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평양 (2009) Goodbye, Pyeongyang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53880&videoId=30082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53880&videoId=30197
잠시 카메라를 끈다. 그 여운은 참길고도 아름답고도 먹하다. 눈물난다.
이 다큐의 모든 것이 이 장면에 담겨있는 듯하다.
아들 셋을 북으로 보내고 그 행위에 대한 호불호는 아무도 이야기 할 수 없다. 보복 등이 두려울 수 있으리라.
부자가 할말이 참 많을 것인데 감독이 영화중에 말한 것 처럼 부자는 만나도 말이 없다. 부자지간에 걷는 여운은 끈 카메라와 비슷하다.
아버진 '미안하다' 이들은 '운명이지요'라든지..... 이것이 그냥 세상을 묵묵히 받아드리는 것이라면 좋겠다.
내 아이들에게 난 어떠할까? 미안한 것이 너무도 많은데 늘 미안하다 할 수도없으니... 세상에 대해서도 그럴 것이다.
한 때 열렬히 사랑했고 그것이 전부인 것으로 살아왔는데 이제 돌아보니 보여지는 느낌은 참으로 여럿.
모두 잘못했거나 다 잘한 것은 아닌데 잘한 백가지는 그저 그런 세월로 흘러가고 잘못한 것 한가지가 가슴 가슴아픈 상처로 남는다.
자식에게 보낼 물건을 포장하는 엄마는 포장의 달인이다. 우체국에서도 유명하단다. 모든 것이 아픔이다.
가족을 찍은 매우 단순한 이 다큐. 역사와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냥 담담히 보기 어려운 가슴을 가지게 한다.
1. 동포들의 북송에 대해서는 아래 많은 글들 속에 간단한 설명이되어있다. 제일한국인의 민족적 차별과 미래에 대한 암담함, 그리고 선전된 천국 북한 등등의 이야기들이..
2. 지금도 남한이든 북한이든 자신의 적을 지키고 있는 이들은 너무도 용감하다. 미국국적(기타 외국국적 포함)을 가진다하여 차별이나 백안시하는 눈을 가진 한국인은 이제 하나도 없다. 그런데 정작 가장 큰 고통으로 살아가는 제일 한국인들의 일본국적에 대해선 여전히 비난이 쏟아진다. 그들을 끊임없이 '반쪽바리'라 표현하면서 찾아온 조국(남한)에서 조차도 밀쳐버린 현실들...
이충성, 추성훈 등 운동선수 등을 통해 알려진 같은 민족에 대한 차별은 참으로 가슴아프고 분노가 끓어오른다. 하긴 한국 내에 여전히 검버섯 보다 더 질기게 자리잡고 있는 지역차별을 생각하면 이것도 아무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겟다.
3. 가슴으로 봐야만하는 다큐다. 영화 두만강도 그러하지만 이건 더 현실적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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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정보 다큐멘터리 | 한국, 일본 | 81 분 | 개봉 2011-03-03 | 제작/배급 ㈜지오엔터테인먼트(제작), ㈜ 키노아이 DMC(배급)
감독 양영희
출연 양공선 (본인 역), 강정희 (본인 역), 양선화 (본인 역), 양건화 (본인 역), 양영희 (본인 / 내레이션 역)
줄거리
커피와 음악을 좋아하던, 건축가가 꿈이라던 나의 세 오빠들은
지금 평양에 살고 있습니다.
30년 전, 어린 오빠들을 북으로 보낸 아버지를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 기약 없는 만남과 아들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에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으셨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존경합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염둥이 평양 조카 선화는 어느덧 어여쁜 아가씨가 되었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나와 닮아있는 그녀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그립습니다.
다시 만날 그 날을 기약하며 사랑하는 가족에게 인사를 띄웁니다.
Goodbye!! Goodbye!! 평양!
이영화의 키워드 : 가족, 북한, 감동
태그라인내 조카 선화는 `평화`에 살고 있습니다 제작노트[ Prologue ]
보고 싶습니다.. 그립습니다..
사랑하는 오빠, 그리고 선화야…
제주도가 고향이신 아버지는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에서 어머니를 만나셨습니다.
뜨겁게 사랑하셨던 두 분은 저와 세 명의 오빠를 일본에서 낳으셨습니다.
70년대 초, 일본의 민족차별로 진학과 취학에 어려움을 겪던 오빠들을 위해
그리고 열렬한 조총련이셨던 아버지의 정치적 신념을 위해
아버지는 ‘평양’으로 어린 세 오빠들을 떠나 보냈습니다.
그렇게 커피와 음악을 좋아하던, 건축가가 꿈이라던 오빠들은
지금 평양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30년이 흘렀습니다.
북에서 생활하는 가족들을 위해 온갖 생필품을 30년간 소포로 보내오신 어머니.
내색은 하지 않으시지만 북의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가슴 깊이 묻고 사신 아버지.
