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김영진의 엘리아 카잔 시네토크

무거운 빈가방 2010. 4. 13. 23:39

10-04-11-2   친구들 영화제 : 김영진의 엘리아 카잔 시네토크

 

김영진 평론가의 이야기를 적기 전에 카잔에 대해 잠시 올린다.

**************

인물소개

엘리아 카잔은 브로드웨이에서는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 아서 밀러와 함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등 수많은 걸작을 만들어낸 연출가였고, 할리우드에서는 말론 브랜도, 제임스 딘, 캐롤 베이커, 나탈리 우드 등 무명의 배우를 ‘스타’로 발굴하고 <신사협정>, <워터프론트>, <에덴의 동쪽> 등 영화사에 남을 수많은 작품을 감독한 거장이었다. 특히 반유대주의를 소재로 만든 <신사협정>과 부두 노동자들과 자본가 계급의 대립을 다룬 <워터프론트>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다.

1909년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그리스인 부모 아래서 태어난 엘리아 카잔은 네 살 때 가족과 함께 뉴욕에 정착하였고, 예일대학교에서 연극을 공부한 후 브로드웨이를 발판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연극배우로 출발했으나 연출로 방향을 돌려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등을 무대에 올려 토니상을 받았다.

 

브로드웨이의 활약을 거쳐<브룩클린의 나무 성장>으로 영화계에 데뷔한 그는 20세기 폭스사의 데릴 자눅 사장의 ‘명작 브랜드 정책’에 힘입어 승승장구한다. 이후 <혁명아 자파타>, <에덴의 동쪽>, <초원의 빛> 등을 발표해 아카데미에서 주목을 받았으며, 특히 <신사협정>, <거리의 공황> 등 그의 초기작은 필름 누아르 스타일과 사회파 리얼리즘의 태도를 결합한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1947년에는 리 스트라스버그 등의 몇몇 동료들과 함께 ‘액터스 스튜디오’를 설립해 우수한 배우들을 양성하기도 했는데, 그가 거느린 사단에는 말론 브랜도, 제임스 딘, 워렌 비티 같은 쟁쟁한 배우들이 속해 있었다.

 

엘리아 카잔의 삶에는 명성만큼이나 크나큰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는데, 1950년대에 불어닥친 매카시 광풍이 바로 그 이유였다. 그는 1952년 하원 반미(反美)활동위원회에 소환되었을 때, 30년대에 공산당원으로 활동했음을 고백하는 동시에 함께 활동한 8명의 동료들의 이름을 밝힌다. 그로 인해 그에게는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혔고, 1954년 <워터프론트>로 재기에 성공했을 때도 그 흔적은 지워지지 않았다. 1999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엘리아 카잔은 평생공로상을 수여받았지만, 그에게 찬사를 보내는 마틴 스콜세지나 로버트 드 니로와 달리 그와 지난 시절을 함께 했던 에드 해리스, 아서 밀러 등은 그를 냉담한 눈길로 지켜볼 뿐이었다.

 

엘리아 카잔은 할리우드에 연극의 전통을 끌어들였고 스크린에 미국인의 거칠고 방황하는 삶을 옮겨온 장본인이자, 할리우드를 지배할 ‘메소드 연기’의 산실인 액터스 스쿨의 수장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리스인 출신으로 자신을 영원한 아웃사이더로 여겼던 그에 대한 논란은 2003년 그가 사망한 그 이후로도 계속되는 현재 진행형이다.

 

****************

김영진의 씨네토크

 

인사에 대한 답변이 없자 - 3년 째 하는 소리인데 늘 똑같다.(답 좀 해주면 좋겠다.)

카잔과 브란도에 얽힌 이야기를 조금 해야겠다.

1954년 아카데미 휩쓴 영화인데 반미위원회에서 동료를 밀고한 것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영화(이 때 채플린 등은 유럽으로 돌아갓자. 카잔은 터어키인데 당시 갈 곳이 없엇다. 많은 사람드링 카잔 밀고로 그만두고 비서도 그만 두엇다.))

 

워터프론터는 보편적 메시지도 강하고 부패권력에 대항하는데 귀머거리가 차차 듣게되면서 각성하는 영화

말론브란도는 줄리어스 시저 촬영시 매우 괴로워 하고 세트장에서 머리를 쥐어 뜯으면서 ‘카잔 만나면 때려야하나?’ 하면서 흐느끼기도 했다함. 시나리오작가 버드 설버그도 밀고

브란도는 출연 제의시 망설엿는데, 카잔은 아버지 비슷한 존재였다. 그를 스타 만들어준 스승인데, 시나리오 읽고 생각하길 - 카잔의 자기 변명 아닌가? 하면서 안하려 했다함. 간신히 사무실에서 만낫고 이를 주선한 것이 칼말덴(카잔 사단으로 카잔을 끝까지 지킴)인데 중재에 섰다.

