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공각기동대 - 매우 혁명적인, 그림체의 유려함 그리고 충격

무거운 빈가방 2015. 6. 8. 00:01

공각기동대 (1995) 攻殼機動隊 Ghost In The Shell

 

(아래에는 강소원 평론가가 이야기 한 내용이 두서 없이 적혀있다. 오탈자 많으니 100% 평론가가 말했다고 할 수 없다. 잘못 적은 것도 있을 수 있고...)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3549&videoId=6964&t__nil_VideoList=thumbnail

 

 

일본 애니는 거의 보지 않았다.

 

문화적 거부감이 어릴 때 부터 많았다.  물론 일본 영화도 마찬가지인데 시네마 테크류의 상영관을 다니면서 조금씩 보기 시작했다.

 

그래도 애니는 거의 보지 않았는데 며칠전 <바람이 분다>와 <공각기동대>가 처음인 셈이다.

(물론 꼬마 때 이웃 집 TV서 하는 황금박쥐, 요괴인간, 아톰을 멀리서 목을 빼라 보긴 했고 당시 동시상영 영화관에서도 봤다. 그 땐 다 일본 영화줄 몰랐다.)  

 

처음 만난 <바람이 분다>는 한국인이 가지는 일본에 대한 역사적 아픔을 느껴야 했기에 영화 자체에 몰입되긴 어려웠다.

 

그런데 <공각기동대>는 시작 부터 충격이었다.

 

'기업네트워크가 지구를 뒤덮고 전자와 빛이 거리를 휘저어도 국가. 민족은 사라지지 않은 가까운 미래 정보사회'

 

시작에 나오는 이 글귀가 내 숨을  멎게하고 마는듯했다.

 

지금같은 글로블 시대에 국가나 민족이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럼에도 국가, 민족이란 이름으로 다른 쪽에 대해, 설사  같은 편이라 할지라도 전쟁을 치르고 죽이는

이 살상의 현실이 누구를 위한 것들인가는  생각들이 늘 가슴 한군데 자리하고 있었는데

 

공각기동대는 그 이전에 이런 고민들 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고 철학적이며 기계문명에 대한 수많은 생각들을 질의하듯 던져 주는 것이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인간과 기계의 경게가 모호해지면서 급기야는 혁명이라할 수 있는 완전한 재탄생을 보여주기도 한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뒷배경들의 화려함과 움직임이 상당한 수준급을 이루지만

 

이들의 복잡한 대사, 극히 일부만 사람의 몸이면서 나머지는 기계 인간을 가지고 있는 당시 사람들의 모습들

 

그리고 기존을 토대로 했어되 기존과 완전 다른 초월한 존재의 탄생.

 

환상과 실제의 구분이나 차이 등등

 

나에게 주는 것들은 혼돈과 어려움 그리고 진보에 대한 고민들이었다.

 

내친김에 본 2편 '이노센스'는 대사가 너무 많고 여성캐랙터가 아니라 남성 둘이 중심이란 점에서

 

시각적이나 내용적 으로 1편 보다는 많이 못미치는 듯 했다.

 

2편에서 특이점은 한글이 참 많이 나오다는 것이다.


빛이든 그림자든 어런거리는 물 속이나 밖의 이미지든

 

두개의 이미지가 하나로 합쳐지는 장면들의 아름다움과

 

끝장면에서  두의체가 하나로 합쳐지는 모습들이 많이 닮아있다.

 

공각기동대가 준 충격은 당분간 상당히 오래갈 것 같다.

 

' 영원히 존재하기 위해선 복잡해지고 다양해 지면서 버릴 것은 버려야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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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정보 SF, 애니메이션 | 일본, 영국 | 82 분 | 개봉 2002-04-12 | 12세이상관람가

감독 오시이 마모루

출연 타나카 아츠코 (쿠사나기 소령 역), 야마데라 쿄이치 (토쿠사 역), 카유미 이에마사 (인형사 역), 오오츠카 아키오 (버트 소령 역)

줄거리

때는 서기 2029년, 아시아의 뉴포트라는 도시. 인간의 뇌도 통신 네트워크의 일부가 된 사회에서 가장 극악한 범죄는 ‘고스트 해킹’이다. 이는 인간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광의의 영혼을 뜻하는 ‘고스트’를 해킹해 타인의 기억 등을 조작하고 변경시키는 것. 인형사(Puppet Master)라 불리는 정체불명의 악명 높은 고스트 해커가 유럽에서 뉴포트로 주활동 무대를 옮겼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를 막기 위해 외교상 일어나는 국제범죄, 테러 등에 대해 정보수집과 감사를 행하는 정보기관 공안 6과와 쿠사나기 모토코 소령을 중심으로 한 공안 9과, 즉 공각기동대가 나선다. 일종의 사이보그인 쿠사나기 소령과 그 일행은 사건을 수사하던 중 인형사에 얽힌 비밀을 알게 된다.

이영화의 키워드 : 시리즈, 미래

 

 

 

 

 

 

 

 

 

 

 


비람이분다가  2013년도이니  공각기동대와  가의 20년차이가 난다.