한 때 부모님을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사무친 그리움에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으셨던 부모님을 존경합니다.
평양에서 태어난 나의 조카 선화는 어딘지 모르게 나와 닮아있습니다.
나의 존재가 그녀에게 짐이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그녀 때문에, 그녀를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보고 싶다… 선화야
사랑 한다… 선화야
[ About My Family ]
뭉쳤다하면 ‘평양’ 동네가 시끌벅적
평양과 오사카를 잇는 나의 가족을 소개합니다!!
In 오사카
“이렇게 착한 며느리들과 손자손녀가 있으니, 나는 절대 행복해!!”
한 평생 조국생각! 고집불통 아바이 양공선
“네가 건강하면 우리도 다 건강하니까… 부모란 그런 거야!”
24시간 가족사랑! 지극정성 오마니 강정희
“아버지, 제 손등에도 뽀뽀 해주셔야죠!!”
13년간의 집념촬영! 효심가득 막내딸 양영희
In 평양
“할아버지 할머니 평양에 또 오세요. 안마랑 뽀뽀 해드릴게요!”
우리 집안 귀염둥이! 막내조카 양선화
“양씨 집안은 뭐든 다 잘해, 막내 영희도 그렇지!”
아버지를 꼭 빼닮은 양씨집안 세 아들들
“어머님이 보내주신 부엌살림들, 귀한 보물이니 아껴 써야죠”
알뜰살뜰 현모양처! 살림의 여왕 올케들
“할아버지 할머니의 건강이 제일 큰 선물입니다!!”
재능출중 평양얼짱 순수청년 평양 조카들
[ About Movie ]
당신의 가족은 안녕하십니까?
가족의 소중함과 강인함을 일깨워주는 진정한 가족 드라마 탄생!!
늘 함께 하기에 소중함을 더욱 쉽게 잊고 마는 가족, 가족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 일, 귀여운 조카를 데리고 영화 한편을 보는 일, 가족들의 축하를 받으며 생일 케잌의 촛불을 끄는 일, 출산으로 고생한 사랑스런 며느리에게 보약 한 재 지어 먹이는 일,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대중탕에서 등을 밀어주는 일, 입학하는 손자손녀에게 학용품을 사주는 일… 우리들에겐 너무 흔하고 또 귀찮기 만한 이런 일상들이 하나하나 눈물겹게 소중하고 애틋한 가족이 있다. 바로, <굿바이, 평양>의 감독이자 화자인 양영희 감독의 가족이 그 주인공이다.
일본의 민족차별로 진학과 취업이 어려웠던 오빠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 선택한 평양행이었다. 진정으로 ‘지상 낙원’이라 믿고 보낸 아들들이었다. 그리고 30년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덧 아버지가 된 아들들과 그들의 가족을 위해 일본에 살고 있는 부모는 그 긴 시간 동안 손자들의 학용품부터 세숫대야, 이불까지 고이고이 꾸려 평양으로 보내왔다. 늘 밝고 씩씩하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남몰래 흘린 눈물은 그 누구도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기약할 수 없는 짧은 만남 속에서도 기쁨과 행복을 건져내는 이 가족의 강인함과 따스함은 보는 이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는 특별한 힘이 있다. 북에서 온 이 특별하고 사랑스런 가족 다큐 <굿바이, 평양>은 지금 바로 우리 곁에 있는 ‘나의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다큐멘터리이지만 그 어떤 픽션보다도 더 드라마틱한 가족 드라마를 보여주는 <굿바이, 평양>은 겨우내 얼어붙었던 관객들의 마음을 녹일 훈훈한 봄바람과 함께 찾아와 바쁜 일상 속에서 잊고 살아온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베를린 영화제 등 세계 유수영화제 초청
해외에서 호평 받은 서정적인 멜로디의 영화음악 화제!!
