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빅터스

무거운 빈가방 2010. 3. 29. 17:29

10-03-28 인빅터스(중앙시네마)

 

‘인빅터스’

나를 감싸고 있는 밤은

온통 칠흑 같은 암흑

억누를 수 없는 내 영혼에

신들이 무슨 일을 벌일지라도 감사한다.

 

잔인한 환경의 마수에서

 

난 움츠리거나 소리내어 울지 않았다.

내리치는 위험 속에서

내 머리는 피투성이지만 굽히지 않았다.

 

분노와 눈물의 이 땅을 넘어

어둠의 공포만이 어렴풋하다.

그리고 오랜 재앙의 세월이 흘러도

나는 두려움에 떨지 않을 것이다.

 

문이 얼마나 좁은지

아무리 많은 형벌이 날 기다릴지라도 중요치 않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나는 내 영혼의 선장.

 

(영화 찌라시의 번역

온 세상이 지옥처럼 캄캄하게

나를 뒤덮은 밤의 어둠 속에서

나는 어떤 신이든, 신께 감사하노라

내게 정복 당하지 않는 영혼 주셨음을

 

운명의 몽둥이에 두들겨 맞아

내 머리는 피 흘리지만 굴하지 않노라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나는 내 영혼의 선장

 

영국 시인 윌리엄 어네스트 헨리의 시 Invictus ‘정복되지 않는’이라는 뜻의 라틴어)

 

‘남아프리카공화국’ 세상의 관심이 자주 집중되었고 영화에도 저항의 상징으로 표출되었던 나라. 올림픽에도 참여가 거부되었을 만큼 인종차별과 탄압의 상징이었던 나라. 남아공에 대해 내가 본 영화만 해도 제법된다.

‘사라피나’ ‘죽음의 탈출???’‘ 파워오브원’ ‘검은다이아몬드’ ‘블러드다이아몬드’ 아~ 더 있는데

‘죽음의 탈출’은 옛날 비디오로 봤는데 이 제목이 아닌 것 같다. 두남자가 걸어서 탈출하여 세계에 남아공의 폭정을 알리는 영화이고... ‘미드’에서 다이아몬드 탄광 관련 영화가 있는데 이것은 인종 문제와는 거리가 좀 있고... 어쨌던 매우 많다.

 

우리에게 특별이 남아공이 기억되는 이유 중 하나는 인종차별문제도 있지만 ‘만델라’ 때문이다. 물론 만델라는 세계의 관심 속에 있었고 그의 긴 형 30년 가까운 기록도 세계인의 관심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장기수들은 그 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더 긴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고(지금은 모두 나왔지만)있었으니 여러 가지로 우리와는 각별했다고 해야겠다.

 

지금 남아공의 형편은 어떠한지 잘모른다. 흑백차별이 많이 완화되엇는지, 실제로 백인들이 흑인들을 많이 용납하고 탄압받앗던 흑인이 그들을 용서해 가고 있는 중이라 희망적인 국가로 발전하고 있는지. 참혹한 아프리카의 현재 진행중인 전쟁은 이제는 암까마귀 수까마귀를 분간 못할 정도로 전쟁 자체에 매몰되어 있다한다. 길어지는 전쟁으로 전쟁 자체가 이념이 되어버려 원한만이 남아 있는 무서운 세상의 전쟁!.

 

권력을 잡았다하여 권력을 잡은 새지도자나 그 중심의 세력의 의지대로 세상이 따라가는 것은 아니다. 만델라에 비견되는 김대중 전대통령을 생각해 보면 된다. 그는 성공한 인물이라 평하고 싶다. 권력을 ‘노무현’이란 아무도 생각 못했던 더욱 새로운 세대의 민주화된 사람에게 넘어가게 했으니. 그러나 지금의 현재는?

 

인빅터스. 영화의 내용과 대사 하나하나를 놓쳐서는 안될성 싶다. 모든 것이 역사요, 의지요, 통치의 힘이기 때문이다.

인빅터스는 정치적 원수에 대한 자세, 위대한 정치가의 자세, 무관심한 사람들을 무엇으로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하고 화합하게 하는 가를 럭비라는 스포츠를 통해서 보여준다.

