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불의 전차: 갖춰진 사람의 보편적 이야기-감동 운운하는 것은 맞지 않다.

무거운 빈가방 2020. 12. 11. 00:51

 

 

불의 전차(1981) Chariots Of Fire

 

드라마 영국2016.06.16 개봉 2020.10.29(재개봉) 123, 전체관람가

 

감독 휴 허드슨

주연 벤 크로스, 이안 찰슨, 나이젤 하버스, 셰릴 캠벨, 앨리스 크리게

 

 

1924년 런던,

타고난 스프린터 해럴드 에이브라함과 에릭 리델은

8회 파리 올림픽 영국 대표로 선발된다.

 

유대인으로서 당해야 했던 차별과 편견을

이겨내기 위해 승리를 향한 투지를 불태우는 해럴드.

그리고 종교적 신념을 걸고 피나는 노력을 거듭하는 에릭.

 

숙명의 라이벌인 두 선수는 전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생에 단 한 번뿐인 레이스를 시작하는데

 

스포츠 정신이 살아있는 최고의 클래식 명작

전세계를 감동시킨 기적의 레이스가 시작된다!

 

 

올림픽 육상경기에 출전한 두 젊은이의 집념을 그린 스포츠 영화이다.

각자의 신념에 따라 고난과 역경을 딛고 에릭은 400m 경기에, 해럴드는 100m 경기에 출전하여 각각 금메달을 따낸다.

그 후 해럴드는 정치인으로 에릭은 중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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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 해석에 유태인 차별 운운한다.

- 영화 에서는 유태인이라 하여 차별하는 모습이 없다. 단지 헤럴드 역의 벤 크로스가 말로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2. <스포츠 정신>의 영화라 한다. 영화에서 스포츠 정신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은 앤드류 린제이 경밖에 없다. 그는 자신의 종목을 상대를 위해 양보를 한다.

나머지는 모두 자기 신념(종교적이거나 민족적이거나)을 위해서 했을 뿐이다.

스포츠 영화인 것으로 보인다 하여 스포츠 정신 운운 하는 것은 무리가 많다.

     < 포스터에 바로 포띠 난다. 죵교적인들이 받을 수 있는 감동일 뿐이다. >

 

3. 당시 1920년대 는 제국주의 시대다. 국가주의가 모든 것을 우선해야 된다는 인식이 강하다.

영화 중간 중간 나오는 노래도 대부분 영국을 찬양하는 노래다.

이 노래들은 당시 시대적 배경을 보여주는 것들이라 생각은 든다.

 

시작은 캠브리지 입학을 하는 1919년 부터다.

우린 식민지 시대의 다른 곳을 보면 마음이 많이 아프다.

우리 선조들은 독립을 위해 태극기를 들고 거리에 나갔다가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고 구속된다. 대한 민중들의  희망이 왜놈들에 의해 깡그리 부숴진다.

이 때 여기 영국에서, 이들은 대학에 입학하고 대학생으로서의 권리(?)를 만끽한다.

그래서 참 배가 아프다.

저들의 놀음이 다 우리 같은 억압받고 빼앗긴 식민지 덕분이 아닌가!

 

두 주인공은 국가주의 시대에 국가를 쫓지 않는다.

한명은 유태인이라 그 자신의 민족을 위해 쫓는다. 말은 영국인이라 하지만.

한명은 스코틀랜드 태생이다. 그의 사명은 오로지 선교에 있다. 그는 선교의 방편으로 자신이 제일 잘하는 달리기를 택한다.

 

히틀러가 40년대에 베를린 올림픽을 유치한다. 나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올림픽을 가지고 스포츠 정신 운운하면 안된다.

겉은 스포츠지만 국가 간의 대항에는 각 나라들의 음흉한 자기 목적이 있는 거다.

개두환이가 올림픽 유치한것도 히틀러가 유치한 것과 비슷하다.

국민들의 애국심을 활용하여 메달을 좀 더 따면 지지율도 올라가니 기를 쓰고 유치하려고 하는거다. 게다가 유치하면 공사를 일으켜 더러운 돈 거래를 할 수 있어서 금상첨화다.

한국 지자체는 시장들이, 행사 유치 때문에 그들의 지지율 올라가는 건 아니지만 기를 써서 유치하려는 것은 뒤에 더러운 돈거래의 경우에 해당된다. 그게 올림픽이든 박람회든 무엇이든. 국민들이 잘살 수 있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세금만 더 늘어나는 거다.

우린 마음 주고 돈 뺏긴다.

 

아무튼 <불의 전차>는 올림픽 육상경기에서 활약한 영국인들의 이야기다.

당시 100미터, 100미터 허들, 400미터 이렇게 세 종목을 딴 모양이다. 아마 영국 올림픽 역사에서 이렇게 한꺼번에 딴 경우는 처음일 것 같다.

 

이들은  좌절 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하고 밀고나가는 사실을 영화에 담는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거나 정말로 큰 어려움을 뚫거나 한 것은 없다.

다들 매우 부유하고, 운동 실력도 뛰어나고 좋은 환경을 활용하여 , 실력을 조금 더 갈아 메달을 딴 것 뿐이다. 올림픽 출전하려고, 메달을 따려고 선수들이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경우와는 거리가 좀 있다. 

 

개인 과외선생을 두고 훈련하는 것(아버지가 고리대금업자이다),

자기 정원에서 장애물에 와인을 부은 잔을 양쪽으로 두고 연습하는 것(이 사람은 "경", 귀족이다)

중국선교사로 활동하다가 선교의 방편으로 달리기를 택한 것( 이 사람은 그리 부자는 아닌 듯, 단체 훈련에 참여한다. 당시 최고의 기량을 가진 선수라고 정평이 나있었다.)

 

가진 것을 최대 한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이것이 그리 감동적일 이유는 별로 없지 않는가! 

아직은 유럽제국의 올림픽이다. 즉 없으면 운동도 불가능한 시대다.

한국에서는 지금에 와서는  더 그렇게 변질되어 버렸지만..

 

  유럽제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 사람들은 더욱 더 몇백배의 혼신을 다해야 겨우 메달을 딴다. 이들이 역경을 딪고 일어섰다 할 수 있다.

여기선 사실 그런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감동을 준다는 것은 좀 거시기하다. 재미를 준다는 말은 사람에 따라 동의할 수 있을지 몰라도.

 

4.  출전 선수로 나오는 주인공들은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이 중심이고 이들은 체육과가 아니다.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한다.

<대학교정에서 입학 한 뒤 시합하는 모습- 엘리트들이다. 그리고 이 대 벌써 탁월한 역량을 보인다 둘다.  그냥 운동만 하는게 아니라 공부하면서 운동하는거다>

 

한국은 운동만 하여 대체로 머리를 썩힌다. 엘리트 체육이 여전히 군력을 쥐고 흔들기에 이것을 고치기도 엄청 어렵다. 남자 감독들이 여자선수에게 해 대는 성추행과 폭행은 다 이런 바탕 때문에 숙성되지 못한 것들이 운동만 잘해서 일으킨 사건들이다.

한국의 운동하는 학생들에게 공부할 자유를 돌려줘야 한다. 자유와 동시에 의무이기도 하다. 메달을 따도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할 자유도 줘야 한다. 돈도 벌고 명에도 차지하고 군대도 안가고..... 이건 불평등의 극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