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사라져 가는 시장에 대해

무거운 빈가방 2011. 6. 8. 01:03

사라져 가는 시장에 대해

 

제목이 거창하다. 내용은 절대 그러지 못하다. 그냥 감흥이다.

 

어릴 때 시장에서 자랐다. 그 유명한 부산의 부평동 사거리시장.

 

사람들은 날마다 득실거렸고 하루에도 열두번씩 싸움이 일어나고 소매치기들의 천국이기도 했다.

 

명절전날 물건 판돈을 가지고 그냥 목욕하신 울 엄마(늦고 시간에 쫓기기에 목욕 부터 먼저하는 경우가 종종있다.) 목욕 마치고 옷입으려다 기절해버리셨다. 돈 넣어둔 앞치마가 사라졌던 것이다. 명절 전이라 사실 서너달 수입과 맞먹는다.

 

초딩4년 쯤인가 없던 영화관이 생겼다. '대아극장'이라고, 울모친은 한푼이라도 벌어보고자 초대권을 극장측에서 싼값으로 받아 사람들에게 팔았다. 난 불효다. 그 초대권 상당부분 내가 슬쩍했다. 때론 선심용으로 때론 군것질용으로 사용하고 한장은 내 감각의 기초를 쌓는데 시용했다.(늘 영화 봤다는 말씸)

 

시장은 언제나 북적거리고 말도 많고 탈도 많앗지만 내겐 향수요 정이다.

지금도 주변에 시장이 있으면 그곳에서 음식을 먹는다.

 

최근 서울 종로에 자리한 황학시장, 방산시장, 광장 시장엘 갔다. 술에 대한 장비들을 구입하기 위해서다.

 

광장시장의 가판은 실로 놀랄만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고 자리잡아 부지런히 떠들며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삶의 희열을 느꼈다.

가끔 보이는 젊은 사람들은 너무 이뻐 죽겠다. 어쩌면 이들이 시장에 대한 마지막 증언자가 될 지 모를 일이다. 요새 말로하면 옛시장 방문의 종결자 쯤 되겠다.

 

 

 

 

 

 

 

 

 

서양문화가 우열 문화라식으로 마구 들어오면서 외형 뿐만 아니라 이젠 식성도 상당히 바뀌었다. 해 먹는 음식 보다 사먹는 것이 많아졌고 직접 만들고 담아 먹는 것은 이제 거의 사라질 지경이다. 최근에 김치를 모친의 지도하에 울 부부가 담는 것은 사라질 것들에 대한 마지막 몸부림인지도 모른다.(말이 거창하다만...)

 

건물이 생기면 그곳에 커피점이 없으면 건물 수입내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최근 들었다. 특히 서울에선 어딜가나 커피점은 사람으로 가득이다. 나도 자주간다. 커피점은 엣날엔 다방이다. 나든 사람들이 젊은 아가씨들과 느스레 떠는 곳이었다. 점점 커피 마시고 대화 나누는 곳으로 바뀌더니 이젠 세미나나 공부하는 장소로도 쓰인다.

 커피점은 문화의 종합관 처럼 자리하게 되엇다. 차를 마시지 않고 그냥 앉아있다가 가도 되니 이 얼마나 좋은고!

 

음식은 문화다. 식민지 일본이 한국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우리 술을 세금이란 명목으로 없앴다. 많은 이들은 세금으로 이야기하는데 이는 절대 아니다. 문화 말살정책의 한일원이다. 이것을 세금을 빙자하여 없앴을 뿐이다.

우리는 자연 우리 술을 잃었고 지금은 술이라 하기엔 너무도 저급하고 이상한 맛의 소주가 마치 우리 술처럼 자리 잡고있다.

최근 막걸리가 상당한 인기를 몰고 있으나 아직 소주에 비하면 많이 미치질 못하고 이 또한 우리 술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술이 사라지니 술과 관련된 음식 특히 안주도 자연 사라진다. 그리고 술과 관련된 분위기도 자연 없어지면서 외국 술을 찾게되고 그 술로 인한 안주나 문화 등이 절로 내 옷인양 입게된다. 와인을 마시면서 와인에 대한 재료 부터 법규가지 읖조리게 된다.

이것은 와인이 자리 잡으면서 와인에 함께 들어온 문화적 분위기에 상업적 찬양의 덧붙임이 성공적으로 안착한 경우다.

 

강도사 서울상경 마지막날 기차를 타기전 이 광장시장에서 자릴 했다. 흡족해 하는 강도사의 표정은 행복 그자체다. 이제 점점 사라지니 부산에서도 이런 모습 보기 어렵다. 푸짐하고 싸고 없는게 없을 듯한 이 풍부한 시장이 사라져감은 쓰레기 자본주의의 범람으로 그 어느 것도 지키지 못하는 안타까움이다.

이런 광경 이제 얼마나 볼 수 있을까?

 

이전엔 말살에 의해 사라졌지만 이젠 위정자들의 부의 축적을 위해 사라지거나 이권 때문에 사라지고 그러면서 자연 발걸음이 줄어들면서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