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슬>: 어멍의 피눈물이 맺혀 있는 것이여
다시 본 <지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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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슬>: 어멍의 피눈물이 맺혀 있는 것이여
제주도 <4.3사건>, <거창양민학살사건> 등 민간인 학살에 대한 것은 우리 역사의 한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영화화 된 것이 별로 없다. 간혹 다큐멘터리(최근에는 <레드 툼>(2015, 구자환감독, 2013년 제작)로 한두편씩 나올 뿐이다. 물론 역사적 사건이라 하여 영화가 만들어져야 하는 법은 없다. 하지만 해방이후 전쟁 전후에서 지금까지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으면서 나치의 유태인 학살처럼 소재꺼리가 풍부한데도 다루기 힘든 것은 이상한 점이다. 여기에는 정치적 요소나 분단이라는 비극적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오멸 감독의 <지슬>(부제: 끝나지 않은 세월2, 2012)은 이런 것들에 대한 진실을 제주도 한마을에서 일어난 며칠의 이야기로 정리하여 보여주려 한다. 형식은 죽은 이들에 대해 영혼을 달래듯 제사의 순서를 취한다. 영화가 시작되면 부엌에서 나는 심한 연기와 마루에 어질러져 있는 제기, 제물처럼 보이기도 하는 시신, 좌우의 두남자와 갈던 칼로 음복하듯 깍아 먹는 과일을 통해 ‘신위, 신묘, 음복’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뒤 하나하나 소제목을 붙여가며 이끌어간다. 그렇다하여 여기에 맞추어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니다. 감독은 단지 이 형식을 통해 제주도에서의 ‘사건’들이 공산주의자의 폭동이 아니라 그저 일반인들의 억울한 죽음임을 보여주며 위로하고 싶어서 일 것이다. 그래서 이 ‘사건’이 일어난 복잡한 배경은 설명하지 않고 바로 마을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영화는 두부류를 보여준다. 군인들과 민간인들이다.
군인들은 거의 비어있는 마을을 점령해 있다. 한 병사는 눈 속에서 벌거벗은 채로 벌을 받고 있는데 한명도 죽이지 못해서라 한다. 대장으로 보이는 상사는 언젠가는 죽이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조직에 속한 사람이 집단이 행하는 악을 같이 행할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고 이들이 사람을 죽여야만 하는 것을 알려주는 장면이다. 이 군인들은 제주도민이 아니라 인천이나, 이북 등지에서 진압을 위해 제주도로 온 다른 지역 사람들이다. 이들은 비록 지역실정에는 어둡지만 연고가 없기에 명령에 의해 쉽게 사람을 죽일 수도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특히 ‘북에서 오마니를 빨갱이들에게 잃었다’는 고중사는 복수를 위한 듯 칼을 날카롭게 갈고 사람을 찌른다. 자기 엄마와 비슷한 나이의 무동이 엄마도 찔러 죽인다. 그에게는 제주도민은 다 빨갱이이고 복수의 대상이다. 이에 비해 박일병의 모습은 제주도 진압의 명령을 거부하고 저항을 한 <여순사건>(1948.10.19)의 병사들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런데 군인이 죽이려 하는 그 대상자들은 누구인가? 이들은 그냥 농부로 보이고 도망가서 숨어 있으나 내일 모레면 집으로 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아랫마을에 사람들이 군인들에게 죽었다는 이야기들을 하지만 크게 긴장 하진 않는 듯하다. 그들은 군인을 피해 구덩이에 숨었다가 동굴로 이동하지만 동네 마실 나온 듯 온갖 사소한 걱정과 티객태격 싸움으로 보낸다. 돼지 먹이, 접붙일 이야기, 장가에 대한 이야기 등이다. 별로 긴장하지 않는 이런 모습은 이들이 그저 농부일 뿐이라는 강조이겠지만 관객에게 웃음을 자아내면서 가슴 시리게 만들기도 한다. 순덕을 좋아하는 만철이나 어멍을 찾으러 간 무동이가 각각의 죽음을 목격한 뒤 목이 맺혀 말을 하지 못하는 순간은 지금까지 이 사건을 제대로 말못한 현재의 반영이라 함은 지나친 것일까? 어멍의 탄 시체에서 떨어져 나온 지슬, 이 피맺힌 응어리를 동굴로 들고와 나눠 먹는 장면은 가슴 아픈 역사의 상징성이고 음복과도 통할 수 있다. 그런데 이미 자막을 통해 이들이 도망간 이유를 미리 보여줘 관객의 상상력을 없애버렸다는 점은 영화적으로 좀 아쉽다.
카메라는 제주도의 풍경들을 흑백으로 오롯이 담는다. 전체적으로는 사람들을 응시하듯 멀리서 가만히 멈춰 있는 경우가 많다. 이를 통해 진실을 잡아내는 다큐의 눈처럼 보이고 싶었겠지만 제법 치장도 많이 한다. 군인들의 추격 배경이 되는 오름이 순간 순덕의 몸을 연상시키거나 보름달을 여러번 비춰 감성을 자극하기도 한다. 동굴 씬은 카메라가 멀리서 모인 사람 전부를 잡아내어 종횡으로 움직이면서 궁시렁 거리는 말소리 까지 담아 편집하니 마치 마술 부리듯 현실과 꿈의 경계를 오락가락 한다. 가끔 배우들이 고개들어 화면을 응시하는 것은 관객의 긴장과 동조화를 지나치게 요구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특히 엔딩(‘소지’에 해당)에 죽은 시신들 주변으로 지방이 타는 모습은 극영화로는 사실 억지스런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정길이가 형이라 부르는 김상사를 물동이에 가두었다가 솥에 삶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관객들이 숙연해질 수 있는 것은 역사적 비극에 대한 추모의 마음이 들어서 일 것이다.
<지슬>은 4.3 제주도민 대학살을 배경으로 한 영화이지만 사건전체를 다루지 않는다. 사람들을 죽이는 군인과 마을을 버리고 도망간 농부들을 보여주지만 뚜렷한 이유가 별로 없다. 무대에 올려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형처럼 그저 움직일 뿐이고 보이지 않는 세력들에 조정 받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이를 통해 ‘감독’은 현대사의 중요 부분을 차지하는 거대 사건들이 감춰지고 왜곡되어 흘러온 세월들을 영화를 통해 세상 밖으로 보여준다. 이전에 선배(<끝나지 않은 세월>(2005,부제: 4.3 Story,김경률)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자신을 통해 더욱 더 퍼져나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지금 현재에 진실로 화해와 위로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염원을 영화 속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