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가 한창이다. 영화를 본다고 바삐 쫓아다니니 간단 정리는 하여도 글 올릴 여유가 없다. 밤 10시 넘어야 들어오고 7시 이전에 나가고를 반복하다 보면 머리가 좀 거시기 하다.
보통은 내가 생각하는대로 두드려 바로 올리는데 '시민평론단'의 글을 올리려면 양식에도 맞추고 제대로 손도 봐야 한다. 나는 고치는게 더 힘들다. 그래도 그래야만 앞으로도 나에게 영화제 뺏지를 줄 것이다. 압박감이 제법이다. 약가 ㄴ정리된 글을 올린다. 나는 정돈 된 것이 재미없다. 내가 정돈한들 거서 거이니...
견습공의 일주일
영화의 매력은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넓은 세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영화는 우주의 끝부터 땅 아래까지 모든 것을 탈탈 털어 보여주고, 부족한 환타지를 채우고, 과거와 미래도 큰 제약 없이 펼쳐준다. 내가 굳이 고민하지 않아도 수많은 감독들이 그들의 생각으로 내 머리를 한가득 메워준다.
⌜견습공의 일주일⌟은 이런 엄청난 이야기들과 아무 관계없다. 그냥 매우 작은 일부분을 다루고, 장면들은 참 소소하다. 주인공들의 일하는 모습이나 주변에 널려 있는 사물들을 비추는데, 장식품이나 청소기 등 가볍게 넘길 만한 것들은 무심하게 스쳐지나간다. 촬영하다 보니 우연히 카메라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주듯이. 이렇듯 별 반전도 없으며 밋밋한데도 보다보면 저절로 미소 짓고,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마법을 부린다. 아무생각 없이 그냥 화면만 따라가면 된다. 그러다보면 ‘인간의 가장 기본 조건과 행복은 이런 것이다’는 지점을 만나게 된다.
암막에 쇠가 부딪치고 톱 쓰는 소리 등 작은 소리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맞이하도록 영화는 시작한다. 소리는 싱크대 작업을 하는 장면이다. 한 사람은 싱크대 아래 일을 하고 한 사람은 서 있다. 무겁지 않게 시작한 영화는 내내 이렇게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줄 것 같다. 화장대 아래에서 노동하는 사람, 위에서 이것저것 건드리면서 하는 둥 마는 둥 시늉만 하는 사람, 사장과 직원인가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좀은 다르게 생긴 사람이 찾아왔다. 회사이름을 대며 맞는지 묻는다. 분명히 바로 찾아 왔는데 아니라고 대답한다. 발음과 악센트가 다르다. 이민자였다. 같은 듯 다른 그를 기존의 사람들은 거부한다.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과는 섞이지 않으려 한다.
배관공 '발레로'는 아내의 회사에서 모든 일을 도맡아 한다. 오래 동안 함께 해온 성격 좋은 '펩'하고는 호흡을 잘 맞추지만 게으르고 잔소리쟁이며 장난꾸러기다. 모로코에서 스페인으로 온 이민자 청년 '모하메드'를 1주일 견습공을 거친 후 정직원이 되는 조건으로 받아들인다. '모하메드'에 대한 '발레로'의 잔소리는 끝이 없다. 불신과 심한 모욕으로 이민자를 대한다. 말로 직접 표현하지 않는다. ‘나하고 맞지 않다’, ‘일을 잘 못할 것 같다’, ‘손님들은 이민자를 싫어할 것’이라는 고정 관념으로 미리 안될 것을 가정해 두고 '모하메드'에게 벽을 쳐 둔다. 나와 다름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현 시대의 모습을 감독은 그리고 있다. 한국인들이 다문화가정과 난민을 대하는 태도도 다르지 않다.
왕고참 '펩'은 일은 잘하지만 이제 쉬고 싶다. 발레로 하고는 오랜 경력과 이해심으로 여기까지 왔지만 견습공이 들어오자 그만둔다. 발레로는 미우나 고우나 이젠 견습공과 둘이 일해야 한다. 과연 이 둘의 관계는 어떻게 흘러갈까? 모하메드는 발레로의 간섭과 잔소리를 버텨낼까?
