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호강의 현대미술사 3 - 미국 : 에드워드 호퍼
한창호강의 현대미술사 3 - 미국 : 에드워드 호퍼
호퍼의 풍경 : 벤더스의 풍경 빔벤더스 <파리, 텍사스>, 1985 |
에드워드 호퍼는 영화인들이 대단히 참조 많이 하는 화가.
뉴욕, 미국풍경 등 (우리가 미국 풍경이라 생각하는 그런 상상하는 풍경들)
화면 구성시 구성, 그림 이미지 등을 대표적으로 참조함.
빔 벤더스는 모두 합쳐 하나로 정리하면 거의 다 로드무비
두명이 길가다가 갈등 해소 등의 형식, 큰 장르 아니지만 서버장르..
벤더스가 거의 독보적이다. 80,90년대 는 매우 대단
자기가 자기영화 빗대어 ‘킹 오브 로드’라 함.
시간의 흐름 속에서 추상적인 것을 미국인들이 바꾸어 ‘길위의 왕’이라 별칭을 바꿔줌
독일에서 만든 영화들이 주목 받아 할리웃 가게 되었는데
‘파리 텍사스’ 만드는데 - 텍사스 주의 ‘파리’
미국 지명은 거의 모든 이름이 유럽에 있는 이름들이다.
주로 나오는 것은 LA 쪽인데. 미국 풍경 잡을 때 나름 외국인이니 긴장은 되었을 듯,
이미지 참조 한 것이 에드워드 호퍼이다.
파리 텍사스
브로크 빅 마운틴
풍경 하늘.... 끈기 있게 기다려야 한다 장면을 찍기 위해서는
우리도 이젠 푸른 하늘 별로 없다 9월 정도 한달만.....
(내 해석은 -차량매연 기준 낮아 이젠 한달도 없다.도시는 냄새로 덮이고..)
전반부 두명이 만나서... LA로 돌아가는데 쉽지 않음...
트레비스 아들을 자기 아들이라 키웠는데 동생 아내가 당황함.
아내 - 외국인 억양(프랑스 배우), 의사도
앙리의 브로크백 마운틴 - 호퍼 그림 참조.
영화와 호퍼 * 1882-1967 * 42살 때, 조세핀과 결혼 (1924)한 뒤 화가로 성공하기 시작 * 여행하는 삶 * 전업 작가가 되기 전에는 영화의 포스터, 극장의 포스터, 홍보 관련 그림들 제작 * Film Noir 스타일의 그림들 |
- 결혼이 가져온 행운. - 조의 양보가 큼
- 교양으로서의 미술사에 미국 화가로는 처음으로 나옴
- 젊었을 때 여행 많이 다님 ; 차, 길, 모텔, 카페 ....
- 유명 이후 이전 한 작업(영화,극장 포스터 등)들을 부끄러워 했음.
절대 자기 인생에서 떨칠 수 없는 한 부분인데 ...
자기 그림 속에 영화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나중 영화를 사랑하게 됨. 예술 보다 필름 느와르 범죄 영화를 좋아하게 됨
(느와르 범죄 : 젊은 남자가 허황된 꿈을 쫓는 스타일. 누군가의 것을 빼앗고 죽여야..... 그 뒤에 항상 여자가 있다.
불가능의 욕망을 실현하고 젊은이가 정신을 잃는 것)
필름 느와르 속의 장면들이 그림에 들어옴.
- 한창 ; 3년 때우러 군대 갔는데 3달 있다 보니까 알게 되더라.
그럴 수가 없다. 3년이 소중한 시간이고 이쁠 땐데 매우 억울하다.(이 이야기도 이유가 잇는데 기억안남 나도 억울타)
호퍼, Nighthawks 1942 밤에 돌아다니는 사람의 별칭
느와르의 그림이 있음, 전쟁 중 전형적 느와르 시기 뉴욕,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도 전쟁 중 - 엄청난 돈을 버는 사람이 나옴
어디 가더니 떼돈 벌어 부자가 되더라 이웃이.
마치 범죄 영화의 밤장면 같은 것.
붉은 머리에 빨간 옷. 팜므파탈 같고...
범죄자 같고 얼굴 안보이는 남자.
- 로버트 시오드맥 , <살인자들>, 1946
- 첫장면.. 바로 접근... 바 안의 장면..
- 호퍼의 그림 처럼 찍음; 첫장면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장면임.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음. 조명의 힘.
빛과 어둠을 대조시키는 전통이 있었는데 빛과 어둠 충돌의 그림이 유행한 적도 ..
호퍼가 새로 발견, 차용하여 자기 것으로 만듬
House by the Railroad, 1925
출세작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그림인데도 반응 좋음
19세기 미국이 엄청나게 빠르게 성장할 때인데 (급격히 변화)
이 그림 보고 잃어버린 과거를 찾은 듯, 노스텔지어 자극 - 많이 없어진 건물들이
순수한 원형을 자극한다.
- 히치콕, <사이코> 별장의 모습 - 고딕 스타일의 집.
격리된 장소에 왠지 비밀이 있을 것 같은... 영국 사람답게 고딕 스타일...
미술감독에게 호퍼 그림(House by the Railroad) 느낌 나도록 만들어 달라...
호퍼, Road in Maine 1914
인상파 좋아했음. 일반 화가 처럼.
아방가드르 운동에 별 관심 없었고 과거 인상주의 자들의 그림 풍경이 나옴.
자기 특징, 그림이 외로움, 사람 나와 봐야 한명 정도 나오는 형태. 자기 특징이 나옴
Automat, 1927
고속도로 휴게소, 빛, 식당, 혼자 무표정 - 호퍼 특유의 분위기
호퍼의 모든 그림 - 명암의 대조인데 밝음이 너무 강해 어둠을 기억 못하지만 대조가 기본
Hotei Room 1931
Hotel By A Railroad 1952
, Hotei Room 1931
공항시대에 인기 매우 많이 끌었음,
- 과거엔 암이 강했는데 이 양반은 명이 강하지만 그래도 대비
빛과 그림자의 충돌...