바람'은 21세기 애니로는 예외적인 영화이다
오늘 최근에 만들어졌으면 훨씬 더 시각적으로 완벽벽하게 재현 했을것이다.

 디지털 기술 차이인데.. 미와자키는 cg시대인데도  관심 없고.

오시이는 당시 짐작도 못하는 시대에 cg를 적극 도입하려는 시도를 했다.

기술적으로는 부족하지만.. 부분적으로 시도. 2008년도 디지털 발달 이후 오프닝과 부분 부분만 바꿔 재개봉 하기도 한다.

디지털 기술이 애니와 영화 전체에 미친 영향이 크다.
일본 애니는 문화 수출품 중 가장 성공적 분야이다.

95년이면 당시 공각기동대는 오타쿠들의 전설 레전드 위치에 오르지만 상영 당시는 12만 정도 봤다.

미와자키의  <원령공주>는 1300만 관객.

비교하면 백분의 일도 안됨..

공각기동대는 당시 관객에게 낮설고 말하고자 하는게 포괄적으로 수용되기엔 급진적이었을 것.

동시대 실시 까지 포함해도 이것을 넘아서는 세계관을 보여주는 영화가 있나 할 정도이다.


디지털에 관한 이미지 변화 인데
오시이가 크게 망하고 있을 때 최고영화 베스트텐 절반이 애니였다
오시이는 지금도 주류가 아니다 저예산을  만든 것도 아니지만..

감독 인지도에 비하면 관객 별로 없음
누적관객수는 미와자키에 버금가지만 당대는  '일본 안에서는 저주받은 걸작' 으로 평가되었다.

미국 관객에게 아주 빠르게 받아져 빌보드 안에서 아시아 유일하게 1위 함.

애니가 가진 오늘날 지위...


1895 영화가 등장. 19세시 끝무렵..

등장이전엔  예술이 가지는 성격은 원본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있다


19 세기 이미지는  원본 이미지  ㅡ 나머진 복제 가짜가 된다.

예술의 구분. 경계가 뚜렷. 모나리자는 다빈치 그 그림 하나 뿐..

예술의 증거로서 아우라가 있고. 현실 안 어떤 것도 다른 형태나 재현이니 안된다
 즉 예술의 혼돈은 없음  ( 아우라란 독일의 철학가 발터 벤냐민의 예술이론이다.  예술 작품에서 흉내 낼 수 없는, 은근히 뿜어져 나오는  고고하고 독특한 매력이나 분위기를 말한다. 꽃에 비유하자면 향기 같은 것이다.

 
영화의 시대 도래 ㅡ 이미지 재현의 예술 매체 전반에 혼돈
원본과 복제의 구분 모호 .

20세기 ㅡ 복제 이미지 .. 사진 영화 등


처음 사진은 예술도 아니었다.. 기계가 복제해낸 것일 뿐.. 사람의 역할이 없음.. 예술임을 증명할 아우라가 없다..

프린터 만들면 프린터간 구분이 안되고 원본이 없다. 원본은 실제 있는 사람 등등이 원본이 됨. 기계 복제 시대의 예술은 그 의미가 모호 복잡해짐.


벤냐민 논문 ㅡ 이시대 아우라가 사라진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렇게 슬퍼하지 않음. 아우라 사라져도 예술이 변화된 것으로 봄
이전은 특수계층의 향유라 봄.

박물관 형태로 민중들에게 널리 공유되는 시기는 20세기 들어서이다.

복제시대는 누구나 즐길 수 있다는 것. 그러므로 아우라 상실은 애도할만한 것이 아니다.


21세기 복제이미지 굴절 ㅡ 디지털의 등장으로(1990년대 정도 등장) . 

변화 등은 너무나 급속함.

디지털  시대의 영화에 대해선 학자들도 단정 짓지 못하고 긍정도 부정도 안함. 받아드려야 할 것으로는 인식.

복제이미지 안에서도 21세기 이미지는 원본 자체가 사라진 .. 현실에 없는 것을 디지털로 만드는데, 있는 것 처럼 너무도 생생함. 어느것이 상상이고 실제인지 구분 안됨..

시뮬라크라 ...이런 말들 등장
애니가 수혜 많이 받음. 실사도 디지털의 환영, 환타지가 너무나 생생.. 애니와  실사의 경계 구분도 애매.

아바타 ㅡ cg는 만화와 실사의 복합..
생성 이미지 등장했을 때 먼저 받아들인 것은 헐리웃의 sf영회들
애니도 질적으로 변함.. 공각기동대는   일본 안에서는 첨단

헐리웃엔 최초 100프로 디지털 영화. 픽사 ㅡ <토이스토리>(1995)가 나옴
토이의 인형은 우리가 가지고 노는 것과 비슷. 토이에서 가장 부자연스러운 것은 인간... 쉽게 받아드려짐
몇년 뒤 ㅡ <파이널판타지>(2001)... 완전 이미지를 디지털로.. 사람 재현이 실사와 가장 유사한 방식. 머리카락 피부 모공 까지 생생하게 재현해냄.

