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봉은사 늦은 밤버스
봉은사엘 갔다. 신사역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멀리 돌아가지만 압구정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 환승하여 봉은사를 찾아갔다.
절안 에 걸려있는 등들과 장식된 큰사천왕상 등 등은 12시가 되자 불이 꺼진다.
크리스마스 이브엔 전국이 불을 켠다. 그리곤 가족과 함께해라 일찍 귀가하라 하면서 세상은 온통 시끌벅적이다.
자본주의가 뿌리 내리면서 빨간 옷의 산타할아버지와 썰매끄는 사습도 탄생하여 코카콜라(현재 모습의 산타와 사슴은 코카콜라 선전 작품이다.)는 이 시기에 최고의 매상을 올리고 다르 ㄴ제품들도 선물을 하는 날이라는 신화를 만들어 매상의 최고점이 된다.
한국은 이제 서양명절로 판을 친다. 발렌타인데이 ...... 난 옛날 왕영은(?)이가 사회 보는 '젊음의 행진(?)'이란 쇼 프로그램(젊은이들의 등단 무대 비슷했던 것 같다 우짜다가 한번씩 본 프로라 기억이 거의 안난다.)에서 내일은 '발렌타인데이다'하여 이런 서양명절이 있다는 것을 처음 들었다.
그러다 어느날 화이트데이 어쩌고 하더니 급기야 빼빼로데이(이건 한참 뒤의 일이겠지)가 탄생한다. 상업화의 극치고 이놈의 메스컴이나 세상사람들은 기업의 놀음에 장단을 너무도 잘맞춘다.
몇년 전엔 '황금돼지해'라는 태어나 처음 들어보는 날도 만들어지고(중국이 그렇다하면서 우리도 그런 날이 있는 척한다.)급기야 얘새끼도 이 해에 낳고 결혼도 이 해에 맞추어 한다.
음력 4월 성탄절(내 은사님은 꼭 성탄절이라 불럿다. 아니면 예탄절, 석탄절로 하든지 라시면서....)은 주로 절만 돈을 벌지 다른 상업적 가치를 가져가지 못한 탓인지 불교인구가 갈수록 줄어서인지 매우 조용하다.
권력이 종교의 하수처럼 작용하는 이 때에는 더욱 심하다.
그래서 12시 되니 그냥 불을 꺼버려 봉은사 마당은 어둡고 너무 조용하다.
당연히 철야정진이 있을거라 생각했으나 큰 법당엔 신도2명 뿐, 마당 탑 앞에는 초를 계속 켜두는 사람 한명. 오히려 절입구에 동전 통 같은 것을 두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더 많다. 무려 일곱명이나 된다.
부처님 가문이 무사(정치가)집안이어서 그런가? 불교는 유독 권력의 힘에 많이 휘둘리고 너무도 복종적이다. 물론 권력 뿐아니라 많은 전쟁이나 힘에 대해서도 북종적인 것이 많지만 우리 불교는 권력지향이 너무 강하다.
흔히 조선의 불교 탄압에도 살아남았다고 불교의 대단함을 자랑한다. 통도사의 사천왕상 중 하나는 발아래 유생을 두어 그를 악귀처럼 짓밟고있다. 절을 종종 침탈하고 빼앗아서 서원으로 바꾸어 버리는 유생들의 악행에 대한 벌을 내린다는 심정이었으리라.
서원이나 사원이나 이름도 비슷한데 일반인들에겐 뭐가 그리 중요하랴! 접근성이 문제로 볼 때 절이 좀 더 쉬웠다는 것뿐 백성들에겐 그나물에 그밥이리.
그런데 유생들은 기본적으로 불교를 완전히 떠난 사람들이 아니다. 유학이 유도, 도학으로 바뀌고 누군 조선성리학이란 표현을 쓰지만 그네들 머리엔 기본적으로 불교를 왕무시하는 학문이 아니엇다. 필요시 정치적 탄압과 법적 탄압을 가해도 기본은 늘 깔려있엇다.
그러한 배경이 있기에 불교가 살아남은 것을 자랑스러워 하면 안된다. 몇몇 왕들이나 대비, 왕비들에 의해 부흥한 경우도 제법 많앗으니까.
봉은사... 참으로 찹찹하다. 작년 한해 많은 정치적 핵심이 되고 눈이 되었던 곳.
강남 부자절에 좌빨 주지라.......
명진스님은 한번도 당신의 입심을 놓지 않고 개신교정부, 반군대정부(반군사정권은 아니다. 단지 그들 또는 그들 새끼들 대부분이 군대 안간다는 뜻이다.)에 대해 공격의 끈을 놓지 않았다.
