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익님의 그림이야기

영국의 김홍도 ‘호가스의 정략결혼’ 이야기 - 백한 번째 이야기

무거운 빈가방 2011. 6. 9. 10:40

조양익님은 얼숲(페이스북)에 그림이야기를 계속 올리고 있다. 내용이 자세해 문외한인 내겐 꿀소나기 같은 글들이다. 물론 가입한 카페 '아름다운미술관'(http://cafe.daum.net/jsseo43?t__nil_cafemy=item)엘 가면 정말 많은 그림이야기가 시대별 내용별로 구분되어있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본 그림 제목이 떠오르지 않아 질의하자 실시간으로 바로 답이 올 정도로 정렬적으로 운영되는 미술관이다. 그런데 종종들러야하는 수고로움 때문에 괌심이 뜸해지면 찾질 않는다는 단점이 잇다.

 조양익님이 올려준 그림 이야기는 가만히 있으면서 받아 먹는 얌체의 즐거움 때문에, 지금은 안보더라도 나중 다시 볼 수있다는 재미로 가장 즐기는 글이 되었다.

 내 기억의 한계와 얼숲의 글이 영원할까 하는 의문으로 시간될 때 마다 블로그에 글을 훔쳐서 올린다. 첫번째 이야기 부터는 아니지만 그래도 올린다. 허락도 안받고^^

영국의 김홍도 ‘호가스의 정략결혼’ 이야기 - 백한 번째 이야기

작성: 조양익 2011년 6월 3일 금요일 오후 1:11

점잖은 귀족이 책을 보고 있습니다. 십자가 걸려 있은 것을 보니 신앙생활과 관련 있는 책이고, 그러면 성경책을 보고 있나 봅니다. 얼마나 열심히 성경공부를 하는지 간식으로 가져다 둔 접시가 쏟아져 과일들이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습니다. 다시 들여다보니 손을 보니성경 대신  여성의 아름다운 몸매가 놓여 있습니다. 성경공부가 아니었나 봅니다, 또 자세히 들여다보니 머리위에 악마가 있습니다. 그림의 주인공은 프랜시스 대시우드 남작(Sir Francis Dashwood, 1708 - 1781)으로 당시 체신청장과 재무부 장관 등을 지낸 사람으로 존 몬테그(John Montague), 샌드위치 백작(The Earl of Sandwich) 같은 사람들과 계몽적이고 무신론적인 지식인 집단을 만들어 활동을 했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가톨릭과 칼뱅주의에 반대하는 반도덕주의로, 스토아 철학의 쾌락주의를 숭상하고 살았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텔레마(Thelema)의 법칙에 충실한 사람이었습니다.(첫 그림은 Sir Francis Dashwood at his Devotions late 1750s Oil on canvas 120 x 87.6 cm Private Collection입니다)

 

이런 그림은 조선시대 양반들의 이중성을 풍자한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1745 - ?)와 혜원 신윤복(蕙園 申潤福, 1758년 ~ ?)의 작품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멋진 갓을 쓰고 헛기침을 하지만 뒤로는 개인의 쾌락을 위해 온갖 못된 행실을 하는 양반들을 풍자와 해학으로 그린 김홍도의 그림들은 지금도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영국에도 우리 조상인 단원과 비슷한 화가가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오늘 소개하는 영국의 화가이자 판화가인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 1697-1764)입니다.

 

Self-Portrait at the Easel. c. 1757 Oil on canvas, The National Portrait Gallery, London, England

