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의찬미 - 제법 큰 스케일 전체적 구성은? 상은 받았지만
사의 찬미 (1991)
Death song
윤심덕의 사의찬미(오리지날)
http://www.youtube.com/watch?v=Mfb4aqQufPM
서프라이즈에 나온 윤심덕 이야기
http://www.youtube.com/watch?v=tNy2HdE59Nc
전명신 사의 찬미
http://www.youtube.com/watch?v=traJvFVeFBk
나윤선
http://www.youtube.com/watch?v=wFyBCJHgbuk
김정호 사의찬미
http://www.youtube.com/watch?v=XD7zqYqAlE8&playnext=1&list=PL0C85664F9E2AA729
윤심덕이 살았던 그 시절, 식민지라는 새로운 시대로 인해 혼란과 좌절은 기본일 것이고
3.1운동이란 만세 운동을 전개 했지만 미국의 윌슨의 이야기는 조선과는 전혀 관계없음을 느끼면서
세계는 일본편이라는 인식이 들기 시작하고..
오직 무장투쟁만이 대한의 살길이라 믿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끝없는 좌절의 시작이 그 시대였으리...
이럴 때 지식인이나 에술인들이 갖는 고통과 외로움 갈등은 매우 컸으리라. 그런만큼 엄청난 소재도 될 수 잇을텐데....
제법 큰 스케일을 구가하려고 했다.
그러나 옛 한국영화들이 구가하려하면 할 수록 뭔가 어색함이 묻어나오는 능력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그런데 늘 눈에 거슬리는 것은 장미희의 연기다.
장미희의 연기는 처음부터 나에겐 별로였다. 표정이 가식이 커서 영화속에 잘녹아들지 않는 느낌이 많았는데 이것이 어디 변하겠나?
그런데 감독들은 그녀를 왜 좋아했는지 잘모르겠다.
윤심덕의 일대기를 꾸리면서 그녀의 사랑이나 애환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무엇을 주장하고픈지?
노래도 마찬가지다. 립싱크 실력이 너무 형편없다. 삐아프를 연기한 배우를 보라. 거의 사실작 아님가? 물론 아리아들이라 입을 더 크게 벌려야 하는 부담도 그래도 너무 하다. 입큰개구리머냥 째지도록 벌리는 입속에 뭔가 넣고 싶은 심정이다.
20년도의 퇴폐주의는 그 시대의 절망이 절절이 나타나야 한다. 넘 어슬퍼다.
만석꾼의 아들이 저리 처참하게무너지는 꼴은 부자는 부자인 모양이다 라 생각들게 한다.
어쩌면 3.1만세 이후 만주로 더나지 못하는 지식인들의 무너지는 모습은 저리 했으리라.
그러다 결국은 일본이 최강이야 하면서 친일파로 돌아섰으리라.
심덕의 절친으로 나오는 '난파'란 인물도 결국엔 그러하지 않는가!
젊은 이경영의 모습이 괜찮아 보여 얼쭈 유일한 위로가 되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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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정보 드라마, 로맨스/멜로 | 한국 | 160 분 | 개봉 1991-09-21 |
감독 김호선
출연 장미희 (윤심덕 역), 임성민 (김우진 역), 이경영 (홍난파 역), 김혜리 (윤성덕 역)
수상정보12회 청룡영화상(1991) 수상최우수작품상, 남우주연상(임성민), 여우주연상(장미희), 남우조연상(이경영)
30회 대종상영화제(1992) 수상우수작품상, 감독상(김호선), 시나리오상(임유순), 여우주연상(장미희), 촬영상(이성춘), 녹음상(김경일), 남우조연상(이경영), 의상상(김영주, 하용수), 특별부문상(김철석)
줄거리성악가의 재능을 인정받은 윤심덕(장미희)은 1919년 최초로 국비유학을 떠난다. 동경음악대학에서 성악가의 수련을 닦게 된 그녀는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학생들의 인기를 얻는다. 그녀의 유학 동료 홍난파(이경영) 역시 그녀에게 각별한 감정을 갖게 된다.
그러나 윤심덕은 홍난파를 통해 알게 된 극예술협회의 김우진(임성민)을 사랑하게 된다. 섬세한 감성을 가진 김우진은 불 같은 정열의 윤심덕과 처음에는 부딪히지만, 결국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유부남이었던 김우진은 도덕적 갈등을 겪고 그녀와의 관계를 끝내려 한다.
한편 윤심덕은 타의에 의해 성악무대에서 대중무대로 자리를 옮겨가게 된다. 사랑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던 두 젊은 연인은 역경을 겪고 재회하지만 앞으로도 변할 수 없는 현실 앞에 무릎을 꿇고 현해탄 선상에서 바다로 몸을 던지는데...