한밤중이다 - 영화도 찬찬히 봐야 한다. ('셜리에 관한 모든 것'에 이 장면이 나온다)
전형적 호퍼의 호텔이다. 어디론가 왔다. 지친 표정, 일 구하러 온 듯 잘안되는 듯.
- 이런 그림들이 사랑받기 시작 , 역시 아티스트는 아픔을 안아줄 줄 알아야...
명암의 대조 ? 떠오르는 화가가 있나?
명암 대조는 바로크 시대 17세기 - 베르메르 형식과 테마를 베르메르에서 가져옴
이게 창의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Woman with a pearl necklace 1664 Johannes Vermeer(3)
1939, New York Movie 여성 혼자, 행복해 보이지 않음. 오른쪽에 영화 상영 중 안이 매우 화려함.
1990년 이후 거의 멀티플랙스 형태로 다 바뀜
Gas, 1940 / <파리 텍사스 개스 점 모습>: 자료 못찾았음
주유소 모습 빨강, 노랑, 파랑.... 밝은 칼라를 잘 씀
Jo in Wyoming 194
파리텍사스 1983 차 앞에서 밖을 보는 장면
Caroilna 모닝,, (호퍼)호퍼, 모닝 선, 1952
셀리에 대한 모든 것
호퍼, 모닝 선, 1952
밖을 보는 장면 - 마국인들이 자기들의 리얼리즘이라 말함.
미국은 아방가드르 유행하는데 고전적 형식이지만 사랑 받는 이유는 자기들의 고민들이 들어 있는 듯해서.
1952 메카시의 시대. 보통 미국인들이 느끼는 정치 때문에 답답함을 느끼는 것.
그림 소재 다른 것 전혀 없는데 그림 보면서 정치적 답답함을 보고 소통함,
<셜리에 대한 모든 것> 호퍼의 테마를 모르고 보면 재미없음..
1961, a woman in the sun
체념한 한 표정, 아침에 답배 피우면서 나체로.. 아내 조 인듯 - 여성들이 유난히 좋아하는 그림,
앤디워홀이 펄펄 날아다닐 시대인데도.. 여전히..
호퍼 1966 Two comedians
죽기 일년전, 일종의 고별사. 관객들에게 인사하는 그림.
'다 이사람 덕분입니다.' '아닙니다 주인공은 호퍼입니다.' 둘이서 그리 인사하는 듯.
두 사람 평생을 무지하게 싸운 사람인데도 마지막엔 화해하는 듯한 그림..
카페안의 햇빛
mansard-roof
Road and Trees, 1962
1930 이른 일요일 아침
http://ondolnews.com/news/article.html?no=276
(4)
1948.seven_a_m_-
1951.rooms_by_the_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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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파리, 텍사스 (1984) Paris, Texas
오프닝신
http://www.youtube.com/watch?v=Sd2EzQsZteA
Paris, Texas (first cabin scene)
http://www.youtube.com/watch?v=f6LfzhVWlBA
Paris, Texas--Ending Scene in Booth
http://www.youtube.com/watch?v=1JHUiWbgykQ
paris,texas- final scenes
http://www.youtube.com/watch?v=5JvV3KF7D3U
그림을 보면 느낌이, 음악도 (Ry Cooder Paris, Texas)
http://www.youtube.com/watch?v=X6ymVaq3Fqk
http://www.youtube.com/watch?v=lBSidn2tNEo
요약정보 드라마 | 독일, 프랑스, 영국 | 150 분 | 개봉 1987-08-29 | 15세이상관람가
감독 빔 벤더스
출연 해리 딘 스탠턴 (트래비스 헨더슨 역), 나스타샤 킨스키 (제인 헨더슨 역), 헌터 카슨 (헌터 헨더슨 역), 딘 스톡웰 (월트 헨더슨 역)
줄거리
영화의 바탕이 되는 것은 모래먼지 날리는 사막. 사막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운명적으로 만났다 헤어지는 이야기.
개척자의 함성이 울려 퍼졌던 레드리버 근처에 있는 텍사스의 파리. 사막의 모래 바람이 불고 사람이 살지 않는 곳과 접해 있다. 트레비스(헤리 딘 스탠톤)는 트레일러에 집을 짓고 문명을 거부하며 살아간다. 동생 월트(딘 스탁웰)는 LA에서 간판 가게를 하며 문명을 즐기며 견실하게 살아간다. 동생에게 이끌려 이미 성장해버린 아들 한터와 재회한 트레비스는 집을 나간 아내 제인(나스타샤 킨스키)을 찾아 휴스톤으로 간다. 트레비스는 휴스톤의 트라이 빈 뱅크에서 제인을 발견하지만, 제인은 상대방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전화로 이야기를 들어주는 여인이 되어 있다. (최상희)
이영화의 키워드 : 사막, 로드무비
(2) 살인자들 (1946) The Killers
영화전체(첫 장면이 소개한 호퍼의 그림 내음이 물씬 난다.)
http://www.youtube.com/watch?v=jJm3ixVQKnw
요약정보 범죄, 미스터리 | 미국 | 105 분 | 15세이상관람가
감독 로버트 시오드맥
출연 버트 랭카스터 (올리 '스위드' 앤더슨 역), 에바 가드너 (키티 콜린스 콜팩스 역), 에드먼드 오브라이언 (짐 리어든 역), 앨버트 데커 (빅 짐 콜팩스 역)
줄거리
작은 마을의 주유소 직원인 피트가 살해를 당한다. 보험 회사 직원이 이 죽음을 파헤치면서 옛날 강도 사건의 진상이 드러난다는 내용이다. 보험 회사 직원인 리어든은 피트가 원래는 올리라는 권투 선수였다는 것을 알아내고, 그가 강도 사건의 일원이었다는 것도 밝혀낸다. 이 강도 사건에서 올리는 배신을 하고 돈을 다 가져왔는데, 거기엔 콜팩스라는 도둑이 연루되어있다. 그가 키티라는 여자를 조종해, 배신을 하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는 결국, 그 돈과 여자를 콜팩스 자신이 다가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탄로 날까 두려워, 콜팩스가 킬러를 이용하여 올리를 죽였다는 사실을 마침내 리어든이 밝혀내게 된다.