<디어 평양>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최우수 아시아 영화상’, 선댄스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부문 ‘월드시네마 심사위원 특별상’, 싱가폴 아시아 페스티발 ‘최우수 다큐멘터리 감독상’, 바르셀로나 아시아영화제 ‘최우수 디지털 시네마상’ 등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며 뛰어난 연출력과 시대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시선을 입증 받은 바 있는 양영희 감독은 <디어 평양>에서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위해 <굿바이, 평양>을 제작, 다시 한번 관객들을 찾아왔다. 특별한 가족사 안에 담겨진 가슴 아픈 분단의 역사, 그 안에서 오늘을 살고 있는 재일동포들의 뜨거운 삶을 양영희 감독만의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특별한 사적 다큐멘터리인 <굿바이, 평양>은 <디어 평양>에 이어2009년 부산국제영화제, 2010년 베를린국제영화제, 핫독다큐멘터리국제영화제, 닛폰 커넥션 등에 초청 받는 등 다시 한번 전세계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굿바이, 평양>은 가장 가깝고도 먼 도시, 평양에 살고 있는 어느 가족의 평범한 일상을 담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고통을 겪어 왔던 재일동포의 애환과 굴곡진 사연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이 가족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무거웠던 이별의 회한, 가족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 그리고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을 가족에 대한 사랑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버텨온 이 특별한 가족의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가슴 먹먹한 여운을 안겨준다. 한편 이별 후 다시 만날 날을 기약 조차 할 수 없는 가족들의 슬픔을 표현하는 듯, 영화의 배경에 조용히 흐르던 서정적인 멜로디의 ‘선화의 테마’는 영화의 여운과 감동의 깊이를 더욱 배가시키며 해외 영화제에서 뜨거운 호평을 받으며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재일동포의 슬픈 역사
감춰진 아픔과 상처를 다큐멘터리로 녹여낸 <굿바이, 평양>
<굿바이, 평양>은 지난 역사를 더 이상 자신의 삶과 연결 짓지 못하는 우리들과 달리 지금도 지난했던 역사의 그늘에서 고통 받고 있는 재일동포들의 애환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무엇보다 ‘양영희 감독’ 본인과 그녀의 가족사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굿바이, 평양>의 진정성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이 가족의 슬픈 가족사는 일제강점기를 거쳐 분단에 이르기까지 힘겨웠던 재일동포의 역사를 관통하고 있다. 양영희 감독의 고향이자 그녀의 부모님이 살고 있는 일본 오사카시는 재일동포 역사의 산중심지로 전체 인구의 1/3이 재일동포일 정도. 특히, 이곳에 제주도 출신이 많은 것은 1930년대 자원과 물자가 한정된 제주도에 일본이 해군기지를 세우면서 주민들이 결국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일본으로 다수가 이주했기 때문이다. 6.25 전쟁이 끝나고 북한과 남한으로 등을 돌린 한반도의 정세는 재일동포사회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쳐 대한민국과 북한 국적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기로에 서게 되고 일본의 노골적인 민족차별로 어려움에 처했던 대다수의 재일동포들이 재일동포의 인권과 민족교육을 위해 막대한 자금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북한을 선택하게 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1955년 6.25로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던 북한은 ‘재일동포’의 귀환을 추진, 1959년 북한과 일본정부는 인도 캘커타에서 ‘재일교포 북송에 관한 협정’을 정식 조인하기에 이른다. 같은 해 12월, 975명의 재일동포가 니가타항을 출발하여 ‘만경봉호’를 타고 북한으로 귀환하게 된 것을 시작으로 이 북송 사업은 84년까지 계속되어 총 186차례에 걸쳐 9만 3천 4백 여명이 평양으로 이주를 했다. 북한이 무상교육과 무상의료혜택을 주는 ‘지상 낙원’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양영희 감독’의 세 오빠들도 70년대 초, 일본의 민족차별에서 벗어나 꿈을 이루기 위해 어린 나이에 ‘만경봉호’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북한의 실상은 많이 달랐다. 일본의 가족들이 생활비와 생활필수품을 보내주지 않고는 제대로 된 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일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재일동포 2세’들이 감당하기엔 북한 사회가 너무 폐쇄적이고 무기력했다. 가끔 일본의 가족들이 평양의 가족들을 만나러 갈 기회가 생기더라도 감시와 검열 속에 만남이 진행되어야 했고, 북에 있는 가족들이 일본으로 오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고자 일본으로 이주해야만 했던 재일동포 1세대들과 마찬가지로 평양으로 이주할 수 밖에 없었던 평양이민 1세대. <굿바이, 평양>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이 겪어야 했던 이민세대의 상처를 자식 세대에까지 되물림하는 애환을 안은 채 살아가고 있는 재일동포의 삶을 진솔하게 그리고 있다.
<굿바이, 평양>의 탄생 비화!!
감독의 또 다른 자아, 평양 조카 선화의 성장을 그리다!
1995년 비디오카메라로 가족을 촬영하게 된 계기는 평양에 살고 있는 여조카 선화 때문이었다. <굿바이, 평양>의 영어 원제인 ‘선화, 또 하나의 나’에서도 잘 나타나듯 재일동포로 태어나 북한과 일본의 문화 사이에서 혼란을 겪으며 살아온 감독에게 있어 평양에서 태어났지만 태어난 순간부터 일본 의류나 학용품에 둘러싸여 북한과 일본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익히며 살아온 선화가 감독의 또 다른 분신처럼 여겨진 건 당연했다. 하지만 선택의 자유가 있는 일본에서 태어난 감독과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북한에서 태어나 자란 선화를 보며, ‘만약 내가 이곳 북한에서 태어났었다면?’, ‘오빠들과 함께 나도 북한으로 건너왔었다면?’이란 물음을 되뇌일 수밖에 없었다고. 늘 양영희 감독의 현재를 되돌아보게 하는 자극제인 선화를 기록하는 것은 즐겁고 기쁜 작업인 한편 괴롭고 가슴 아픈 작업이었다.