이영화의 키워드 : 실존인물, 예술가, 사랑, 일제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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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심덕(尹心悳, 1897년 7월 25일 ~ 1926년 8월 4일)은 일제 강점기의 성악가이자 가수 겸 배우이다. 화가 나혜석과 함께 1920년대의 신(新)여성을 대표하는 인물이다.[1] 한기주(韓琦柱)와 함께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였다.[2]
[편집] 생애
평양에서 4남매 가운데 둘째 딸로 태어났고,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진남포로 이주하여 자랐다. 아버지 윤호병과 어머니 김씨는 모두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으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도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 신교육을 받도록 했다. 윤심덕은 숭의여학교를, 언니와 여동생은 이화학당을, 남동생은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했다.
윤심덕의 형제들은 모두 음악에 재능이 있었다. 여동생은 피아니스트이고 남동생 윤기성은 바리톤 성악가였다. 1920년 조선기독교청년회연합회에서 주최한 도쿄 음악학교 동창회의 음악회에서 피아노 듀엣곡의 일종인 네 손을 위한 피아노 작품을 연주했던 윤성덕이 언니였다.
윤심덕도 평양의 숭의여학교를 졸업한 후 처음에는 의사와 교사가 되기 위해 평양여자고등보통학교와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에 다녔다가, 음악 공부에 뜻을 두었다. 조선총독부 관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도쿄로 건너간 뒤, 아오야마가쿠인을 거쳐 도쿄 음악학교를 졸업했다. 윤심덕은 도쿄 음악 학교 최초의 조선인 학생이었다.
윤심덕은 활달한 성격이라 도쿄의 남자 유학생들과 잘 어울렸다. 키가 크고 목이 긴 서구형 외모에 자신감이 넘치는 성격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3] 1921년에는 유학생들이 계획한 순회공연에 참여했다가 극작가이며 와세다 대학 학생인 김우진을 만나게 되었다. 김우진은 부인과 자녀가 있는 유부남이었다.
1924년에 도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였고,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로서 전성기를 맞았다. 그러나 교사로 임용되지 않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혼담이 깨지는 등 개인적인 문제가 잘 풀리지 않았다. 부호의 첩이 되었다는 스캔들로 도피까지 한 끝에, 김우진의 권유로 토월회에 들어가 배우로 일하게 되었다.[4] 한국 최초의 대중 가요로 꼽히는 〈사의 찬미〉를 녹음하여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1926년 레코드 취입을 위하여 오사카에 있는 닛토[日東] 레코드 회사에 갔다가[5]한 윤심덕은 그해 8월 3일에 김우진과 함께 시모노세키에서 부산으로 가는 연락선 도쿠주마루[德壽丸]에 탑승했으며, 4일 새벽 4시 쓰시마섬을 지나던 중 자살하였다.[6] 당시 동아일보는 1926년 8월 5일자 사회면에서 이들의 자살을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지난 3일 오후 11시에 하관(시모노세키)을 떠나 부산으로 향한 관부연락선 덕수환(배 이름)이 4일 오전 네 시경에 쓰시마섬 옆을 지날 즈음에 양장을 한 여자 한 명과 중년 신사 한 명이 서로 껴안고 갑판으로 돌연히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을 하였는데 즉시 배를 멈추고 수색하였으나 그 종적을 찾지 못하였으며 그 선객 명부에는 남자는 전남 목포시 북교동 김우진이요, 여자는 윤심덕이었으며, 유류품으로는 윤심덕의 돈지갑에 현금 일백사십 원과 장식품이 있었고 김우진의 것으로는 현금 이십 원과 금시계가 들어 있었는데 연락선에서 조선 사람이 정사(情死-연인끼리의 동반 자살)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더라”
이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 감독 김호선은 영화 《사의 찬미》를 제작하였는데, 이 영화는 임성민과 장미희가 주연을 맡았다.
문희와 신성일 주연의 '윤심덕'
일본으로 가는 배 위에서 정식과 말다툼을 벌이던 심덕은 와세다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는 유학생 김우진을 만난다. 심덕은 우진이 유부남인 줄 모른채 그와 깊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난 뒤에도 우진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못한다. 결국 두 사람은 일본에서 동거를 시작한다. 그러나 심덕은 우진을 찾아온 부인을 보고 집을 나오게 된다. 한편 심덕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데 절망하던 정식은 정신병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심덕과 우진은 다시 만나게 되지만 우진의 착한 아내를 만난 심덕은 우진과 헤어지기로 마음 먹는다. 그리고 우진은 집을 나와 공사장을 전전한다.
우진이 공사장에서 떨어져 입원하자 심덕은 그가 입원한 병원을 찾는다. 그렇지만 우진을 간호하던 심덕은 그의 아내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이탈리아 유학을 결심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우진은 심덕이 탄 배에 뒤따라 오른다. 마침내 배 위에서 재회한 두 사람은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안타까워하며 현해탄에 함께 몸을 던진다.
이영화의 키워드 :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