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는 나의 힘
10-04-17 질투는 나의 힘 (한국영상자료원)
하운이와 점심을 허겁지겁 먹고, 귀대하는 녀석 바쁘게 보내고, 서울에선 처음으로 차를 몰고 상암으로 향했다. 바쁜 아비를 보는 귀대를 앞둔 아이의 심정은 어떠할까? 지하로만 거의 다니다 복잡한 강변길을 차선 바꾸어 가며 급히 모니 흐르는 한강도 주변의 나무나 꽃들도 뵈질 않는다. 바삐 흐르는 차들과 그에 실린 나를 생각하면 가끔 떠오르는 것은 “크레쉬”, “크레쉬!”(1996년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 영화제 때 호룡대사가 권했던 영화. 난 ‘클래식’으로 알아 보지 않았던. 이 후 놓쳐서 가장 아까웠던 영화. 대형 화면을 채운 데보라 카라 웅어의 반쯤 깜긴 듯한 눈과 표정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난 보기의 전문가다.ㅋㅋ)
질투는 나의 힘. 제목 때문에 너무도 궁금했던 영화였다. 게다가 GV까지 한다하니 바쁠 수밖에. 간만에 바깥아내와 함께 갔다. 상암까지나 차를 몰고.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던 영화 그리고 자리. 마치자 마자 주린 배를 모른척 하고 자리에 앉아 대담 내용을 바로 타자로 쳤다. 이리 부지런 하시다니!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듯이 이젠 하지 않으면 살 수 없을 듯이 한다. 이짓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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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나, 그 사람이랑 자지 마요…… 나도 잘해요”
한 남자에게 두 번이나 애인을 빼앗기는 청년의 로맨스
착실했던 대학원생, 연적의 주변으로 다가서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유학비용을 모으고 있는 착실한 대학원생 이원상은 애인으로부터 유부남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고백을 듣고 차갑게 돌아선다. 잡지사에서 일하는 친구를 돕다 우연히 그 문제의 유부남 한윤식을 만나게 된 이원상은 묘한 호기심과 충동으로 그가 편집장으로 일하는 잡지사에 취직한다.
또 다시 난처한 삼각관계에 빠지다
잡지사 일로 수의사 겸 아마추어 사진작가인 박성연을 만난 이원상은 그녀의 자유분방한 매력에 호감을 느낀다. 동시에, 작가의 꿈은 접고 로맨스만을 인생의 낙으로 삼는 로맨티스트 한윤식도 그녀의 매력에 점차 빠져든다.
한편 이원상은 한윤식의 학식과 인간적인 면에 이끌리고 한윤식도 자신과는 정반대 성향을 가진 이원상을 각별히 총애하게 된다.
한윤식과 박성연의 관계를 눈치챈 이원상은 박성연에게 더욱 순진하게 매달리며 애정을 구해보기도 하지만, 자신은 그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히는데....
박찬옥 출연 박해일 (이원상 역), 배종옥 (박성연/노내경(원상의 옛애인) 역), 문성근 (한윤식 역), 서영희 (안혜옥 역), 김꽃비
이영화의 키워드 : 불륜, 삼각관계, 사랑
15세이상관람가 | 2003.04.18 개봉 | 1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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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장점을 가진 사람은 그 장점을 부러워하기에 가까워 질 수도 있는 모양이다. 반대일 수도 있겠지만. 언제나 뺏기기만 하는 사내에게 뺏는 사람은 질투의 대상인 동시에 동경의 대상도 된다. 무슨 이런 아이러니가? 사람의 삶이 다 아이러니 아닌가?(요새 가장 즐겨 쓰는 말인 것 같다.)
스톡홀름 증후군과는 좀 다르지만 이런 일은 흔히 일어날 수도 있다고 본다. 군대에서 상사에게 죽도록 터지고 그가 피를 딲아주면서 부드러운 몇 마디하면 감동의 눈물이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그런 현상(이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벌어지는 일이라 이것도 다르겠다.) 폭행 뒤의 감언이설은 이제 그 폭행이 그친다는 희망만으로도 안주하게 된다.
