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영잔에 앉아서 외로운 전시물을 바라 보다 문득 한나아랜트 등 영화를 궁시렁 거리듯 더듬다.

무거운 빈가방 2014. 12. 1. 01:43

 

호퍼의 그림에서 했빛은 참 따스하다 그리고 그림안에 어떤 형태든 빛이 가득하다.

그런데 그 속에 사람은 참 외롭다.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지만 멀리서 왔거나 어디론가 가야할 사람. 아니면 여기에 있지만 그냥 무기력한 사람.풍광만이 있는 경우는 풍광 자체가 참 쓸쓸하다.  인상파 화풍의 그의 인상은 다른 면을 가졌다.


왓 이프에서 두 남녀는 찌질하게 혼자 영화를 본다. 내 모습이다.

영화의 전당에 전시 해둔 전시물과 그 공간들. 그리고 창밖으로 보이는 방송국과 자리가  좁아 터져 무엇 때문에 만든지 의문만 드는  소향롯데카드홀도 (대학은 이미 대기업이 점령했다. 학교에 재벌들의 이름이 버젓이 들어가 있고 실제로도 당근 주인 행세를 한다. 이 나라의 슬픈 초상이다. 교육을 재벌이 장악한...)


모두 뭔가 채우기 어려운 공간들로 그저 외로운 듯 느껴진다
내 일상이 늘 그러니 더 그럴 수도 있겠다.


잡기를 멀리해야겟다하는 순간 잃어버린 것은 유희만이 아니라  좀은 즐겁고 시간을 메우고 줄기는 일상이 어둡고 쓸쓸한 몸과 마음의 빈공간으로 바뀌어 버렸다. 세상과 담쌓은 듯 되어 버렸다.


영화 속의 사람들은 일정 장소에 모인다. 파티를 하기도 하고 소리도 지르기도 하고 액션과 죽음이 있기도 하다.
내 생활은 그저 그렇게 흘러가고  그냥 덩거러니 던져진 깨어진 밥그릇 같다. 시골 구석길에 있는.
누구도 쳐다보지않고 그럴 필요도 없는. 차가 지나가면 아마 소리를 지를거다. 깨어지고 사라지는 아픔의 고통을.


한나 아랜트는 국가 민족이라는 개념이 별로라 했다. 뭔가 덩어리로 엮기우면 그 덩어리 속에 있는 잘못은 감추고 자신들의 이익이나 고고함. 잘난 면만 돋보이게 하면서 솔직 보다는 거짓과 감추는 모습들에 대한 철학자의 고뇌일 것이다라 생각해 본다
그녀는 친구가 중요하다고 했다.

친구와 함께 살면서 서로 뭔가가 되어주기도 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용기가 되거나 외로움에서 벗어나기도 하는 방편일수도 있으리라.

특히 수용소를 탈출한, 늘 죽음과 직면 했던 사람들에겐 친구가 더 소중했으리라.
끔찍 했던 나치에 대한 많은 것에서 벗어나게 해 준 미국이란 나라. 뉴욕이란 도시 속에 살지만 여전히 독어를 모국어로 소통하고 그녀의 사고와 철학적 힘을 길러준 것은 철학자 하이데거 그리고 하이델베르그 대학에서의 야스퍼스 이기에 그녀의 마음은 하이델베르그 대학 정원을 걷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악의 평범성'(예루살렘에서의 하이히만')이란 글로 인해 주변이 비난으로 돌아섰을 때도 그녀는 당당히 맞선다.
하이히만은 범죄 재판에서 너무도 당당하고 앵무새 처럼 외는 말. '명령에 의해서 했고 군인은 명에 따라야 한다. 신이 나에게 벌 줄 순 있어도 범정에서는 무죄다'...


한나는 유태인 지도자들의 나치 협력도 나치가 600만을 죽이는데 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 글로(긴 글 중 약 12페이지 분이) 그녀는 범죄자를 동정하고 피해자인 유태인을 범죄자와 동격으로 놓았다고 비판당하며 친구들 마저 모두 등을 돌린다. 그녀와 오래 지낸 남편과도 거의 같은 친구도 공격하고 등돌린다.

'민족을 사랑하지 않고 배반했다' 하면서


유태인들은 편지나 모든 수단을 다해 그녈 비판한다. 전화, 편지 등의 협박은 물론 대학에서는 교수직을 그만두라고 한다. 물론 그녀는  거절한다. 엄청난 '필난'이다

그녀는 글도 읽어보지 않고 비난한다고  야기한다. 지구상 이상한 나라의 최고찌라시 신문이 '타이밍벨'을 보지도 않고 비난한 것과 유사할 것이다.

 


참으로 그런 것 같다. 범죄자(우리가 생각하는 범죄 보다 좀 더 크고 깊은 '악')는 너무고 평범하지 않는가!

