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 - 9장 거짓없는 마법 정리
무거운 빈가방
2020. 10. 22. 00:48
<2차원 풍경에서 전자들이 흐르는 모습을 시각화한 이 섬세한 이미지는 화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에릭 헬러(Eric Heller)가 만든 독창적인 예술 작품이다. 헬러는 자신이 전자의 흐름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설명한다. 전자들은 몇몇 지점에서 이 풍경으로 들어가서 넓게 퍼지면서 무작위적인 체계, 혼란한 움직임, 놀라운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코스모스 9장 시작하면서 >
9장은 매우 헷갈린다.
양자역학 이야기를 하는데 알쏭달쏭하다.
시작에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해도 될 것 같습니다. - 리처드 파인먼 <물리 법칙의 특성>에서"
라는 글이 나온다. 전문가의 이야기다.
앤도, '헷갈려도 실망마라'고 위로한다. 왜냐면 아직 아무도 정확히 이해못하고 있으니까!
이해 못하는 것을 뭐땜시 적노?
앤은 여기에 대한 답도 한다.
옛선조들이 불을 이해 못했어도 다루었다는 것! 양자역학도 정확히 이해 못하지만 다룬다는 것!
사람들은 유흥준이 <아는 것 만큼 보인다>라 표현한 것에 많이 매몰되어 있다. 내가 매우 싫어하는 말이다.
안다고 다 보이고 모른다고 안보이는게 아니다.
국짐당의 비행이나 그들만의 잔치를 알아야 보이는가?
그들의 거짓 주장을 속속들이 알아야 이해하는가?
절대 아니다. 그들의 행동과 주장으로도 충분히 알고 느낄 수 있다.
상대적인 말이 <사람은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란 말이다.
광화문에서 미친 지랄을 하는 것들의 생각은 어떨까?
그들의 믿음은 굳건하다 생각한다. 그래서 유투브에 가짜 뉴스가 판을 쳐도 그것을 신뢰한다. 왜? 믿고 싶기 때문이다.
이런 믿음에 대한 것들로 사람들은 사기에 쉽게 넘어간다.
뉴스에 차고 넘치는 것이 사기에 대한 것이다. 이건 개인이 치기도 하지만 지자체는 한 술 더 하고 정부도 치고 검사는 더친다.
인간의 추악한 욕망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과학계에서는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은 얼쭈 신으로 추앙받는다 한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주장에서 어긋나면 다들 회피한단다.
하지만 과학은 이것을 깨부수고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는 힘을 가졌다.
여기에 또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다.
알딸딸한 이 9장은 이런 것에 대한 이야기다.
빛을 쪼개어 두개의 구멍으로 보내니 파장이더란다.
그런데 한쪽을 관찰하면 입자더란다.
참 희안하다.
나도 누군가 나를 보면 하던 짓도 멈칫거린다. 오랜 연습으로 숙달된 배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물체인 빛이 나 처럼 그리 행동을 한다. 이건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은 것 아닌가?
앤은 1884년 소설 <플렛랜드>를 가져온다. 차원의 이야기다.
2차원의 사람들이 3차원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내용. 3차원에 잠시라도 간다면 그 황당함은 어이 표현하기 어렵다는 것.
양자역학은 우리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차원의 영역일 수도 있겠다
이런 고민은 그냥 과학자의 몫이니 우린 그냥 " 아, 그런가!" 하면서 헷가림을 즐기면 된다.
그래서 9장은 좀은 헷갈리지만 기분 좋다. 다른 장보다 가볍다.
왜? 굳이 이해할 필요가 없고 그냥 술술 넘어가면 되니까.
이 장에서 반가운 것이 하나 더 있다.
직일 놈이 없다. 양자역학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니 사기치는 놈이 없다는거다.
미움없이 읽을 수 있는 정말 좋은 장! ㅎ
9장 거짓 없는 마법 : 양자역학 : 뉴턴⇨하위헌스 –토마스 영 ⇨ 조지프 존 톰슨 ⇨ 존 스튜어트 벨
자연은 가장 은밀한 비밀을 빛으로 쓴다. 빛: 지구의 모든 생명을 움직인다. 식물 당을 만든다. 우주의 거리를 측정하는 잣대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갇힌 빛은 블랙홀이다. 우리가 아직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정체를 모르는 것은 그것들이 빛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작 뉴턴: <빛과 색의 물리적 속성> 연구. 바늘로 자기 눈에 찌르기. <색이 빛의 특징>
무지개 처음 설명, 햇빛 속에 모든 색깔의 빛들이 다 담겨 있다. 입자들의 흐름,
뉴턴의 위대함은 마치 네 살배기 아이처럼 일상적인 현상에 “왜?”“어떻게?” 하고 묻는 데서 나왔다.
