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7일 토요일, 모처럼 볕이 따뜻했습니다. 이제는 봄이다 싶었던 날의 강정엔 긴장감이 아직도 깊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긴장을 풀 수가 없죠. 발파는 지속되고 있고, 공사는 여전히 진행중이며, 누군가의 구속과 추방이 이어졌던 한 주의 끝자락에 다시금 사람들은 모입니다. 시민집중행동의 날, 두번째 모임이 강정 마을운동장에서 있었습니다.
강정이라는 곳, 제주에서도 남단에 위치한 작은 마을, 서귀포라는 시가지가 바로 옆에 있긴 하지만, 섬의 남단, 지리적으로 접근이 용이치 않은 마을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모였지만, 그닥 많아보이지는 않습니다. 강정의 싸움에 언제나 아쉬운 것은 사람수가 적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행사 순서로는 그닥 새로울 것은 없는 집중행동의 날 행사가 열렸습니다.
행사장 주변으로는 여전히 공사장을 지키는 경찰병력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행사장 주변으로 사복차림의 형사들이 행사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구럼비에 들어간 외국인 두 명과 강정마을에서 활동중인 세리씨가 구속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구속상태에서 영장이 기각되는 바람에 세 사람은 구치소에서 나올 수 있었지만, 외국인들에 대해서는 강제추방이 진행되었죠. 하지만, 노벨평화상 후보인 평화활동가 엔지 젤터에 대한 추방은 국제적 시선에 대한 부담때문인지 추방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다시 돌아온 활동가 엔지 젤터는 당연 이날의 행사에 참여하였죠. 그리고 우리에게 격려와 당부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강제추방당한 프랑스인 벤자민 모네.. 개인적으로는 참 마음아픈 사람입니다. 추방당하기 직전, 수갑을 찬 채로 제가 근무하는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데 마침 담당과장님이 수술을 들어가는 바람에 제가 진료를 보게 되었습니다. 많이 다친것은 아니지만 온몸 군데군데에 타박상을 입었더군요. 진료와 처방을 해 주고는 '구럼비에서 다시보자'며 악수를 하고 헤어졌는데, 돌아온 소식은 강제추방결정이 내려졌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날의 행사는 예정된 식순이 있었지만, 사실 때마다 해 온 식순이 그닥 많이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날의 인상적이었던 순서는 이 분, 술이 거나하게 취한 마을주민이었습니다. 낮술을 많이 하셨던지 비틀거리며 자꾸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는 무대위로 올라서려 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무대위에 기어이 올랐습니다. 그리고 취했지만 떨리는 목소리로 '구럼비만은 절대 안됩니다'며 호소에 호소를 거듭했습니다. 취해서 같은소리를 반복했지만, 분을 참지 못하는 마을주민의 절규는 그대로 마음으로 전달되었습니다.
이날의 행사에서도 몸짓은 빠지지 않는 순서였습니다. 마을사람들은 남녀노소에 관계없이 이젠 몸짓에 익숙해진 모습이었습니다. 언제끝날지도 모를 기나긴 저항속에서 몸짓은 그들의 싸움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저항의 공간은 때로는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합니다. 주말을 맞아 나들이겸 아이들을 데리고 참석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아이들은 금방 친해지죠. 인쇄물과 피켓, 그리고 현수막을 어디서 줍더니만 이내 자기들의 장난감으로 만들어버립니다. 호기심 발동한 아이들은 점점 더 모이고 현수막을 펼쳐든 아이들은 기차놀이하듯, 길게 줄을 서서 행사장을 몇바퀴고 돌며 신나합니다. 당연히, 카메라들은 이들 아이들에 집중되어 이날 행사를 보도한 기사사진의 주인공들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원로가수라 해야하나요? '꽃반지'의 은희씨가 마지막 깜짝 게스트로 출연하셨습니다. 몇 곡의 노래를 구럼비를 넣어 개사하여 불러주셨죠. 기타를 치는 모습이 매우 이색적이더군요. 참고로 은희씨의 따님은 월정리에서 아일랜드 조르바라는 해변까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제 강정포구까지의 행진이 시작됩니다. 행렬을 보니 지난주 집중행동의 날만큼은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전경들도 행사인원이 많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관심에 대한 눈치보기인지는 몰라도 많이 없더군요.
그래도 공사장 출입구를 지키는 병력은 배로 늘어났습니다. 언제나 떠올리는 의문입니다만, 저들이 저렇게 무장까지 해가면서 지키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저로서는 순간 돌발상황으로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갑자기 힘껏 무엇인가를 던집니다. 깜짝놀라 보았더니 페인트볼이더군요. 기지공사간판에 페인트볼이 던져졌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이번 집중행동의 날 행사 중 가장 신선한 이벤트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정현 신부님이 지나가는 행렬옆에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눕니다.
