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경계도시2

무거운 빈가방 2010. 4. 8. 13:12

이 글은 친구 호룡께서 메일로 보낸 내용입니다. 허락없이 그냥 옮겨 놓습니다. 모든광이고(영화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일에 다 광이니) 나를 영화의 수렁으로 빠지도록 발목을 끄집어 당긴 늪의 마왕인 친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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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온통 벚꽃잔치입니다.
꽃은 흐드러져 봄은 찬연하건만 세상사는 꽁꽁 얼어붙은 엄동설한입니다.
 
어제밤 서면CGV(5관)에서 밤 9시 40분, 단 한차례 있는(그나마 4.11까지 상영인)
[경계도시2]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홍형숙이라는 여성감독이 만든 재독철학자 송두율교수에 대한 다큐입니다.
독일 유학시절 이후 줄곳 한국의 독재정권을 비판하면서
북한을 여러차례 드나들어 '친북인사'라는 딱지에다,
황장엽 망명이후 노동당 정치국원 '김철수'라는 큼지막한 붉은 별까지 달고 있던 송두율교수.
 
2003년 9월, 노정권 초입에 37년간 귀국금지 상태였던 송교수가 국정원의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에서 귀국을 시도하고
서울에 와서 바로 국정원과 검찰의 조사를 거쳐 구속, 재판, 감옥살이 끝에
1심에서 7년, 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고 풀려나 고향 제주를 들러
독일로 되돌아 가는 1년이 안되는 기간동안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드라이하게 카메라로 담은 영화입니다.
 
한국사회가 (노정권 초기인데도) 여전히 파시스트들이 설치는 매카시 사회라는 걸
카메라는 가슴을 도려 내듯이 보여 주었습니다.
송교수의 최후진술처럼 네 마리의 원숭이(국정원, 검찰, 언론, 지식인)들이
악마구니 같이 엉겨붙어 다른 원숭이 한 마리를 갈갈이 찢어 발기는 섬?한 광경이었습니다.
그 승냥이떼들은 지금은 더 제 세상 만난듯 사회 도처에서 발호하여 사냥감을 찾아 허연 이를 드러내고 있지요.
 
영화를 보는 내내 극심한 통증이 왔습니다.
우리들 자신이 바로 송두율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이 땅 구석구석에서 일상적으로 파시스트 개들과 날마다 일전을 치러야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너무 고통스러워 괴로움에 뒤챘습니다.
 
북도 남도 민족과 조국이라는 이름 때문에 정말 경계지점에서 고뇌하는 사람들을
진정으로 껴안는 사회체제와는 거리가 먼 것이 아닌가
특히 길게 보여 주었던 호텔방에서의 대책회의 모습에서
한국사회의 진보진영의 사람들이 송교수 부부에게 가했던
일종의 전향 강요의 압박은 너무나 쓰라린 '린치'의 장면이었습니다.
영화 속의 팩트로는 오직 송교수 부인 만이 유일하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이었습니다.
 
국가는 물론 폭압적인 야수성을 지닌 괴물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지식인과 종교인, 진보적인 인물이라고 일컫는 사람들조차
결정적인 국면에서는 개인의 인격권과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여지 없이 짓밟는
집단주의에 함몰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시대의 사상과 이념의 저속함을 보는 것 같아 괴로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