관찰을 근거로 해서, 뉴턴은 빛이 입자들 – 그는 “미립자corpuscles”라고 불렀다. - 의 흐름이라고 추론. 광선이란 한 줄로 날아 온 빛의 미립자들이 우리 눈의 망막에 부딪히는 현상이라고 보았다.
<아이작 뉴턴 경의 “광학, 빛의 반사, 굴절, 회절 및 색에 관한 연구>에는 그가 30년간 수행한 빛, 시각, 색에 관한 실험들이 담겼다. 이 책은 1704년 익명으로 처음 출간되었다>
하위헌스: 추시계 발명, 환등기, 다른 행성 크기 측정, 화성표면 특징을 그림으로, 금성이 구름으로 덮여 있다 추측, 화성과 지구의 자전주기가 24시간정도, 공기 펌프 개량하여 채광산업 혁명, 화약엔진 개발 – 증기기관 발달에 영향, 토성고리속성, 뉴턴처럼 새로운 수학분야를 개척.( 확률이론)
하위헌스는 빛도 소리처럼 파동으로 퍼진다고 생각했다.
1659년에 크리스티안 하위헌스는 영사기를 설계했고, 그 영사기로 틀 최초의 애니메이션 영화까지 그렷다. 죽음의 춤추는 모습을 담은 짧은 영상이었다. 이 예술 형식의 잠재성이 현실에서 실현되기까지는 수백 년이 걸렸다.
토마스 영 :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 <인도 – 유럽 어족>의 계통도를 작성, 에너지라는 단어를 현대적 의미로 처음 쓴 사람, 분자, 즉 둘 이상의 원자가 화학 결합을 통해 이룬 입자의 크기를 처음 잰 사람, 안구 변형으로 인한 시각 결함을 확인하고 그 현상에 난시라는 이름을 붙였다.
두 슬릿을 통과한 빛의 파동처럼 행동하며 간섭무늬를 그리고 있다. 1801년
<위의 책자 가운데 장면 참조: 두 슬릿을 통과한 빛의 파동처럼 행동하며 간섭무늬를 그리고 있다. 토마스 영의 1801년 실험을 재현한 것이다.>
뉴턴은 과학자라기보다 성인 이었다. 빛은 늘 입자로 행동하는 것은 아니었다. 과학에서 권위에 기댄 주장이 별로 무게 있게 여겨지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자연이, 오직 자연만이 결론을 내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연은 부릴 줄 아는 재주가 많으니, 어느 시점이든 자연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완전하다고 믿는 사람은 바보가 아니고서야 없을 것이다. 뉴턴은 틀렸다. 부분적으로. 영은 옳았다. 부분적으로.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정말로 혼란스러운 대목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조지프 존 톰슨> 1897 , 마분지 슬릿 ⇨ 진공관에 전기 흘림, 전도체인 금속 전극 가열, 입자들이 흘러가는 것 보임, 자석 가져다 대면 입자가 흐르는 경로 바꿈. , 사람들이 그 때까지 있는 줄도 몰랐던 입자와 파동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젖혔다. 원자보다 더 작은 것을 발견했다. 더구나 그것을 모두가 눈으로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전자electron>
물질의 최소 단위라고 여겼던 원자에 전자처럼 그것보다 더 작은 구성단위가 있다면, 빛도 마찬가지지 않을까? 언제나 빛에 매료된 과학자들은 빛을 구성하는 더 작은 단위를 분리해 낼 방법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것이 거울 나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기존의 물리 법칙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이상한 나라로 넘어가는 문턱이었다.
톰슨 크룩스관을 이용한 음극선 실험의 사진. 톰슨은 크룩스관을 이용하여 전자를 발견한다
톰슨의 전기장에서 음극선이 휘는 것을 확인한 실험장치의 그림. 음극선(파란색 선)이 전기장(노란색)에 의해 휘는 것을 확인했다
과학이 자연의 금고를 열어젖혔다. 그리고 그 때부터 사태가 희한해졌다. 물질의 최소 단위라고 여겼던 원자에 전자처럼 그것보다 더 작은 구성단위가 있다면, 빛도 마찬가지지 않을까? 언제나 빛에 매료된 과학자들은 빛을 구성하는 더 작은 단위를 분리해 낼 방법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것이 거울 나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기존의 물리 법칙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이상한 나라로 넘어가는 문턱이었다.