공사장을 끼고 중덕 삼거리로 향하는 올레길로 들어섭니다. 한판 순정인 구럼비... 어떤 구체적인 분석과 판단을 초월하여 한판 순정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왜 구럼비를 죽여서는 안되는지에 대한 분명한 답일 것입니다.
행렬은 이어지고 뒤를 따라 전경들이 들어옵니다.
망루가 있는 중덕삼거리를 지납니다.
삼거리를 지나 아스팔트길로 나오면 바로 포구로 내려가는 길로 이어집니다.
목사님과 신부님들이 뚫고 들어갔던 펜스부위는 말끔히 다시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전경들에 감시카메라까지 동원되어 철저히 감시되는 곳이 되었습니다.
펜스는 해군에 의해 그림들이 다 지워졌었지요. 다시 사람들의 염원이 담긴 그림들로 채워졌습니다.
멀리 침사지가 보입니다. 곳곳에 경계병력들이 경계중입니다. 오늘도 공사는 커다란 소리를 내며 진행중에 있었습니다.
한 외국인이 펜스를 따라 내려가 경계지 안으로 들어섭니다. 경찰들이 붙잡지는 못하고 뒤따라 경계지 밖으로 유도합니다. 외국인은 피켓을 들고 두 손을 치켜들어 항의시위를 이어나갑니다.
그리고는 경찰병력이 떼로 몰린 경계선 밖으로 내보내진 뒤에 뒤돌아 자기만의 시위를 이어나갑니다. 이를 쭈욱 지켜보던 몇몇분들이 그러더군요. '간지난다'고..ㅎ
오늘도 포구 안쪽 바다에는 해경특수부대원들이 대기중입니다.
행렬은 포구로 들어와 구럼비로 진입하는 길로 움직입니다. 그리고는 경계중인 경찰병력과 맞딱뜨립니다.
경찰저지선 앞에서 마을회장님이 마이크를 잡고 말씀하십니다. 여기는 공사지역이 아니니 마을주민과 사람들이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는 지역이라고 말입니다. 경찰책임자가 나와서 이 곳을 막고 있는 이유를 어서 설명하라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경찰은 묵묵부답이고 막무가내로 길을 가로막고 버팁니다.
경찰의 채증은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루어지죠. 분명한 것은 채증 자체가 불법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사복차림의 전경이 캠코더를 들고 몰래 또는 의도적으로 채증을 하기도 합니다. 채증 장비도 점점 좋아지고 장비도 늘어나면서 채증에 대한 어떤 조심스러움이나 비밀스러움도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활동가 몇몇은 벌써 바다로 뛰어들어 구럼비로의 진입을 시도합니다. 그리고 해경의 저지도 시작되었습니다.
깃발을 꽂은 카약도 포구 안쪽에서 출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지난주와는 달리 경찰이 카약을 압수하는 행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카약이 구럼비를 향해 출발합니다. 해경들도 점점 분주해집니다.
예상했던 대로 카약은 해경의 저지를 받습니다. 부대원들이 사람들이 탄 카약을 손으로 잡고 움직임을 방해합니다. 카약이 포구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카약은 어떻게든 구럼비쪽으로의 전진을 시도합니다. 하지만 번번히 해경에 의해 저지당하고 포구안에서 맴돌기만을 반복합니다. 그 광경을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며 촬영을 해 나갑니다. 오늘 파도는 많이 높은 편이라 방파제 아래쪽의 파도구멍으로 파도가 펑펑 소리를 내며 물을 토해냅니다.
송강호 박사는 경찰이 진입을 차단시킨 반대쪽 방파제로 기어이 헤엄쳐 올라갑니다. 그리고 카약에 올라타 저항중인 사람들을 응원합니다.
잠시 구럼비쪽을 바라봅니다. 파도가 많이 높아진 이날, 오탁방지막은 파도의 힘을 이기지 못하도 또다시 파손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오늘, 카약이 포구를 나선다 해도, 구럼비에 제대로 도달할 수 있을까 싶은 상황이었습니다. 자칫하면 사고가 날 수도 있는 파도였지요.
구럼비는 곳곳이 공사중이고 발파를 위한 준비와 안내판들이 많아졌습니다. 파도가 심한 오늘도 공사장 안의 움직임은 여전했습니다.
크레인은 움직이지 않고 있지만, 작은 공사장비들은 여전히 움직임을 멈추지 않습니다.