이영화의 키워드 : 느와르, 살인사건, 소설원작 ]
(3) Johannes Vermeer라고도 씀. 1632. 10. 31 네덜란드 델프트~ 1675. 12. 15 델프트에 묻힘.
17세기 네덜란드 미술의 대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주로 실내 풍속화를 많이 그렸다. 그는 그림의 구도를 정확하게 파악할 줄 알았고 순수하고 개성적인 색채 감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진 요소는 다양한 형태와 표면에 작용하는 햇빛의 부드러운 움직임을 매우 객관적으로 기록했다는 점이다. 그의 대표작에는 자화상인 〈회화의 우의 Allegory of Painting〉(1665경)가 있다.
베르메르는 델프트 시 장터에서 자기 집안이 경영하던 여인숙에서 태어나 평생 동안 그 도시에서 살았다. 델프트에 보관되어 있는 공문서에 따르면 그는 1653년 4월 5일에 결혼했고 같은 해 12월에 화가 길드에 가입했다. 그가 생전에 상당한 명성을 얻었다는 것은 1663년에 그를 만나기 위해 일부러 델프트에 간 발타자르 드 몽코니라는 프랑스인이 남긴 기록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베르메르는 1662~63년, 1670~71년에 화가 길드의 대표로 일했다. 그러나 그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록이 많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팔기보다는 주로 미술품을 거래하는 일로 가족을 부양한 것 같다.
이 조용한 남자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지만 그 빈약한 기록에 따르면 베르메르는 빵집 주인, 식료품 가게 주인들과 함께 살았고 이 상인들은 그의 그림을 외상에 대한 담보로 받았다. 그는 가게 주인들 틈에서 작품을 계속했는데 이웃에 사는 장사꾼들은 그에게 껍질이 단단하고 윤기있는 빵과 우유를 비롯한 물질적인 영양을 공급해주었고, 그는 〈식모 KitchenMaid〉 같은 그림처럼 물질적인 음식물에 정신적인 차원을 덧붙였다.
베르메르는 네덜란드 귀족사회와 중상류층 사회도 묘사했는데 이런 그림에서는 세련된 귀부인들이 편지를 읽거나 레이스를 뜨며 신사를 맞이한다. 또한 음악을 듣거나 철학과 문학을 접하며, 객실에서 손님을 접대하고 있다. 이런 인물들이 등장하는 그림의 배경은 값비싼 양탄자와 훌륭한 악기, 수놓은 드레스와 화려한 겉옷, 담비 모피와 비단, 진주와 은식기가 있는 호화로운 실내이다. 베르메르는 네덜란드 상류사회의 인물들을 대체로 진주의 무게를 달고 있거나 시와 천문학, 음악과 지리학에 몰두하는 인물들로 재창조했다. 그들은 닫혀 있는 우주의 영웅들로서 이 소우주에서는 자연광과 반사광의 점진적 색조 변화가 극도로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현실을 좀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현실을 체로 거르는 것을 정제라고 한다면 베르메르의 그림들은 정제된 삶을 묘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베르메르의 인생은 신비에 싸여 있어서 수많은 해석을 낳았는데 그것들은 모두 그의 인생을 너무 좁게 제한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술사가인 레지널드 H. 빌렌스키는 그가 광학 기구와 거울을 이용하여 시야를 넓히려고 애쓴 실험실의 연구가라고 주장했다. 프랑스의 앙드레 말로는 그를 가족의 테두리 안에 갇혀 지낸 사람으로 보았으며 그의 그림에 등장한 수많은 인물들 가운데에서 그의 아내인 카타리나 베르메르를 찾아냈다. 이 2가지 견해는 서로 다르지만 둘 다 그를 은둔자로 묘사한 점에서는 같다. 그의 그림들을 자세히 보고 있으면, 화가 자신이 묘사하고 있는 방 안에 갇힌 채 그림의 주제로부터 그를 격리시키고 있는 모든 사물들을 자신의 전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생각하고 있는지 아니면 어려운 계획을 도와주는 지지물로 생각하고 있는지 전혀 밝히지 않으면서도, 그 모든 대상에 깊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한 예술가의 영상이 떠오른다. 베르메르가 그린 유명한 2점의 풍경화는 둘 다 창문을 통해 보고 그렸다는 사실을 여기에 덧붙여두어야 겠다.
Allegory of Painting(1665-67)회화의 우의
베르메르는 〈회화의 우의〉에서 등없는 의자에 앉아 있는 자신의 뒷모습을 그렸는데 그가 이런 의자에 붙박힌 듯 앉아서 그림을 그린 것이 어떤 신체적 결함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필요한 모든 물건들을 가까이 놓고 그림을 그리고 싶어했기 때문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 의문은 놀랄 만큼 빈틈없고 뛰어난 그의 예술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상대적으로 얼마나 빈약한가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의 예술은 그당시 사람들뿐만 아니라 후세의 화가들에게도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빈틈없이 짜여진 그의 그림의 구조는 다른 화가들이 모방하기에 무척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베르메르의 그림을 위작한 20세기의 주요화가들조차도 이 거장이 원숙기에 그린 작품은 감히 흉내낼 엄두도 못냈고, 그가 명성을 얻기 전인 젊은시절에 그린 작품들만을 위작했다.
