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 춥다, 계절로도 내용으로도 60년대 비극의 응어리들
휴일 (Day Off)
68년작 이만희 작품이다. 상영되지 못한 영화이니 68년작이란 시기가 무슨 소용있을까만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 잘깔려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고 극단적 우울을 끝까지 밀고나간 감독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대단한 영화라 뒤 늦게라도 발견된 것 자체가 하나의 환희일 수도 있겠다.
영화의 시작부터 성당을 비추며 종을 울리는데 성당을 대각선으로 잡고 귀에 익은 음악을 잔잔히 흐러보내면서 종소리를 배치하니, 예사롭지가 않다.
휴일에만 만날 수 있는 남녀의 이야기, 돈이 없어 남산 벤치를 배회해야하는 그들의 모습, 낙태를 위해 돈을 빌리러 다니는 사내, 그 사내를 기다리며 사내가 벗어 준 옷을 차마 걸치지 못하고 추워 떨고 있는 여자, 그리고 그들의 미래를 보여주듯 바람은 어이 그리 불며 관객의 시선도 가리는가!
가면 갈수록 이 남녀의 모습이나 돈빌리기 위해 만나는 사람의 모습들도 차이가 별로 없다.
이들의 미래는 더욱 없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살 수도 있을 것인지 아무런 답도 희망도 없으니 영화는 우울한 흑백화면에 답답함, 안타까움이 지나쳐 감독은 왜 이 영화를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마저 자아낸다.
당국의 제안(아래 설명이 제법 있음)도 거절하고 시종일관 어둠과 우울과 세상을 가로막는 먼지로 밀고나가는 감독의 힘과 영화에 대한 자부심은 당대 최고의 감독이라고 할만한 한편의 역사일 수 있겠다.
1. 눈인듯 모래인듯 남산의 남녀를 더욱 춥게, 희망조차 가지게 힘들게 만드는 바람은 너무 지타쳐 처음엔 거북하지만 당시에 어찌 저렇게 먼지를 일으켜 계속 찍엇을까 하는 궁금도 자아낸다.
2. 남녀가 만날 수 있는 날은 휴일(일요일로 표현)밖에 없는 것으로 보아 뭔가 일을 하는 것 같은데 그들이 받는 임금으로는 커피 한잔할 여유도 없는 모양이다. 남녀는 최고는 아니더라도 약간은 엘리트출신 처럼 보이는데도 여자보다 희망이 더없다. 여자는 그녀를 곱게 키운 아버지의 손길이라도 있으니....
3. 배우들이 참 반갑다. 신성일 빼고는 많이 알려지지는 않앗지만 당시 조연들이 제법 나온다. 여주인공은 2편 정도 영화를 했는데 이 후 행적을 모른다.
4. 아래에 줄거리와 내용을 실었고 영상자료원과 EBS에서 올린 글도 두엇다.
우연히 보게된 '조르바'님의 글은 영화 한편 보듯이 내용이 적절한 해석과 함께 실려있다. 그래서 염치 불구하고 그의 글을 사진과 함께 그대로 몽땅 옮겼다. 이만희의 뛰어난 화면과 내용들을 어이 다 표현할 수 있으리오만은 많은 참고가 될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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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 35mm | 73분
감독 이만희
출연 신성일, 전지연 김성욱 김순철
줄거리 :
겨울의 끝자락의 어느 일요일. 교회 종소리와 함께 빈털터리 허욱(신성일)은 사랑하는 지연(전지연)을 만나러 간다. 가정을 꾸릴 여유가 없는 허욱은 자신의 아이를 배고 있는 지연의 수술비를 구하러 친구들을 만나지만 거절당하고, 급기야 한 친구의 돈을 훔쳐서 달아난다. 의사는 지연의 몸에 병이 있어 낙태를 권유하고, 수술을 한다. 허욱은 병원을 나와 술을 마시고 싸롱에서 만난 여자와 주점과 포장마차를 전전한다. 만취한 허욱은 공사장에서 그녀와 사랑을 나누지만, 귓전을 때리는 교회 종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병원으로 달려간다. 허욱은 그녀가 수술 도중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의 아버지에게 그 사실을 알리러 가지만 문전박대를 당하고, 돈을 훔친 친구에게 붙잡혀 매를 맞는다.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채 그는 어두운 밤 그녀와의 행복한 한때를 회상하며 거리를 내달린다
