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 스토리(2019) Tall Tales, Apró mesék
영화 본지 제법 되었네...하는 일도 없이 사는게 바쁘다. 사실 바쁜 일 하나도 없는데 허겁지겁 쫓긴다.
어릴 때 부평동 사거리 시장, 시장통에서 저녁이 되어도 집에 안들어가고 아이들이 모여 논다.
가끔가다가 담벼락 옆에 나이 적은 아이들이 쭈욱 앉고 나이든 사람이 이야기를 한다.
영화 본 이야기나 지어낸 이야기들로.
나이 조금 많은 형들은 야한 영화 제목을 두고(봤는지 안봣는지는 모른다), 그 흉내를 내며 이야기 한다.
지금도 가장 기억나는게 <방에 불을 꺼주오>(1970,이영표)라는 영화다.
제목이 워낙 강렬하지 않나? 찾아보니 상도 많이 받은 영화인데, 당시는 자극적인 제목이 많았고, 제목만 봐도 어린 나이지만 뭔가 근질거린다.
형들이 없으면 그 다음 순서가 이야길 하고, 또 다음 순서가 이야길 하고....
뛰어놀고 싸우기도 하지만 이 이야기 시간은 제법 소중한 시간이고,
도심지 시장 통에서 부모는 모두 돈벌러 나가고, TV 있는 집은 동네 통틀어 2대 뿐이고, 공부는 집에서 하면 안되는 줄 안냥 모여 있으니 아이들끼리 그 저녁 그 시간엔 소중한 가족이다.
<남매의 여름밤> 포스터 장면처럼 멀리 불켜진 마루에 가족이 오순도순 모인 모습이 떠오르지 않나?
이 때 이야기의 진실이나 사실성이 중요할까?
<부다페스트 스토리> 원제는 <거짓말, 이야기>다.
지어낸 이야기라는 뜻.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마음이 휑하다. 전쟁에서 잃으면 생사도 궁금하고 죽었다 하더라도 어디서 죽었으며 어떻게 죽었는지 몸서리치도록 궁금할 것이다.
‘한코’는 이야기꾼이다. 실종자 광고를 보고 찾아가
<당신의 남편이, 아들이, 아버지가, 나와 함께 전쟁을 치르다가 눈 속에 아이 하나 살리려 긴강을 건너는 영웅적 행동을 했지만 지금 생사는 모른다. 눈 속에서 죽었을 가능성이 많다. >
당시 상황을 엄청난 감정을 넣은 이야기를 들은 가족은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먹을 것 또는 돈이나 옷을 준다.
당시는 전쟁 직후이기에 누구나 다 어렵다.
이 때 가족은 대체로 안도를 한다.
영웅이다! 그것만으로도 생사여부 보다 더 위안이 되지 않는가!
헝가리 서울에서 사기꾼은 조폭에게 거짓이 들켜 도망을 친다.
가다 보니 산골로 가게되고 그 곳에서 여인과 아들을 만난다.
이게 더 이야기가 된다.
산골의 모자와 이방인...
판에 박은 듯하지만 당시는 공산주의 헝가리이고 전쟁 직후다.
사기와 살인도 난무하고 ‘당’에서는 실종된 사람을 찾고, 인민을 덜굶도록 해야하고, 전쟁 중 부역자들을 골라도 내어야 한다.(당시 사회 모습을 영화를 통해 약간은 볼 수있다. 이게 영화의 힘이지)
신분증 없는 ‘한코’에겐 모든 것이 위기다.
자신을 경계하는 산골의 ‘유디트 모자’에게도 똑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당신의 남편은, 아버지는 영웅이라고.
근디 이야기를 듣는 표정이 어둡다.
묘한 동거를 시작한다. 이방인과 모자.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돌아온다.
이 남편, 장난 아니다. 이 영화에서는 악의 화신 정도라 하면 될까?
이미 마을 공산당에 전쟁터에서 여자의 남편과 이렇게 헤어져 신분증도 없다는 거짓말을 하였기에 이자를 모른다 할 수도 없다. 자신의 이야기가 진실임을 계속 밀고 나가야 한다.
남편도 마찬가지. 자신이 ‘한코’와 전우라고 해야만 자신의 악행이 드러나지 않는다.
이제 두 거짓말의 팽팽한 대립만이 남았다.
<부다페스트 스토리>는 영화 속의 이야기를 매우 흥미롭게 끌고 간다. 있을 듯한 이야기를 지어내고, 어쩌면 그 이야기도 진실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하고, 이야기 속 인물간의 대립을 최고조로 끌어낸다.
요사이 영화들의 장면은 늘 좋고 아름답다. 정말 특출한 촬영이 아니면 다 괜찮으니....
남녀의 사랑과 대립이란 구도는 평이하고 특별할 것 없지만 이 영화는 참 특별하다.
당시의 사회상을 보는 것도 흥미롭고 산골 마을의 남녀의 만남도 재미있다.
보는 내내 긴장감과 재미도 넘쳐난다.
주인공의 약간 긴 얼굴과 큰 눈동자에서 뿜어내는 표정들은 웃음과 안타까움, 어디로 튈까 하는 궁금함이 절로 우러나온다.
<조폭한테 사기치다가 쫓겨 도망간다. 그러다가 아래 총을 겨눈 여자를 만난다.>
<영웅으로 만든 이야기 속 주인공이 살아나 마각을 드러낸다.>
다시 부평동 시장으로 돌아간다.