윌리엄 호가스는 런던에서 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의 아버지는 재능 있는 고전학자로 부자는 않았지만 가정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호가스는 아버지와는 달리 학문에는 관심이 없었고 화가의 작업실을 드나들며 모사와 데생을 좋아했습니다. 그러다 엄격한 수련을 하고 싶어서 열다섯 살 때 어느 장인의 집으로 가서 금은세공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미술이었고 결국 독학으로 판화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성격적으로 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농담도 잘하고 공연이나 전시회를 즐겨 찾았고 작가들이나 배우들이 자주 찾는 술집에 드나들며 그들과 어울려 토론하기를 즐겨했습니다. 드디어 스물세 살에 독자적인 공방을 차려 정식 판화가로 나섰지만 그의 재능이나 사회경제적인 대우가 거기에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호가스는 공방에서 판화가의 일을 하면서도 다시 데생을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스물일곱 살인 1724년에 그림을 배우기 위해 당대 최고의 화가인 손힐(Sir James Thornhill, 1675- 1734)의 문하생이 되었습니다. 손힐은 바로크풍 역사화가로 조지 1세와 조지 2세의 수석화가였고 그 실력을 인정받아 의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던 사람입니다. 손힐은 당시 영국회화가 그리 발달하지 못한 상황에서 영국 미술의 활성화와 미술가의 사회적 책임을 중요시 했던 사람으로 후학 양성을 위해 자기 집에 데생학원을 차렸고, 호가스가 거기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의 첫 작품으로 기록되어 있는 그림은 〈거지 오페라 The Beggar's Opera〉(1728)로 영국의 최초 뮤지컬인 존 게이의 발라드 오페라인 <거지 오페라, The Beggar's Opera>(1728년)을 그림으로 그린 것입니다. 처음에 그는 초상활 인정을 받았습니다. 초상화는 그에게 명성을 주었지만 그는 여기에 싫증을 내고 일상적인 생활에서 찾은 주제로 익살맞거나 풍자적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매춘부의 편력(the Harlot's Progress>(1732), <서서크 시장 Southwark Fair>(1733), <탕아의 편력 The Rake's Progress)(1735), <당대 결혼풍속 Marriage à la Mode>(1743-5) 등인데 주요 작품들은 하나의 그림이 아니라 연작들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그림들을 판화로 제작하여 출한하기도 했는데, 단순히 회화가 아니라 하나의 문학 작품과도 같아서 그를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희극작가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정략결혼 이야기인 <당대 결혼풍속>을 회화와 판화를 동시에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당대 결혼풍속 Marriage à la Mode>(1743-5)의 이 발표된 18세기 영국 사회는 전통의 귀족들과 산업화의 진전으로 신흥 부르주아가 양산되면서 돈은 많지만 신분은 낮은 중산층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은 퇴락한 귀족들과 혼인을 하여 그들의 신분을 상승시키고자 했습니다. 호가스의 그림은 존 드라이덴(John Dryden)이라는 사람의 같은 제목의 희극에서 그 제목을 따온 것이랍니다.

 

<당대 결혼풍속 Marriage à la Mode>(1743)

Marriage à-la-Mode: 1. The Marriage Settlement (The Marriage Contract) 1743. Oil on canvas, 69.9 x 90.8 cm. The National Gallery, London

Marriage à la Mode, Plate I, The Marriage Contract 1745 (reprinted 1822) Medium Etching and engraving, The Charles Deering McCormick Library of Special Collections, Northwestern University

 

첫 번째 그림은 <결혼 계약>입니다.

어느 귀족의 거실입니다. 벽에는 대가들의 그림들이 벽이 힘들어할 만큼 걸려있습니다. 거드름을 피우고 있는 맨 오른쪽의 남자가 신랑의 아버지인 귀족입니다. 한쪽에 펼쳐진 양피지를 보니 족보입니다. "우리 집안은 시조인 누구부터 시작해서 내 증조할아버지는 장관을 지낸 분으로…….” 자랑을 늘어놓으며 관심은 탁자에 인 금화와 지폐에 쏠려 있습니다. 그 건너편에는 신부의 아버지인 신흥 부르주아는 사돈이 될 귀족의 자랑을 듣고 놀라는 척하며 손에 든 계약문서의 내용을 살피고 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있는 사람은 집사인가 봅니다. 그 옆으로 보이는 창밖에 공사 중인 건물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그 공사비가 급했나 봅니다. 이 사람들 뒤의 풍경이 가관입니다. 신랑과 신부가 나란히 앉아 있는데 방향이 다릅니다. 신부는 약혼반지를 손수건에 끼어 돌리며 변호사와 놀고 있습니다. 신랑은 아예 딴청을 하고 거울을 보는 모양입니다. 그러고 보니 신랑과 신부 앞에는 오늘 결합을 상징하는 것처럼 개 한 쌍이 사슬에 묶여 있고, 벽에 있는 그림 중에 카라바조(이탈리아 화가, Caravaggio)의 메두사가 이 두 사람의 운명을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정략결혼을 총하여 한 사람은 명예를 사고 한사람은 돈을 얻는 당시 사회의 부르주아와 귀족의 부도덕한 거래를 풍자적으로 잘 묘사했습니다.

