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전시

박창수와 음악

무거운 빈가방 2010. 4. 4. 00:36

수요일- 시리어스맨, 금요일 - 인력자원부와 클래스 토요일 - 그린존

 

총4편의 영화를 아직 정리하지 못했다. 오늘은 오랜만에 친구와 관악산을 등반하고 내친김에 중앙시네마에서 그린존 까지 보니 정리가 걱정이다. 돌아와 목요일 OST 강좌 정리하니 벌써 하루를 넘기고 일요일 0시 5분이 되어버렷다. 내일 오전으로 미뤄야 겟다. 얄량궂은 이것 하나 한다고 밤잠을 설쳐대고 허둥지둥하다니! 게다가 반복되는 단어들에 내 스스로가 짜증이 난다. 어젠 바깥아내에게 '너무 힘들다. 보는 사람도 없고 의견을 나누는 것도 아니고 힘도 드니 마 그만하자' 하니까  ' 일기 아닝교, 자기 정린데 그냥 적으면 되지'라 한다. 머 살다보면 들리는 이야기 치고 틀린게 어디있겠노. 하는 것이 어렵지. 지금껏 살아오면서 글을 이리 많이 적어본 적은 없다. 올해 적은 글만 해도 작년까지의 평생 적은 것에 버금간다. 어쩔 수 없이 적은 숙제 등은 빼고... 하긴... 내 기록인데 뭐... 과거의 기억들을 지우는 작업을 세상이 해도 그냥 적는기지.. 가끔 빠자 먹더라도 너무 부담만 안가지몬 나쁠 것은 없지않나?!

 

오늘은 지난 2월 초에 ' 하나를 위한 음악재단'(http://music4one.org/)에서 있었던 연주회 -  얼떨결에 경험한 최고의 날에 대해 간략히 정리한 것을 올린다.

 

 2/4(목) 박창수

 

생에 가장 특이한 경험. 다시는 경험할 수 없는 그런! 이 행복을 적어봅니다.

(* 정리자 글, -- 연주가 박창수 말)

 

찌라시엔 이렇게 적혀있다.

 

박창수 Park Chang Soo

1964년 서울생. 작곡가이자 세계 20여개국에서 활동해온 즉흥 음악 피아니스트 (Free Music) 로 뮤직 퍼포먼스(music performance) 분야에서 독창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인물 중 하나다. 서울 예고와 서울대 음대에서 작곡을 공부한 박창수는 6세부터 작곡, 8세부터 피아노, 14세부터 뮤직 퍼포먼스를 시작하였고, 1986년 바탕골소극장에서 뮤직 퍼포먼스 <Chaos>로 공식데뷔, 자신의 매 작품마다 다른 양식과 형식을 통하여 새로움을 추구해왔다. 또한, 세계 각국에서의 음악 활동과 함께 컴퓨터, 인스털레이션, 영상 등을 복합적으로 이용한 총체적 예술작업과 무용음악, 연극음악, 실험영화음악 등 무대 음악 작업을 함께 병행 해온 그는 전주세계소리축제 뮤지카 아타락시아 음악감독, Voice of Asia 음악감독, 소니마주 음악감독, 2008.2009 서울 프리뮤직페스티벌 음악감독 등을 역임했으며 2002년부터 한국에서는 최초로 하우스 콘서트 (http://freepiano.net) 를 240여 회 기획,진행해오고있다. 특히 2003년부터 40여 차례 무성 영화와 프리 뮤직과의 접목 작업을 통해 국내외에서 프리뮤직의 대중화를 시도해오고 있다.  

