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절해고도> : 단절 뒤 이뤄지는 화합

무거운 빈가방 2021. 10. 17. 00:01

<절해고도>

*** 부산국제영화제가 끝나니 긴장감이 많이 풀린다. '시민평론단'이란 거창한 이름이로 영화를 보고 볓개의 글을 올린다. 이건 의무사항이라 꼭해야 하는데 일정 격식을 차려야 하니 글 적기 참 힘들다. 난 그냥 내 쪼대로 넋두리하듯 궁시렁거려야 하는데.... 

'절해고도'는 나를 바라보는 듯하여 내겐 참좋은 영화다, 내가 처한 성격으로 사람들과 잘어울리지 못하고 남들이 다 즐거워해도 난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으니 내 마음이 바로 '절해고도'다.   토요일밤 모두 즐겁게 놀고 떠드는데 왜 난 그리 불편한지! 일요일 종일 일하면서 늘 문을 닫곤 하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영화에서 '윤철'이 모두를 잃은 듯한 때에 절해고도를 빠져나올 수 잇었듯 나도 그러길 기대해 본다.  몇일 지난 뒤 다시 생각나는 '절해고도'다. 

 

 

'절해고도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섬이라는 본 뜻 말고도 조선시대 귀양지를 절해고도라 부르기도 했단다. 귀양지는 제한 구역이 있어서 집밖을 나가지 못하거나, 이 보다 조금 완화된 경우는 마을을 벗어나지 못하니 바다에 갇혀있는 섬과 마찬가지다. 귀향간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의 접촉이나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기에 귀향지에서 독서나 저작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자산어보> <목민심서> 등은 절해고도에서 탄생한 뛰어난 역작들이다.

 

 

사람과의 관계가 대체로 불통이고 삶이 자유롭지 못하며 제대로 처신을 하지 못해 스스로가 자기 닫힌 마음속에 사는 경우가 많다. .

윤철(박종환)은 인테리어 업자가 되어버린 조각가다. 제법 큰 상을 받은 이력도 가지고 있다. 늘 우울함으로 가득 차있는데, 뭔가를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 이유다. 과거의 자신에 묶여 현재에 충실하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가질 않는다.

아내와 이혼을 했고 딸하고도 제대로 시간을 갖지 못하고 대화도 잘안된다. 친구들도 그리 뛰어난 작품 활동을 하는건 아니고 대체로 재능을 살려 인테리어 업에 종사한다

 

미술적 재능을 이어 받은 딸은 아버지의 좌절과 관계있는 듯, 고둥학생의 생동감은 없고 학교에서 처참한 그림을 차양막에 그려 학부모소집도 당한다. 윤철은 재능이라 인정하지만 재능과 그냥 분출의 의미가 모호하다. 딸과의 대화는 그냥 단문 주고받기하는 양, 문장 하나 말하기도 어려운 정도다. 딸은 생물적 아버지로만 인정하는 듯 거리두기가 심하다. 새로 사귀게 된 여자 친구하고는 잘지내는 듯 하지만 상대의 고민을 잘모르고 자기 생각에만 빠져있다.

 

출가를 한 딸 지나는 정식 승려가 되기 위해 강원으로 들어간다. 동거했던 대학 강사 영지는 병이 들어 요양원으로 갔다. 딸을 돌보던 전 아내는 중국으로 일터를 옮겼다. 딸을 돌봐 주던 스님도 미얀마로 간단다. 모두가 떠난다. 그는 홀로 남음으로써 절해고도에 있게 되었고 딸은 속세를 떠남으로써 스스로를 절해고도로 넣었다.

  허탈함 속에 모든 것을 버리고 시장에서 국수 장사를 하면서 도를 닦는 양 자신과 사람들의 관계와 딸에게 가까이 다가갈 방법들을 고민하면서 인간적 면모를 조금씩 찾아간다.