모하메드는 한 집에 사는 친구들과는 다르게 열심히 일을 한다. 이 사회에 빨리 자리잡길 원한다. 놀고 즐기는 것 보다. 언어를 빨리 익혀 관련 시험에도 통과 하고 견습 시기를 잘 넘겨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싶다. 그런데 뭐하나 잘되는 게 없다. 친구들은 일만 하는 자신을 보고 빈정거린다. 음식을 두면 다 먹어버려 곤란하게 만들곤 한다.
<모하메드는 사람들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다. 위 두사진은 배관을 고쳐달라 부탁한 손님들이다. 그런데 다른 요청에도 묵묵히 따라주는 착한이의 전형을 보여준다.>
카메라가 보여주는 도시인의 당연한 일상은 뭔가 쓸쓸하고 외롭다. 땅에서 아파트 위를, 위에서 아래를, 옆 베란다에서 바라보면 각자 놀거나 일하거나 운동하는 모습들을 카메라가 향하는 위치를 바꿔가며 비춘다. 한 건물에 단절된 여러 선들, 사람들은 각자 자기 공간을 가지고 모두 자기 일을 한다. 불 켜진 집과 불 꺼진 집, 누군가 움직이는 집과 닫혀 있는 집.
영화는 정치나 세상변화와 아무 상관없이 살 것 같은 사람들의 모습에서,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함을 그리고 있다. 그래도 따뜻한 시선으로 모두가 화합해 살아가야 행복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네우스 발루스' 감독은 그냥 내 이웃에서 수많은 삶을 목격하게 한다. 사람간의 불신과 소통의 부재를 담고 인종차별을 조용히 보여준다. 새털처럼 가벼울 정도의 대화에서 애잔함과 미소를 동시에 준다. 즐거움과 따뜻한 카메라와 음악을 만나고 감독의 재치가 들어가니 바로셀로나의 어마무시한 건물이나 관광지로의 모습을 비추지 않고 동네 골목 하나만으로도, 초보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가 더하여 행복함을 주는 영화가 ⌜견습공의 일주일⌟이다.
견습공의 일주일 The Odd-Job Men , 2021 제작
요약 스페인 | 코미디 | 85분
감독 네우스 발루스
출연 모하메드 멜랄리, 페프 사라, 발레로 에스콜라르, 파우 페란
이번 영화제에서 편안하고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를 찾고 있다면 단연 이 작품이다.
스페인에서 구직 중인 모로코의 이민자 청년 모하메드. 하필이면 고른 일자리가 성질 급한 배관공 발레로의 출장 주택 수선사무소라니. 차분하고 과묵한 모하메드와 외국인이 못마땅한 발레로 사이에 긴장감이 감돈다. 모하메드는 견습공으로 딱 일주일만 참으면 어엿한 직업을 가질 수 있다고 다짐하지만 일주일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관객들은 바르셀로나의 다양한 계층이 살아가는 모습을 들여다보게 된다. 감독은 일상의 리얼리티를 위트와 더불어 녹여냈다. 이민자, 고용불안, 빈부격차 등 사회문제를 진지하면서도 무겁지 않게 접근했다는 점, 모자라거나 모난 인물들의 모습들을 시니컬한 웃음으로 소비하지 않고 끌어안는 태도는 이 영화의 미덕이다. 놀랍게도 실제 배관공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연기했다.
(2021년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 김경만)
네우스 발루스
Neus BALLÚS
1980년 스페인 출생으로, 영화 및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스페인의 폼페우파브라대학교에서 영화 제작과 편집을 전공했다. 첫 장편 <더 플레이그>(2013)는 2013 베를린영화제에서 초연됐으며 전 세계 영화제에서 20개 이상의 상을 받았다. 특히 2013 가우디상의 주요 부분인 최우수영화상, 감독상, 편집상, 각본상을 수상했고, 고야상 신인감독상 후보에도 올랐다. <스태프 온리>(2019)는 2019 베를린영화제, BFI런던영화제와 겐트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가우디상 4개 부분 후보에 올랐다. <견습공의 일주일>은 올해 로카르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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