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소설 <남극해>를 읽으며 생각에 잠긴다.

무거운 빈가방 2021. 7. 13. 00:21

소설 <남극해>를 읽으며 내 생각에 잠긴다.

 

(사진들은 모두 작가 이윤길의 페이스북, 필명 오어선장 사진에서 다 가져왔다.)

 

남극으로 여행은 매우 특별하다

얼아붙은 다리를 자를 일도 없고

빙산에 부딪쳐 바다 아래로 물 속으로 내 몸이 얼어가는 것을 보고 느낄 필요없다

난 소설가의 글을 눈으로 따라 가면서 배에 부딪쳐 진동하는 빙하를 느낀다.

아무도 이야기 해 주지 않은 것들이 남극해에 펼쳐져 있다.

뱃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의 생활과 사투가

 

 

난 고딩 때 배를 타려고 해양대에 지원했다

특차이기에

시험날과 졸업식이 겹쳤다.

바다로 들어간 수성이는 해양대 입구쪽 전봇대에

P(A)=1 이라 붙였다.

확률 100%

그랬다 난 떨어졌다.

졸업식 사진 하나 가지질 못한 채.

당시 부산해양전문대가 있다가 없어졌다.

당시 해양대와 전문대 사이 충돌과 사고가 많았다고 들었다.

목포해양전문대에 지원을 한다.

짜리와 함께 경전선 밤 기차에 올랐

12시간 이상 가는 기차는 참 지겹다.

근데 동행하게 된 성배 조카 때문에 덜 지겨웠다.

조그마한 계집아이다.

귀여워서 서로 안고 난리다.

나중 얘는 부산 와서도 전라도 사투리를 쓰더라

 

<남극해>는 내용과 다게 나를 고딩으로 델꼬 갔다.

난 배와 얽힌 그 시절의 생각들을 떠올리고,

나중 요트를 만들어 함께 여행을 가자고 약속한 친구들을 잠시 생각하게 한다.

지금도 친구들은 모두 있다.

그런데 약속한 나이가 40인데 우리는 이제 60중반이다.

보수동에서 요트책을 사모우고, 대딩 때 요트 동아리에 가입도 했으나

나이 같은 선배의 압박이 부담스러워 때려 치워 버렸고, 그 뒤 요트하곤 영 헤어져 버렸다.

 

내 꿈은 그냥 친구에 의해 만들어진 꿈처럼 너무 쉽게 무너졌다.

가끔 우짜다가 이런 순간에  올랐다 사라지는 그림자일뿐

그래 수성이는 그 꿈을 이루려고 바다에 사라져버렸나!

목놓아 울던 애인의 모습이 그냥 슬쩍 스친다.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친구형이 원양어선 조리사를 했고 큰형은 선장이다.

큰형은 위엄 있고 정말 뱃사람 같았다. 잘아는 여자 선배와 결혼했고 그 가족들은 나와 끈이 제법 있다.

선망한 해양대를 나와 가족을 건사시켰으니 대단한 분이다.

조리사 작은 형은 내게 큰 몰락을 주기도 앴다.

건설 붐 때 빌라를 짓고 내게 투자케 하여 난 집 반채 값을 날려버렸다.

 

교도소에 있는 형 면회로 끝이다.

그 뒤 보지 못했고 가끔 소식만 들었다.

지금은 이 가족 모두를 본 적이 오래되었지만....

 

원양어선에 대해 소소히 들은 이야기들은 매우 가끔은 있었다만

<남극해>는 배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다.

작가의 경험이 녹아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장편소설 남극해배경은 저곳이다. 사실 소설 남극해는 이미 10년 전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그때는 오로지 자료에 의지하고 그동안 항해 경험에 상상을 더하다보니 중편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로스해에 갔다 오며 디테일이 살아나서 러브라인까지 더하니 장편으로 늘어났다. 해양소설은 묘사에 묘사가 더해지다보면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 굵직한 서사로 쭉 치고나가야 파도가 몸을 적시는 느낌이 든다. 나는 그렇다. 일하랴, 사진 찍으랴, 글쓰랴, 뭍이 그립지 않았던 시간이다. 소설 남극해에 관한 강의 요청을 받았다. 감사한 일이다

    - 작가 김윤기의 펫북에서 사진과 글을 가져옴 >

https://www.facebook.com/photo?fbid=1697712857079086&set=a.104509753066079 

 

남극에서 일어나는 예측 못한 기상현상과 그로 인해 쓰러지는 사람과 맞서 싸우는 각오들을 만난다.