(『이만희 감독 전작전-영화천재이만희』, 한국영상자료원, 2006)
NOTE
■ 시대를 초월한 모던 시네마의 진경(허문영)
60년대 한국 모더니즘 영화의 결정판(변재란)
대표작이라는 것이 당대의 평가와 후대의 평가가 적절히 녹아들어간 결과라고 한다면, 이 영화의 선정은 상궤에서 벗어난 것일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당대에 검열로 개봉되지 못하였고, 2005년에서야 영상자료원을 통해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37년이 지나서야 한국영화계에 도착한 이 영화는 그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현대적인 동시에 당대 한국 청춘들의 우울한 현실을 뛰어난 예술적 감각으로 담아낸 수작이다. 유신으로 치닫기 시작하는 한국 사회의 답답하고 부조리한 분위기를, 낙태를 해야 하는 가난한 젊은 남녀들의 비극적인 휴일 하루를 빌어 극적으로 담아낸 이 영화는 당대의 폭력적, 억압적인 공기를 어떤 영화보다도 뛰어나게 포착해 낸다. 이만희 감독의 소위 “예술영화 시기”의 한 복판을 관통하는 영화로 이만희의 연출력이 극에 달했던 시기의 작품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씨네21 편집위원들이 당대의 모든 영화를 제치고 2005년 최고의 영화로 <휴일>을 선정했다는 것이다.
■ 제작 당시 영화가 어둡다는 이유로 검열을 통과하지 못해 개봉되지 못했다. 그 후 2005년 영상자료원을 통해 처음으로 발굴 상영되었다.
■ 제작후일담
- 이 영화의 작가 백결에 의하면 원래 시나리오상에서는 이 영화의 앞과 뒤에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있었다고 한다. 프롤로그에서는 주인공 신성일이 익사체로 발견되고, 시체의 입을 통해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에필로그에서는 부패한 신성일의 시체를 친구들이 못알아 보고, 경찰의 수첩에 신원미상으로 적히는 것으로 끝이 났다고 한다. 이와 같은 시나리오는 지나치게 어두워 아예 처음부터 영화화되지 못했다.
- 이 영화가 완성된 후 검열단계에서 문공부는 신성일이 머리를 깎고 군대가는 설정으로 결말을 바꾸면 상영 허락을 내주겠다고 했으나, 감독, 시나리오 작가는 물론이고 제작자까지 반대하여 결국 상영이 좌절되었다.
- 영화 마지막 부분의 전차는 촬영 당일이 마지막 운행이었다고 한다. 실제 서울 시내에서 전차는 68년 10월 말까지 운행하였는데, 이는 당시 <휴일>의 촬영기간과 일치한다.
- 영화의 어두운 내용으로 인해 검열을 통과하지 못하여 개봉하지 못했다.
- 2005년 한국영상자료원을 통해 처음으로 발굴 상영되었고, 2005년 부산국제영화제 이만희 회고전을 통해 소개되었다.
■ 제작 당시 영화가 어둡다는 이유로 검열을 통과하지 못해 개봉되지 못했다. 그 후 2005년 영상자료원을 통해 처음으로 발굴 상영되었다.
■ 제작후일담
- 이 영화의 작가 백결에 의하면 원래 시나리오상에서는 이 영화의 앞과 뒤에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있었다고 한다. 프롤로그에서는 주인공 신성일이 익사체로 발견되고, 시체의 입을 통해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에필로그에서는 부패한 신성일의 시체를 친구들이 못알아 보고, 경찰의 수첩에 신원미상으로 적히는 것으로 끝이 났다고 한다. 이와 같은 시나리오는 지나치게 어두워 아예 처음부터 영화화되지 못했다.
- 이 영화가 완성된 후 검열단계에서 문공부는 신성일이 머리를 깎고 군대가는 설정으로 결말을 바꾸면 상영 허락을 내주겠다고 했으나, 감독, 시나리오 작가는 물론이고 제작자까지 반대하여 결국 상영이 좌절되었다.
- 영화 마지막 부분의 전차는 촬영 당일이 마지막 운행이었다고 한다. 실제 서울 시내에서 전차는 68년 10월 말까지 운행하였는데, 이는 당시 <휴일>의 촬영기간과 일치한다.
- 영화의 어두운 내용으로 인해 검열을 통과하지 못하여 개봉하지 못했다.
