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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십리 김종분> : 딸 덕분에 세상을 알게되었어, 찾아오는 사람 때문에 장사를 해야혀

무거운 빈가방 2021. 10. 14. 00:15

<왕십리 김종분> : 딸 덕분에 세상을 알게되었어, 찾아오는 사람 때문에 장사를 해야혀

<왕십리 김종분>(2021,김진열>은 왕십리역 ‘행당시장’ 길거리 한곳에서 장사한지 30년이 되는 83세 ‘김종분’에 대한 영화이다. 시장에서 물건을 사서 장사 준비를 하는 김종분은 작은 키에 다리를 약간 뒤뚱 거리듯 걷는다. 좌판에 널린 상품들은 이것저것 다양하다. 옥수수를 찌고, 가래떡을 굽고, 상추 종류나 콩종류, 저린 무김치, 된장, 파 등등. 장사를 시작한지는 58세 된 첫딸이 세 살 때부터 했으니 55년 세월이다.

 장사하는 한국의 어머니들의 공통점은 남편의 무능에서 온다. 60년 대 까지 남편들은 남자라는 이유로 가정에서 모든 권리를 다 누렸고, 부인은 남편이 한량 짓을 해도 고개를 숙이고 모든 살림을 도맡아하는 경우가 많다. 돈을 모으면 할 줄 모르는 사업에, 도박이나 풍류 등으로 탕진해 버리는 경우를 가장 흔히 볼 수 있었다.김종분 남편은 이런 정도는 아니지만 비슷하다. 초창기 김종분은 돈을 벌기 위해 공사현장에서도 일했고 밥은 큰딸이 해먹고 초등학교를 다녔다.

왕십리에서 장사하는 ‘김종분’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참 많다. 10년 전 3만원을 꾸고 간 사람이 찾아와 돈을 갚는 경우, 은퇴한 친구들이 심심하여 놀러와 바쁠 때는 대신 팔아주고 함께 밥을 먹고, 돈없는 손님에게 외상도 잘준다. 종종 친구들이 모여 저녁먹고 화투도 치는데 종분씨는 하진 않고 그냥 구경하고 자거나 한다.

 

이런 아무 특별할 것 없는 우리 이웃에서 장사하는 ‘아줌마’, 마음 좋고 넉넉한 사람을 따라가다가 갑자기 다른 이야기를 만난다. ‘김종분’은 1991년 5월 25일, 흔히 ‘공안정국’이라 부르는 학생,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이 극에 달한 시점에 학생운동을 하던 ‘딸’을 잃는다. ‘김귀정’ 열사다.

‘자식’을 잃은 엄마는 그냥 엄마가 절대 될 수 없다. 평생 고통을 안고 살아야한다.

거리 장사하는 아줌마 김종분은 더 이상 딸같은 죽음이 나와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시위 현장으로 나간다. 성균관대 학생들 앞에서 종분은 딸을 애도하면서 학생들에게

'귀정이 같은 죽음은 더 이상 나와서는 안된다. 귀정이를 마지막으로 해야 한다 너거들은 죽지마라 절대 죽지마라'

호소한다. 엄마의 애끓는 울음이 교정을 진동한다. 그리고 전국 노동탄압의 현장 학생시위 등에 참여한다.

시위만 했느냐? 아니다 종분씨는 여전히 왕십리를 지키고 있고 사건이 있을 때 한번씩 나가서 활동을 한다. 얼마전 '노나매기 백기완 선생님'의 상에 갔다가 이전 시위현장에서 알았던 많은 이들을 만나 옛날 이야기도 하고 회포를 푼다.

올해는 김귀정 열사의 30주기다. 해마다 5월이면 학생과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열사의 무덤을 찾았다. 초창기는 사람들이 많이 와 음식만 트럭 2대분이었다네,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애도하는 사람이 많다한다.

김귀정 열사에 대해서는, 직격최루탄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강경대열사’ 사건 충격이 너무나 커서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당시 공안정국은 80여명 정도의 학생들을 대한극장 뒷골목에 토끼 몰이하듯 몰아넣어 1500발 이상의 최류탄을 쏟아 부었으니, 극단적 공포를 조장하여 시위를 진압하려한 과잉 처사이다. 내몰린 학생들은 넘어지고 쓰러져 5겹 까지나 쌓였다하니 현장이 눈에 그려진다. 이 때 자료 화면들도 처참하다.

김귀정의 대학 입학은 가족들에게 큰자랑이었다. 남동생은 당시를 회상하며, ‘워낙 힘들게 사는 동네라 대학 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한다. 동창들은 김귀정이 매우 차분하고 말수 적고 단아한 학생이라 한다. 학비를 벌어야 하니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러면서 동아리 참여와 시위 참여를 했으니 그 얼마나 힘들었을까? 귀정의 일기에는 '아르바이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글귀가 나온다.