 < Free Music 이란… >

Free Music은 정해진 프로그램 없이 공연 당일 연주자의 즉흥, 즉 리듬, 음계, 화성의 고정된 제약을 거부한 상황성에 기초하여 만들어지는 음악입니다. 이는 청중 그리고 연주자 간의 교감, 공연 장소의 분위기, 연주자에게 축적된 삶의 경험과 생각, 연주 스타일,단련된 기교가 한데 어우러지는 음악이고, 생동하는 기(氣)의 음악이며 그 전개를 예측할 수 없는 음악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연주자의 내면세계를 무대에서 즉흥적으로 표현하는 Free Music은 함께하는 연주자에 따라 현대음악, 민속음악, 재즈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도 융합할 수 있는 폭넓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찌라시를 받아봤을 때 매우 특이한 인물이란 생각을 햇다. 미술계에서는 다양한 인물을 볼 수 있는 것에 비해 음악계에서는 클래식처럼 고전 스타일 그대로 색다른 인물을 보기란 한국음악의 현실에서는 매우 어려운데 이 친군 다르다 싶었다.

14살 때부터 행위예술(요사인 퍼포먼스란 말을 많이 사용하나 그 때 번역을 우짜꼬하는 고민을 하면서 행위예술이란 단어를 썼다고 한다.)을 시작하였다 하니 그 특이함은!

게다가 무성영화를 보면서 음악을 연주하겠다 하니 요사이 영화 마니아를 자처 하는 나로서는 기대를 가질 수 밖에.

이게 웬 떡이냐. 오늘 ‘안달루시아의 개’를 해 준단다. 요놈의 개는 얼마 전 봤던 ‘리틀애쉬- 달리가 사랑한 그림’에서 잠시 맛만 보여준 그 영화다. 초현실주의의 시조이자 가장 위대한 영화로 칭하는 그것. 젊을 때 애인이었던 스페인의 위대한 시인 로르카의 고향 안달루시아, 로르카는 자신과 결별한 달리가 이 영화를 친구(감독; 루이스 부뉘엘)와 함께 만들자 자신을 비꼬고 있다며 싫어했던 영화.

눈을 자르고, 손에서 개미들이 기어가곤 하는 흑백무성 영화에 맞춰 그는 피아노를 친다. 그 사이사이에 뭔가를 두드리는 것 같은데 마치 꽹가리 소리 비슷하다. 영화는 매우 짧으나 연주는 대사 보다 더 치밀하게 다가온다. 이 영화는 마치 이 친구의 연주를 위해 만든 것처럼. 폐부를 쥐어 짠다.

뭔가 행위를 보여 줄 것이라 기대했는데 그냥 피아노와 꼭지 뺀 양푼이 뚜껑을 두드리는 것으로 안달루시아의 개에 대한 연주가 끝났다.

이 친구 이야기를 그냥 정리 해 보겠다.

-- 변사는 우리나라 만큼 활성화 된 나라는 없었다. 일본도 잠시였고 유럽도 마찬가지다.

비극을 희극(질문에 대한 답)으로 표현하는 것은 잘안되더라.

한번 한 것은 그대로 재현이 안된다. 할 때 마다의 감정이 다르다.

질의) 무의식적인 흐름을 건드린다. 기쁨, 즐거움의 감정적 표현을 말하기 어려운데

-- 답) 내가 뭘 하는지 모를 때가 더 많다. 구조도 가지고 잇는 것 같은데 다른 가능성을 많이 찾을 수 있는가? 는 고민들. 공허한 경우가 많고 외롭다. 이런 식으로 언제까지 해야 하는가는 생각도 많이 한다. 퍼포먼스 창립맴버(7명 중 한명)인데 동료들도 내 음악 듣기 힘들어 했다. 왜 이런 삶을 살까는 고민이 많았고 평론가들 조차 나를 터치 안했다. 오히려 미술 쪽이 날 건드리더라.

도저히 견디지 못하겠다 싶엇는데 시골에서 2년 정도 있다가 ‘세상 밖으로 나가자’하여 음악인과도 교류했고 하우스콘스트 등을 하게 되었다.나이들면서 말이 많아지는 듯하다.( * 이 친군 말을 참 못한다. 질문에도 바로 대답하는 법이 없고 눈을 감고 한참 생각하다가 답을 한다. 매우 느린 어조로 천천히. 입을 여는 모습, 눈을 감고 있는 모습 모두가 음악 같다. 그리고 답을 기다리는 시간 내내 사람을 뭔가 긴장하게 만든다.)