  귀양은 떠났다가 풀리면 다시 자기의 집으로 돌아가는데, ‘절해고도의 사람들은 그 반대로 집에서 다른 장소로 떠난다. 아직 머물러 있는 사람도 먼저 떠난 이를 바라보면서 언젠가는 떠날 준비를 하겠지.

  섬이 아무리 외딴 곳에 떨어져 있어도 어떤 것에든 연결이 되어 있다. 그들도 그렇다. 혼자라는 것은 외로움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 때문일 뿐 우리 모두는 끈에 묶여 있다. 남자도 딸도 영지도 그들에게 일어나는 일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특히 딸 지나는 절해고도 속에 있을 때 가장 자신에게 충실할 수 있음을 일찍 깨달았다.

  즐겁지 않은 일들이 연속해서 일어나는 이야기인데도 관객을 답답하거나 우울하게 만들지 않았다. 상황에 대한 인물들의 조용한 반응은 관객에게 산다는 일은 특별할 것이 없음을 성찰하게 한다. 시작할 때 우울했던 남자의 얼굴은 영화의 뒤편으로 갈수록 편안해지면서 편안한 미소가 점점 그의 얼굴이 되었다.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의 배우들의 연기인데 배우들의 움직임이 매우 좋다. 출연진이 제법 많은 데도 누구하나 어긋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잡아주며 단단하게 끌어주는 역할을 한다. 감독의 캐스팅 능력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내가 본 독립영화 중 촬영장소가 가장 많은 것 같다. 너무 많은 장소를 보여주고 공간 이동이 잦다 보니 약간은 산만함을 줄 수 있어서 잃을 것도 있을 것 같은데 감독은 이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양이다. 자기가 생각하고 배우들이 연기하는데 가장 적절하다 싶은 장소를 찾는데 힘을 쏟았다. 그러기에 장소가 주는 정서적 힘과 느끼는 감동들은 산만함 보다 안정감을 더 준다.

 

나누는 대사들은 평이하지만 군더더기가 없고 깔끔하다. 상황을 이해하고 각자를 아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로 충분히 작용한다. 부부, 애인, 부녀, 친구 등 누군가 끌어주거나 인정하는 관계들이 단절되고 불신하며 밀어내고 외면하지만 귀양 기간이 끝나 보다 자유로이 집으로 돌아가듯 각자 마음의 집으로 돌아감을 믿게 되어 더욱 좋다.

한 번의 단절을 겪은 뒤 화합과 따뜻함을 찾는 이 영화가 참 좋다

재작년 영화제 때 뛰어난 비전영화들이 많았다 (남매의 여름밤, 찬실이는 복도 많지 등 절반 이상) 올해 비전 부분엔 어떤 뛰어난 영화를 만날까 기대가 많이 했다. 절해고도는 이 뛰어난 영화 반열에 올려도 되련가?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

 

절해고도 A Lonely Island in the Distant Sea , 2021 제작

 

요약 한국 | 116

감독 김미영

출연 박종환, 이연, 강경헌, 박현숙

 

 

절해고도.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의 외딴 섬'이라는 뜻을 지닌 제목은 삶의 표류와 고독, 혹은 미지를 담담한 자태로 그려내는 이 영화의 성찰적인 정서와 지극히 잘 어울린다. 윤철(박종환)은 조각가이지만 주로 인테리어 일을 하면서 생활을 유지한다. 그는 이혼한 아빠인데, 딸 지나(이연)는 아빠를 닮아 미술에 소질이 있지만 고등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며 문제아로 낙인찍힌다. 한 편 윤철은 영지(강경헌)라는 매력적인 여인을 만나 늦은 나이에 사랑에 빠지게 된다. <절해고도>의 인물들은 인생의 절대적 사건 앞에서도 호들갑을 떨지 않으며, 비극적인 전환과 기습적인 변화에도 의연한 자세를 갖춘다. 신중한 연기, 유려한 구성과 촬영, 성숙한 자세 등으로 깊은 성찰의 시간을 경험케 한다.
(2021년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정한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