게다가 평양 가족들의 일상을 카메라로 담기로 처음 마음 먹은 그 순간부터 13년 간 평양을 방문 하면서 북한의 감시와 검열을 피해 <굿바이, 평양>을 영화로 완성하기 까지 그녀의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물음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 영화로 인해 가족들, 특히 평양에 있는 가족들과 선화에게 정치적인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닐까?”라는 물음이었다. 가족을 곤경에 빠트릴 수도 있다는 마음의 짐을 진 채 계속 진행된 촬영. 하지만 어려움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2006년 일본과 한국에서 <디어 평양>이 개봉 후, 양영희 감독에게 북한으로부터 입국금지령이 떨어진 것. 제작의 어려움이 커진 부담감만큼이나 더 이상 평양의 가족을 만날 수 없다는 심적 아픔은 너무나도 컸다. 하지만 양영희 감독은 <굿바이, 평양>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북에 있는 가족들의 안위가 무엇보다 걱정되었지만, 그들이 북에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듯, 양영희 감독 또한 자신이 해야 할 일, 바로 이 영화를 완성해야만 한다는 굳은 의지로 <굿바이, 평양>을 완성해 냈다. 어렵고 힘든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본인의 나아갈 길을 가는 것만이 그리운 가족들에게 그녀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만날 수조차 없지만 언젠가 평양의 가족들과 모두 둘러앉아 <굿바이, 평양>을 함께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기원하는 간절한 마음이 오늘의 <굿바이, 평양>을 탄생시킨 것이다.
<워낭소리> <울지마, 톤즈> <경계도시2>에 이어
2011년 다큐 열풍을 이어갈 대중적인 ‘감성 가족 다큐’ 탄생!!
2009년 <워낭소리> 이후 시작된 다큐 열풍은 2010년에도 이어져 <경계도시2> <울지마, 톤즈> 등의 명품 다큐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다양한 주제와 시대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시선, 사회의 비주류 계층에 따뜻하고 관심 어린 시선을 보내는 다큐멘터리 장르는 극영화에서는 느낄 수없었던 리얼리티와 따스한 감동을 전달한다. 영화 <굿바이, 평양> 또한 깊은 감동과 함께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감성 다큐멘터리로, 한 가족의 특별한 이야기를 통해 이 세상 누구나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주제로 관객들을 찾아간다. 30년간 서로 떨어져있을 수 밖에 없었던 가족사, 평양과 오사카를 넘나들며 이어진 짧은 만남과 긴 이별, 그 안에서 가족들의 성장과 화해, 그리움을 담은 <굿바이, 평양>은 전 세대를 아우르는 보편적인 정서를 건드리며 관객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특히 양영희 감독의 실제 자전적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내용과 13년의 시간 동안 평양과 오사카를 넘나들며 진행된 촬영은 영화의 리얼리티를 높임과 동시에 영화의 내용에 깊이 빠져들도록 만든다.
양영희 감독이 ‘한 사람의 인간과 가족을 찬찬히 살펴보면 시대나 역사가 반영되어 있다. 그렇기에 나의 가족 이야기로 시작된 <굿바이, 평양> 또한 자세히 들여다 보면 조총련, 재일동포, 북송사업 등등의 또 다른 다양한 문을 내포하고 있고 그 문들은 감독인 내가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이 영화관을 나서면서 하나씩 열어가게 된다. 이것이야 말로 셀프 다큐멘터리의 가장 큰 매력이다’라고 말했듯, 그녀가 연 작은 문 하나가 지닌 엄청난 역사적 진실과 감동의 폭발력은 전 세계인을 충격과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고 이를 입증하듯 2010년 베를린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해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초청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특히, ‘다큐멘터리도 영화이기 때문에, 영화의 엔터테인먼트적인 부분을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는 양영희 감독의 연출 철학은 ‘평양’과 ‘다큐멘터리’라는 무거운 이미지를 벗고 영화의 전체 분위기를 굉장히 밝고 웃음이 넘치는 대중적이고 감성적인 다큐멘터리로 완성시켰다.
북한,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을 돌아본다!!
<굿바이, 평양><두만강><무산일기><댄스 타운>
2011년 분단의 아픔을 배경으로 한 특별한 감동과 여운을 전하는 작품들이 잇따라 스크린을 채우는 가운데 평양에 살고 있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굿바이, 평양>은 색다른 감동 코드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반세기 넘는 결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뼈아픈 그리움을 간직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분단 소재의 영화들은 한국 현대사의 가슴 아픈 현실을 고스란히 녹여낸다. 탈북자들이 거쳐가는 두만강 인근 중국 동포마을을 무대로, 탁북자와 조선족 동포들이 뜻하지 않은 사건을 겪으며 변해가는 모습을 차갑고 냉정한 시선으로 조명한 장률 감독의 <두만강>, 남한 사회에 정착해서 살아가는 탈북주민들이 서로를 속여 가며 결국 그들간에 쌓이는 불신, 상처, 가슴 아픈 현실을 그린 <무산일기>는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과 아픔을 냉철하게 그려냈다. 탈북 여성의 눈으로 서울의 도시 풍경과 그 안에서의 삶을 섬세하게 묘사하며, 사회성 강한 소재임에도 강한 감정적 여운과 울림을 전해주는 <댄스타운> 역시 색다른 시선으로 현실을 보여준다.
