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제시장 - 민중의 고통을 빙자한 용비어천가

무거운 빈가방 2014. 12. 22. 00:11

 

 

 

국제시장


 한국발전의 향수를 엄청주는 영화라 거의 보수골통을 위한 것이라 이름하고 싶다.

 

눈물을 훔치게 하는 것은 흘러온 가슴 아픈 사연들 때문이지만

 

전쟁을 겪은 세대들의 고통은 이 뿐만이 아니다.

 

고통을 미화하고 시대의 인물들을 미화하고 독재자들의 엄청난 횡포와 정책들을 미화하고

결국엔 지금의 독재 시대를 미화함으로 간다.


정주영 앙드레김 이만기 남진을 까메오식으로 역은것은 감독의  솜씨라 사람들에게 재미를 선사한다 하지만

 

 마치 흘러온 시대들이 정당한 것들로 이뤄진 것 처럼 엮여있다. 월남전 조차도 .

 

시대의 고통엔 너무도 많은 것들이 있는데 모든 것들이 다 사라졌다

피난민 장남의 노릇을 위한 몸부림 속에.

 

민주를 위한 노력과 고통 그리고 억압과 탄압 지금은 더욱 더 기승을 부히는 부정부패들이

 

자극하는   눈물 속에 다 녹아버린다.

 

되돌아가 버린 시대적 후퇴를 더욱 더 고정화 시킬 만한 강펀치가 이 영화인듯


그 시대를 산 사람에 대해 관객들은 눈물을 훔치지만 

 

자식세대가 겪을 억압이 생각보다 더 길게 가갰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 아파 더욱 더  눈물이 난다.


가슴 시리다. 거대자본을 등에 엎은  스타감독의 용비어천가가

 

 

아는 이에게 간단 감상을 텔레로 보냈더니 답변이 왔다

 

 

- 저도보고나서 '태극기휘날리며'같은 박근혜에게 바치는 영화라생각되더이다. 

개인들의삶을 시대와 버무리면서오로지 개인 탓으로 개인이가진   시간흐름으로만 성의없이만들고

사람만 냅다 많이동원한 대작흉내낸영화 -

 

 

영화 속에 몇몇 현대사의 실존 인물 몇몇이 나온다.

정주영, 앙드레김, 남진, 이만기...

 

사람이나 정책이 가진 장점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의 횡포로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거나 고통을 받고 그 덕을 일부만 누렸다는 그건 부도덕하고 정의롭지 못한 것이며 고쳐야 할 것이다.

 

정주영은 건설 공화국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를 찬미하면 결국 전설처럼 맹바기가 나올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건설이란 특수 이익을 위해 강행하는 돈놀이, 비자금을 위해 행하는 공사, 전시효과, 국민을 세금 폭탄의 현실로 만든 정책과 연결된다.

 

흔히 공돌이 공순이라 표현하던 이 땅의 노동의 수많은 이들을 극장에서 펼치는 '쇼'로 대변되는 프로그램으로 약간의 안정을 꾀했다. 값싼 노동력과 처우의 불만을 이를 통해 잠재우는 문화정책이다. 가수 '남진'이 원하지 않았지만 그는 이 한복판에 있었다.

 

때로는 한국을 스포츠 공화국이라 한다. 김기수 부터 출발하여 독재를 감추거나 미화하기 위해 스포츠를 이용했다.  흔히 3S정책이란 독재의 대표적 정책 아닌가. 프로야구의 탄생 또한 그렇다. 무리하게 전두환 때 밀어붙인 것은 미친듯한 국민 암살을 무마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우리나라 스포츠는 엘리트 스포츠다. 오로지 운동기계를 만들어 그 기계들의 움직임에 백성들이 환호하고 고통을 잊게 하는 대표적 3S 정책의 산물이다. 그러기에 참여하는 운동이 아니라 구경하는 운동이 되어 버리고 운동하는 사람은 수업에도 잘참여않고 오직 그것만을 목적으로 달리게하는 인간병기가 된다. 잘난 사람은 살아 남지만 떨어진 사람은 공부나 교양도 제대로 안되어 어이 살아갈까?

올림픽에 메달이 일본을 앞서가는 이유는 이런 병기에 대한 정책적 엄청난 지원이 있기 때문이다.  메달 또는 승리가 한국의 국익을 높이고 자랑스런 한국을 만든다는 논리로 군대 등 수많은 헤택을 준다. 그들은 돈도 명예도 오직 국민의 의무라 하는 그 혹독한 군대도 안갈 수 있는 보장을 받는다. 능력 없는 것들은 나라를 위해 한 일이 없기에 군대를 가야한다는 식이다.

이런 정책의 한가운데에  이만기라는 스타가 있었다.

패션계에 대한 해석은 내가 잘모르겠다.

 


이 스타들은 영화의 내용과 별 관게가 없어 보여도 모두 국가라는 이름의 독재 정책과 관련이 있다. 그들이 원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한국의 아버지나 어머니들은 식민지의 고통과 전쟁의 고통 그리고 독재의 고통을 송두리째 안고 살아온 풍파속의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이 속에 여성들의 희생은 더욱 더 그럴 것이다.

그분들의 삶 자체가 눈물이며 고통이고 희생이다.

그분들의 고통을 이용해 잘못된 것을 슬쩍 넘겨보내고 미화시켜 버린다면

서정주가 전두환의 쿠데타 이후 조선일보에 '나는 그를 믿는다'는 용비어천가를 새해 첫면에 실은 것과 뭐가 다를까?

늙어 죽을 때가 다되어도 끝까지 정치적이었던 그 시인이 '시란 순수'해야 한다는 웃기는 말을 한 것은 자기의 친일이나 친독재와 시는 아무 관련없다는 강변이었겠지만...

 

국제시장은 울다가 돌아서면 너무도 불편하고 내자식이 살아갈 시대가  걱정이 되는 영화로 느껴 지는 것은 이런 이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