김혜리는 '영화를 멈추다'에서 이원상과 한윤식이 장례 이후 나란히 누워 대화를 나눈 장면을 잡고,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 뿐이었구나'는 기형도의 시 "질투는 나의 힘"을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 지었다.
영화 중 가장 공감이 가는 장면이고 질투로 끌어 온 영화의 내용이 마치 꼬리를 내루듯 나 또한 마음이 평안해지는 장면이다.
한윤식이 '집에도 못하고 바람도 못피는 것 보다, 집에서도 잘하고 애인한테도 잘하는 것이 좋은 것 아닌가?'할 때의 기분 비슷하다.
박감독은 일상의 몸짓과 대화를 잘빚어서 혹독하게 보이는 듯하지만 현실적 가능성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잘끌어간 것 같다.
박해일의 연기는 신인의 경지를 훨씬 뛰어 넘은 것 같고. 질투로 감싼 온몸에서 나오는 독기는 없어도 견디기 힘든 모습은 듬뿍 묻어나온다. 신인감독과 신인 배우의 조합, 잘짜여진 밥상이다. 간만에 먹어보는 맛있는 반찬으로 다 먹은 뒤 천정을 쳐다보면서 행복해 하는.
장면을 듬성듬성 꾸려서 표면을 약간 거칠게 만든 홍상수표 영화라 해도 될련지?
장면의 압축이나 이야기의 전개에서 단순한 것은 생략해 버리고 카메라를 배우에게 직접적이기 보다 분위기에 맞추는 포인터는 10년 가까이 지난 영화인데도 새롭다. 박해일의 변해 가는 표정과 대사를 보고 문성근의 바람끼를 보는 재미도 솔솔이다.
영화에 대한 이해는 나이에 따라 다른 모양이다. 이원상(박해일)의 행동들이 일반 관객에겐 매우 당혹스러웠던 모양이다. GV때 질의를 보면. 그가 연적 윤식에게 빠져드는 것. 성연을 더 이상 만나지 않겠다 하는 것. 하숙집 여동생(혜옥-서영희)에게 행한 섹스가 폭력적이다는 것 등등. 특히 감독은 혜옥이 원상을 이용했다라 표현한다. 감독이 시나리오를 다듬고 해서 내용이나 흐름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겟지만 시간이 지난 탓인지 감독조차도 사람들의 모습 역할을 약간은 헷갈리는는 듯하다.
사람의 일이란 것이 모든 것이 계획적으로 다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남녀의 문제는 외롬과 설울음 가진 사람이 동정과 합쳐지면 일이 생길 수 있는 것이고 때로는 책임감을 느꼈다가 현실에 접하면 이게 아니다라 오락가락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게 원상의 모습이고 혜옥은 유일한 의지자요 사랑하는 사람이 무엇을 하자 해도 따라할 사람이며 약간의 부족함으로 인해 원상이 자기를 언제나 사랑한다라 결론짓고 있는 여성이다. 그래서 영화의 내용 보다 훨씬 더 복잡하게 얽힐 수도 있는 일이다.
박찬옥감독의 두 번째 영화 “파주”는 조금 더 넓은 범위에서의 사건들을 다뤘지만 “질투”의 모습이 남아있고 일상 속에서 사람의 모습을 담고 싶음도 여전한 모양이다.
GV를 보면서 이제 나도 나이를 많이 먹었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나이답게 스스로를 순하게 줄이고 감정을 덜 드러내든가 덜느끼든가 해야 하는데 몸만 나이를 먹으니 이게 문제다.
하나 더 . 영화를 찍을 때 배우는 감독의 지시를 철저히 따르던지 아니면 많은 대화를 통해 장면 하나하나를 만들어 가는 줄 알았다. GV 때의 대화를 보면 감독 생각과 배우의 생각이 따로 노는 경우도 많구나 싶었고 대상에 대한 느낌의 표현도 다를 경우가 많구나는 것을 알았다. 약간 당혹스럽다. 물론 그리할 수는 있겟으나 당시의 감독이 배우 장악력이 크지 않았구나 하는 것과 때로는 던져주고 알아서 해석하게 할 수도 있구나 하는 것 두가지를 떠올려 본다.
GV는 내용은 다음에 올린다.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 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 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 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 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