 하이퍼리얼리티... 이 감각은 생생하여 시각적 충격을 준다. 철학적 개념으론  '언캐니 밸리 uncanny valley'
로봇 만들 때 현실 존재 않지만 사이보그 형태 안드로이드 형태 를 관객이 가장 편하게 받아드리려면 인간과 유사해야 된다. 인간과 유사하게 만드는 형태로 스타워즈의 로봇 팔다리와 머리 등 사람 구조와 닮은 것을  떠올려보면 됨
머리 팔 다리 등 인간 형태.

인터스텔라 로봇은 팔 다리만 있음..그러니 친근감은 느끼지 못함.. 이런 형태로 계속만들다가 기술 발달로 표면도 피부처럼 말랑하게 눈썹까지도 재현 가능하다 이것을 계속 밀어부침.. 너무 생생 화장도 다 하고..
사람들은 이것을 오히려 섬득하게 느낌 '언캐니밸리'라 함..

친근 이 아니라 섬득.. 마치 좀비 같음. 어느 순간 갑자기 뚝 떨어지는 것.. 섬득함의 계곡에 빠진다...


파이널판타지가 이런 형태다..
지나친 정교함으로 유사하지만 실제 사람이 아니다라고 느끼게 되는...


<폴라익스프레스>(2004) ㅡ 파이널 직후 등장.. 파이널과 똑같은 운명.. <파이널판타지>는  모델이 없지만 <폴라익스프레스>는 톰행크스가 모델, 그 연기를 찍어 애니화 함.. 이것도 언캐니에 빠짐.

이것을 가능하게한 장치가 모션 캡쳐..

센서에 포착된 정보가 형상 만들어냄..

아바타를 기점으로 센서로 모을 수 없는 정보 .. 눈동자. 모공의 움직임 등..

아바타는 보안 위해 센서에다 머리에 카메라 달아 배우의 모든 움직임을 축척함..
<틴틴>(2011)에 작용 됨.. 만화가 원작.. 그림체는 매우 단순한데 모두가 배우가 연기.. 여러 캐랙터가 실사 괴정 거쳐서 애니로 옮김.. 우리가 보는 화면 안에서는 어떤 배우가 했는지는 사라지고 생생함. 움직임의 자연스러움이 나타남
버추얼카메라로 재현함.

디지털 등장으로 실사와 애니의 경계가 애매해짐..
반지의 제왕의 골륨... 애니의 캐랙터와 뭐가 다룬지? 실제 없는 생명체를 구현하는데 cg안의 현실과 뭐가 디룬가?
생성 이미지의 등장으로 환영의 이미지와 실제 이미지 구분 모호하고 구분도 의미없는 시대가 됨..

미래사회 그린 영화들은 실제와 환영의 구분. 인간과 사이보스의 경계 등에 대해 질문을 많이 하게됨..

오시이 영화 21세기 주제를 다룸
공각기동대 등장은 <블레이드 러너> 영향 많음 이후 공각 14년 뒤 <메트릭스>(1999)
거의 빼꼈다할 장면도 많음. 메트릭스 성공이후 <공각기동대>가 재상영 되기도 함..


오시이는 <매트>와 <공각>을 비교하는 것을 별로 안좋아함...

 

보드리아르의 시물라시옹이 등장하는데 21세기 생성이미지와 비슷한데 현실에 존재 않는 가상의 이미지가 장악..
빨간약 먹고 현실과 메트릭스 보는 것..실제와 메트릭스의 구분 모호
1편은 실제에 중심을 두나.. 2.3편 가면서 점점 주류의 시선으로 포섭됨
공각은 <브레이드러너>나  <메트릭스> 보다 훨씬 더 급진적이다.

인간과 사이보그 기계와 정신의 문제의 우월적 지위. 휴머니즘의 복귀인 보편적 가치를 전복시키면서 끝까지 밀어부침.. 처음 보면 많이 당혹 스러움...


19c 원본이미지
20c 복제이미지
21c 생성이미지
하이퍼리얼리티
언캐니밸리 uncanny valley

 



함축적 대사가 많아서 한꺼번에 정리가 잘안될수도 있음
오시이는 9년뒤 후편 이노센스도 또 망함.. 제작사가 흔들거림
'내 관객은 만명쯤 되는 것 같다.

영화 한편을 100만명이 보는 것과 만명이 백번 보는 것이 비슷한 것 아닌가?'

 극소수의 국제적 광팬들이 엄청 많고 영화계 안에 메이저 중 메이저 쇼스키 형제 메트릭스
 카멜론 아바타. 스필버그는 <공각> 실사판 3d를 만든다 함.. 여주인공으로 요한슨..


96년 처음 봤다 영화제에서. . 당시 일본영화는 부산영화제에서만 볼 수 있었음.. 한국에 숨어있는 팬들이 실체화되는 현상.. 전극에서 몰려와서 패닉상태에 빠짐.. 엄청난 것 본 것 같은데 이해는 잘안되었음..
<블레이드러너> 연상 장면들이 많다. 브레드는 sf 영화에서 전과후로 나뉠 장도이다. 광범위한 영향.. 공각도 마찬가지

오시이는 보면서 좌절도 했다함. <블레이드러너>뛰어넘는 영화 만들기 힘들겠다..