- 2005년 한국영상자료원을 통해 처음으로 발굴 상영되었고, 2005년 부산국제영화제 이만희 회고전을 통해 소개되었다.
제작노트
제작 당시 당국의 검열에 의해 개봉되지 못하고 곧바로 창고로 들어간 이 영화는 2005년에 이르러서야 그 존재가 발견되었다. 주인공 허욱이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의 액자식으로 구성된 오리지널 시나리오 역시 지나치게 어두운 설정 때문에 애초에 영화로 표현될 수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검열/자기검열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영화는 60년대 후반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당대 청년의 시점에서 폭로한 대범한 작품이다. 1964년 <맨발의 청춘>의 성공 이후 범람했던 청춘영화 장르의 최종적인 귀착지로서, 이 영화는 그 시대에 대한 강렬한 고발인 것이다.
(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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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님의 글 매우 상세하여 영화 한편 보는 기분. 해석도 대단하여 그대로 옮긴다.
http://v.daum.net/link/15645595
조르바 (gozorba)
이만희 감독, 도시의 허무한 사랑 <휴일> *한국영상자료원 / 영화광-Cinephile 2011/04/11 15:14
http://blog.naver.com/gozorba/20126187119
이 포스트를 보낸곳 (1)
말로만 듣던 이만희 감독의 <휴일>을 봤습니다. 너무나 어둡고 우울해서 그런지 영화가 만들어진 1968년 당시에는 아예 개봉을 못했다고 합니다. 검열당국에서 영화가 끝날 때 신성일이 머리를 깎고 군대로 가는 걸로 수정하면 개봉을 하게 해준다고 했는데 이만희 감독과 백결 작가가 거부를 했다고 하는군요. 그렇게 사장되었던 <휴일>은 2000년대 중반 재발굴되었고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암울했던 정치적 현실이 고스란히 반영된 사건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지요.
영화를 계속 보면서 느끼는 점인데, 60년대 우리 영화가 70년대보다는 훨씬 나았습니다. 유현목, 김기영, 이만희, 신상옥 등 감독다운 감독들이 존재했던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스타일이 좋은 연출을 보여주었던 게 이만희 감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작년 여름 파리에 있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는 이만희 감독의 회고전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제목이 <한국의 전설>(Une legende coreenne)이었습니다. <휴일>, <검은 머리>, <삼포 가는 길>, <돌아오지 않는 해병>, <쇠사슬을 끊어라> 등 모두 12편이 상영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휴일>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이 담긴 영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휴일>은 슬프고 갑갑한 멜로드라마입니다. 갈 곳 없는 젊은이들, 주머니가 텅 빈 연인들, 보고 있으면 당시의 우울이 고스란히 전이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합니다.
내용은 간단합니다. 그래서 감독 특유의 스타일이 더 살아나는 거겠지요. 허욱(신성일)은 애인인 지연(전지연)을 만납니다. 커피 값도 없어서 두 사람은 남산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허욱은 지연이 낙태를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그런데 수술비가 없습니다. 돈을 꾸러 다니던 허욱은 친구 규제의 집에서 돈을 훔칩니다. 지연을 산부인과에 들여보낸 허욱은 거리로 나와 술을 마십니다. 그는 술집에서 만난 묘령의 여인과 하룻밤을 지냅니다. 아침을 알리는 교회 종소리. 허욱은 병원으로 갑니다. 그러나 지연이가 수술을 받다가 죽고 말았다는 얘기만 듣습니다. 그를 찾아다니던 규제를 만나 두드려 맞습니다. 허욱은 답답한 서울 거리를 정처 없이 달립니다. 전차를 타고 종점으로 갑니다. 가난한 도시의 거리는 을씨년스럽기만 합니다. 무기력한 현실을 이만희 감독은 무드가 있으면서도 스타일리시하게 끌고나갑니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 서울은 완전히 다른 풍경으로 변모합니다. 이만희 감독이 <휴일>을 통해서 바라보는 서울은 유현목의 <오발탄>에 비치는 도시처럼 우울하고 어둡습니다. <자유부인>이나 <서울의 휴일> 같은 영화와는 정반대의 시선입니다. 가난하고 암울한 시대,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없고 여유도 여가도 없던 시절. 삶의 탈출구가 보이지 않던 1960년대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일요일에만 만나기로 돼 있었다. 그날도 마침 일요일이었다.”라는 내레이션으로 영화는 시작됩니다. 교회 종소리가 울립니다. 사각 앵글로 종탑이 보입니다. (약현 성당을 찍었다고 하는군요.)
