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피에타 - 다시 생각해 보다.

무거운 빈가방 2012. 10. 4. 00:30

아내와 아들에게 피에타를 보여주기 위해 국도로 향했다. 둘을 영화관에 인도하고 난 입구쪽 모짤트에서 차한잔 했다.

 

한번 더 피에타를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다시 그냥 내용만을 가지고 정리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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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에서 경선은 용산지역의 개발을 상징하는 용산역에서 떨어져 죽는다. 사채업자들이 당당히 티비에서 광고를 하는 나라에서 빚 때문에 위장결혼까지하여 상대에게 피눈물을 뿌리게 만들곤 그녀는 떨어져 죽는다.

 

피에타의 웃기고 직설적인  이름인 '강도'는 칼로 상대를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라 상대가 일하는 밥벌이의 도구를 가지고 스스로의 신체를 절단케 만드는 저승사자다

 

두영화의 공통점은 빚을 내지 않으면 살기 어려운 일반 서민들의 신음이 있고 그들의 목숨을 담보로 빌어먹는 무수한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또 다른 공통점을 깔고 있다.

 감독들도 표현하지 않은 어쩌면 진정으로 표현하고픈 것, 사적 고문이 이리 횡행하는 나라의 공권력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인이 사채로 허덕일 고통을 국가라는 이름의 권력은 눈도 깜빡하지 않는 복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강도가 하는 일이라곤 사람에게 위해를 가한 후 산짐승을 사다가 요리해 먹고는 그의 침침한 방에서 자다가 갖사춘기의 사내처러 몽정을 하는 것이다, 그의 방은 짐승들의 부속물로 가득하여 냄새가 절로 느껴진다.

 

 

생사람 잡는 직업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세상 모든 것을 씹어 먹고픈 날짐승 같은 표현을 보여준다. 그만큼 전혀 길들여지지 않았다거나 교육의 혜택을 받은 적도 없음을 보여준다.

 

 

강도도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버려졌고 아무 애정도 없이 살아온 환경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가 이리 잔인한 것이 아니라  무엇 때문인지 이리 길들여졌다는 것이다. 

 

그의 자칭 엄마는 모두 불쌍하다고 표현한다. 죽임을 당한 아들도 죽음을 행한 강도도 모두 세상을 잘못만났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사적 감정에서 사회적 구조의 희생물로 느끼는 것일까?

 

개인은 사실 이 감정도 사적으로 끝나겠지만...

 

강도가 움직이는 동선들은 청계천의 개인 공장들을 중심으로 골목길을 훑는다. 내가 늘 다니는 동묘의 뒷골목길과도 통한다.

버려진 물건들과 정리되어 있지 않는 길,, 사람이 사는 공간 보다 잠적하여 구석에서 떨고 있는 그런 세트장처럼 느껴진다.

 

사람을 위협하는 큰건물과 그가 사는 가까운 곳에 하얀 페인트 칠을 한 거대 교회가 건물에 손을 닿기만 해도 구제받을 듯 서 있다. 이 둘은 사실은 창백해 보이고 어울리지 않는 환상처럼 보여 자신들과 전혀 관계없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할렐루야!

 

 

두 개의 문은 삶의 터전을 잃지 않으려는 길거리의 그냥 평범하고 힘없는 사람과 그들을 진압하려는 사람(경찰과 용역)의 대결을 보여주고 그들이 희생당한 장면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을 겨냥 했음을 그 누구도 알 수 있다.

 

개발로 떼돈을 벌려는 자본과 그들을 철저히 보호해 주고 자신들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려는 결합을.

 

이 결합은 직업인으로서의 경찰과 용역을 하수인으로 전략시키고 결국엔 그들까지도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이 사회에서 죽일놈이나 죽을놈이 언놈인지 이 감독들이 겨냥하는 놈들은 어떤 놈들인지 우린 감을 잡을 수 잇을 것 같다.

 

 

피에타는 자비를 구하는 모습의 미켈란젤로 작품이 아니라 피에타서 갈아마시고 싶은 것들을 표현하곺거나 표현치 못해 애둘러 보여주는 것처럼 제목도 그러한 것일가?

뭔가를 ‘피에타!’라는 의미의? 그냥 해 보는 말이지만 그럴수도 있지 않을까?

광대를 위한 슬픈 발라드는 실제 피를 부르고 잠시지만 가장 직접적 권력의 손가락을 씹어버린다.

 

아무튼 김기덕의 마지막 해법은 참 아름답다.

새벽의 여명도 그러하고 조용히 달리는 차도 그렇다.

늘 싸우는 부부는 잠시겟지만 화해하고 다시 생활전선에 나가는 삶의 모습,

그 생존의 바퀴에 깔아 뭉게져야할 사악한 것들,

희망이 넘치는 결론이다.

 

 구조의 맨 말단을 처단한 것이지만 그 처단이 스스로의 반성으로 이루어진다.

피에타는 한폭의 그림같은 희망을 표현한 영화로 가슴에 남는다. 내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