<공각> 음악도 일본 고어이고 전통음악도 관련.. 카와이 겐지.. 오시이의 영화 대부분 맡음..오시이는 음악 비중이 50%는 된다. 카와이 없인 불가능하다 할 정도


요즘 워낙 매끈한 형태 많이 있어서 시각적 이란 이야기 하긴 어려운데 CG 이용하여 적극 하려하지 않았지만 CG에 거부감도 없음. CG가 자신이 생각한 상상 세계를 이미지로 표현할  것인가? 그림이 셀이미지의 한계로 넘는다면 쓰려함.
영화시작 쿠사나기의 탄생기 보여주는 푸른색 모니터 숫자..장면.. 디지털로 이뤄진 것.. 일본스텝들 이름을 숫자로 전환시켜 올린거라네.. 광학위장술. 낙하시 도시 풍경 속에 육체가 스며드는 장면
목뒤 단자 통해 영혼으로 통신. 모니터로 재현.. 이 구현된 이미지들이 그래픽.

 

후반부 어린 소녀 육체로 재탄생 방밖에서 부터 카메라가 쭉 들어가는데 애니에 이런 긴 줌 (트레킹)사용이 거의 없는데 . 애니는 판에서 찍으니 종이 크기 한정으로 그림의 디테일이 잘 보정안되니...

<바람이 분다>에서 마의산 보려주고 호텔 보여주는데 굉장히 큰 셀애니 대규모 풍경같은 장면이었는데 여긴 그래픽..

컷 하지 않으면서 밀도를 보여줘야 하니..쿠사나기가 있고 뒤 도시 배경으로 쿤 그대로 있고 도시 배경이 미세하게 바뀌는데 .. 쿠사나기의 셀 뒤는 그래픽 2개를 결합시킨 장면.. 여기선 어느 곳이냐는 게 중요한게 아니고 디지털로 환싱과 실제가 구분 안되는, 위계가 무너지는 시물레숑의 세상을 구현.

완벽히 전복시킨 것이 21세기 세계관과 비슷

미국상영시 헐리웃의 모든 영화의 기술을 초월한 영화다 라 평가

쿠가 스스로 하는 질문 여러개

서사 두개 축

1. 인형사라는 국제적 테러리스트 ㅡ 사실은 실체 없는 프로그램..

2.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질문

단순히 내가 누구냐가 아니라
만들어진 사이보그 육체안에 영혼이란 것이 머뭏 수 있을까?
청소부 기억하는 감정이 모두 입력된 것이 환영인데 복원 안됨.. 컴 바이러스 먹듯 의식 입력시키면 환영 등이 구분 안됨
쿠사나기는 만들린 것을 알고 극소수 일부만 나라고 아는데 인형사의 존재를 보면서 나를 더 고민

두개의 축이 하나의 모티브로 이어디는데 자연스럽고 완전 설득 당한 것은 아닌데 몇번 보니 괜찮음
여러번 반복 이미지. 분신 도플갱어. 또 다른 자아.. 이미지로 보여주기도 대사로 강조하기도

쿠사나기 배타고 지나가는데 커피숍 여자 앉아 있는데 내려다 보는 여자가 쿠와 매우 닮음. 똑 같음 육체를 가진 존재 있을 수도
바투와 대화 잠수할 때 장면.. 사이보그 잠수 취미가 위험할낀데.. 수면 올라올 때 시각적으로 뚜렷이 보여주는데 수면 위 반영된 이미지가 따로 있다가 하나로 합쳐짐
불안 공포 어쩌면 희망. 물위로 떠 오를 때 또 다른 내가 될것으로 희망한다. 다른 나에 대한 상상 환타지의 재현 이런것
인형사 마주 하는 잘면에서 나를 닮았다.. 이들은 섹스 젠더가 무의미한데 인형사는 남자 목소리 형상은 여성. 실제와 허상.. 어느것이 실제고 허상인지

내가 나일수도 있는데 너무도 많은 요소가 필요하다.. 목소리 등등.. 근데 이 구성이 나를 한계 짓는다.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것.. 애초 부터 있었던 쿠의 욕망.. 나를 초월한 이상이 되는 것. 쿠 질문 이 이후에도 내가 나일 수 있느냐? 답 비웃듯 변이 불안전한 개체 둘이 결합 했을 때 다른 3의 개체.. 다 죽는다. 관객은 같은 마음이길 원하는데 영회는 부정 않지만..

 

새로 탄생한 소녀의 대사 '이제 어디로 갈까 네트는 광대해...'
새로운 존재 결합이란 것에 대한 암시를 남기명서 끝남


영혼의 문제 휴머니즘 육체, 기계가 가진 것들의 문제 등 여러 생산을 불러옴..
불쾌할 수 있는 건 기본적 관념들.. 종류로 뚜렷이 구분 힘든데

3명 바트 쿠. 토우사..
토는 과거의 인간 버트 뇌만 인간
이 시대 인간은 컴 처럼 언제든 교체 가능 여기에 정체성이 없다.

쿠는 인간의 뇌가 아주 조금만 있는 사이보그. 쿠가 감정 드러내는 장면 없다. 이리 위계화된 인간이 있는데 오시이는 그럴 의도 없다
인간성이 뭔가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음.