남북문제에 관해 다소 민감하게 흘러가는 세계 정세 속에서도 2006년 <국경의 남쪽>, 2008년 <크로싱>에 이어 지난 해 <의형제> 등 분단을 소재로 하여 북한 주민과 탈북자의 절박한 현실을 담고 있는 영화들이 꾸준히 제작되고 있는 것은 북한과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좌시할 수 없는 작금의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바쁜 일상에 젖어 돌아보지 못해왔던 이민세대, 이산가족, 탈북자들의 부적응 문제 등은 더 이상 우리의 미래와 결코 무관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평양에 사는 그리운 가족들의 삶을 따뜻하고 감성적인 시선으로 담은 감동 휴먼 드라마 <굿바이, 평양>의 이야기는 멀게만 느껴졌던 평양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일상을 살고 있음을 담담하게 그려내며 더 이상 그들을 편견의 시선으로 보지 않기를 바라는 감독의 바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굿바이, 평양>은 일본과 평양에 살고 있는 우리의 동포, 그 평범한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시대적 아픔을 담은 여느 작품들과는 차별화되는 벅찬 감동과 깊은 여운을 선사하는 최고의 웰메이드 다큐 영화로 자리매김 할 것이다.
[ Production Note ]
“내게 평양은 그리운 가족이 있는 곳입니다.”
멀게만 느껴지는 도시 ‘평양’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담아내다!
영화 <굿바이, 평양>에서 보여지는 평양의 모습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북에 대한 선입견을 확실히 바꿔준다. 그 동안 언론 매체와 영화 속에서 우리는 고립되고 낙후된 북의 모습을 보아왔다. 평양이라는 도시는 외부에게 보여지기 위한 도시 이미지로 그려지며 삭막하고 딱딱한 모습으로 묘사되어왔다. 또한 강압적인 정치 체제와 그 안에서 순응하며 살아가는 시민들의 모습, 딱딱하고 굳은 표정으로 정체되어있는 그들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운 마음과 부정적인 느낌이 들도록 만들었다. 허나 <굿바이, 평양>에서 그려지는 평양의 모습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것과 많이 다르다. 강압적인 정치 체제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닌 그 안에서 실제로 생활을 하고 있는 개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실생활을 들여다보면 옆집 이웃 혹은 지방에 살고 있는 가족의 모습처럼 친근하고 가깝게 느껴진다.
딸아이의 숙제를 챙겨주고 손을 꼭 잡고 등교길을 함께 해주고, 먼 길을 온 가족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생일상을 준비하고, 함께 성묘를 가기도 하는 모습은 폐쇄적이고 강압적인 정치현실로 인해 말과 행동에 제약이 많고, 절수와 정전이 일상이 되어버린 척박한 경제 현실 속에서도 가족을 일구고, 이웃과 정을 나누며 소박하지만 오늘에 최선을 다하며 사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은 너무나 평범한 우리 이웃의 모습과 닮아 있다. 영화 <굿바이, 평양>은 평양을 정치적인 시선이 아닌 그리운 가족이 살고 있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감성적인 시선으로 담아내어 그들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관객들은 <굿바이, 평양>을 통해 이질적으로만 느껴졌던 평양이라는 곳을 보다 가깝고 현실적으로 느낄 것이며, 어느새 평양에 살고 있는 가족들의 안부를 진심으로 걱정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평양과 오사카, 국경을 넘나들며 진행된 집념의 촬영!
13년간에 걸쳐 완성된 화해와 감동의 이야기!
영화 <굿바이, 평양>은 한 가족의 만남과 이별, 성장을 담은 13년간의 기록이다. 70년대 초, ‘지상 낙원’이라 믿었던 북한으로 세 오빠를 떠나 보내게 된 양영희 감독은, 성장 후 평양과 오사카를 넘나들며 가족과의 애틋한 만남을 이어나갔다. 다년간의 만남과 이별을 거쳐 첫 여 조카인 ‘선화’가 태어난 이후 그녀의 성장 모습을 담아야겠다고 생각한 감독은 가깝고도 먼, 평양과 오사카를 오가며 자신의 특별한 가족 이야기를 영상으로 기록해나가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북한에서의 촬영이 가능했고, 촬영 소스를 무사히 외부로 가지고 나올 수 있었는지 <굿바이, 평양>을 보며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1995년부터 2008년까지 자그마치 13년간 국경을 넘나들며 진행된 촬영은 무척 힘겨운 여정이었다. 입출국시 카메라에 담긴 모든 내용을 검열당하는 것은 물론, 카메라 앞에서 솔직한 생각이나 심정을 말할 수가 없는 북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진솔한 인터뷰나 촬영을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어떻게 촬영을 해야 최대한 북한주민과 가족들에게 정치적인 피해가 가지 않는지, 북한 당국의 검열을 최대한 피해갈 수 있는 지 등 세심한 신경을 써야만 하는 고단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카메라 없이 평양을 오간 10여 년간의 그녀의 경험은 북한에서 무리 없이 촬영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소중한 자양분이 되어 주었다.