귀정의 학생운동은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일상처럼 보아온 강제철거와 강제이주, 공장에 다니는 동네 아이들의 변함없는 가난한 생활을 봐왔기 때문에 시작했다. 귀정에겐 빈부격차와 잘못된 사회적 환경은 이웃에게서 늘 따라다니고 가족에게도 다 해당되는 불공정이었다. 그러기에 힘든 생활에서도 동아리 활동을 빠지지않고, 대표 출마도 히는 적극성을 보였으며 시위 현장에도 다녔다. 엄청난 각오와 체력을 발휘한 것이다.

영화는 처음엔 시장에서 장사하는 수수한 이웃집 아줌마 종분씨가, 잠시 다른 곳에 눈을 돌려 옛 사진이나 자료 화면을 통해 투사 종분씨가 되었다가 다시 시장 아줌마로 돌아오는 장면을 자분자분 들려준다..

딸의 죽음이 한이 되어 가슴에 안고 사는 아줌마지만 죽음 이후에도 장사하는 일에는 변화가 없다. 물건을 사서 다듬고 담고 정리하여 좌판에 두는 일은 일상이다. 비가 오면 좌판을 덮은 비닐에 물이 떨어져 흐르고, 눈이 오면 그곳에 하얗게 눈이 쌓여있다. 그래도 종분씨는 의자에 앉아 마늘을 까거나 파를 다듬거나 옥수수를 삶는다.

 자리잡은 자식들이 이제 장사 그만 하길 궈하고 같이 살자해도 홀로 지내며 장사 나간다. 종분씨가 장사나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딸 귀정’이 때문이다. 장사만 하고 살다가 딸의 죽음으로 가슴 아픈 고통을 얻었지만, 세상에 눈을 돌렸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직업도 엄청 다양하다. 종분씨를 아는 사람들은 한번씩 찾아와 인사하고 물건을 사간다. 종분씨는 그들과의 만남이 딸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마음이고 딸처럼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로 생각한다.

 눈이 나리는 겨울 밤에 종분씨는 느릿느릿 삐뚤삐뚤한 걸음으로 가트를 끌면서 집으로 돌아간다.

 

 <왕십리 김종분>은 열사 김귀정의 어머니 이야기이다. 열사에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은 대부분 열사의 성장과정과 투쟁에 초점이 맞춰줘 있다. 이 영화는 엄마의 이야기이고 엄마의 생활을 중심으로 들려주기에 큰 부담 없이 화면 속에 빨려 들어간다. 투쟁의 이야기는 자제하고 엄마의 현실에 카메라를 두니, 우리가 보는 엄마는 장사하는 그냥 시장의 일반 어머니이다. 그러다가 마이크를 잡는 투사가 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모습에서 공감이 더 커진다. 김진열 감독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엄마를 이야기하면서 투쟁과 삶을 같이 이어나가는 세상 어머니의 고통도 함께 담았다. 고마움의 큰절을 올리고 싶다.

1966 서울출생

1985 한국외대 용인켐퍼스 입학, 집안 사정으로 중퇴

1988 3월 성균관대 불어불문학과 입학, 심산연구회 가입 활동

1989 심산연구회 회장

1990 동아리 연합회 총무부장

1990 11월 동아리 연합회 부회장 출마

1991 525공안통치 민생파탄 노태우정권 퇴진을 위한 제3차 법국민대회참가

                    대한극장 부근에서 백골단의 집압에 의해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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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십리 김종분 Kim Jong-boon of Wangshimni , 2021 제작

요약 한국 | 다큐멘터리 | 2021.11 개봉 | 12세이상 관람가 | 102

감독 김진열

출연 김종분, 김귀임, 이재필, 정유인

 

 

50년 넘게 노점을 해온 팔순의 김종분.

왕십리역 11번 출구 터줏대감이자 현역이다.

 

자식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려고 시작한 일인데,

자식 거둘 일 없어진 지금도 그곳을 지키고 있다.

30년 전 길 위에서 딸을 잃었지만, 더 많은 자식들을 얻었다.

 

종분 씨는 딸 잃은 길 위에서

옥수수를 삶고, 가래떡을 굽고, 깻잎을 갠다.

오늘을 산다.

왕십리에서 50년 넘게 노점을 해온 김종분 씨의 삶은 경이롭다. 여든셋의 나이에 이제 노점을 접어도 먹고살 만해졌지만, 김종분 씨는 그를 찾아오는 손님이 있어 일을 그만둘 수 없다. 그건 손님도 마찬가지다. 김종분 씨가 거기 있으니 찾아가는 일을 멈출 수가 없다. 옹기종기 쪼그려 앉아 찐 옥수수와 구운 가래떡을 나눠 먹는 김종분 씨의 노점은 지상에서 가장 작고 소박한 낙원처럼 보인다.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서로를 보살피고, 먼저 간 딸이 꿈꾸던 세상을 상상하며 김종분 씨는 그 길 위를 평생 지키게 되었다. 한참 후에야 알게 되는 사실이지만, 그는 고 김귀정 열사의 어머니다. 우리 사회의 그늘에 있는 작은 존재들에 눈 밝은 김진열 감독은 김귀정 열사 30주기 추모 다큐멘터리를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찍었다. 자주 가슴이 미어지지만 내내 따스한, 어느 경이로운 삶에 바쳐진 헌사.

(2021년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강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