 

러너는 훨씬 더 단순한데 닮았음
2019 지구 황폐. 별 개척. 별 노동자가 사이보스. 리플리컨트라는 4년 수명. 가짜 기억 부여. 반란 등을 염려하여..
리플리컨트들이 일부가 지구로 돌아와 자기 만든 과학자들 찾아 수명 늘여달라는 청원.. 포드가 이들을 처형.. 러너와 리퍼리컨트와의 대결.. 다 죽음..

노동자 계층 떠올리니 혁명 모티브로 읽기도 함.. 리 들을 인간 보다 더 인간 적으로 그림. 영혼도 없고 조작된 기억인데도 더 인간적. 인간에게 철저히 배신 당하고 처형당하고.. 외려 인간도 구제.. 예수가 자신 희생하듯.. 십자가 형태로 마지막 장면.. 이전 헐리웃이 사이보그에 대한 두려움 느꼈다면 그 가치를 뒤틈


공각은 인간적 자체가 아예 고려 되지 않음. 오시이는 인간이 다른 존재되는 것 두려움 느낄 필요없고 떨칠 필요있다. 인간 중심적 사고에 대해 반문 정도가 아니라 문제 제기의 태고 있음
강아지 몇차례 등장 하는데 중요 안한데 길에 그냥 서 있는 개가 개같은데 완전 달라진 세상에 그대로 남아 있는게 개의 존대. 인간 보가 더 나은 존재 인가? 데카르트의 생각 존재를 ... 생각의 주체가 나인가? 존재하는 나는 누구인가? 를 질문하듯..
이 질문이 동시대 관갹들에게 주는 메세지가 있는듯.

영화의 모든 것이 네트로 연결되어 있어 빛으로 가득한다. 국가와 민족이 아직 사라지지않은 가까운 미래...
아이티 발달.. 실제와 환상 뒤섞이고 경계 모호 한 것을 현실에서도 격는다. 생각 주체 나이고 영혼은 자아 정체성 확고한듯 느껴지지만 환상일 수도 있다.
모든 근대적 유산은 자신이 주체라 배워왔지만 허위일 수도
60년대 레오막시스 등이 많이 등장할 때 전세계학계 스타 같은 존재
루이 알티세...
인간 가치 틀짖는 규제 및 정치 등등 마치 정치가 인간을 좌지우지 하는 듯 하지만 인간의 이데올로기 규점은 법 제도 뿐만 아니하 둘러싼 세상위 모든 시스템이 나를 규제한다. 나의 주체성은 환상이다.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 가족단위 학교 병원 군대 신문 방송 이 모든 것들이 날 훈육 시키는 기관들이 훈육될 기관을 길러내는 것이 규범화된 것일뿐.. 고분고분한 인간들은 스스로 잘났다 생각 하지만 아닐 수도
네트에 의해 조작되지 않더라도 순수한 내가 진짜 나인가? 주체성 정체성 보장 가능한가? 매체나 시스템의 영향이 우리 생각 보다 훨씬더 무시무시한 시스템화 되어있다.
주체성 인간 육체 기계 문제를 보더 적극적으로 펼쳐 놓은 영화인.

쿠가 떠나면서 고린도서 이야기 어린아이 아이 말 그것을 떠난다..

 

공각의 평가중 하나

인간 시대의 목시록
기계 시대의 복음서이다.

 

발트 ㅡ 지배작으로 받아드린 생각들을 넘어서야 한다.. 새로운 시대가 왔다.. 복제가 상실이 아니다...
굉장한 통찰.. 영화가 예술이 아니다는 시대에 열등한 지위에 대한 의문을 하며 다른 예술을 주장..

공각도 20년 지났지만 다른 세계관을 전개시킬 가능성이 비관만이 아니다 다른 생각을 해 볼 필요도 있을듯

일본 애니 안에 전전 세대가가진 것 보면
미와자키는 '살아라 희망 보면서 나아가라.'
전후 세대 애니메이트 오시이 뿐만 아니라 폐허 위에서 시작

사이보그 등장,  희망없다 디른 세상 보려줌.. 희망도 안보여줌. 이전에 상상도 못할 인형사와의 결합....

 

미 비평가
물의 이미지 많이 나옴
태아의 이미지로 완성. 물속에서 태어남.. 광학위장복입고 쿠는 얕은 물위에 그림자로만 반영. 여러번 반복
물 이미지로 생명 여성적인 것이 많이 보인다. 디스토피아 그린 헐리웃이 남성적 힘에 의해 재정비 그린다면 공각은 여성적 무드 분위기 가득하다.
낙하 이미지의 반복. 외교관 암살 장면 높은 빌딩 나신 자유 낙하하듯..케이블선이 탯줄 이미지..
낙하 다이빙 은유적 낙하(다이버 하는것)
여성적 모티브로 가득..
오시이 이야기 중 하나
'인간이나 인간성에 대한 보편적 절대성에 대한 반문.. 인형이나 개 보다 더 나은 존재라 할수 없다. 두려워 해선 않된다'
일본은 공각이 자기 것이라 자부심 대단..