무엇보다 양영희 감독은 ‘북한 주민들의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것’을 가장 큰 원칙으로 삼았다. 말과 행동이 자유롭지 못한 북한의 정치 현실 속에서 북한 주민들의 자연스러운 일상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그 어떤 질문도 하지 않고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풍경처럼 담아내야만 한다고 믿었기 때문. 덕분에 영화에 담긴 북한의 모습은 그 동안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었던 가깝고도 친밀한 시선으로 묘사되었고, 우리들로 하여금 더 이상 남과 북의 문제가 아닌 우리 이웃, 가족의 문제로 친근한 공감을 느끼게 하는데 성공했다. 자그마치 13년이란 시간 동안 한 순간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가족과 북한을 섬세하게 기록해낸 <굿바이, 평양>. 양영희 감독의 이런 열정과 용기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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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평양 (2006)
Dear Pyongyang
요약정보 드라마, 다큐멘터리, 가족 | 일본 | 107 분 | 개봉 2006-11-23 | 홈페이지 해외 www.film.cheon.jp 제작/배급 ㈜씨네콰논코리아(배급)
감독 양영희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42549&videoId=10377&t__nil_VideoList=thumbnail
http://www.youtube.com/watch?v=eQ51khRGBlE
http://www.youtube.com/watch?v=rGM9b7VqgK0&feature=related
줄거리
“안녕!” 헤어짐이 아닌 만남의 인사이고 싶습니다.
나는 ‘재일 교포의 메카’로 불리 우는 도시, 오사카에서 태어나 오빠 셋의 귀여운 막내 여동생으로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15살에 고향인 제주도를 떠나 일본으로 오셨고 해방을 맞은 후 정세에 따라 북한을 ‘조국’으로 선택하셨습니다. 그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첫 눈에 반해 열렬히 프로포즈하여 결혼에 성공하셨다고 하는데, 평소 엄격한 성격의 아버지도 이 얘기가 나올 때면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하시곤 합니다. 부모님은 결혼 후 함께 열정적으로 정치 활동을 하셨고, 오빠들이 청소년이 되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조국’인 북한으로 보낼 결심을 하셨습니다.
오빠들이 떠나던 날. 6살이었던 나는 ‘귀국’의 의미도 모른 채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머니는 오빠들을 태운 배가 사라진 후에도 한참 동안 자리에 서서 먼 바다를 바라보셨습니다. 나는 당시 어머니의 마음을 죽을 때까지 헤아릴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후 평양의 실정을 들은 어머니는 오빠들에게 물자를 보내기 시작하셨습니다. 어린 조카가 난방이 안된 학교에서 동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로는 “이런 짓은 어미 밖에 못해준다”고 웃으시면서 겨울마다 큰 상자에 일회용 손난로를 가득 담아 보내주고 계십니다.
고집쟁이 아버지와 딸. 그들의 대화가 시작됩니다.
오빠들과 달리 자유롭게 살고자 했던 나는 자연히 아버지와 갈등이 깊었고, 심지어 대화조차 안 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아버지의 인생을 카메라에 담아 볼 것을 결심했고 10년간 렌즈를 통해 아버지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의 마음은 점차 변해 갔습니다. 머리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삶이 가슴으로 다가오며, 미움은 그리움으로, 갈등은 사랑으로 변해갔습니다. 어느 날 오빠들을 북한으로 보낸 것이 후회 되냐고 묻는 나에게 아버지는 진솔한 답변을 해 주셨고 난 앞으로 아버지와 더 깊은 대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곧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게 되고, 나는 아버지와 좀더 일찍 대화를 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뒤늦은 후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영화의 키워드 : 가족, 북한
태그라인아버지,
이제 당신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제작노트‘평양 16km’
평양까지 16km.
창 밖의 경치를 보면서도
3명의 오빠들과 조카들을 생각한다.
동시에 나는, 내가 결코 조국의 품에 안긴 것도 아니며
혁명의 수도를 향하고 있는 것도 아닌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 곳.
보고 싶은 사람이
나를 기다리는 곳으로
향하고 있음을 확신한다.
【 About Movie 】
感… 가장 평범하지 않은 가족의 가장 공감되는 이야기!