허욱의 주머니에는 15원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동대문운동장에서 택시를 탑니다. 담뱃가게에서 파고다 담배를 산 후, 택시기사가 돈을 가져올 거라고 말하고는 도망쳐버립니다. (택시기사는 자기가 직접 잔돈을 받으러 가면 5원을 더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허욱의 말을 믿습니다.) 주머니에 성냥이 없어서 공사판에 불을 때는 목재로 불을 붙입니다. 인부에게 담배도 하나 줍니다. 있지도 않은 성냥을 찾는 허욱의 모습은 영화 내내 반복되는 이미지입니다. 이만희 감독은 이렇게 성냥 하나로 허욱이라는 캐릭터를 구축해나갑니다.
육교를 건너서 명동의 어느 허름한 골목으로 들어갑니다. 지연은 다방 앞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연인들에겐 커피 값조차 없습니다. 두 사람은 남산으로 올라갑니다. 우리 영화에 나오는 남산 중에서 가장 스산한 풍경이 아닐까 싶습니다. 허욱은 담뱃불을 붙이려 하지만 성냥이 없습니다. 지연이 불을 붙여줍니다. 인물들을 클로즈업으로 잡고 각도를 예리하게 잡은 앵글이 두 사람이 처한 암울한 상황을 암시합니다. 늦가을 혹은 초겨울? 잎이 다 떨어진 나뭇가지는 앙상하고 찬바람이 불어옵니다. 먼지와 쓰레기들이 같이 날립니다. 남산 분위기가 극히 황량합니다. 다른 영화처럼 데이트하기 좋은 장소가 아닙니다. <휴일>에서 남산은 일종의 도피처입니다. 한국 영화에서 이렇게 의도적으로 먼지를 많이 날리게 연출한 씬을 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데이트도 산책도 쓸쓸합니다. 텅 빈 주머니만큼이나. 지연은 얘기를 꺼냅니다. “무슨 얘기부터 할까요? 우리들의 현재에 대해서? 미래에 대해서? ...... 이유가 있다면 다 같이 빈털터리라는 거죠.”
<휴일>에서 남산은 가난한 도시를 살아가는 가난한 연인들이 돈이 없어도 겨우 머무를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나마 숨을 쉴 수 있었을까요. 두 사람은 한강이 보이는 남쪽 중턱(아마도 옛 외인아파트 자리 정도?)에서 가난에 찌든 도시를 봅니다. 남산 자락을 따라 한남동 쪽으로 나지막한 주택들만 이어져 있습니다. 여전히 바람은 세차게 불고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먼지가 날립니다. 낙태를 해야 한다는 지연의 말에 허욱은 수술비용을 구하러 떠납니다. 코트를 벗어놓은 채.
명동 길로 접어듭니다. 명동당구장, 아모레 스탠드바 간판이 보입니다. 친구들이 있나 싶어 다방에 들어가 봅니다. 연탄난로 위에 올려놓은 주전자만 처량해 보입니다. 친구를 찾아갔더니 극장에서 처음 만난 여자와 노닥거리고 있습니다. 그 친구도 마찬가지로 돈이 없습니다. 억만이라는 친구를 찾아갑니다. 그는 집앞에 메모를 붙여놓았습니다. “내게 볼 일이 있는 놈은 말세로 와라.” 술집 이름이 말세입니다. 억만은 다른 손님들에게 시비를 걸면서 술에 취해 있습니다. 그는 고도를 기다리는 에스트라공 같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아무도 절망적인 얘기를 해주는 사람이 없어.” 그는 희망이 있다는 말을 듣는 게 오히려 힘겹습니다. 아무도 찾아올 사람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메모를 붙여놓은 것입니다. 허욱은 자기보다 더 처절한 억만의 곁을 떠납니다.
**넔두리 말)
허욱은 부유한 규제를 찾아갑니다. 규제는 목욕을 하고 있고, 가정부는 커피를 타러 갑니다. 허욱은 담뱃불을 붙이기 위해 성냥을 찾습니다. 순간 그의 눈에 들어온 지갑. 허욱은 돈과 시계를 꺼내서 밖으로 나갑니다. 남산 중턱으로 갑니다. 기다리던 지연이 보이지 않습니다. 바람을 피해서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있습니다. 코트도 걸치지 않은 채. (이 장면, 지연의 감정, 코트를 벗고 돈을 구하러 간 허욱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을까요?)