스타워즈 러너에 진 빚 한방에 갚았다라 자부심.


이노센스 칸영화 최초 경쟁.. 사상가 인용 많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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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목록뉴스 | 씨네21 | 2015.01.12 09:16:01 | 조회 3907

[해외뉴스] 스티븐 스필버그도 원했던 '공각기동대' 실사판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

드림웍스의 오랜 꿈이 마침내 현실화된다. 1월5일 <할리우드 리포터>에 따르면 드림웍스가 시로 마사무네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오시이 마모루의 전설적인 SF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1995)를 실사영화로 만들 계획임을 밝혔다. <공각기동대>는 TV용, 극장판 애니메이션에 이어 게임으로 만들어진 적은 있지만 실사영화로 제작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버라이어티>는 "드림웍스의 수장 스티븐 스필버그가 <공각기동대>의 열광적인 팬으로 그간 실화화를 원해왔다"고 전했다. 캐스팅도 화제다. 디스토피아 세상에서 사이버 범죄조직의 리더로 활약하는 쿠사나기 소령 역으로 <루시>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으로 액션 스타의 입지를 굳힌 스칼렛 요한슨이 출연한다. 구체적인 각색 방향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배경은 북미이고 대사는 영어로 진행된다. 연출은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2012)의 루퍼트 샌더스가, 각색은 <릴럭턴트 펀더멘털리스트>의 각본가 빌 윌러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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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포리얼리즘(hyperrealism)   

http://tip.daum.net/openknow/39324958?q=%ED%95%98%EC%9D%B4%ED%8D%BC%EB%A6%AC%EC%96%BC%EB%A6%AC%ED%8B%B0

<극사실주의> 極寫實主義 (hyperrealism), 즉 대상을 생생하고 완벽하게 그리는 기법.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일어난 새로운 경향의 회화와 조각으로 같은 시기에 독일을 비롯한 유럽 각지에서 시도된 비슷한 경향의 미술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극단적인 사실적 묘사에 의하여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을 일순간 정지시켜 생생하게 사실적으로 강조해 표현하려는 미술의 한 경향이다. 하이퍼리얼리즘계보는 아메리칸 신페이팅파에서부터 시작된 미국적 사실주의 전통에서 찾아볼 수있다. 또 공허하고 정서적으로 마비된 듯한 모습에서 베트남전에 대한 미국인들의 전쟁혐오증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초사실주의(超寫實主義)>라는 뜻이며, <슈퍼리얼리즘(superrealism)>, 포토리즘, 스튜디오 리얼리즘, 샤프 포커스 리얼리즘 등 여러가지 명칭으로 불리기도 하며, 주로 일상적인 현실을 극히 생생하고 완벽하게 묘사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사대적 태마주의에서 일상으로의 복귀는 종래의 <그린다> 라는 의미와 <일상>이라는 문제를 제기 하였다. 주관을 적극 배격하고 어디까지나 중립적 입장에서 사진과 같이 극명한 화면을 구성하는데, 주로 의미없는 장소, 친구, 가족 등이 대상으로 취급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캔버스에 감광제를 발라 사진을 직접 프린트한 작품도 있다. 사진기의 눈이 포착한 영상은 사실인 것이 확실하지만 그것도 결국 실물로부터 떨어져서 자립한 일종의 허구일 따름이다.

 

슈퍼리얼리즘은 세밀한 묘사, 마술적 리얼리즘 등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였던 극단적인 사실주의의 하나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자연주의가 아니라 극도의 사실표현을 의도적으로 채택한 것으로서, 사실주의의 허구성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물론 이러한 허구는 새로운 현실 일 수 있다.

 

포토리얼리즘은 모더니즘미술을 거부한다기 보다는 긍정하는 것으로 볼수있다.60년대 후바에는 사실 많은 사람들이 포토링ㄹ리즘 미술을 비웃었다. 그 스타일이 반동적은 아닐지라도, 그것은 기껏해야 일시적인 유행일부이었다. 아니면 주의를 끌기위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것은 꾸며낸 행동이었고 어떤이에게는 장난이었다. 많은 평론가들, 거래상들, 출판업자들은 이 스타일을 진지하게 취급하려 하지 않았지만 소수의 선구자들은 지원을 해주었다.

1965년에서 1968년 사이에 전시회가 드무드문 열리고 평가를 받았으며, 그리하여 로버트 백틀, 존
클램클라크, 오드리 플랙, 말콤몰리 등의 자각들이 대중의 주의를 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반카프를 제외하고는 어떤 개별적인 작가도포토리얼리즘 양식의 잠재성을 집중적으로 전개시킬 의욕도, 능력도, 모험심도 없었다. 즉 루이스 마이즐이 1973년소호의 프린스가에 그의 두 번째 화랑을 열기까지는 아무도 없었다. 포토리얼리즘은 그렇게 성년이 되어고 
고대해 왔던 지속적이고 완전한 관심을 획득하게 되었다.

