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낭트의 자코: 힘들고 불행하다 싶을 때 이 영화를 보라.

무거운 빈가방 2020. 12. 22. 00:08

 

낭트의 자코(1991) Jacquot of Nantes, Jacquot De Nantes

 

드라마 프랑스 117, 15세이상관람가

 

감독 아녜스 바르다

주연 필립 마론, 에두아르 주보, 로랑 모니에, 브리지트 드 빌레푸와, 다니엘 뒤블레

 

낭트의 어린 소년 자코는 정비소를 운영하는 아버지와 미용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세상은 전쟁으로 어수선해지지만, 자코에게는 여전히 인형극와 영화를 보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이다. 자크 드미가 어린 시절에 겪었던 일과 그가 나중에 만든 영화 장면들을 번갈아 보여주며 드미의 영화가 지닌 매혹을 흥미롭게 탐구하고 있는 아름다운 영화. 자크 드미는 이 영화의 제작 도중 세상을 떠났다.

(2010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 아녜스 바르다 회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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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인형극에 빠져 인형극, 영화 등등 무대나 화면에 나타나는 활동에 대해 관심을 가진 자코는 자라면서 꿈을 잊지 않고 꿈을 현실로 바꾸려 노력한다.

<낭트의 자코> 바르다 할매가 남편 자코에 대한 추억과 존경의 뜻으로 만든, 남편이 영화감독이 되기 까지의 과정, 어릴 때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다.

 

자코 감독의 경우(물론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가족과의 추억(아버지-정비소, 엄마-미장원, 동생과 옆집의 여자애, 친구 등등)이 시나리오의 기본 바탕이 된다.

이 영화는 그래서 어릴 때 일어난 일과 자코가 만든 영화의 장면을 번갈아가며 펼쳐 자코의 영화에 추억이 얼마나 크게 자리 잡고 있는지 보여준다.

<자코>라는 감독 참 대단하고 집요하다.

부모의 뜻을 어기진 못하지만 영화에 대해 품었던 꿈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는다.

동네아이들을 모아 영화를 찍고, 다락방에 혼자의 공간을 만들어 종이로 배우를 만들어 촬영을 한다. 혼자 하니 무희가 춤추는 장면을 찍기 위해, 종이로 오린 무희의 한 장면 한 장면을 찍고 옮기고, 찍고 옮기고 한다.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리겠지만 지겹고 힘들거다. 그런데 자코는 그 순간 모든 것이 다 행복하다. 그는 영화와 한 몸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를 말할 때 오직 영화를 만들기 위해 태어났다 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을거다.

직업인으로서 안정적으로 살아가기 원하는 아버지,

따뜻하게 그를 안아 그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어머니,

그를 주변에서 알게 모르게 도와주는 친구나 친인척들.

여기서도 결코 독불장군은 없다. 주변의 도움이 그의 작업을 하나씩 진전하게 만들고 결국은 빛을 보게 안내해 준다.

 

이것도 그의 열정과 변치 않는 모습이 감동을 주었기 때문일거다.

세상의 모든 일은 서로 영향을 준다. 선한 영향일수도 있고 악한 것일 수도 잇지만 발전하는 과정에서는 모두 다 경험이고 공부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최고의 희망이 이 영화 속에 들어있다.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찍은 것이니 그에 대한 추억과 회상이 함께하고 감출 수 없는 애정이 화면 속에 겹겹이 겹친다.

 

<낭트의 자코>를 보는 나도 참 행복하다. 감독으로 눈으로 보진 못하지만 행복한 에너지를 주는 카메라와 애정이 넘치는 장면들이 내 가슴으로 그대로 들어와 자리한다. 그리고 어릴 때 내 추억과도 겹친다. 난 영화를 보기만 한다. 한발자욱도 나가지 못하지만 만든 영화들을 즐기니 나도 영화 한편 만드는데 나름 한 역할을 하는거다.

바네스 할매와 자코 할배와 내가 혼연일체가 된다.

참 대단한 경험이다.

자코가 비를 맞는 장면이 있다. 아이는 매우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낭트의 자코>는 이 표정처럼 최고의 행복에너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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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아녜스 바르다는 누벨바그의 어머니라 불린 누벨바그의 유일한 여성감독이었다. 그는 언론에 누벨바그란 말이 등장하기 5년 전에 <짧은 송곳 La Pointe Courte>(1954)을 연출했는데 영화사가 조르주 사둘의 평가에 따르면 이 영화는 의식, 감정, 실제 세계를 자유롭게 오가는, 첫번째 누벨바그 영화다”. 다른 누벨바그 감독들이 점점 처음의 신선함을 잃어버리고 있을 때도 바르다의 영화는 여전히 강력했으며 70년대 중반 이후에는 페미니스트 실천의 모범으로 평가받는 진중한 영화를 연이어 발표했다.