베르메르가 살아 있을 당시 그의 작품들은 실험적인 작품으로 간주되어 널리 인정받지 못했던 것 같다. 그가 43세에 세상을 떠나 델프트의 구교회에 묻힌 뒤 그의 아내 카타리나는 파산할 운명이었지만 필사적으로 애를 써서 남편의 그림 가운데 29점을 구해냈다. 베르메르는 당시의 정치적 혼란과 잦은 전쟁 때문에 파산 상태였다.
베르메르의 예술은 그가 사물에 대해 갖고 있는 거의 과학적일 만큼 매우 섬세한 지식을 반영하고 있다. 각 그림은 물체에 대한 현미경적 관찰과 빛으로 실험한 다양한 분석의 총체인 것처럼 보일 뿐 아니라 특히 회화적인 연구의 총체인 것처럼 보인다. 이 연구를 통해 그는 색채를 단순히 형태를 표현하는 수단에서 벗어나게 하고, 인간의 존재와 그 환경 사이의 관계를 암시하는 새로운 시각적 수단을 면밀히 조사하고 있으며 대담한 원근법의 탐구는 오늘날의 사진술에서 광각 렌즈와 망원 렌즈의 사용을 예시하고 있다. 19세기말에 사진술이 발달함에 따라 정제된 지각에 대한 관심이 생겨난 시기와 베르메르가 재발견된 시기가 일치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베르메르가 꾸준히 놀랄 만큼 많은 작품들을 그려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가 그린 것으로 알려진 작품은 매우 적다. 서명이 없으나 그의 작품임이 거의 확실한 〈화장하고 있는 디아나 Diana at Her Toilette〉(1654경)·〈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있는 예수 Christ in the House of Martha and Mary〉(1654경~55)·〈여자 뚜쟁이 Procuress〉(1656)·〈잠자는 소녀 A Girl Asleep〉 등은 베르메르의 가장 초기작에 속한다. 색채 처리, 원근법, 일부 대상의 분석과 같은 요소들은 그 자체로는 아직 완벽하지 않지만 베르메르가 그린 가장 위대한 작품들과 분명 관련되어 있으며 그 걸작들과 나란히 놓고 비교해보면 통일성과 조화가 뚜렷이 드러난다. 이 위대한 화가는 다음 단계에서 주제를 구사해내는 솜씨가 거의 완벽에 이르렀다. 다시 말해서 그는 현실을 점점 더 완전히 묘사하게 된 것이다. 거리도 그림자도 그의 그림의 다른 요소에 대한 지각 작용을 약화시키지는 못했다. 유명한 〈델프트 풍경 View of Delft〉에서는 베르메르는 시계에 시간(오전 7시 10분)을 표시하기까지 했다. 이처럼 완숙한 경지에서는 여러 그림들 사이에 뚜렷한 발달 정도를 구별하기가 어렵다. 그 가운데는 놀랄 만한 힘을 지닌 것도 있고,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도 있다. 이 단계의 그림들은 지금까지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화가의 전혀 다른 일면을 드러내보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신념의 우의 Allegory of the Faith〉는 예기치 않은 상징적 복합 구성을 보여주며, 베르메르의 작품 가운데 가장 뛰어난 〈회화의 우의〉는 오랫동안 피테르 데 호흐의 작품으로 여겨졌다.
(이 자료에서는 시간이 안보인다. 좀 더 큰 그림을 보면 될듯....)
베르메르의 그림에 적힌 제작 연대는 대체로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작품들의 제작 연대를 확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의 걸작들을 놓고 우열을 가리는 것도 불가능하다. 전통적으로 미술사가들은 한 화가가 그린 그림들 가운데 구도가 좀더 복잡한 그림이 보다 후기에 그려졌다는 원칙을 따르고 있다. 이 원칙에 따르자면, 구도가 가장 복잡한 〈신념의 우의〉와 〈회화의 우의〉는 베르메르가 궁극적으로 도달한 경지를 나타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베르메르는 풍경화는 물론 〈어린 소녀의 두상〉이나 〈빨간 모자를 쓴 소녀〉 같은 보다 단순한 작품에서도 똑같이 충실했다. 이따금 〈푸른 옷의 여인〉이라고 불리는 〈편지를 읽고 있는 젊은 여인〉, 〈식모〉는 더 단순하고, 따라서 상징적 요소가 풍부한 작품들보다 더 먼저 그려진 것으로 추론할 수 있지만 단순한 작품들도 복잡한 그림보다 더 대담한 실험을 보여준다. 이런 대담한 실험은 대체로 후기 작품임을 나타내는 증거로 알려져 있다.
베르메르는 전형적인 네덜란드 풍속화 중에서도 그만의 독특한 특징을 보여준다. 당시의 다른 네덜란드 화가들의 작품에서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및 플랑드르의 미술에서 받은 영향을 느낄 수 있지만 베르메르는 이 모든 영향력에 저항했다. 예를 들어 프란스 할스는 이따금 스페인의 벨라스케스와 교류한 듯하고 렘브란트는 이탈리아의 바로크 화가인 구에르치노와 교류한 듯하나, 베르메르는 유독 완전히 개인적인 방향에 몰두했다. 그러나 베르메르는 현실에 대한 '설계도를 그리고' 그것을 철저히 분석하는 방식에서 볼 때 전형적인 네덜란드인이다. 이것은 늪지대와 바다를 정복한 네덜란드 수력 공학자들이나 토성 둘레의 테를 발견한 천문학자 호이겐스의 엄밀한 방식을 연상시킨다.