 

포토리얼리즘은 오랜만에 처음으로, 해석적 비평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현대미술에 있어서 독특한 것이다. 20세기의 대부분을 '형식주의'라는 딱지가 붙은 비평적 접근방식이 예술사조를 지배하였다. 예술작품은 오로지 그
자체의 검증가능한 내용, 즉 형태, 색체, 재료, 비례 등에 의거하여 판단되어야 하는 것이다. 작품은 그 자체이외에는 어떤 것도 재현하지 않는다. 예를들어, 포토리얼리즘 미술 바로 직전에 나타난 즉자적인 양식인 미니멀아트는 형식적 해석의 가능성을 제공하지 않아다. 새로운 미술은 첫째 주제를 토대로 예술감상의 가능성을 제기했다.이것은 제한되어이던 비평적 접근을 풍부하게 해줄 가능성을 열어놓았다.포토리얼리즘에 있어서 과정이라는
솔직하고 직접적이며 풍부한 예술적 전략을 위한 합당한 주제가 되었다.

 

한점의 사진 이미지는 기계적인 과정을 밟아 나왔을 뿐 , 상상력을 통하여 물질적으로 '조성된'것이 아니다. 사진은 실재하는 것의 겉현사에 매달리는데, 바로 이런 연유에서 사진이 흥미거리나 시각적 리얼리즘에 대한 훌륭한 도구일 수 있는 것이다.

 

극사실주의는 본질적으로 미국적인 사실주의로, 특히 팝아트의 강력한 영향 아래서 일어난 것이다. 따라서 팝 아트처럼 평상의 생활 즉 우리의 눈앞에 늘 있는 진부한 이미지의 세계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팝아트와는 달리 그것은 극히 억제된 것으로써 아무런 코멘트도 없이 다만 그 세계를 현상 그대로 다룰 뿐이다. 감정을 배제한 채 기계적으로 확대한 화면의 효과는 매우 충격적이다. 우리가 육안으로는 식별할 수 없었던 추악함 - 모발에 가려진 점 이라든가 미세한 흉터까지도 그대로 클로즈업되어, 보통이라면 지나쳐버릴 수도 있는 사실성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잔혹한 인상을 받게 만든다.

 

미술은 어느 특정한 콜랙션의 코랙션 대상이 될 수없으며 현장성, 실재성을 띠면서 대중과 유리되게되었고, 그 존재방식에서 실체성과 형상성을 추방함으로써 전통적인 비평가의 기능을 불필요한 존재로 전락시키는 가속적 변모를 노출시켜왓다. 이제 미술가 자신을 포함하여 미술에 관심을 둔 모든 사람이 물을 수 있는 단하나의 물음은 "미술이란 무엇인가? "라는 마지막 afdma이 된것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이러한 불음에 대하여 '리얼리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찾아볼 수있고, 또한 팜아트의 대두와 하계 강조된 일상성과 현장성 그리고 미니멀아트의 평면성과 전면성강조에서 드러난 리얼리티의 새로운 해석의 필요성 , 여기에 고도의 개발된 현대 사진술의 재현성에 자극되고 힘입어 여러형태의 이른바 '새로운 사실주의' 가 나타난 과정을 목격하여 왔으니, 이런 새로운 리얼리즘에 대두는 무엇보다도 먼저, 외골수로 나가려다 궁지에 몰린 현대미술을 역사의 관점에서 되돌리려는 노력의 자연스러운 표현이며,m 또한 '표현'으로서의 예술의 막다른 길에서 '재현'으로서의 예술이라는 또하나의 큰길을 뚫어 예술자체를 구원해 보려는 예술가 자신들의 절실한 요청의 결과라고 이해될 수있다.

 

사진을 택하여 그리는 극사실주의는 자연을 보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보고 그리기 때문에 3차원의 자연물을 2차원에 올길 때 일어나는 이미지와 리얼리티의 부조화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즉 그들은 평면이미지를 평면이미지로 확대하는 것이지 3차원은 실재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재현이라는 문제에서 비켜 날수가 있었다. 또한 사진을 이용하는 작가들은 전체를 구성하면서 종합적으로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극히 적은 부분을 집중적으로 완성시켜나가면서 전체로 확대해나가기 때문에 자신의 감성을 빼 거의 기계가 하듯 객관적인 작업을 할 수 있다.

 

팝과 미니멀 아트에 다 관련이 이으며 미니멀리즘이 지녔던 근본적인 극한점, 즉 삭제, 축소로 인해 다다른 막다른 골목에서 빠져나오려는 시도를 통해서 행해진 반발과 이탈이라는 점에서 팜과 미니멀의 두 측면을 지녔으며 동시에 이 둘을 극복한 아이러니컬한 측면을 지닌다. 가장보수적인 형태의복귀라는 팝아트에대한 하나의반동으로 서 탄생한 하이퍼 리얼리즘은 팝아트의 경우보다그의 등장에이Tdj 화상-수집가의 연합작전이 더 큰역할을 하였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있다.

 

그러나 슈퍼리얼리즘은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예술자체의존재방식에 대한 반성으로서 그 독립된성격이 형성 되었다고 볼수있기 때문에 , 수퍼리얼리즘을 팝아트의 후계자라고 할 경우 이제까지의 작품을 행위에로 전환시킨 팝아트와는 반대로 행위를 작품으로 역회전시키고, 추상미술에의해 거부되고 해체되고 마침내 증발해 버린 주제를 작품에 되살려 놓음으로서 팝아트의흐름에 역행하는 면도있다.