구럼비를 때리는 파도는 무척 거칠었습니다. 한여름에 저 거친 포말을 맞아보는 일은 나름 상쾌한 일이었죠. 지금 이 순간, 저 파도가 좀 더 높이 일어 구럼비를 덮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포구 안에서의 저항은 한시간 이상 지속되었습니다. 해경의 적극적인 저지로 카약은 포구 안쪽으로 몰린 상황이 되었죠. 더 이상 전진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멀리 구럼비로 향하는 길의 대치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끝까지 비폭력으로 일관하며 길을 터줄 것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참 재밌는 상황이 벌어지더군요. 해경에 의해 안쪽으로 몰린 카약이 포구로 올라가고자 정박지에 들어서니 이젠 전경들이 올려와 카약의 정박을 방해합니다. 참 잔인한 공권력입니다. 이건 사람을 우롱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행위입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역시 30분 이상 지속되었습니다. 바다로 나가려는 카약은 해경이 막고, 올라서려는 사람들은 전경이 가로막는 답답하고 짜증스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경찰 저지선은 안쪽으로 후퇴하여 카약을 정박하고 사람들이 뭍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해질녁의 어스름이 깔리던 때의 뒤늦은 움직임이었습니다.
저항의 공간은 운동장에서 포구로 이동되었고 포구는 또다시 아이들의 놀이터가 됩니다. 아이들은 드높은 바닷바람에 연을 실어날리며 자기들만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포구에 차려진 천막 안에서는 음식준비로 분주합니다. 한켠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연날리기를 준비해주고 있고 한켠에서는 오뎅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중간천막에서는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난 후의 출출함을 달래기 위해 강정마을 부녀회에서 잔치국수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한그릇 받아들고 감사한 마음으로 젓가락을 꽂아넣습니다. 이 한그릇에 담은 마을사람들의 바램, 염원, 고난, 수고는 맛을 넘어선 깊고 든든함 자체였습니다.
날은 거의 다 저물어가고 천막 안쪽의 포구공간에서 이날의 저항을 마무리합니다.
전경들의 경계는 여전한 앞에서 카약은 정리되고 있었고, 사람들 역시 이날의 저항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파도가 조금만 더 높이 쳐 주었더라면 조금 안심이 되었을까요? 구럼비를 뒤덮는 파도가 더 이상의 패악을 막아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했습니다. 하지만, 자연은 그저 늘 보여주던 대로입니다. 때로는 그런 자연이 너무 답답하고 미련해보입니다. 자신의 살을 갉아먹고 유린하는 인간의 패악을 그냥 보고만 있기 때문입니다. 하긴, 산업혁명이후로의 급격한 인간사회의 발전이라 칭하는 것이 실은 자연의 파괴와 유린의 형태로 벌어졌죠. 구럼비를 지키려는 사람들도 그런 인간의 한 구성원으로 책임을 면키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멀쩡하던 바위를 파괴하려하는 모습은 '인간적'으로도 용납이 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싸움은 언제나 저항의 움직임이 뒤따라야 하지만, 논리역시 필요합니다. 생태와 평화를 주장하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인간과 생명이 공존하는 세상의 이치에서 당연한 답이자 분명한 논리이지만, 이는 매우 관념적이라는 면에서 적극적 저항의 논리로 내세우기엔 보편적인 납득을 이끌어내기에 한계가 있습니다. 군사적, 외교적 측면에서의 논쟁은 찬성과 반대의 논리에 있어서 상당히 많은 이론과 예측이 난무해지다보니 무엇이 더 옳은지를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해군과 자본의 일방적 공사추진과 공권력의 비인간적 탄압에 우리의 마음은 조급해집니다. 조급해지다보니 논리와 주장 역시 조급해지며, 중심이 흔들리고 사소한 주장들이 논리를 압도하고 사실이 아닌 이야기들이 사실로 회자됩니다. 논리의 재정립과 주장의 타당성을 다시 세워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분명하게 드러난 문제점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제기하는 것이 이 싸움을 좀 더 탄탄하게 할 것입니다. 지금 현재로서는 강정을 기지부지로 선정함에 있어 절차상의 문제와 추진과정의 위법성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이 가장 힘을 얻을 수 있는 저항의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자본은 자신의 위력을 과시하며 고압적인 자세만을 유지했습니다. 해군과 경찰력은 언제나 그 앞에서 얼굴마담의 역할과 비호의 역할을 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저항은 언제나 힘들고 어렵기만 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 포스팅을 올리는 2일 전, 해군기지 청문회를 앞두고 삼성은 기습적으로 구럼비 본 바위를 발파했습니다. 마치, 해볼테면 해봐라는 고압적 의지이자, 어떤 것에도 상관없이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무력적 시위이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토건자본 자체가 이 기지사업의 주된 몸통이며, 무한권력 자체임을 확인해주는 사건이었습니다. 해군기지 청문회는 그들만의 '비공개'로 진행이 되었고, 우유부단하고 자기챙기기에 바쁜 제주도정은 여전히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공사정지명령이 아닌 청문회 연장진행만을 결정한 상황입니다. 사람들의 마음만 답답해지고 상처는 깊어만 가고 있는 꼴입니다. 저항의 주체는 인민이지만, 제도적 절차상의 문제제기와 해법에는 도민도 인민도 주인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그저 그들만의 타협과 협상만이 존재하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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