⇨ 20세기말, 영의 이중 슬릿 실험을 전혀 다른 차원에서 실시해 봄
⇨ 광자(빛의 최소 단위로 분리)를 한번에 하나씩 영의 악명 높은 이중 슬릿에 통과
지금까지 발견한 세계 중 가장 작은 양자 세계에서는 관측이라는 단순한 행위가 현실을 바꾼다.
빛은 파동인 동시에 입자이고, 어느 쪽도 아니기도 하다. 게다가 이 현상은 광자에만 국한 되지 않는다. 모든 아원자 입자가 이런 행동을 보인다. 광자든 전자든 다른 어떤 기본 입자든, 우리가 관찰하기 전에는 확률 법칙에 따르는 불확실한 상태로만 존재한다. 그랬다가 우리가 관찰하는 순간, 전혀 다른 상태로 바뀐다.
모든 입자는 무작위적이고 종잡을 수 없는 확률의 지배를 받는다
JJ. 톰슴은 음극선관을 활용한 기구로 원자에 음전하를 띤 입자, 즉 전자가 들어있음을 증명했다. 아버지의 연구를 이은 그 아들 조지 패짓 톰슨은 전자를 결정에 통과시킨 뒤 건너편 금박에 가서 부딪히게 만드는 실험으로 전자가 파동처럼 행동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아원자 입자의 이런 모호한 속성은 지금 까지도 우리를 당황스럽게 한다.
우리가 아직 그 경계선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아무튼 우리 일상 세계의 법칙이 물러나고 우리가 아는 한 가장 작은 규모의 세계에 적용되는 법칙이 등장하는 경계선이 존재한다. 그 작은 세계는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경험과는 분리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계와는 전혀 다른 차원과 규칙을 가진 세계를 어떻게 이해할까? 쉬운 일이 아니다.
톰슨 실험실에서 강력한 자기장으로 음극선을 원형으로 휘게 만든 모습.
에드윈 애벗의 1844년 걸작 <플릿랜드 : 다차원 세계의 모험>
우리는 2차원 존재가 3차원 세계를 미처 상상하지 못하고 오리무중에 빠지는 모습에 웃는다. 하지만 양자 현실로 오면, 우리가 바로 그 꼴이 된다. 차원이 다른 세계를 상상하기 어려워하는 존재가 되고 만다. 우리도 우리 나름의 플릿랜드에 살고 있다.
에드윈 애벗은 1884년에 출간한 소설 <플랫랜드>에서 그림 같은 집에서 2차원 가족이 살아가는 2차원 세계를 상상했다.
코스모스에는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차원들과 역설적인 현실들이 있다. 우리가 인식하는 차원 외에 그 위로도 더 많은 차원이 있고, 그 아래로도 더 많은 차원이 있다. 세상에는 가끔 다른 차원으로 가는 문을 열어 젖히는 탐구자가 나타나고는 한다. 뉴턴과 하위헌스, 토마스 영, 마이클 패러데이,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아인슈타인은 그런 탐구자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이름들이다. 그런데 – 그들 보다 훨씬 덜 유명한⇨ 또 다른 탐구자들이 있으니, 그는 남들이 다른 아무 데로도 통하지 않는 문이라고 여겼던 문을 열어젖힌 사람이었다. 그 일은 그가 우주의 모순을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시작되었다.
존 스튜어트 벨: 이중 슬릿 실험 때처럼 빛을 그 구성 단위인 광자로 쪼개, 서로 얽힌(entangled) 상태, 두 광자중 한쪽 스핀 관측 : 그 순간 영혼의 짝도 스핀을 바꾼다. 모든 광자가 다 이렇다.
제3자 관측이라는 언뜻 해롭지 않아 보이는 행위가 어떻게 그토록 깊고, 지속적인 관계를 끊을 수 있을까? 광자는 어떻게 코스모스 건너편의 짝에게 결별 메시지를 전달할까? 상대 광자는 또 어떻게 그 메세지를 순간적으로 받아낼까? 두 광자는 어떻게 광속 보다 빠른 교신으로 메시지를 서로에게 전할까?