이야기를 한참 듣고 있는데 가족 중 누군가가 누구를 부른다. 얼마나 짜증나겠는가!
이야기가 엉터리인 줄 알면서도 끝을 어떻게 맺을지 궁금할 수밖에.
근데 그 때는 다 어리니 대부분 이야기가 사실 전쟁 이야기다.
우리 모두가 전투에 참가하여 우리는 살고 이 곳에 없는 아이는 일본놈이나 독일군이 되는거고. 죽는 놈이 되는거고..
<방에 불을 꺼주오>를 들려주는 두 형은 자리까지 깔고 온몸으로 섹스 씬을 연출한다. 사실 내용하곤 아무 관계없고 오직 제목에서 연상한 말과 몸짓을 연기하는 것 뿐..
두 형은 차에 있는 양산을 훔쳤다가 형사한테 잡혀갔다.
경찰서에서 나오고 난 뒤 아마 두 형은 이야기는 다시는 들을 수 없었던 것 같다.(우린 대부분 초딩이고 그 두형은 고딩이다.)
‘한코’가 더 이상 전쟁 실종자에 대해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는 것과는 약간 다르지만...
그 때 그 친구들 소식은 모른다. 억지로 연락하려면 건너건너 한두명 찾을 진 모르겠다. 사거리 시장은 많이 달라졌고 장사하던 당시 분들은 다죽거나 이젠 장사할 힘이 없거나 할 것이다.
가끔 시장엘 들리면 몇 안되는 추억이지만 한둘 떠올라 웃음짓거나, 찡거리거나....
부다페스트 스토리(2019) Tall Tales, Apró mesék
스릴러/로맨스/멜로/드라마 헝가리 2020.08.13 개봉 112분, 15세이상관람가
감독 아틸라 사스
주연 사보 킴멜 타마스, 비카 케레케스, 레벤테 몰나르
“거짓말 하는 거면, 당신도 죽어”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혼란한 틈을 타 실종된 사람들의 가족에게
거짓 희망을 주고 그 보상으로 연명하던 천재적 사기꾼 ‘한코’.
그러다, 자신의 사기 행각이 들통나자 부다페스트에서 도주하던 중
숲 속에서 아들과 살고 있는 여인 ‘유디트’를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죽은 줄 알았던 남편 ‘빈체’가 돌아오고
세 사람 사이에는 격렬한 감정의 전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 ABOUT MOVIE ]
˝최근 10년간 최고의 헝가리 영화 중 한 편!˝
스토리 X 스타일 X 연기 3박자를 이룬 고품격 로맨스 스릴러
압도적 긴장감, 세련된 연출과 영상미, 완벽한 연기 앙상블
거짓말로 영웅을 만들던 천재적 사기꾼이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 진짜 영웅이 된 이야기
제2차 세계 대전이 유럽에서 끝난 후 생존을 위해 아무도 더 이상 싸우지 않지만 자신의 삶과 거주지에서 사라진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원한다. 많은 사람들은 몇 년 동안 전쟁이나 노동 수용소로 데려 간 아들, 남편, 형제들에 대한 소식을 받지 못해서 신문에는 사람을 찾은 구인 광고가 가득하다. 주인공 `한코` (사보 킴멜 타마스)는 부다페스트에서 연락이 끊긴 사람들을 찾는 가족에게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인 `거짓말 같은 이야기 Tall Tales`를 들려준다. 실제로 모든 사람들에게 똑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실종된 사람들은 이야기 속에서 영웅이 되고 그는 보상으로 외투나 음식, 숙박 등을 제공받는다. `한코`는 거짓말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사기꾼이지만 가족들에게 위안을 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결국 자신의 거짓말이 발각되어 도주하던 `한코`는 부다페스트 근교 숲 속에 살고 있는 `유디트`(비카 케레케스)와 십대 아들 `비르길`로부터 총으로 위협을 받는다. <부다페스트 스토리>는 역사물, 느와르, 스릴러에서 로맨틱 스릴러로 장르가 바뀐다. 부다페스트 시내에서 사기 행각을 벌이는 이야기와 숲에서 그가 `유디트`와 아들을 만날 때 전혀 다른 스토리로 발전한다. `한코`는 그들에게도 똑 같은 내용으로 실종된 남편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사실 그는 폭력적인 괴물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어지는 `한코`와 `유디트`의 위험하고 격정적인 사랑은 더욱 긴장을 가져온다. 그가 숲으로 들어서면서부터 불확실성 즉 예측 불가능성을 남겨두고 스토리가 전개되기 때문에 긴장도는 더욱 높다. .
이 영화를 실제로 이끌어내는 강렬한 분위기 외에도 주연 배우들은 공간을 장악하고 흥미롭고 다양한 캐릭터를 잘 연기한다. 사보 킴멜 타마스가 열연한 `한코`는 선과 악이 공존하고 생존에 강한 인물이라면, 비카 케레케스가 맡은 `유디트`는 조용하지만 강한 힘을 가진 어머니이자 사랑에 빠진 여인 혹은 팜므 파탈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몰나르 레벤테가 연기한 폭력 남편 `빈체 베르체스`라는 캐릭터는 어둡고 감정을 짐작할 수 없는 존재이다. <부다페스트 스토리>는 뜨겁고 강렬한 분위기가 작동하는 방식, 비주얼, 음악, 배우 등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제자리에 있으며 어우러지고, 이러한 장르의 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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