-- 공연장 분위기는 20분이 늦어서 짜증이 났다. 제 시간에 하는 못된 사람인데... 그래도 이 곳 분위기는 다른 느낌이다. 긍정 부정적인 면이 있는데 나는 여기에 쳐들어 온 사람이다. 즐기려고 온 것도 아니고 이곳 분위기 흔들겠다는 못된 심보도 잇다. 면도칼 장면에서는 짜증이 표출 되엇다.

 

* 여기서는 연주가 마치면 와인 파티를 한다. 파티라 해야 와인 2병 정도다 사람들 한잔씩 하면 끝이다. 음악 기부활동을 하는 곳인데 연주비 2만원을 받는 것으로 되어있으나 지금까지(3번 참석) 돈 내는 사람 한번도 못봤다. 그러니 비싼 와인 많이 내어놓을 수 없겠지. 와인 하잔 하면서 연주를 한번 더 청했다. 그러자 아무나 같이 연주하자고 한다. 어느 아가씨를 데꼬 나가더니 피아노에 나란히 앉는다. 그러면서 하는 말 ‘사실 어제 둘이 만나서 연습했다’하곤 연주를 시작한다. 아가씬 눈을 지그시 감고 피아노 건반을 눌리고 이 친군 피아노를 우악스럽게 치다가 꼭지 없는 냄비뚜껑을 피아노 건반에 두드리기 시작한다. 괭가리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소리. 철로 만든 피아노가 바람과 물을 만나 부수어지는 느낌이다. 연주가 끝났다. 또 한마디.

 

-- 소리들이 어떤 구조를 가지느냐에 따라 음악이 되기도 하고 잡음이 되기도 한다. 배열, 분위기에 따라 구조가 깨진 상태로 연주했을 때 맞다 틀리다가 아니라 잡음이 될 수도 반대로 잡음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음악이 될 수도 있다.

참 구구절절 마음에 드는 말만한다. 삐딱하면서도 자유를 구하려하는 자는 다들 비슷할련가?

 

* 갑자기 한명만 더 모시겠다한다. 피아노를 칠줄 모르는 사람이면 더 좋다고 한다. 모두 쭈삣거리는 것 같다. 당연하제. 연주회 보러 온 이 사람들 모두 음악 전공자들이다. 자격이 없다. 그라믄 누가 가야하노? 내 밖에 없는 것. 용기. 그리고 피아노 앞.

긴장하지 않을 수 있는가? 피아노 피자도 모르는 내가 음악 전공자들 앞에 앉아서 건반을 두드린다. 오줌을 쌀 지경이다. 그러나 세월은 사람을 많이 뻔뻔스럽게도 하는 갑다. 이 친구의 요구는 알아서 치라한다. 그것참... 이것만 두드려라 해 줄 일이지. 뭘 알아서 하라고 왼손가락 두 개를 사용하여 건반을 눌렀다. 그러자 다른 손들이 자유자재로 나를 지나갔다가 한참 있다가 다시 온다. 난 또 오른손가락 두 개를 더 사용했다. 이제 내가 연주자 아닌가베? 네 손가락을 사용하고 나중 가운데 손가락까지 했으니 무려 여섯 손가락이다. 손가락에 잔뜩 힘이 들어가니 손목도 아프다. 가운데 손가락을 쓰는데 힘을 빼기 어렵다 보니 마치 양놈들 욕하는 모습이 되어 버린 듯하다. ‘빠큐’하면서.

연주를 마쳤는데도 손에 기가 흐른다. 몸과 얼굴엔 땀이 베여있고 심장은 처음으로 살아있는 듯 쿵닥인다. 군중 속에서 모든 것이 흐른다.

다시 생기지 않을 오늘의 경험.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덕분에 이런 대단한 음악가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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