새로 사귄 친구 두일은 스님은 정진할 때 이지 더 이상 떠들 때가 아니라 알게모르게 비난한다.
불교에서 누가 이리 긴시간 동안 정권에 몸던져 맞서 싸운자 있엇단 말인가?
환경문제로 외로이 싸움을 시작한 지율스님 등등 그 수많은 비구, 비구니들 중 그 힘듬에 굴하지 않고 계속 싸워온 스님들이 교단에 몇있는가?
난 지금의 불교는 전혀 모른다. 이미 종교를 떠난지 오래되엇기에. 그래도 가까이서 보기엔 안타까움이 많더라도 저리 싸운는 분의 귀함은 안타까움 보다 더 클것 같다. 이건 속깊고 행동하는 지성인인 두일을 비난하는 말은 절대 아니다.
너무도 조용한 봉은사 안을 들어가니 오히려 가슴에 분노가 스믈거려서 30년 만에 백팔배도 하면서 진정할 길이 없다.
내가 너무 별종이다. 엣날 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고교시절 스님(법명 모린다. 아마 부산의 선암사-혜월스님?이 게셨던 유명한 절, 지금은 아파트로 싸여버린 당감동 꼭대기 절)이 법문을 하는데 육체와 정신에 관련된 실존과 허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지금 기억에)
그러면서 법당의 부처나 대의 크기등을 어찌 가름할 수 있겠는가는 내용을 이야기 하셨다. 아마 경전에 나오는 알렉산드대왕과 어느 스님의 철학적 문답을 얘기 하고 싶어서 였을 것이다.
난 그 때 크기는 손으로 잴 수 있다고 했고 스님이 손은 어디에 있느냐고 하셨고 난 이 몸에 있다고 했고 손이 손으로 구성되어잇냐는 현학적 말씀을 하셨고 난 손이 없다는 것은 스님의 손이 없다는 것이고 그러면 스님도 없는 것이지 난 잇다고 했다.
주변의 선배들은 내가 매우 이상한 녀석으로 보였다 한다. 그랫을 것이다. 지금의 나도 아직도 여전히 이상한 놈이다. 내가 생각해도 그런데.....
중학교 때 부터 절엘 다녔고(학생회 출신이다.) 절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기에(이전엔 다른 아내가 있었다는 말은 아니다.) 절은 내 일생의 큰바탕이다. 그럼에도 까까머리 고등학생 때 부터 난, 불교가 아니 스님들이 고등학생에게도 행하는 법문이 과거 알렉산드 대왕 때와 똑같은 내용임이 매우 불만이었던 모양이다.
지금도 그런 점에서 여전하다. 그래서 임목사님 말씀처럼 그 때도 난 부처를 믿는 사람이엇지 절에 가는 사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지금은 불교 자체도 그 향기만을 맡을 뿐이지 근본적 교리인 윤회를 믿지 않기에 불교를 떠난지 오래되어버렸다.
내 머리엔 철학적 사고란 것이 없다. 책을 보지 않았기에 더 그렇다. 그냥 '감의 철학' '감으로 생각을 유추하는' '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감으로 정치를 느끼는' '감의 달인'이다.
난 이 '감'(느낌)으로 철저한 유물론자가 되엇다. 아무 이론적 바탕은 없지만.
나름의 우주관도 있다. 웃기지만.
불교가 좀 더 대중(민중이겠지)들에게 다가갓으면 좋겠다. 권력지향적인 세력들을 자체내에서 투쟁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저항하고 싸웠으면 좋겠다. 덩치만 크져서 그것을 유지하기에 힘들어 가쁜 숨을 쉬고 정부라는 링거로 겨우 유지하는 모습만이 아니라 몸을 크게 움직였으면 좋겠다. 기도와 염불로 일으나려는 티벳은 아직도 빼앗긴 그대로다. 물론 총을 든 이슬람도 그대로긴 한가지다만은.
초파일 아내와 처음으로 떨어져 서울 부산에서 각자 절을 찾은 오늘.
오늘이라 어디 예외라. 무거운 빈가방 들고 여전히 넋두리로 군시렁거린다.
아래 전철역 안내판에 있는 교회... 이건 개신교정권이 들어서면서 모든 지하철 안내도에 근처 교회가 다 들어가 있다. 새로 안만들고 붙엿다는 것은 눈에 금방 들어온다.
가테 가테 파라가테......
따라하기만으로 도를 이룬듯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