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13.08.27

무거운 빈가방 2013. 8. 28. 00:35

 

8월도 얼마 남지 않았다.

 

서울 부산 오락가락하다가 부산에 머문지 3개월이 되었다.  서울에 가고파 몸살이 살짝 나지만 지금은 일꺼리가 없기에 가봐야  일없다.

 

새끼 밥이라도 챙겨먹여야 하는데 내 목구멍이 포도청이 된 듯 하다.

 

세상 어디에서든 특히 영화에서 보여주는 새끼와 부모간의 사랑은 거의 철옹성이다.

 

 

겨우 본 설국열차에서도 아이에 대한 사랑은 지극하다. 

 

그런데 이것도 남의 새끼면 이야기가 다르다.

 

커티스(크리스 에반스)는 배고파서 남의 아기를 잡아 먹으려 했으며

(사료에는 가뭄이나 장마 때문에 흉작이 들고나면 먹을 것이 없어서 민중들은 아이를 바꾸어 먹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표현 했다. 실제 바꾸어 먹기도 했다 한다.)

 

엔진의 선장인 위대한 월포드(에드 해리스)는 기관의 유지를 위해 다섯살 난 아이들을 기관실에 가두어 일을 시킨다.

 

말이 나온 김에 '균형'이라는 질서를 유지키 위해 적당한 폭동을 조장하는 윌포트의 힘과 생각 그리고 게략은 대단하다.

 

자연은 그 자체로 균형성을 가져 나무가 너무 빽빽하면 그들 끼리 부딪혀 불을 내어 개체를 유지하고

 

동물계도 먹이사슬의 순환으로 유지가 된다.  유독 인간만이 최고의 위에 있기에 균형을 벗어났다.

 

그리되니 위대한 지도자 윌포트는 강제적 균형을 통해 세상(기차안)을 유지한다. 인간에게 균형 이란 강제의 또 다른 단어가 되는 것이지?

 

이 복잡한 열차칸에서도 인가느이 사랑은 이루어지고 아이를 낳는다. 생존의 본능은 인간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영화와 워작의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를 끌어가는 봉준호의 힘도 참 대단하다.

 

좁은 기차 안에서의 세상의 정치와 경제 질서와 유지하기 위한 독재의 면모 등을 빠짐없이 보여준다.  여기에다 저항과 폭압적 진압 또한 현재와 조금도 다름없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강하게 세상을 밀어부치면서 잘살아보세 하며 외치며 허리띠를 졸라메길 강요한 것이 '갱'이라는 식량으로 나타나고

 

그들은 그야말로 기차 안에서도 세상의 모든 음식을 먹는다. 민중의 피땀의 댓가로 그들만이 호의호식하는 것과 매우 비슷하다.

 

꼬리칸이 폭동을 일으킬 때 총리격인 메이슨(틸다 스윈튼)은 쌍안경으로 폭동의 모습을 보면서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만났다 한다.

 

그들에겐 절박한 이들의 외침 또한 하나의 구경거리일 것이리라.

 

기차 칸이 하나열릴 때 마다 이 칸엔 무엇이 있을가 궁금해 하는 독자의 호기심에 무엇을 펼쳐주는가는 영화에 있었어도 매우 중요했으리라.

 

처음 나가긴 힘들어도 나중엔 한방에 가게 되니 요건 약간 싱겁다. 그렇지만 기차안의 화려한 세상은 저럴 수도 있겟구나하면서 혀를 차게도 된다.

 

그들에게 가까이 가는 길은 화려한 수많은 방을 디디고 수수께기를 하나씩 풀며 목숨을 건 사투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리라,

 

피를 튀기는 액션의 수위도 잘조절된듯하고 가끔 보여주는 바깥 세상의 모습도 좀은 아쉽지만 괜찮다.

 

세상의 땅을 처음 디딘 아이들 눈에 비친 북극곰...

 

아, 이 굶주린 곰이 아이들을 봤다면 잡아먹기 위해 달라들지 않았을까?^^

 

지도자의 철학은 늘 근거가 있다. 그러나 그 철학적 근거는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세상만이 진정한 정의로움임을 주장하는 것이다.

 

지금 세상에 벌어지는 일들이 이와 같다. 나는 도움을 받지 않았기에 아무 연관이 없다.

 

저거가 알아서 도와 준것이니 내가 무슨 잘못이 있노!

 

후쿠시마 원전의 문제는 일본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우리완 아무 관련 없다.

 

먹다가 죽는 것은 먹은 사람 잘못이지 정부가 뭔 잘못이고.  그렇지만 먹으면 안된다는 말을 하면 이건 루머고 중죄다.

 

극단적 부자가 생기니 극단적 가난도 많이 생겨야 세상의 균형이 맞는 것이다.

 

그래서 너거는 더 굶주리고 망해야 하느니라... 좀 힘들 땐 프로야구나 세게 대회를 유치하면 한국을 응원하면서 그저 기분이나 풀어라.. 그것도 공짜는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