수많은 강사장, 장선장, 박기관장 그리고 한국선원과 동나망 지역에서 온 선원들은 남극 뿐만아니라 지구 바다 곳곳에서 웃고 울고 일어나고 쓰러졌음을 휩쓸릴 듯 일어나는 바다에 새겨준다.

배 부분 부분에 대해서는 약간 어려운 부분이 있어도 책은 너무도 쉽게 넘어가고 손에 땀을 쥔다.

어릴 때 본 <사모아> 지역에 간 원양어선 영화. 그래 이대엽이 나왔었지. 왜 이대엽만 기억나지?(영화를 찾아도 안나온다.. 어딘가에는 있겠지)

춤추는 일부 장면만 떠오른다.

이건 낭만이지.

 

피닉스호 선원들에겐 낭만은 없었겠다.

<남극해에서 남극이빨고기를 잡고 있는 호주 선적의 조업선이다. 사실 이렇게 멋진 배는 국가의 장기적, 전략적인 정책이 없이는 만들어 질 수 없다. 노루웨이에서 이와 비슷한 배 한척을 700억에 건조했다고 들었다. 누군가가 수산업을 노루웨이에서 배우라고 했던데 이런 것부터 배우라 하고 싶다. 각설하고 같은 연승조업선이라도 이렇게 덩치가 큰 배는 토리라인보다 버드버풀러를 선호하는데 배의 꽁무니를 확대하여 보시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서 물음1에 관한 의문이 조금이라도 풀렸으면 좋겠다 그림/ 버드버풀러를 설치한 어로조업선 - - 작가 김윤기의 펫북에서 사진과 글을 가져옴>

 

잠시 멈춘 바다위에 유영할 땐 안도의 숨을 쉬었으나

떠내려 오는 유빙, 흐르는 유빙에서 남극의 푸르름과 원시를 느낄 수 있겠으나

이 모든 것들과 죽음과 직결된 사투

난 잠시 본 흐릿한 해 그림자와 푸르름을 담뿍 담은 빙산(오어 선장이 종종 올린 사진 속에 상상)을 즐기다 정신을 차린다.

<글을 읽기 전에 본 남극의 빙하는 동경이다. 소설을 보고 나니 동경과 긴장과 죽음이 교차한다.>

 

배에 부딪치는 유빙의 진동이 심장까지 쳐버려 가슴이 흔들린다.

파도는 나를 저 끝까지 밀어버리고 난 물을 잃은 물고기처럼 허우적댄다.

만선의 기쁨 보다 만선 과정의 노동이 지독하고

무사귀환 때 까지 잠시도 안도가 안된다.

심장을 끝없이 쫄이게 만드는 이 피닉스호는

실제 경험자가 아니면 도저히 표현도 하지 못할 사투들을 담고 있다.

옛 추억들은 잠시의 행복이고

쪽을 넘길 때 마다 새로운 요술들이 준비되어 있다.

, 마음 약한 사람은 먹는 약을 옆에 두고 넘기시라.

스릴러가 아닌데도 스릴이 넘치는 삶의 현장인 <남극해>

바다를 바라보며 한국경제에 한 일익을 담당했던 그들의 용기와 죽음에 대해 묵념한다,

 

초,중 동창 정남이의 아버지 ,

배를 탄 선배들 - 지금은 농장하는, ‘건재상하는, 태양광 사업 하는 선배들...

개인 사업하는 후배들..

내 주변의 해양고, 해양전문학교, 해양대

선후배들이 주루룩 흘러 지나간다.

참 고맙게 읽었다.

 

그래 중학교 때 모은 용돈을, 선장하는 친구 아버지께 부탁하여 일제 세이코를 내 아버지께 사다드렸지. 그 때 아버지 표정이 떠오르는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