이 땅의 대통령이나 된 사람의 모습을 볼 때 뭔가 뛰어난 장점들이 있음은 분명 하지만 한면으는 너무도 평범허고 당당하게 죄악을 저질곤 모두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핬다고 하지 않는가
누군 총으로 죽이고 누군 후손들에게 잠시 빌린(영화 '제인 구달'에서 제인의 표현) 땅과 물을 마구 파헤쳐 자신의 이득만 건진채 망가뜨리고 누군 물에 빠딘 아이들을 기다리고 기다리고 그러다 지금도 영혼은 기다리고 있게 한다.
엄청난 긴세월 경제발전이란 명목으로 총통에 가까운 지위를 노리고 영원한 권력자가 되려고 죽이고 고문하고 빼앗고 한 역사.
 늘 여자와 젊음을 탐하고 여자와 놀다 부하에게 총맞고 죽는 이 코미디...(역사적 국가적으로 부끄러운 일인데도 이자를 미화하려 날뛰는 놈들이 많다.  미화되어야만 자신들이 저진 일들이 정당화되고 또 그것으로 더욱 더 착취하며 살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참으로 그냥 보면 평범하다. 가정의 아버지이고 자식이다.

그 새끼들에겐 엄청난 유산을 물려주었지만 자신들은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라고 표현할 것이다.

전두환도 TV에서 어릴 때 너무도 가난하게 살았다고 발광을 하지 않았던가.

어릴 때 가난하면 사람을 그리 죽일 수 있는건지....

국가최고 비밀기관의 저진 범죄도 참으로 끔찍하다.

잠시 10년 정도 국민에 대한 감시를 덜하나 싶었더니 메스미디어의 조작과 이상한 댓글작업에 열중하는 모습들

그들은 국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감시를 하면서 최고권력자를 자신의 입맛 아니 자신을 돌봐주면서 헤택을 줄  가장 적합한 사람으로 만드는데 혈안이 되었든 것이 아닌지?

이들을 전범 재판 처럼 죄악에 대한 제대로의 재판을 한다면

하이히만과 똑같이 답하리라. 단지 명령에 의해서 라고. 하기는 했지만 범죄는 아니라고.

너무도 많은 죄악이 벌어지는 지구상의 어떤 나라에서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겠지만 충실한 하수인이 늘려있기에 그들도 마찬가지 대답을 할 듯 하다.

악마이지만 지극히 평범해 보이기도 하는 그들이 대답들이....

그래서 '악의 평범성' 이란 말은 참으로 진리로 들리기도 한다. '극악도 평범하다'로 통하겠지.


하층민의 것을 눈하나 깜짝 안하고 뺏고 짓밟는 특히 재벌이라 불리는 기업가는 각종 혜택으로 늘 번창하지만 그 혜택이 국민의 피땀으로 이뤄진 세금임에도 외려 자신들이 국민들을 먹여살린다 큰소리치고 범죄를 당당히 여기는 모습
이들은 참으로 평범하고 평범하지 않는가. 가슴은 악으로 덮여 있어도..

한나의 말처럼
인간으로  사유하길 거부한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들이지만
그런 사람들의 범죄는 더욱 극악무도하게 나타날 수 있다. 그런데  평범한 것도 맞을 것이다.
그들 자신이 평범하다 생각하는 것이겠제. 자신들의 죄악도 죄가 아니고 그저 평범한 . 그렇지만 특수한 자신들만을 위한 일이겠제...

당시의 인기맨 '히틀러'를 추종한 젊은 세력들은 청년당을 만드는데 지구상의 어느 나라의 어떤 단체나 조직하고 매우 흡사한 것 같지 않은가.

남의 아픔엔 아랑곳 없고 조직적으로 치욕스러움을 안기고 태러도 자행한다.

걸그룹이라 불리는 여자 아이들이 나치 복장을 하고 노래를 불러 까십에 논란거리를 만든다.

격투기 선수가 군국주의 일본 깃발을 사용하지 말라고 선수나 단체에게 편지를 보내어 하소연한 진실어린 그의 글은 모두 씹어 먹고선

 

선조들에게 극악무도한 죄를 저진 왜놈집단과 동격인 나치의 복장을 입는다는 것은 민족과 나라가 당한 치욕이란 저멀리 지난 똥통과 같고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의 인기몰이를 하겠다는 엄청난 매국,

우리 현대사가 매국노들의 정권으로 유지되어온 현실 때문에 더욱 더 이런 아이들이 설쳐대겟지만 ..

 

유태인 지도자들이 저진 것에 대한 반성은 없고 오로지 자신들은 피해자라고 하면서 이웃 나라에 폭탄 퍼붓기를 일상으로 하는 이스라엘의 유태인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영화 한나 아랜트에서 보면 한나가 이스라엘로 가서 길을 걷는데 기본으로 나오는 장면이 여군, 랍비들이다.

이건 전쟁과 종교만이 판을 치는 현재 이스라엘을 묘사하려고 한 것은 아닐까?