베르메르의 모든 작품들은 그 특유의 농도와 명쾌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재발견한 미술사가인 테오필 토레(W. 뷔르거의 가명)가 1866년 76점의 그림을 그의 작품으로 인정할 때까지는 모두 다른 화가들의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2년 뒤에 또다른 학자는 76점 가운데 56점만을 베르메르의 작품으로 인정했다. 1907년에는 이 숫자가 다시 34점으로 줄어들었고, 권위있는 학설에 따르면 오늘날 이 숫자는 30~35점에 머물러 있다. 1937년에 베르메르 작품의 제작 연대를 확정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져 권위자들은 서로 치열한 논쟁을 벌이게 되었다. 1945년에 위작자인 한스 반 메헤렌이 나타나, 그때까지 위대한 미술품 감정가들이 베르메르의 초기 작품으로 판정한 그림들이 사실은 자기가 그린 위작이라고 선언하자 문제는 훨씬 더 복잡해졌다. 베르메르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그 위작 소동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다.
P. Descargues 글 | 金錦美 참조집필
신념의 우의 1671 The Allegory of the Faith
◀The Allegory of Faith (detail)
베르메르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화가이다. 남아 있는 그의 작품은 고작 35점에 불과한데, 놀랍게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그중 다섯 작품이나 소장하고 있다.
이 작품이 마음에 드는 것은 너무나 수수께끼 같은 이 화가의 개인적인 삶을 어렴풋하게나마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베르메르는 자신의 아내, 며느리, 열한 명의 자식들과 함께 작은 집에서 살면서 빛과 침묵만을 화폭에 담았다. 여기에서 베르메르가 조금이나마 감지되는 이유는 그의 가족만큼이나 종교도 베르메르에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간의 종교적 분쟁이 한창이던시대에 살았다. 독실한 신교 집안에서 태어난 베르메르는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가톨릭 신자와 결혼해 추방당했다. 그렇다면 내가 짐작컨대, 베르메르에게 신앙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고 그래서 신앙의 우의(寓意)를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은 그는 생소한 분야임에도 거절할 수 없었을 터 이다.
◀ The Allegory of Faith (detail)
객관적으로 보면 이 그림은 위대한 '베르메르다운 것'들로 가득하다. 의자와 축 늘어진 커튼, 성배, 빛나는 크리스탈 공 등에 드리워진 빛이 그렇다. 모든 물체가 제각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중앙에서 과장된 표정을 짓고 있는 여인은 신앙 자체로, 세속적인 유혹들을 밟아 뭉개고 있다. 그녀는 십자가와 성경을 무기로 선악과를 걷어차고 뱀을 짓밟았다. 베르메르는 신앙이란 본질적으로 사적인 것이라 간주했고, 그래서 우리가 그것을 보려면 커튼을 걷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신앙은 지적인 과제를 하나 남긴다. 베르메르는 그 실체를 그리고 싶었지만,그것을 완성할 수는 없었다. 과장되게 감정적인 여성들은 그의 영혼과 자연스럽게 소통하지 못한다. 베르메르는 자신의 상대적인 실패를 인식한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그토록 믿었던 것을 그저 보는 것으로 만족했을까? 그는 예술가들이 자신이 택한 것을 자유롭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의지가 통제할 수 없는 그들의 영혼 깊은 곳의 무언가로부터 최선을 다해 그릴 수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을까? 베르메르의 그리 유명하지 않은 작품도 당당하게 전시하고 있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풍요로움에서 기쁨을 얻는다. 부족함이 엿보이기는 하지만 나는 이 그림을 사랑한다. 위대한 예술가가 약점을 대담하게 드러낸 감동적 작품이다.
영광스러운 전시물
안타깝게도 베르메르의 [신념의 우의]는 그에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한 학자는 그 작품을 '베르메르의 실수작'으로 칭했고, 또 어떤 학자는 '불쾌한 베르메르 대작' 이라고 불렀다. 화가가 죽은 지 몇 년 후에 그 작품을 판 경매인은 그 주제를 더듬더듬 전하면서 , 신통치 않은 해석을 내놓았다. "앉아 있는 여인은 깊은 의미를 지니고‥‥신약 성서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 이러한 망설임은 과거사일 뿐, 지금 이 그림은 훌륭한 미술관에 당당하게 전시되어 있다.
●풍속화가인 베르메르의 작품은 19세기 에 이르러서야 사람들에게 알려졌지만, 지금 그는 렘브란트와 함께 가장 위대한 네덜란드 화가로 손꼽힌다.
●베르메르는 평화로운 가정의 모습을 주로 그리면서, 일상적인 일에 몰두해 있는 인물들을 묘사했다. 그림들의 평온한 분위기과 그 단순한 구도는 극적인 영향을 더해준다.
●베르메르의 작품들은 구성, 조명, 색채, 붓놀림 등의 기법이 아주 뛰어나다. 그의 그림 표면은 '영롱한 진주들' 로 묘사되어 왔다.'
(4) 에드워드 호퍼의 소외, 소통의 단절, 고독에 관한 고발
에드워드 호퍼 작품속의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의 모습 조성규기자2013.12.23 16:11:02
http://ondolnews.com/news/article.html?no=276
Nighthawks1942 밤샘하는 사람들
대도시에서는 밤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바삐 활동하고, 야심한 카페도 불을 밝힌 채 찻잔을 기울이는 남녀를 맞고 있다. 하지만 아무도 서로에게 관심이 없다. 심지어 나란히 앉은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 사이에서도 아무런 정서적 교감이 없다. 모두 자기의 고독만 씹고 있다. 그 핵분열적 고립과 소외의 극한을 보여준다.
에드워드 호퍼가 시도했던 회화적 기법들은 현대인이 느끼는 소외감과 주변상황과의 분리, 타인과의 단절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는 대도시의 한쪽 구석에서 고독하게 살아가는 미국인들의 삶의 체험이 깔려있고 불안한 생활에서 오는 비애를 담고 있다. 그들도 ‘안녕하지못했던’것이다.