배가 고파요, 지연의 첫 마디입니다. 간단하게 요기를 한 두 사람은 산부인과로 갑니다. (유흥진 산부인과, 중구 초동에 실제로 있었던 곳입니다.) 찢어질 듯 산모의 비명소리가 들려옵니다. 이 씬에서 이만희 감독은 인물들의 얼굴보다 서로 마주잡은 허욱과 지연의 손, 지연의 손을 잡고 데려가는 간호사의 손을 보여줍니다. 얼굴이 아니라 손만 보여주면서 불안한 심리를 묘사합니다. 마치 로댕이 손을 조각하듯이. 손에 감정을 담듯이.
혼자 밖으로 나간 허욱은 사당나무 아래 앉아 있다가, 다시 명동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명동다방, 최가집 왕대포 같은 간판들. 어느 바에 들어가서 술을 마시다가 혼자 앉아있는 묘령의 여인과 술을 마시게 됩니다. 여자가 시니컬하게 내뱉는 건배사는 “우리들의 우울한 일요일을 위하여!”입니다. 허욱이 절박한 소원이 있느냐고 묻자 여자는 “빈 병에 술이 채워지는 거예요.” 허욱이 남자와 자본 적이 있느냐고 묻자 여자는 “요즘은 애를 떼어본 적이 있냐고 묻죠."라고 대답합니다. 쿨하기도 하고 썰렁하기도 하지요. 두 사람은 일식집과 대폿집을 전전하다가 공사현장으로 들어갑니다. 두 사람이 정사를 나누려는 순간 멀리서 교회 종소리가 들려옵니다. 다시 돌아오겠다는 허욱의 말에 여자는 “약속은 지키지 않아도 좋아요. 우린 일요일에 만났으니까요.”
허욱은 수술 도중에 지연이 죽었다는 말을 듣습니다. 쓰러질 것 같은 판잣집에 살고 있는 지연의 아버지에게 찾아가 그 사실을 알리지만 미친 놈 취급만 받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찾아다니던 규제와 마주칩니다. 규제는 사정없이 허욱을 때립니다. 맞던 허욱은 더욱 처절하게 자기를 죽여 달라고 말합니다. 규제는 도망쳐버립니다. 지연의 목소리가 허공에 울립니다. “집은 빨간 벽돌집, 마당엔 꽃을 심어야죠.” 플래시백이 겹쳐지면서 허욱은 도시를 달립니다. 달리는 것 외에 답답한 마음을 털어낼 길이 없습니다.
허욱은 전차를 탑니다. 339번 전차. 이마저도 원효로 종점에 도착해버립니다. 넓은 도시에서 갈 곳이 없습니다. “어디까지 가세요?” “그냥 탔습니다.” “종점입니다.” “내려야겠군요.” 허욱의 생각은 내레이션으로 울려 퍼집니다. 서울, 남산, 전차, 술집 주인아저씨, 하숙집 아주머니, 모든 걸 사랑했다고. 이젠 일요일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고. 끊긴 전차선로를 보여주면서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마음 속의 무언가가 완전히 끊어져버린 허욱의 심경을 보여주면서.
아직 서슬이 시퍼렇던 군사 정권. 개발 논리에 의해 급속도로 바뀌어가던 도시. 그 안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무척이나 암울했을 것입니다. <휴일>은 그런 공간에 놓인 가난하고 불쌍한 연인들의 이야기입니다. 감독의 시선은 염세적입니다. 원래 <휴일>은 죽은 허욱의 시체가 발견된 후, 시체가 말을 하는 것으로 시작할 예정이었다고 합니다. 그랬다면 지금보다도 훨씬 더 어두운 톤이 되었겠지요. <휴일>은 뼈저리게 아름답습니다. 아름답기 때문에 더 허무합니다. 이만희 감독의 스타일이 잘 살아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이만희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무척 즐거웠습니다. 작년, 마스무라 야스조의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묘한 아쉬움? 60년대 같은 시기에 서울에는 이만희 감독이 있었습니다.
[출처] 이만희 감독, 도시의 허무한 사랑 <휴일> |작성자 조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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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만 봐도 움추려들고 춥지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