브란도는 심적 괴로움 때문에 힘들어 하면서 출연을 승낙 하는데 ‘매일 정신과 치료 받는다’는 조건으로 출연했다. 이 역할도 매우 힘들어 했다.

카잔의 연출은 카메라 밖에서 드라마를 만들어 배우가 그 사람이 되게 끔 모든 것을 갖춰두고 연기하도록 한다.(메소드 연기를 중심원리로 삼음) 그래서 카잔을 억수로 지긋지긋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혁명아 사바타’에서는 안소니퀸과 형제로 나오니 둘을 형제처럼 지내게 하려고 같은 침대 사용, 같이 출퇴근 등등을 시켰으나 둘 사이 감정이 우러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계속 요구했다. 그러다 영화 막판에 둘이 갈라지게 되는 배신의 드라마가 생기니 그 때 부터는 둘 사이를 이간질 시켯다. 카잔은 안소니에게 ‘말론이 한 연기(욕망이라는 의 연기)는 너에 비하면 예고편에 불과하다’ 식의 말을 했고 안소니는 그것을 말론에게 하는 등 둘 사이의 이간질은 대성공을 거둔다. 만나기만 하면 주먹이 나가기 직전까지 만들었고, 15년 까지 말도 안했으니.... 그 이후 극적으로 화해했다.

 

카잔은 “워트프론터”에서 말론 역이 실패한 복서이니 실제 복서 연습을 하게하고 초라한 가구가 잇는 방에서 혼자 쉐도우 복서하게 하는 등 쓸쓸한 연기를 요구 했다. 스투디오에서 연기 교습도 시켰다.

창작수업에서 대해 배우에게 뭔가 알게 하려고 연기수업을 시키는데 대체로 첫날 통곡한다. 자기 실제 고통을 끄집어내어 연기 하게 하는 방법이다.

말론이 1등 수제자인 셈이다. 워트프론터에 대해 ‘말론은 테리를 잘연기한 것이 아니고 그 자신이 되었다.’라 이야기하기도 한다.

실제로 복서 생활을 하고 전철도 그 방향으로 타고 밤새 거리를 헤메고 잠들지 않기 위해 밤에도 누구에게 전화를 한다. 연기코치 ‘스텔라’ 아파트 앞에 가서 걸핏하면 밤중에 ‘스텔라’하고 외치기도 햇다. 말론은 너무 힘들어햇고 카잔은 그것을 즐겼다.

 

카잔은 연출자로도 매우 무서운 사람이다. 실제 조폭과도 점심을 했는데 작품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영화에서 이디하고 처음 걸을 때 장갑 떨어뜨린 것을 말론이 주워 이디 오빠에 대한 죄책감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으로 표현해 내엇는데 이건 말론의 즉흥적 연기이다.(매우 인상에 남는 장면)

찰리와 택시에서의 연기 장면에서도 자기 인생에서 형에 대한 원망과 애정 사이의 왔다 갔다하는 연기와 그것을 받아주는 로드 스타이거의 연기도 압권이다. 그런데 이것은 제작자가 돈 아끼려고 세트장에서 했는데 매우 구두쇠 장면이 셈이다. 이것 때문에 시나리오작가가 화를 많이 내엇다. 매우 중요한 장면인데..... 이것도 블란도의 즉흥적 장면이다. 블란도가 워낙 즉흥적으로 하니 시나리오,감독, 블란도가 토의 했는데 카잔이 니 마음대로 해라해서 이뤄진 것. 매우 심금 울리는 장면

후반부에 감독-시나리오 작가 입장을 대변하는 맥락이 나온다. 그래서 이 영화는 매우 복합적인 문맥으로 볼 수 잇는 영화이다.

 

카잔은 ‘배우들의 감독’이다. 댓가 치르고 나면 괸장한 배우된다.

말론은 학생시절부터 우상이고 전설이었다. 액소더스 연기하는데 연기 중에 강사가 물구나무 상태로 멈추게 했다. 멈춘 상태로 말론은 특유의 웅엉거리는 말투로 무례한 말들을 하면서 강사를 KO 시켰다.

브란도 같은 막무가내 배우를 눌린 감독이 카잔이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무대에서 그리 자신감이 넘친 말론이 대여배우 앞에서 폭발안되고 계속 우물거리자 카잔이 모두를 나가게 하고 소리질러라고 요구하니 말론은 미친듯이 소리 질럿다. 실연극에서 이 소리 이후 모두를 감격하게 햇다.