아인슈타인이 실패했던 일에 성공한 존 스튜어트 벨. 오늘날 우리가 양자 기술 혁명을 보게 된 것은 벨이 자연의 책에 빈페이지가 있는 것을 잠자코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양자 얽힘은 관측 외에는 무엇도 견뎌내는 신비로운 관계다.
또 하나의 창백한 푸른 점. 양전하를 띤 스트론튬 원자 하나가 두 전극 사이에 붙들려 있다.(위 사진) 폭이 1,150억 분의 1 밀리리터밖에 안되는 원자가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그것이 레이저 빛을 흡수했다가 재방출하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그런 일을 “유령같은 원격 작용”“숨은 변수” ⇔ 벨: 무작위 과정의 결과를 기록할 수 있는 계수 메커니즘이 있다고 상상했다. 숨은 변수는 없다,
인류는 과거에도 이런 경험. 약 100만년 전, 불을 길들였다. 불의 정체를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것을 활용해 문명을 건설했다. 우리는 양자 세계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과학은 물론이고 그 밖의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양자 암호화기술/관찰자효과)
우리는 고전 물리학의 범위를 벗어난 영역, 하나의 광자가 동시에 두 지점에 존재할 수 있는 영역으로 들어섰다. 우리를 비롯해 세상의 모든 존재를 구성하는 기존 입자들은 자신들도 알지 못하는 사건에 반응한다. 양자 세계의 무법적 카지노에는 객관적 현실이라는 것이 없다.
우리가 아직 발견 못한 원리들의 지배를 받는 기묘한 양자 세계는 저 우주 밖에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양자 세계는 우리 안에도 있다. 우리 일상과 경험의 모든 차원에서 불가능해 보이는 마법을 부리고 있다.
이런 양자 우주에서, 고전적 개념의 현실을 구원할 방법이 있을까? 과학자들은 전통적인 인과율을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하나 떠올렸다.
다세계 해석 , 초결정론superdeterminism
크고 작든 모든 사건이, 우주가 시작된 순간에, 즉 우주가 겨우 구슬만 했던 순간에 빈틈없이 다 결정된 일이다. (재치기, 무수한 사건 등도), 양자얽힘의 수수께끼, 즉 서로 얽힌 두입자가 마치 광속을 능가할 수 있다는 듯이 먼거리를 순식간에 가로질러서 교신하는 수수께끼를 풀어준다는 점이다.
어쩌면 우리는 정말 결정론적 세계에서 사전에 프로그래밍이 된 입자들의 집합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진짜 그런 존재처럼 살지는 말자. 더구나 우리에게는 그것이 참인지 아닌지 확인해 볼 방법이 없다.
우리는 광자가 어떻게 입자인 동시에 파동일 수 있는지 모른다. 내가 과학에서 좋아하는 점 중 하나는 과학이 우리에게 모호함을 참아내는 능력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과학은 우리에게 자신의 무지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도록 요구하고, 증거가 나타날 때까지 판단을 유보하도록 요구한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변변찮으나마 이미 가진 지식을 활용해 현실의 새로운 언어들을 찾아보고 해독하는 일만은 문제없이 계속할 수 있다.
이 방대한 코스모스에서 우리는 모두 플릿랜드다. 그런 우리가 위를 상상해 보려고 노력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찾아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과학이다.
IBM의 50-큐비트 양자 컴퓨터
양자역학이 탄생하기까지의 역사와 양자역학이 응용된 사례들2
관측행위를 통한 파동함수의 붕괴
양자 얽힘' 확인과 촬영 실험 장치
양자가 보스아인슈타인응축(BEC) 상태로 응축돼 있다. 이 경우 개별 원자 사이에 얽힘이 있을 것이라는 추정이 있었지만 증명이 어려웠다. 연구팀은 원자 사이의 간격을 서서히 벌린 뒤 두 그룹으로 나눠 양측 사이에 얽힘이 존재하는지 확인하는 방법으로 내부 얽힘이 존재함을 확인했다
자료를 여기저기 찾다가 본 내용. 출처를 적어야는데 잊었다. 학생 실험 보고서 형식인데 책에 있는 내용이겠지만 빛의 속성에 대해 잘정리되어 있다.
아래는 <현대 물리학의 흐름> 자료를 이리 저리 찾다가 필요하다 싶은 것은 다 받아두다 보니 넘칠 수는 있겠다. 그래도 도움이 많이 된다. 나같은 안과학도의 경우는 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