 

Marriage à-la-Mode : 2. The Tête à Tête (Shortly After the Marriage). 1743. Oil on canvas, 69.9 x 90.8 cm. The National Gallery, London

Marriage à la Mode, Plate II, The Breakfast(판화 작품은 노스웨스턴 대학 미술사학과의 William Hogarth and 18th-Century Print Culture 제공)

 

<이른 아침>입니다.

집안의 살림과 깨끗한 실재장식으로 보아 신접살림 집인가 봅니다. 신랑은 잘 차려입고 밤새 놀다가 왔는지 정신이 없습니다. 신랑 옆에 강아지가 신랑의 주머니에서 무엇을 빼내려 하는데 레이스가 달린 모자입니다. 그 앞에 신부는 밤에 뭘 했는지 커다랗게 기지개를 펴고 있습니다. 바닥을 보니 악기도 있고 악보도 보이고 카드도 있는 것을 보니 여기서도 한판 놀았나 봅니다. 그리고 저 뒤에 보이는 남자는 신랑을 따라왔나 본데 뭐라 고함을 치고 있습니다. 집사가 청구서 뭉치를 들고 놀란 표정으로 나도 이제 모르겠다고 하는 표정을 보니 술값을 받으려고 따라온 모양입니다.

 

애정 없는 결혼으로 따로 노는 신랑과 신부들 정말 가관입니다.

 

Marriage à-la-Mode: 3. The Inspection (The Visit to the Quack Doctor). 1743 . Oil on canvas, 69.9 x 90.8 cm. The National Gallery, London

Marriage à la Mode, Plate III, Scene with the Quack

 

<진찰>을 받으러 갔는데 돌팔이의사(Quack Doctor)에게 갔습니다, 아무래도 공공연하게 말하기 어려운 병에 걸렸나 봅니다. 신랑과 함께 간 여자는 신부는 아니고 아마 숨겨 논 여자인 모양입니다. 그런데 같이 간 여성의 얼굴에 검은 반점이 있는 것을 성병에 걸렸나 봅니다. 그러고 보니 같이 간 여성의 정체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의사의 얼굴을 보니 그 자도 정상이 아닙니다. 아마 이미 비슷한 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해골이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단순한 돌팔이가 아니라 죽음의 의사인 모양입니다.

 

방탄한 생활을 하는 당시 귀족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Marriage à-la-Mode: 4. The Toilette (The Countess's Morning Levee). 1743. Oil on canvas, 69.9 x 90.8 cm. The National Gallery, London

Marriage à la Mode, Plate IV, Toilet Scene

 

거실에 사람들이 잔득 모여 있는데 한 사람이 피리를 불고 있고, 성악가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음악 감상을 하자고 모였나 봅니다. 그런데 신부는 어떤 남자와 떠들며 어떤 남자로부터 머리 손질을 받고 있습니다. 머리에 보면 끈이 달려있는데 이는 임신 중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원작에 보면 변호사는 지금 가면무도회의 초대장을 보여주고 있는데 만날 약속을 정하고 있는 장면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앞에 있는 남자 변호사는 어디서 본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결혼 계약을 할 때 같이 왔던 변호사입니다. 왼쪽 벽에는 그의 초상화까지 있고 그 밑에 그림은 제우스가 가니메데스를 납치하는 그림이고, 정면의 벽에 걸린 그림은 코레지오의 <제우스와 이오>과 <롯과 그의 딸들>입니다. 둘의 관계가 심상치 않은 관계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당시 상류층 사회의 사치스럽지만 무식하고 방탕한 생활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Marriage à-la-Mode: 5. The Bagnio (The Death of the Earl). 1743. Oil on canvas, 69.9 x 90.8 cm. The National Gallery, London

Marriage à la Mode, Plate V, Death of the Earl

 

 