▣ 호퍼작품들의 특징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은 고립된 익명의 이방인들이며 일시적인 사람들이다. 이 인물들은 현대의 개인의 고독과 소외를 드러내고 있다.
대표하는 일반적인 단어는 외로움, 소외감이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산업화된 도시로부터, 일상의 타인으로부터, 혹은 그 자신 스스로에게서 분리되어 있고 소외되어 있다. 그들은 자신만의 생각에 몰두하고 있으며 주변으로부터 자신을 떨어뜨려 놓는다.
호퍼의 작품이 그러한 관점에서 당대의 삶에 대한 현실 직시적인 태도에 초점을 맞추어갔다.
역사상 뛰어난 작품은 시대의 산물인 동시에 그 시대를 반영하게 된다. 예술의 역할은 단지 예술을 위한 예술에 머무르거나 극단적인 부정과 허무주의 속에서 그 긍정적 역할마저 망각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호퍼는 달랐다. 당대의 현실 속에서 예술의 실제적인 역할을 두고 치열하게 고민하여 그 시대를 적극적으로 드러내었다. 그는 이 시대의 단절과 소통의 부재를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시대의 반성을 촉구하였다.
▣ 시대배경과 호퍼의 도전
미국은 19세기에 풍부한 자원과 프론티어 정신으로 세계제일의 공업국으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1929년의 경제공황은 경제적 사회적 위기게 직면하게되고, 이 불확실한 현실에서 사람들은 시대에 대한 환멸과 반항, 냉소, 허무의 감정들을 갖게 되었다.
1908년에 여덟 화가들은 감상성이라는 의미를 띤 예쁜 그림들에 대항하여, ‘Ash can school'을 결성하여, 미국적이며 토착적인 정경을 인간의 내면성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Ash Can School, 쓰레기통 화파는 대도시의 초라한 일상을 주제를로 삼아, 쓰레기통을 도시 삶의 추한 리얼리티를 표현하기위한 은유로 사용하였다.
에드워드 호퍼는 그 대표적인 화가이다. 그는 인간소외를 드러내는 방법은 인간의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이라고 믿었다.
농업환경이 주를 이루던 시대에는 인간이 모든 것을 통제하였지만, 산업화 시대에는 더 이상 인간이 모든 것을 통제하지 못하게 되고 오히려 인간이 기계 문명속에서 하나의 부속품과 같이 통제되고 제어 받는 수단이 된다 . 인간소외의 출발이다.
1930년대는 미국이 경제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하던 시기이다. 사회적으로 Taylor의 과학적 관리론의 대두하면서 산업적, 경제적으로 극대화된 능률성을 올리게 되지만 인간의 소외 현상은 심화된다. 또한 심각한 빈부의 격차등이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도시는 더 이상 경쾌한 즐거운 공간이 아니고 어둡고 경직된 모습으로 변모한다.
그는 냉혹하고 경험적인 실상을 달콤하고 현혹적인 이미지로 변화시키는 미국적인 시도를 거부하고, 황량하고 거대한 도시와 그 도시에 묻혀 존재감을 상실해가는 인간을 대비시켜 인물들의 고독감을 증대시킨다. 거대해진 도시에 의해 내몰아진 작고 힘없는 인간의 모습을 포착함으로서 인간 존재에 있어서의 문제를 제시한 것이다.
▣ 소외의 상태와 호퍼 작품과의 상관관계
현대적 개념의 소외는 「조직이나 집단의 구조적 제약으로 자신의 문제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고 느끼는 무력감, 목적과 수단의 괴리에 기인된 심리적 갈등인 아미노, 사회적으로 수용되기를 기대하기 어려움에서 오는 고립감, 실체적 합리성을 외면하고 목적합리성을 숭상하는 무의미성,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느끼는 자아이탈」등으로 설명되고 있다.
이러한 개별적인 소외의 개념에 대응하는 호퍼의 작품표현을 연결시켜, 소외의 이해와 그 깊이를 탐구해본다. 이러한 진지한 탐구를 통해서만 대안의 모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 무력감 powerlessness:
그 자신의 행위가 행위에 대한 보상이 생기도록 자신이 통제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다. 그 통제력은 외부적 힘, 강력한 타인, 행운, 혹은 운명에 맡겨져 있다. 자신의 힘은 통제력에서 벗어나 있다.
<일요일>
이 작품 속 인물은 현대도시의 부수적인 존재로서 재현된다. 무기력하게 팔을 끼고 앉은 그는 잘 짜여진 구도 내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배경건물에서 내려오는 수직선은 남자의 조끼를 따라서 연결된다. 화면의 인물이 배경건물의 부속품과 같음을 강조하고 있다.
화면전체를 지배하는 색조는 밝다. 그러나 그의 색조에는 다른 작가들에게서 보여지는 온기가 없다.
2차원의 한부분이 되어, 그는 어느 방향으로도 나아갈 수 없다. 인간은 더 이상 물질문명 시대에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불필요한 존재이고 나아가 제거되어야 할 무력한 존재일 뿐이다.
◆ 무의미성 meaninglessness :
사회가 목적의 효율적인 실현만을 추구하고, 그 가치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외면하는 시대사조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에 대해 명석하게 대처할 수 있는 행위능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래의 진행을 예측 할 수 없고 만족할만한 결과를 예측 할 수 없다.

<자율식당>
당시 현대 기계문명의 진보와 발전의 상징인 패스트푸드를 파는 인기 있고 분주한 카페테리아를 무시무시 할 정도로 정적만이 있는 공간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그 속에 단 한 사람만이 등장하는 텅 빈 공간으로 변화시킨다.