 

28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나 루브르학교에서 예술사를 공부하고 사진작가로 일한 경력이 있었던 바르다는 <5시에서 7시까지의 클레오 Cleo from 5 to 7>(1962)로 국제적인 이름을 얻었다. 병원에서 암 선고를 받은 클레오 빅투아르라는 가수가 5시에서 7시까지 파리 주위를 배회하며 죽음에 대한 공포를 달랜다는 별달리 새로울 것 없는 이 얘기를 놓고 바르다는 아주 새로운 화법을 펼쳤다. 극중 시간과 상영 시간이 거의 일치하는 드물게 보는 화법으로 바르다는 클레오와 관객을 하나로 만든다. 클레오가 파리 근처에서 만나는 친구들, 낯선 사람들, 보이는 풍경과 그에 대한 클레오의 반응을 묘사하면서 바르다는 짧은 90분 동안 아주 농밀한 영화적 흥분을 안겨주는 시간을 만들었다. 일반 극영화에선 생략하고 넘어갔을 시간을 되살리면서 얻어낸 이 극적 효과는 참신한 것이었다. 바르다는 우리에게 스타일의 의미는 없다. <5시에서 7시까지>에서 암을 두려워하는 주인공 여자의 이야기를 지탱해준 것은 그의 두려움이었다. 그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주관적인 것이든, 객관적인 것이든 영화의 시간이 돼준 것이다라고 말했다.

 

바르다가 처음으로 만든 색채영화 <행복 Le Bonheur>(1965)은 섬세한 형식과 도발적인 주제를 지닌 매혹적인 작품이었다. 한 장면이 끝날 때마다 화면이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지며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암전효과가 나오는데 암전이 시작되기 전 화면은 주인공들의 미묘한 심리변화에 따라 노란색과 붉은색 등으로 짙게 물든다. 바르다는 이를 팔레트를 닮아보려고 한 영화라고 표현한다. <행복>은 제목 그대로 행복의 의미가 무엇이지 묻고 있다. 유부남인 프랑수아가 에밀이란 이름의 여성과 연애에 빠지고 아내 테레즈에게 새로운 사랑을 허락해 달라고 하자 테레즈는 프랑수아에게 행복하냐고 묻는다. 그리고 자기가 계속 프랑수아를 사랑해도 되냐고 묻는다. 그리곤 자살한다. 사랑의 독점과 주고받음이 끝났을 때 테레즈의 행복도 끝난다. 그래서 아직 프랑수아의 하나뿐인 아내였을 때 죽는 것이다. 그런데 프랑수아와 에밀의 아름다운 육체와 무구한 영혼은 순수했다. 테레즈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행복을 소유로 이해했으며 사랑을 빼앗겼다고 느낀 것이다. <행복>에서 바르다는 누보로망 소설처럼 상황의 표면을 아주 정교하게 따라가고 있을 뿐인데도 행복의 본질은 무엇인가, 자연의 원리에 따르는 행복의 감정은 무엇인가를 아주 섬세하게 파고들면서 등장인물의 심리와 주변환경의 맥락을 보편적으로 이해시키는 힘이 있었다.

 

72년부터 여성주의 운동에 동참한 바르다는 <여성의 대답 Responses De Femme>(1975)이란 8mm 영화를 비롯해 여성들과 함께 기록영화와 독립영화 작업을 계속했으며 극영화 연출은 69년 즉흥연출로 만든 <사자의 사랑> 이후에 84<집도 없이 법도 없이 Sans Toit Ni Loi>를 만들 때까지 <한 여자는 노래하고 다른 한 여자는 노래하지 않는다 L’ Une Chante L’Autre Pas>(1977)라는 한편의 장편영화만을 찍었다.

 

이곳저곳을 방랑하며 살다 길가에서 얼어죽은 한 젊은 여성의 삶을 그린 <집도 없이 법도 없이>를 통해 바르다는 기록영화와 극영화의 경계를 허무는 형식으로 여성의 독립, 자유에 대한 갈망, 자연과 친하게 살 수 있는 인간의 능력, 탄생과 죽음의 자연스런 순환 등을 물었다. <집도 없이 법도 없이> 이후 바르다는 대가의 자리에 오른 성숙한 경력을 보여줬다.

<아무도 모르게 Kung Fu Master>(1989)는 소년과 성숙한 여인의 충격적인 연애를 담으면서 사랑의 본질, 그리고 사랑을 보는 남성과 여성의 관점 차이를 섬세하게 다룬 작품이었고 최근작인 <자크 드미의 세계 Jacquot de Nantes>(1995)는 남편이기도 했던 감독 자크 드미를 정리한 다큐멘터리이다. 드미가 연출한 영화의 일부 장면과 드미에 관한 예전의 기록 영화필름, 드미와 함께 일했던 배우들인 카트린 드뇌브, 자크 누보, 미셸 피콜리 등의 증언을 묶어 구성했다. 바르다는 과작이었지만 다른 어떤 감독보다 영화언어의 기존 체계를 과감히 부수고 모순과 단절로 요약되는 현대사회의 변화에 당당히 맞섰던, 다소 과소평가된 거장이다.

[씨네21 영화감독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