그림의 제목인 <바지노 bagnio>는 이태리어로 여러 의미가 있는데 여기서는 싸구려 숙박업소를 표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림을 보면 한 남자가 급히 창을 통해 도망을 치려하고 가운데에는 신랑인 귀족이 칼에 맞아 죽어가고 있습니다. 뒤따라온 하인들이 방문을 열고 들어오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바닥에는 중앙에 칼 두 자루가 보이고 한쪽에는 가면도 보입니다. 원작을 보면 가면무도회를 보고 난 뒤에 애인인 변호사와 함께 밀회를 하던 곳을 남편이 급습을 하였다가 싸움이 일어났고, 변호사의 칼에 맞은 남편은 죽음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사태를 깨달은 아내가 죽어가는 남편에게 용서를 비는 건지, 남편의 죽음으로 나락에 떨어진 자신의 신세 때문인지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정면에 보이는 초상화는 당대의 유명한 화류계의 여상의 초상화이고 벽화는 솔로몬의 심판이라고 하는데 이 그림에서는 잘 확인이 되지 않습니다.

 

Marriage à-la-Mode: 6. The Lady's Death (The Suicide of the Countess). 1743. Oil on canvas, 69.9 x 90.8 cm. The National Gallery, London

Marriage à la Mode, Plate VI, Death of the Countess

 

그러나 비극은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실내 장식이나 창밖의 풍경으로 보아 친정에 돌아온 부인은 자살을 시도합니다. 남편을 죽인 애인은 결국 교수형에 처해졌고, 살인에 연루되었기 때문에 귀족가문의 지위도 승계하지 못해 사회적인 대접도 못했을 것입니다. 결국 원치 않은 결혼으로 행복하지 못한 결호 생활을 해야 했고, 돈으로 명예를 사려했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림에는 부모를 잃은 아이가 등장하고, 그 결혼을 후회하는 건지 아니면 반지가 아까운지 딸의 손에서 반지를 빼는 아버지, 그리고 의사로 보이는 사람이 이 사고를 막지 못한 하인을 나무라는 장면이 보입니다. 그리고 상징적으로 파국을 의미라는 것으로 쓰러진 의자와 방안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과 관계없이 돼지머리를 먹으려 달려드는 개가 등장합니다.

 

호가스는 이 연작을 통해서 당시 사회의 유행이던 정략결혼의 폐해를 보여줌으로써 상류사회의 악습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들은 1743년 완성되었고 이것을 판화로 제작한 것은 1745년인데 여기 판화는 1822년에 찍은 것입니다. 판화가 이전 것과 같은 것으로 보아 원판이 보존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결론처럼 말하고 싶은 것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호가스를 비슷한 주제를 그린 우리나라의 단원과 혜원과 비교해보면 모두 당시 풍속을 통하여 풍자와 해학을 나타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호가스는 당시 사회의 도덕적 가치에 중심을 두었다면 우리나라의 화가들은 거기서 다 나가 그림의 주인공들이 인간적 자기 구현을 하려는 모습, 자기실현적 요소가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 사회의 풍습과 도덕을 꼭 지켜야할 규범이라고 보기보다는 벗어나야할 굴레로 보았다는 점이 차이일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요즘에는 돈으로 거래되는 이런 결혼을 하는 경우는 없겠지만 지위에 맞는 결혼이라든가 혼맥이라며 관계를 확장하기 위한 결혼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랑과 결혼은 꼭 조건으로만 따질 대사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의 마음이 제일 중요합니다.

 

호가스의 이런 작품들은 대중적 인기는 있었지만 중요하게 평가받지 못했고 사후에도 그리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하다가 2세기가 지나서야 다시 평가를 받고 특별전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당시 영국적 회화가 없던 상황에서 남의 나라 것을 베끼지 않고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열어가려한 그의 노력이 인정받은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호가스의 또 다른 연작하나 더 올립니다. 상상하면 그대로 맞을 것입니다.

제목은 그냥 <전과 후>라 하죠.

 

 

Before the Seduction and After 1731 Oil on canvas J. Paul Getty Museum, Malibu, Los Angeles

 

우리 친구들 중에는 이런 분 안 계시죠?

 

더 굼금하시면 <윌리엄 호가스>라고 시공아트 에서 나온 책을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