 

우리는 '붉은악마‘라는 애칭으로 나라를 붉게 물들인 적이 있었다. 얼마 되지 않았지만 너무 아득하다. 정권이 살짝 바뀌었을 뿐인데 그 모든 것이 꿈으로 바뀌어버리고 현실은 그 보다 훨씬 뒤로 돌아가 버렸다. 무슨 병이던가? ’내 머릿속의 지우개‘의 영화처럼 가까운 과거는 차차 잊어버리고 오히려 먼 일만 기억하는 병이 있다한다. 실제로 내 친구의 친구는 사고로 어릴 때만 기억한다하네. 그래서 병간호 하는 아내를 알아보지 못하고 면회간 친구에게 ’저 여자 누고?‘ 하면서 항상 묻는다 하네.

 

지금 우리가 그런 시대에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너무 감동적이지만 그 만큼 아득히 멀게도 느껴지고 가슴이 더 미어진다.

 

백인 우월의 상징, 탄압의 상징인 ‘스프링복스, 앰블랜, 럭비’. 당연히 정권이 바뀌면 팀이 해체되고, 이름도 바뀌고 유니폼도 바뀌어야 한다. 체육 위원회에서 그리 결정했고. 이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는 만델라의 의지는 감옥에서 그를 억압하는 백인에 대항하는 불굴의 의지와도 같다. 이전엔 백인의 탄압이 적이라면 새시대에는 백인에 대한 반감이 적이라고 보는 그의 시각과 세계관.

발전은 입으로 하는 발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의지와 관심 그리고 끝없는 점검에 의해 펼쳐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남아공 럭비팀의 우승은 재정적 지원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 이기면 군대도 면제되고 돈과 명예도 가지기에 나하고는 사실 아무 관련도 없는 그들의 잔치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엘리트 스포츠’의 진수를 보여준다‘라 생각하는 우리 같은 사람에게 화합과 함께할 수 있는 생각을 몸으로 보여준다.

 

‘백인은 이제 적이 아니고 국민이고 민주주의의 동반자다’

‘자기 감정에만 충실해서는 안된다.’(백인을 원수처럼 생각하는 딸에게?)

‘ 내가 변화지 않으면 국민도 변하지 않는다.’

‘권력에 집착하면 지도자 자격이 없다.’(‘럭비에 대통령직을 거느냐?’하는 보좌관에게)

‘옛 국기를 흔드는 것은 그들의 개인적 자유다’(남아공은 국기를 바꾼 모양이다. 백인우월상징의 기를 없애고)

‘법, 재정 등 모든 것은 소수가 가지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감옥에서 그들의 글, 언어, 생각들을 배웠다. 간수들은 모두 백인이고 스프링복스를 응원한다. 이것을 뺏으면 그들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벽돌색깔과 관계없이 쌓아 새나라를 건설해야 한다.’

 

기억나는 일부를 적어 봐도 그의 말은 진심어린 인간의 위대한 울림이다. 그 울림이 그냥 개인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지자든 아니든 인종의 유무에 관계없이 주변을 함께 끌어내는 정치적 힘까지 발휘하니 그는 진정으로 영광스런 사람이다.

 

삐거덕대는 어떤 회사나 단체가 있다면 권하고 싶다. 한국의 위정자들은 필히 봤으면 좋겠다. 해석은 정반대로 하더라도.......

 

영화 이야기가 아니라 만델라 이야기로 끝내는 것 같다.  잘만든 영화다. 엄청난 예산을 쥐락펴락하는 허리우드는 언제나 부러운 존재이고 시나리오의 받침과 감독의 의지만 있으면 잘만들 수밖에 없는 구조 아닌가?

경기장의 인명을 봐도 기가 죽는다. 2000명 관중 엑스트라를 모션 캡처 기술을 통해 62,000명으로 늘렸다하더라도 2,000명이 어딘가!

넬슨 만델라(모건 프리먼)와 프랑소와 피나르(맷 데이먼)도 허리우드표 배우들이라 흠잡을데가 없으니 그냥 영화를 찡하게 즐기면 될 듯 하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뱃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쓴맛들을 씹으면서! 이 맛을 모르는 사람은 그냥 샤방샤방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