양영희 감독은 어렸을 때부터 ‘조총련’이 운영하는 학교와 가정에서 ‘조국’인 북한에 충성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으며 자라 왔다. 하지만 평양으로 ‘귀국’한 오빠들을 만나러 북한을 방문하기 시작하면서 조국의 현실이 이상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깝고도 먼 두 나라, 북한과 일본을 오가며 그녀는 자신의 가족이 품고 있었던 특별한 이야기를 담담히 카메라에 기록하기 시작한다.
<디어 평양>은 어른이 된 딸의 목소리와 시선을 따라 한 가족의 특별한 사연과 사랑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가족 다큐멘터리의 맥을 잇고 있지만, 그 어떤 가족 영화보다도 인물간의 거리는 좁아지고 그에 따라 생생한 감정의 호흡과 진솔한 감성이 전달되는 영화이다. 양영희 감독의 가족은 우리와 같은 핏줄을 가지고 있으나 우리처럼은 살 수 없다. 하지만 결국 이 영화는, 이 세상 모든 가정에 존재하는 희로애락의 정서를 촘촘히 엮어냄으로써 얻어지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기에, 가족 안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와 공명하며 깊은 감동을 안겨 줄 것이다.
愛… 미움이 그리움으로, 갈등이 사랑으로 변해간다!
20대에는 대화하는 것은 고사하고 아버지와 함께 밥 먹는 것 조차 싫었다고 하는 양영희 감독. 양영희 감독은 온통 북한과 관계된 대화만 하는 부모님과 늘 이질감을 느껴왔다고 한다. 부모님들이 ‘조총련’의 간부인데다가 세 아들이 모두 평양에서 가정을 이루고 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처음엔 단순히 평양에 있는 조카들의 모습을 찍어 부모님께 보여드릴 목적으로 카메라를 들기 시작했기에 영화 곳곳에는 가정용 비디오 카메라로 찍은 흔적이 드러나기도 한다. 하지만 곧 그녀는 논픽션의 매력을 알아가면서 서서히 촬영의 강도를 높여 나갔고, 본격적으로 가족의 모습을 담아내기 시작한지 10년 후 드디어 <디어 평양>을 완성해 낸다. 영화에는, 감독이기 이전에 한 명의 딸로서 아버지에게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는 양영희 감독의 모습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절대 ‘조선’국적을 버리지 말라고 하던 아버지가 ‘한국’국적으로 바꿀 것을 허락하자 양영희 감독은 많이 놀라면서도 한 편으로는 아버지의 뜨거운 신념에 앞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아버지는 뜨거운 신념을 지닌 사상가 혹은 활동가였지만 그 보다 먼저 자신의 가족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평범한 가장이었던 것이다. 오빠들을 북한으로 보낸 것이 후회스럽지 않냐는 솔직한 딸의 질문에, 똑같이 마음을 열고 솔직한 답을 들려주는 아버지의 모습을 마주하며 양영희 감독은 카메라를 통해 아버지에 대한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眞… 다큐멘터리의 비상! 실재하기에 가장 아름답다!
12년에 걸쳐 제작된 비전향 장기수들을 다룬 실사 <송환>(2004, 김동원), 1966년 북한의 월드컵 8강 진출기 <천리마 축구단>(2005, 다니엘 고든), 북한 최고의 행사인 전승기념일 매스 게임에 참여하게 된 여중생 현순이와 송연이의 아기자기한 이야기 <어떤 나라>(2005, 다니엘 고든)는 모두 북한과 관계된 다큐멘터리들로, 다큐멘터리는 어렵고 지루하다는 선입견을 깨고 관객의 호평을 이끌어 내 주목 받았던 작품들이다. 개봉을 앞두고 있는 다큐멘터리 <디어 평양>은 일본에 실재하는 재일 교포 가정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가슴 벅찬 감동을 전해주고, 무엇보다 실제적인 북한의 모습을 가감 없이 담아내고 있기에 위의 수작들의 의미 있는 호평과 주목을 이어갈 작품으로 여겨진다. 또한 <디어 평양>에 내재되어 있는 갈등의 한 축은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적 틀 안에서 자란 것이기에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더욱 특별히 다가온다.
양영희 감독의 아버지는 세 아들이 북한으로 귀국하기 전에 가족사진을 찍은 이후로 다시 한번 모두 모여 가족 사진을 찍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간직해 왔다. 그래서 가족은 4년 늦은 아버지의 진갑 잔치를 평양의 ‘옥류관’에서 열기로 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양영희 감독의 카메라는 2004년의 평양의 일상을 고스란히 담아 낸다. 우리가 그 동안 TV를 통해 자주 접할 수 있었던 거대한 김일성 황금동상이나 추체 사상 탑, 매스 게임과 평양 거리의 풍경은 단순히 도식화된 북한의 이미지로서가 아니라, 현실적 입체감을 띄고 친밀하게 관객을 찾아간다. 그것은 생활인으로서 그 안에 살고 있는 오빠들의 가정이 더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조금 더 불편한 삶을 살고 있지만 그 곳 역시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같은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는 곳인 것이다.
