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회 -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 현재의 원죄를 재치로 끄집어내는
동창회 (2013) Återträffen The Reunion
https://www.youtube.com/watch?v=tbAFG8XDS28
전체내용
https://www.youtube.com/watch?v=DxtuJW23E_c
요약정보 드라마 | 스웨덴 | 89 분 | 15세이상관람가
감독 안나 오델
출연 안나 오델 (안나 역), 안데르스 베리 (안데르스 역), 로베르트 프라손 (로반 역), 산드라 안드레이스 (루이즈 역)
줄거리
오래된 숙적관계에 감추어진 진실이 도전받게 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연기파 배우 안나 오델은 이 영화에서 오랜만의 동창회에 참가하는 자신으로 분해서 열연한다. 그녀는 역동하는 그룹 안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위계질서를 밝혀내지만 그 와중에 집단적인 따돌림과 권력의 본질에 대해서 알게 된다.
<동창회>는 중고등학교 내내 왕따를 당하던 한 여학생이 주인공이다. 그녀는 세월이 지나 오랜만에 열린 동창회에 초대받지 않은 채 나타난다. 이렇게 시작된 영화는 시종일관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넘나들며, 감독 안나 오델은 직접 주인공 역을 맡아 마치 자신의 이야기인양 천연덕스런 연기를 펼친다. 이런 실제효과는 영화가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그때까지의 동창회 에피소드가 주인공이 찍은 영화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더욱 배가된다. 그리고 후반부에서 영화 속 주인공이자 전반부의 에피소드를 찍은 감독이자 실제 영화 <동창회>의 감독인 안나 오델은 등장인물들의 모델이 된 실제 인물들을 찾아 나선다. 참으로 실제의 층이 겹겹으로 쌓인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연출방식은 오델의 이전 단편에서도 나타난 특징으로 향후 이 신인감독의 트레이드마크로 자리잡지 않을까 기대된다.
(이수원_2013년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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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회>의 여운은 참 길고도 묘하다. 해석도 다양하게 많이 나올 수 있겠다.
어떤 모임이든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대다수가 즐거워도 그렇지 못한 몇몇은 있기마련이다.
9년을 한교실에서 생활 했다면 이건 더 할 것 같다.
복지국가 스웨덴 하더라도 아이들의 세게에서 왕따는 있을 수 있는 모양이다.
여기에다 교사에게 미운털이 박히면 여기서도 벗어나기 힘든 모양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동창회가 열리고 사람들은 모두 반갑게 포옹하고 술자리를 가진다.
모아내는데 고생한 사람의 인사도 있고 축제 분위기다.
여기에 찬물을 끼얹는 단 한여자. 그녀는 9년이란 세월 동안 무언의 폭행 속에 시달려 왔음을 한명한명 지적하며 말한다.
즐거움을 이야기하는 사람에겐 서로의 기억이 이렇게 다를수 있나 하며 질책하며 따진다.
'연설'이란 제목으로 끌고 가는 이 1부에서는 누구든 불편할 수 밖에 없다.
저리 폭행을 많이 당했구나 하는 불쌍한 마음과
저렇게 굴복만 하는 바보 짓을 하고 살았나?
뭔가 지도 잘못한 것이 있으니 아이들이 저렇게 까지 했겠지
등등 오만 마음이 다든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조금은 피해자이지만 가해자이기도 하니 사람에 따라 만감이 교차되겠다.
그런데 여기서 사람들의 말은 거의 같다.
그 때 우린 어렸다 , 지금와서 우짜란 말이고, 이 즐거운 자리에 뭐 땜에 왔노? 오지를 말지....
관객인 나도 저 생각들이 막 겹친다. 여자가 이야기 할땐 동정으로 마음 졸이다. 상대가 이야기 할 때 밉기도 하지만 말에 동조가 되기도 한다.
클라이막스로 접어들면 감독을 원망하기 시작한다.
뭐 땜에 이런 영화를 만드노 우째란 말이고 뭘 주장하는거고?
감독을 원망하기 시작하면 1부가 막을 내리고 2부가 시작된다.
1부는 영화속의 영화이고 영화속의 가정을 가지고 만든 영화이다.
말이 좀 헷갈릴 수도 있지만 2부에 들어가면 감독의 영리함과 재치를 듬북 느낀다.
매우 불편한 잔치를 벌여놓고 그것이 상상이지만 자연스레이 사람들의 마음을 보여주고 생각케 하는 능력을...
영화 속에서 실제로는 그녀는 혼자만이 동창회에 초대 받지를 못했다.
만약 초대 받았다면 그녀가 가서 무엇을 했을까? 이런씩으로 한번 따져보면 어떨가? 하는 마음으로 만든 영화가 1부이다.
