이현주라 적는다. 갑자기 강도사 눈이 번쩍이더니 급히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이현주 목사님은 오래전에 한번 뵙기도 했단다. 멀리 여수까지 온 보람이 이것으로 이뤄진다. 역시 사람이다. 모든게 사람문제로 귀결된다.

  이전에 정읍에서 만났던 힘든 여자분을 교정을 해주라고 준호네가 이야기 한다. 교정한다. 그 좋은 방석숙제를 하지 않으면서 교정 받는 것은 별 볼일 없다고 다시 이야기 한다. 어깨가 안올라가고 아프다 하지만 그래도 몸 전체를 리모델링 해 준다. 어깨는 많이 부드럽고 편하다 한다. 팔을 부드럽게 자주 돌리고 한번씩 힘빼고 하늘로 쭉 뻗어주라고 이야기한다. 아프단다. 참고 해라고 한다. 어깨가 앞으로 꺽여 있어서 앞근육은 졸아들어 굳어 있고 뒤근육은 늘어져 있는데 뻗으면 근육이 반대로 작용하니 당연히 아프다. 그렇지만 해주면 근육이 조금씩 풀린다.

아직 밥상은 안차려 졌다. 그래도 준비가 다 끝났단다. 일단 목사님께 인사드리고 차리겠단다.

 

입구 거실이 그리 넓은게 아니라 인사드린 뒤 상차리는 건 당연하지만 배 고프다.

한꺼번에 절드리면 되는데  따로따로 인사한다. 지역별로 15명 정도이니 팀으로 보면 6팀 정도다. 인사하고 덕담 듣고.... 기다림이 길다....

인사 끝나니 상을 차린다. 비록 준비가 다되어 있어도 상위에 다 올라오는덴 또 시간이 걸린다. 드디어 차림 끝!

근디... 이제 이현주 목사님 덕담 하시라 한다. 듣는다.

이제 임목사님 덕담... 길다..

 

목사님은 평생 생일상 받은게 몇 번 없단다.

어릴 때 집에 있을 때 생일 날 부침게 하나 해 달라고 하니 어머니께서 부침게는 냄새 나면 동네사람들과 나눠 먹어야 한다. 형편이 안되니 명절에 니꺼 따로 부쳐주께..”

목사님은 일찍 철들어서 더 이상 떼쓰진 않았단다.

 

군대에서 생일 이야길 하시는데 벌시로 기억이 잘안난다.... ㅠㅠ

군대 생일 상과 오늘 생일 상, 둘 중 어느 날이 더 의미가 있었겠노 하면서 숙제를 낸다.

 

좋은 말씀이 가슴을 때릴 것 같지만 음식 앞에서....

이제 말씀 끝나니 먹을 차례다.

근디... 기도 한단다.. 예수쟁이란.....

이목사님 힘없는 목소리로 간단히 하신다. 다행이다.

 

식사 시작..

하모, 민어, 병어... 다들 귀한 회다.

좀 있다가 드뎌 삭힌 가오리 까지...

맛있게 먹기 시작하는데 이젠 돌아가면서 소개 하고 말 한마디 해란다..

.. 음식이 잘안넘어간다.

남 이야기 하는데 부지런히 먹기만 할 수 없지 않은가! 게다가 이야기 듣는 건 대화하고는 다르니...

내 차례는 사레가 들렸는지 기침이 자꾸 나온다. 코로나 시대에... 인사만 하고 패스..

강도사는 이목사님 만난 것이 더 큰 수확이라 한다.

몇몇 사람들은 인사하는데 목사님이 저이는 작년에 죽었고 저이는 재작년에 죽었다라며 죽다 살아난 사람에게 부언한다. 목사님은 음식으로 암을 다스리고 병을 다스린다. 받아들이고 따라한 사람에게 복 있으라!

 

세상사 사람 이야기들이 방안에 가득차기 시작한다.

화기애매한 시간들....

찰칵 돌아가는 카메라..

한참 뒤에 한명 추가.

사진 작가란다. 카메라가 강도사꺼 보다 더 크다.

강도사는 저런 카메라를 정말 가지고 싶단다.

그렇겠제..

강도사는 사진을 엄청 좋아하고 잘찍고 햇제..

그의 사진 하나하나도 작품이제...

우리 친구들은 강도사 사진으로 폼을 잡는다.

오래전 우리 식구들과 강도사가 같이 진도에 양어장 집엘 갔었다.

그 때는 종현 형이 많은 것을 안내하고 가르쳐 준 때였다.

종현형 생각하면 마음아픈게 여럿있는데 이건 다음에

 

강도사는 얕은 물에 들어가 가족 사진 찍어주다가 배를 묶은 줄에 걸려 넘어진다. 비싼 카메라가 물로 잠수... 다신 이 카메라를 쓰지 못한다.

조잡한 내 카메라를 강도사에게 주기로 했지만 내가 차일피일 미루다 주지 않았다.

이것도 욕심으로 인한 내 후회 중 하나다.

주지 않은 카메라를 내가 사용햇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그냥 집에 박제된 것처럼 방 구석에 장식도 아닌 장식으로 먼지만 덮어씌고 있다.

볼 때 마다 나를 꾸짖는다. “그라지마라

 

사진작가는 전국에 다니면서 사진을 많이 찍는단다.

안동쪽에 있는 여자분이 인사한다. 그러면서 선물을 내어 놓는다.

죽인다! 목사님 얼굴과 한반도 기가 좌우에 있는 검은 마스크다...

팬데믹 시대에 이젠 마스크가 선물이 된다.

멋지다. 박수와 칭찬이 오간다.

마스크 사용의 다양한 방법 - 머리에 쓰니 머스크다.  머스크 쓴 사람이 사진작가.

우린 여수에서 금욜밤을 이리 보낸다.

어느 정도 거나하게 먹고 난 뒤 일부는 옥상에 올라간다. 여수 바다를 바라보는 옥상은 불어오는 바람이 마음도 씻겨주는 곳이다. 흠연장소이기도 하고 휴식의 공간이기도 하다.

난 아토피로 어릴 때부터 고생했다는 50대 여성의 몸을 또 잡는다. 준호도 잡아달란다.

교정 중에 목사님은 주무시러 들어가신다. 피곤해 보인다. 주무셔야지.

교정 하면서 몸에 대한 잔소리를 길게 늘어놓는다. 상대가 듣고 있나? 이해는 하나?

참 나도 고치지 못하는 병이다. 그냥 교정만 하고 끝내지....

 

방문을 열어 목사님 짐 위에 약소한 봉투를 올리고 우린 나온다.

다들 아쉬워 하고자고 가라 난리다.

 

늘 오락가락이다. 그러고 싶은 맘도 크지만 잠자리 불편할 것 같아 나온다.

맘씨 착한 쥔장은 허겁지겁 생선을 좀 싸서 준다. 고맙다.

행사 치르느라 든 돈도 엄청날낀데....

대단한 친구다.

11시 넘어 어둔 길을 뚫고 부산으로 온다. 비는 내리지만 강도사는 자질 않는다.

이전엔 늘 자버렸는데.. 오늘 술을 많이 안한 탓이다.

집 앞에 도착해 캔맥주로 목을 축이고 헤어진다.

긴시간... 많은 일들.. 많은 이야기들...

 

목사님 오래오래 우리들에게 건강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