力… 세계가 함께 눈물 흘린 감동 스토리!
<디어 평양>은 2006년 선댄스 영화제 다큐멘터리 부문 ‘월드 시네마 심사위원 특별상’과 베를린 국제 영화제 ‘최우수 아시아 영화상’을 거머쥐며 세계의 주목을 받고, 이외에도 야마가타 다큐멘터리 영화제 ‘특별상’, 싱가폴 Asian Festival of 1st films ‘최우수 다큐멘터리 감독상’, 바르셀로나 아시아 영화제 ‘최우수 디지털 시네마상’ 등을 수상하며 우리의 역사와 정서를 바탕으로 한 가족의 이야기가 전세계인과 공감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이러한 수상 결과는 <디어 평양>이 근대 한국 역사와 동북아시아의 정세를 바탕으로 한 재일 한국인들의 회한과 고뇌에 대한 이해를 기초로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상당히 고무적인 성과라 할 수 있다. 이는 화면을 통해 다가오는 가족애를 바탕으로 한 사랑과 갈등이라는 보편적인 정서가 전세계인들에게 진솔한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제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디어 평양>은 그 누구보다도 바로 한국 관객들에게 가장 큰 감동을 전할 것이다.
【 Cast 소개 】
아버지
딸 : 아버지 제 국적이 좀 복잡해요.
아버지 : 국적은 바꾸면 되지. 정말은 바꿀 필요가 없지만, 바꾸어도 할 수 없지.
딸 : 아버지는 안 바꾸세요?
아버지 : 안 바꿔! 절대 안 바꿔! 죽어도 안 바꿔!
딸 : 그럼 딸은 바꾸어도 괜찮은 거에여?
아버지 : 응. 너만 특별한 거야
딸 : 그래도 저에게 심술 안 부리시기에요.
아버지 : 그렇게 안 해. 절대 안 그럴거야. 바보!
제주도가 고향이지만 15살에 일본에서 해방을 맞은 후, 북한을 ‘조국’으로 선택하고 사상가로 활동했다. 당시 ‘뿌리 없는 초목’ 같던 재일 한국인들의 비참한 삶을 개선 하고자 많은 노력을 하는 한 편, 김일성에 의한 조국 통일 실현을 위한 정치적 활동에 전념하였다. 그리고 결혼 후에는 부인도 함께 활동에 참여 하게 하였고 각각 18세, 16세, 14세였던 세 아들을 북한으로 ‘귀국’ 시켰다. 일본에 남은 딸에게도 계속해서 민족 교육을 시키지만 일본의 자유 분방한 문화 가운데 있던 딸은 자신의 생각에 따라 행동하게 되고 아버지와 딸은 갈등하게 된다.
<디어 평양>은 평생을 지켜온 ‘조국’에 대한 자신의 사상과 신념이 이젠 믿음이 되어 버린 굳건한 그의 모습 뒤로, 가족을 사랑하고 아끼는 숨겨져 있던 평범한 가장의 모습을 그려 낸다. 그래서 결국 아버지는 딸이 ‘조국’인 북한을 버리고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것을 허락하게 되고 부녀는 갈등을 넘어 이미 이 세상 무엇보다 컸던 서로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깨닫게 된다. 현재 뇌경색으로 병상에 있다.
어머니
딸 : 뭘 보내면 가장 좋아해요?
엄마 : 학용품! 며느리들 말에 의하면 볼펜과 지우개. 부모밖에 못하는 짓이다!
딸 : 그건 정말 명언이네요. “부모 밖에 못하는 거라고”
엄마 : 박사가 될지 어떨지, 아이고! 연필! 연필 보내달라고
_______할머니는 조국에 짐을 보낼 때는 돈 드는 것도 잊어버립니다. 하하하
재일교포 2세로 양공선씨를 만나 열렬한 구애를 받는다. 그리고 결혼한 후에는 남편의 사상을 함께 공유하며 물질적 정신적으로 아낌없이 지원 한다. 세 아들이 모두 평양으로 떠나 버린 후, 끊임없이 생활 물자와 생활비를 지원하며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끊임 없이 웃음을 터트리는 그녀의 모습을 통해 가장 한국적인 어머니상을 만나 볼 수 있다.
딸 : 아버지 파이팅! 같이 평양에 가야죠
아버지 : 파이팅! 평양 가자
“또 한번 가족들이 기다리는 평양으로 가자”
아버지를 추켜 세우기 위해 이 말을 거듭하면서
나는 아버지에게 있어서 “평양”이란 말의 깊은 뜻을
알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딸 : 아버지 휠체어라도 타고
어떤 일이 있어도 평양에 가자구요.
가족들이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어요.
아버지 : 그래.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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