유리창은 외부의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고, 오히려 식당 안에 켜진 전등의 행렬만을 되비치고 있다. 이를 통해 탈 인간화로 가져온 자동화의 허상을 보여준다. 이 여성은 자신이 속한 사회적 위치에서 언제 소외될지 모르는 상황에 불안해 하고 있음을 그녀의 의기소침하고 피곤해하는 얼굴에서 찾을 수 있다.
◆ 무규범성 normalessness
Emile Durkheim의 아노미의 서술이다. 전통적 윤리규범은 빠른 속도로 붕괴되는데, 개인의 행동을 규제하는 사회적 규범이 붕괴되었거나, 행위의 법칙으로서 더 이상 기능을 하지 못한다.
Merton은 현대인의 심리적 갈등은 이질적 윤리규범이 섞여있기 때문이라기보다, 문화적 목표와 제도화된 수단의 괴리에 기인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어릴때부터 아이들은 경제적 성과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는 문화적 가치를 내면화하면서 성장한다. 그러나 경제적 성과에 이르는 제도적 수단, 즉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기회는 평등하지 않다. 이와 같이 그는 문화적으로 강조되는 목표와 제도화된 수단의 괴리를 아노미적 상황이라고 규정하고, 목표와 수단의 괴리에 기인된 심리적 갈등인 아노미가 현대인이 느끼는 지배적 소외형태라는 것이다.
<맨해탄 브리지 루프>
거대한 도시의 구조물과는 대조적으로 인물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아진다. 화면 가장자리의 그림자에 묻혀서 재현된 인물은 기술문명과 진보의 상징으로 제시된 육중한 다리와 비교되면서 인간의 존재감에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큰 다리에 묻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인물은 도시에서 소외되고 혼자 떨어져 외로운 느낌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는 그의 목표과 수단의 괴리 앞에 더욱 작아지고 초라해진다.
◆가치상의 고립감 isolation
이는 자기가 소속된 집단 구성원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다른 가치를 추구하기위해 스스로 자초한 고립이다. 끝없는 부의 축적이자 경제적 성공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문화적 가치를 거부하는 경우, 즉 사회에서 친숙하게 만연되어있는 가치에 대한 개인의 거부를 말한다. 지식인이나 작가 예술가들의 통용되는 가치에 대한 거부를 말한다.

<주유소> <뉴욕영화관>
이 작품의 주유소는 우리에게 친숙한 주유소와의 경험과는 상이한 모습이다. 이 작품에는 기존의 주유소가 지닌 분주함이 제거된 다소 섬뜩하리 만치 한적함을 드러내고 있다.
이 주요소는 황혼의 시골길에 혼자일 때 느끼는 불안감을 환기시킨다. 이 그림에서 인물은 명백히 고립되어 있다. 밤이 찾아오고 모든 번잡함과 소음은 일시에 차단되고 주유소의 주인은 홀로 남게 된다.
그의 행동이 무엇인지 파악하기가 어렵다. 기름을 넣는다 해도 주변에 자동차가 들어 올만한 공간이 없다. 이를 통해 주요소가 가져왔던 씩씩한 인물도, 차도 없으며 오로지 황량함 뿐이다.

영화관 역시 친숙한 도시의 풍물이다. 호퍼는 이러한 친숙한 도시의 풍물들에 항상 잠재하고 있는 소원함을 날카롭게 찾아내어 그러한 풍경의 친숙함을 비껴서서 적막과 공허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영화에 몰두하고 있는 관객들과 외따로이 떨어져 자신만의 생각에 몰두하고 있는 안내윈의 모습은 친숙한 영화관이란 공간속에서 생소한 이미지를 지닌 존재이다.
◆자기 이탈 self estrangement
프롬처럼 스스로를 이방인으로서 경험하는 유형. 현대인은 그 자체로서 존엄한 목적적 존재이어야 하는 본연의 모습에서 이탈하여 도구적 존재로 전락한다. 서로를 서로의 도구로서 이용하려는 숨은 기도이다,

<뉴욕의 사무실>
사무실 한 벽면이 유리로 되어있는 공간은 그 투시성으로 인하여 개인의 사적공간을 제거시키고, 내부, 외부를 가시적 공간으로 만든다. 사무실의 설계자들은 벽을 제거함으로써 사무능률을 증가시킨다고 주장한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하루종이 서로 볼 수 있도록 노출되면 잡담이 줄어들게 되고 자기일에 더울 열중하게 된다.
누구든지 서로를 감시하게 되는 경우에는 사교성이 감소하고, 침묵만이 자신을 보호하는 유일한 수단이 된다. 감시와 통제가 만연화 된 사무실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제 개인에 대한 신념은 사라지고 감시와 통제만이 남은 왜곡된 이미지만이 남는다.
◆사회적고립 social isolation
지배집단으로부터의 분리, 집단의 기준으로부터의 고립이라는 감정이다.
고독감, 거부, 거절의 감정이다.

<호텔창문>
호퍼가 인간의 소외를 표현하는 방법에 대한 탐구의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다. 여성이 창문 밖 어느 지점을 응시하는지 또는 개인적 상념에 잠겨 있는 건지 확실하지 않으나, 창문 너머 바깥 풍경은 죽은 공간내지 연극무대와도 같은 인상이다. 거리에는 조명이 거의 없고 길 건너에 있을 법한 집들도 보이지 않는다. 여성의 자세가 굳어있고 흘러내린 망토는 어딘가 어색한 모습으로 바람에 의해 부풀어 있는 듯하며 이는 그녀의 내적긴장감 과 외로움을 표출하고 있다.