 

23세에 아프리카로 건너가 침팬지와 생활한  제인 구달의 용기와 실천력, 그 이후 더 이상 지구상에 다른 종들이 죽거나 사라지는 것을 막겠다며 글을 적고 전세계에 강연을 다니는 그녀의 모습

금발이 흰머리로 변하고 뒤로 단아하게 묶은 그녀의 표정과 말들은 하나하나 힘이 있고 진실하다.

제법 오래되었는데 부산국제 영화제에서 한국계미국인인 여감독이 쿠바에 있는 형제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본 뒤 GV에서 본 그 여감독의 모습과도 참 닮았다.

 

영화속에서도 느껴지지만 그녀의 강연은 참 요술같다. 사람의 가슴을 쥐락펴락하는 진정한 마음의 요술...

인류를 위한 실천가 제인 구달과 반대의 지점에 있는 것이 '언드 더 스킨'의 로라(스칼렛 요한슨)이다.

 

로라는 마치 '하이히만' 처럼 어떤 명령자에 의해 사람들을 납치하여 죽인다. 여성으로 변한 에얼리언이기에 남자들만 납치한다. 물론 영화에서는 명령 때문인지 스스로 하는 것인지 정확히 나오지는 않는다.

그녀는 아무 감정 없이 남자를셔서 자신의 방으로 유인해 죽음으로 분해해 버린다. 

아마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지구인 중 남자의 뭔가가 필요햇을 것이다.

영화에서의 로라는 아무 표정이 없다. 꼬시기 위해 잠시 웃는 것 말고는 말도 거의 없고 대부분 무표정이다.

그녀의 감미로운 말만 들리던 '그녀'와는 완존 딴판이다.('루시'를 아직 못봐 또 다른 그녀를 못본 듯 매우 아쉽다. 올해의 아이콘 스칼렛 요한슨인데..)

 

하이히만이나 지구상 이상한 나라의 백색테러범들 같은 단체들의 사람들은 '로라'와 조금도 다름없다.

'로라'는 잠시 자신이 지구인여성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나오는데 이런 인간들은 이럴 일도 없을 것 같다. 있으면 참으로 다행한 일이지만,

외려 남의 죽음이나 아픔으로 인한 고통스런 비명이 자신들의 지위나 당당한 자신감을 대변한다고 자부심을 가질 가능성이 훨씬 더 클 것이다. 악은 이렇게 커나가고 자랄 것이다. 스스로 자부하고 위로하고 합리화 하면서

 

호프만의 유작이 되어 버린 '모스트 원티드 맨'은 역시 좋은 배우가 어떠한 것인지 보여준다.

스파이 세계에서의 배반이란 기본적 상식으로 알고는 있지만 그가 모든 힘을 다해 만들어놓은 것을 눈하나 깜작하지 않고 뺏어 가는 거대한 조직의 힘은 끝을 허무하게도 하지만 힘에 대해 무서움을 더욱 느끼게 한다.

' 힘 = 억압 = 탄압' 이란 단어로 바꾸어 보면서 우위에선 국가라는 이름의 잘못된 공권력은 그 나라 국민들을 죽음으로 몰고가는데 가장 큰 일익을 담당한다

(영화의 진행은 매우 느리다. 감청을 하면서 누군가가 싸인만 한다면 자신들의 목적에 한발 다가가기에 그것을 인내하고 기다리는 시간.. 그 느낌을 감독은 그대로 느끼게 하려는 듯 숨이 막히다. 느림의 미학.

이 영화는 액션물이 아니기에 더욱 더 긴장된다. 그리고 폭발하는 한방.)

 

'거인'에서 자기의 생존을 위해 거짓으로 일관하는 영재(최우식). 그의 뻔뻔함과 애절함은 차라리 귀엽지 않는가!

허구한날 신을 훔쳐도 들키지 않는 빤한 구상도 사회의 대가리들의 악행은 빤한데도 국민들이 늘 속아넘어 가주는 것과 참으로 닮아있다.

 

밤도 깊고 손도 아프니 그만해야 겠다.

밤엔 '꾸뻬씨의 행복 여행' 처럼 행복한 꿈이라도 함 꿔봐야 겠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는 우리 속담이 떠오르는 이 영화는

밴 스틸러의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와 매우 비슷한 영화이다.

그런데 이 분의 상상들 중에서 나는 여행 중 중국에서 '잉링'을 만난  것 같은 꿈을 꾸고 싶다. 로맨틱한 것 만한 꿈이 어디 있을까!

지구에 평화가 오길 바라는 거나 로맨틱한 하루밤을 보내고 싶다는 거나 다 같은 불가능에 대한 것 아닐까?

 

5차원을 책장속에 구겨 놓은 솜씨 좋은 놀란씨 만큼은 아니더라도

이번 겨울 어디론가 멀리 우주선 탄듯 그냥 조용히 다녀오고도 싶다.

안되면 끝가지 반전에 반전을 보여주는 두기봉의 주인공 처럼 총질이라도 실컷 하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