그러니 1부는 영화 속 가상의 영화인 샘이다.
2부의 실제 그녀는 이 영화를 가지고 동창을 만나기 시작한다.
영화에 대해 어이 생각하느냐는 인터뷰 이고 왜 자신이 초대 받지 못했느냐는 항의이다.
일부는 영화를 보지만 본 들 모두 불편하니 아무도 그녀를 만나주려 하지 않는다. 혹 만나 영화를 본 사람은 자기의 모습에 의문을 가지고 '내가 진짜 저랬나?'는 항의 그리고 자기를 연기한 배우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 까하는 궁금함으로 배우를 만나길 시도하기도 한다.
가상의 영화를 본 실제가 움직이며 가상의 자신과도 조우하는 묘한 설정들은
동창회 모습을 가상한 영화 한편으로 사람의 근본적 마음을 훑어 내려가는 무의식의 여행처럼 흘러간다.
보면서 확대 해석도 해 보았다.
세상의 모든 가해자는 저리 뻔뻔하다라고
정치적 가해자 사회적 가회자 문화적 가해자..
이들은 응징을 받으면 아, 잘못했을 수 있겠구나라는 가정을 시작하지만 응징이 없으면 그냥 당당해 진다
저거 애비가 저진 친일을 지금에 오히려 미화하려 달라드는 어느 뼈속가지 친일인 유명 정치인 처럼
애비가 저진 독재를 반성 한마디 없이 오히려 역사의 공으로 만들려는 어느 미친 것들 처럼
이러면 엄청난 확대 해석이 된다.
이 영화의 묘미는 이런 확대 해석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안된다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 그것도 과거의 저진 것들을 가지고 다룬 것이지만 이 모든 것들은 사람의 모습 행동 을 다 포함할 수 있기 대문이다.
대부분의 일반 사람들은 많이 피해자이면서 조금씩 가해자 이기도 하다.
피해 받는 것을 모른 척하고 넘어가는 것도 가해의 한 행동 중 하나이다.
나의 아킬래스 건은 여동생이다. 한번씩 어릴 때 당한 나의 폭행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꼭 저 영화속 가해자들의 모습처럼 변해 버린다.
형에게 당한 폭행을 고스란히 동생에게 돌려준 듯 하다.
폭행이 대물림한다는 가정이 나에게도 그대로 성립된다.
이스라엘 법정에 선 유태인 학살에 압장 선'하이히만'도 자신은 시키는대로만 햇을 뿐이라고 한다.
이들이 사형 받고 응징 받으니 혹 살아잇는 놈들이라도 세상에 나타나 큰소릴못친다.
우리 친일파 놈들도 법을 다시 세워 이들을 사형시켜야 이들은 큰소릴 못친다. 외국에 살다가 그들 애비들이 저질러 착치한 땅을 저거꺼라고 찾을라꼬 재판하는 짓거리를 못한다. 그 친일 재산을 다시 파고 들어 빼앗아야 이놈들이 자기 애비의 잘못을 미화하질 못한다.
아베는 일본의 극우화에 앞장서지만 어쨌던 일본 자체에 대한 자기식 애국이다.
근데 지금 짓거리를 벌이는 것들은 한국을 위한 것이 아니라 왜놈들의 침략을 오히려 우리에게 은혜를 준 것이라 가정하고 침략에 앞장 선 저거 부모들 할배 들이 잘했다고 떳떳하려는 짓거리다. 한 나라의 민족의 역사를 저거 집구석 가족사로 만드는 짓거리다.
식민지 침탈로 어쩔 수 없이 일본에 살게되었고 돈이 없어 돌아오지 못한 동포들에게 '이제는 일본인이 되어 일본에서 그냥 살아라는 기민정책(울보 권투부에서 어느 할배가 이 말을 한다)을 펼친 박다게시마가 어이 애국자가 될 수 잇겠는가! 민족을 팔아먹는 매국노 이지.
독도에 대해 일관되게 입을 다무는 이유도 독도 폭파까지 주장한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 아닌가.
이들은 땅도 민족도 혼도 팔아먹고 자신들의 가족만이 남길려는 자들 아닌가.
동창회는 제법 기묘한 영화이다.
비록 영화 속이지만 영화 속의 영화와 영화 속 현실이 제법 맞닿아 있고 현실은 과거를 과거는 현실을 서로 바라보도록 만든다.
모두들 회피하지만 궁금해 하고 , 지나쳐 버리면 좋겠지만 되돌아보는 과거와 현재의 경계가 흐릿해진다.
감독은 이러한 지점들을 누구도 완전히 벗어나기 힘든 사람의 모습을 담아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