 

테네시윌리암스는 처음에 ‘말론이 뭐하는 배우인데’ 히면서 시쿤둥 했다. 카잔이 말론을 테네시 집에 보냇는데 집이 아주 멀엇고 말론은 돈이 없어 버스 타고 가다 내려 걸어갓다. 도착하니 윌은 쳐다도 안보고 수도와 전기 고장 난 것 때문에 화를 내고 있자, 말론이 자기가 알바로 배관공 일을 했다 하면서 전기와 배관을 고쳤다. 윌이 몇가지 질의를 한 뒤 ‘되겠다’ 생각하고 버스비 줘서 보냈다. 말론은 버스 타고 돌아갔다.

 

제임스 딘도 카잔이 발굴했다. 제2의 말론이다. 에덴의 동쪽 촬영 때 전부 반대하는데 맡겼고 처음 등장시 웅엉거림과 불안을 연기했다. 명확하지 않으면서도 폭발직전의 모습을 연기한다.

제임스의 아버지 같은 존재는 말론이었다. 툭하면 말론에게 전화 했는데 나중 말론이 ‘ 나한테 의존하지 말고 너 자신이 되어라’라고 했다.

말론의 연기는 새월이 가도 뛰어나고. 요령과 스킬이 아니라 완전 몰입연기이다. 말론은 연기를 협오 했고 툭하면 도망치려했고 60년대는 카잔과 등돌렸다.

아무도 말론을 쓰려 하지 않았는데 대부를 찍을 때 코프라가 모든 반대 물리치고 말론을 캐스팅했다.

아카데미상을 받을 때도 인디안 소녀를 보내 인디안 학살에 대한 연설문을 읽게 해 헐리웃에 미움이 박혔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서 대사 안주고 즉흥 연기를 시켰는데 ‘하모니카 불면서 자기의 어린 시절을 끄집어 내는 연기를 했다.’ 끝난 뒤 고통으로 감독에게 ‘개새끼’ 하면서 욕했다 한다. 나중 보니 사실도 아니었단다 진짜 연기를 한 거다. 그래도 그런 순간들에 말론은 괴로워했다.

배우 창작에 관해서 ‘연기를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가 최고의 감독의 역할이다.

 

TV는 보는 사람들이 매우 산만하다. 그래서 열심히 열연해야한다. 그런데 스크린으로 이것을 보면 매우 가짜스러운 경우가 많다. 그래서 탤랜트들이 영화에는 실패 많이 한다.

영화는 실제 존재감이 매우 중요하다. 장시간 클로즈업에 견디는 배우 그리 많지 않다. 만약 자신을 1분 동안 대형 화면에 클로즈업 해봐라 그것을 보면 자기 인생에 회의로 다시 생각하는 것이 많을끼다.

허우샤오센은 먹는 장면 찍을 때 배우들이 진짜 배고플 때 찍는다. 그래야 자연스러움이 나온다. 홍상수는 소주, 회를 많이 찍어 먹고프게 한다.

배우 잘다스리는 감독이 연기의 핵심을 쥔다. 진짜가 뭔지 무대, 스크린에서 보여준 것이 카잔의 힘이다.

배우와 감독이 신경전 펼치는 경우도 많다. 배우는 연기하려 하고 감독은 연기 못하게하고 전투가 되기도 한다.

 

40년 중 후반에서 50년대에 스튜디오 필름이 많앗는데 카잔은 스트리트 필름이 많았다. 실제 장소에서 찍어낸 것들이 매우 뛰어낫다. 로케이션의 승리다. 이디와 쫓기는 밤의 골목, 지붕의 비둘기 집 등은 고전 할리우드에는 없엇다.

마지막 장면 부두 노동자들을 찍는데 매우 생생했다. 모두 연기를 너무 잘했다. 대체로 여러면이 나오면 삐긋거리는 엑스트라 한 두명이라도 잇는데 이들은 실제 노동자 같앗다.

(예언자도 실제 죄수들 처럼 연기했다. 아마 현장에서 단역 배우 델꼬 실제로 살게 했을 것이다.)

 

60년 대  초원의 빛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영화는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닌데 모두 떠나갔다. 그 이후 카잔은 큰 이슈 없었다.

카잔의 전성기는 40~50년대 이며 정치적 맥락에서 창작이 자유롭지 못한 모습이다.

아카데미 공로상 시상식에서 카잔은 ‘ 짧게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 좋겠다’했다. 말년에 너무 잔인한 퇴장이 아니었나는 장면이다. 헐리우드가 면죄부용으로 카잔에게 상 준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잇다.

워터프론터는 자기 변명 같은 영화지만 보편적 감독의 모습은 보였다. ‘ 배우들의 감독’이라는 연출자의 힘을 가장 잘보엿다.

** 지금 60~70년 대 영화가 4대강이나 노조탄압 문제 등 우리에게 이리 호소력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

(들은 것에 대한 정리라 잘못 정리된 내용들도 많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