<카페안의 햇빛>
대낮의 환한 빛 가운데 실내에서 바깥을 바라보는 장면이 연출되어 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여성은 무엇인가에 몰두하고 있과 창문너머로 바깥을 바라보고 있는 굳은 표정의 남성은 질서정연한 구도속에서 대립되고 있어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좌석열차>
인간의 고독한 심리에 대한 호퍼의 탐구는 좌석열차에서도 엿보인다. 높은 천장, 닫힌 창문, 창문을 통해 쏟아지는 눈부신 햇빛이 어우러진 객실 실내는 지나치게 커 보인다. 의자들 또한 사람들의 체격에 비해 버겁다.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지만, 그 응시는 결코 만남으로 이어질 수없다. 그들은 모두 자기만의 의자에 붙박힌 영원한 타인들인 것이다.
결국 ‘조직이나 집단의 구조적 제약으로 자신의 문제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고 느끼는 무력감, 목적과 수단의 괴리에 기인된 심리적 갈등인 아미노, 사회적으로 수용되기를 기대하기 어렵하는 데서 오는 고립감, 실체적 합리성을 외면하고 목적합리성을 숭상하는 무의미성,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느끼는 자아이탈, 사회적 고립감등’의 소외감과 불통을 호퍼는 극적으로 묘사하였고, 관객들로 하여금 시대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품도록 한다.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13점을 소재로 한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이 26일 개봉한다.
http://m.blog.daum.net/_blog/_m/articleView.do?blogid=0576A&articleno=991
화가이야기]우리가 외로운 이유는 - 에드워드 호퍼, ‘카페테리아의 햇빛’2011-10-11
적막한 한 낮의 공간 속
빛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뉘앙스의 외로움
고독을 가장 잘 나타내는 색깔이 무엇일까요?
짙은 초록색이 언뜻 떠오르는군요. 제게 초록이 고독의 색이라는 인상을 새겨놓은 화가는 미국의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입니다.
며칠 동안 보고서 하나를 마감일에 맞춰 쓰느라 새벽까지 혼자 버티다보니 호퍼의 그림 ‘나이트호크 (밤을 지새우는 자들)’ 속 인물이 된 기분이 들었어요.
착 가라앉은 녹색 분위기에 띄엄띄엄 앉아있는 사람들 말이에요.
호퍼는 뉴욕에서 태어났고,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 위해 뉴욕예술학교에 다녔어요.
스물네 살 때 파리로 유학을 떠나봤지만, 성과 없이 오랜 유럽여행만 하는 셈이 되어버렸지요.
미국에 돌아와서는 예전에 알고 지내던 여자와 결혼을 했고, 둘은 차를 타고 미국 전역을 여행하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소한 일로 티격태격 다투었어요.
산만한 결혼생활과는 달리, 호퍼의 그림은 차분하고 시적이에요.
주로 도시의 일상적인 모습을 그렸는데,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단 한 종류만 있는 게 아니구나 하고 알게 되어요.
바람마저 멈춘 것 같은 고요하고 텅 빈 거리의 황량함도 보이고, 여행지의 낯선 호텔 룸에서 느끼는 여행객의 기분 좋은 고독감도 있지요.
세상으로부터 소외되어 홀로 사무치게 경험하는 지독한 쓸쓸함도 있고, 더 이상 새로울 것 없는 자극적인 대도시 속에서 권태로움으로 변해버린 외로움도 나옵니다.
다양한 뉘앙스의 외로움들이 호퍼의 그림 속에서 시적으로 승화되어 있어요.
외로움의 뉘앙스를 조절하는 것은 빛이지요. 호퍼는 새벽부터 황혼에 이르기까지 빛의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도시인들의 기분을 예리하게 표현해냅니다.
새벽에 동틀 무렵에는 막연한 두려움이 엿보여요. 무언가 격렬하게 시작해야 하는 순간에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실베스타 스탤론이 주연한 제법 오래된 영화 ‘록키’에서 주인공 록키가 조깅을 하며 하루를 시작할 때 그가 뚫고 나온 파랗고 싸늘한 새벽 느낌을 기억하시는지요?
그에 비하면 아침의 빛은 포근하지요. 벌거벗은 몸으로 창을 열고 햇빛 샤워를 하는 여인도 호퍼의 어느 그림 속에 나옵니다.
‘카페테리아의 햇빛’은 한낮의 빛을 배경으로 그린 거예요. 빛이 실내 공간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가운데 두 사람이 각자의 테이블에 앉아 있습니다.
누구를 기다리는 듯한 여자는 손으로 무언가를 만지작거리면서 자기 생각에 빠져 있는데, 요즘이라면 그녀의 손에 휴대폰이 들려져 있겠지요.
그림의 오른쪽에는 남자가 담배를 손에 들고 멍한 시선으로 창밖을 내다보고 있어요.
여자와 남자는 카페테리아라는 공간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서로 격리되어 있지요.
호퍼는 교묘하게 햇빛을 이용하여 빛이 비치는 여자의 영역과 빛이 없는 남자의 영역으로 공간을 구획해 놓았어요.
이렇듯 서로 못 본 체하고 서로 못 들은 체해야 자기만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공공장소에서, 그리고 타인의 구획에는 침범하지 않는 것이 미덕인 도시 속에서, 사람과 사람은 어떻게 연결되어 하나의 세상을 이루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작가 알베르 카뮈는 “내가 하는 모든 것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어 있고 내가 느끼는 모든 마음으로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 적 있습니다.
그의 소설 ‘페스트’는 인간관계가 단절된 도시에서 벌어진 이야기인데요.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그 도시사람들은 오직 자기만을 생각하기에도 삶이 바빴어요.
그런 곳에 어느 날 페스트가 덮치게 되고, 아무 준비도 안된 시민들은 도시 밖으로 나갈 수 없이 갇혀버리고 말았습니다.
서로 낯설던 개인들은 드디어 페스트가 공동의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힘을 합하여 마침내 페스트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게 되지요.
결국 공동의 관심과 공동체에 대한 진한 소속감이야말로 외로움을 잊게 해 줄 최고의 해결책이 아닐까요. 당신은 혹시 자신만의 일로 아등바등 살면서, 입으로는 외롭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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