 

하이퍼 리얼리즘은 "정밀사진 같이 대상을 포착하면서도 사진에서 볼 수 있는 포커스가 없는 화면이 특징이며, 될 수있는한 쿨하고 중성적이며 비원근적인 방법을 특징으로 한다. "고 알려져있지만, 1. 주제의 등장 2. 주재제현의 정확성, 정밀성 3. 일상적 소재의 선택 4. 초점을 가지지않는 평면성 5. 표현의 중성화등이 특성이다.

 

이렇게 카메라가 보지 못한 것을 보여줄수있다는 인간시각의 위위성의 회복, 증발된주제를 되살리고 소재를 일상성에서 생활자체로 확대시켜, 과학기술이 아니라 인간적인 것을, 인간 자신을 무대의주인공으로 되살리려는 노력, 그러면서도 화면은 어디까지나 평면성을 유지하며 작가의 표현에 의한 주과적 해석이 아니라 우리앞에 놓여진 객관적 실재롯의작품을 보여주려는 수퍼리얼리스트의노력은 , 결국 사람들에게 '사물을 보는 다른 보다 나은 방법'을 보여주려하는 듯하다.

 

*포토리얼리즘의 작가로 구별하는 기준은

 

1. 포토리얼리스트는 정보를 모으기 위해 카메라와 사진을 이용한다.

2. 포토리얼리스트는 정보를 캔버스에 옮겨 놓기 위해 기계적 혹은 반기계적 수단을 사용한다.

3. 포토리얼리스트는 완성된 작품을 사진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는 가술적 능력이 있어야 한다.

4. 중심적인 포토리얼리스트 중의 하나로 인정되려면 1972년까지는 포토 리얼리스트로서 작품을 전시 했던 작가여야 한다.

5. 작가는 포토리얼리즘 작품의 개발과 전시를 위하여 적어도 5년을 바친사람이어야한다.

 

이상은 루이스 K.마이즐 주장이다. 사실, 포토리얼리즘 이전의 사실주의들은 어느정도 인상을 주의적이었으며, 아니면 적어도 하나의 인상이었다. 포토리얼리즘이 기여한 기법은 장인적 기술과 제도의 기술을 현대예술에 복귀시킨 것이다. 대부분 포토리얼리즘작가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성숙한 포토리얼리즘 기법을 가르치는 학교가 없었다. 그들은 추상회화를 배우고 아카데믹한 회화를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사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펄스타인이나, 몰리는 포토리얼리스트가 나타나기 직전에 영향을 주었던 작가들이다.

 

포토리얼리스트들이 표현매체로서 판화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도 역시 1972년 아니면 1973년이었으며, 그 이후로 그들은 고도로 혁신적인 판화를 많이 제작해다. 포토리얼리즘 판화제작은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데 , 작가들은 그런 문제를 전문적 기술자의 도움을 받아서 해결했다. 판화집들은 순전히 상업적인 의도를 가지고 다소 서둘러 한 일이었지만, 판화에 대한 미래의 좀더 성공적인 시도를 위한 구미를 자극하긴했다.

 

따라서 슈퍼리얼리즘은 , 시각의 다원화를 통해 존재 파악의 폭을 확대시킨 큐비즘의 시각이 일대 혁명이었듯이 , 인간시각의 가능성을 새로운 국면에서 열어보여준 하나의 혁명이라 할 것이다.그들의 작품들은 이제 자기를 더 이상 문제 삼지 않는다. 단지, 보는 입장, 이른바 대상자체의 자기성에만 관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무한히 대상성을 지워간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말레비치의절대주의 회화나 마르쎌뒤샹의 막다른 길을 피하여 가려고 안간힘을 써왔다. 그러나 그결과는 도리어 나르시소스의 비극을 재촉할 뿐이었다. 자기의 허상을 지워버리려던 실험이 오히려 자기를 있게하는 기반을 죽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1960년대에 미니멀아트가 실험보다도 진지하게 그리고 무엇인가 가능한 것처럼 보였으나, 결과적으로 물음의 해답은 원점으로 돌아와 버리고 말았다. 이른바 쉬포르 수포르 쉬르파스의 등장이다. (순순평면), 이는 뒤샹과 말레비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실험이었다. 말레비치의 연장은 말라르메의 백지이며 또 그것은 뒤샹의 기성품이다. 그러나 그것은 표현이 아니라 표현의 죽음이다. 그렇다면 쉬포르 쉬르파스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정의하바면, 그것은 순수자아의 불안이다. 기체와 수분의 어느것도 아닌 수은의 불안한 상태라고나 할까

 

아무튼 이러한 불안은 구조주의의 등장과 하게 더욱 두드러지고 구조주의가 이들 미니멀아트의 지위를 위협했다. 그들은 이제 자기를 더이상 문제삼지 않는다. 단지, 보는 입장, 이른바 대상자체의 자기성에만 관심을 나타내는 것이다.그런의미에서 포스트미니멀은 탈존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미니멀아트가 심리적 실험에서 과학적 방법론으로 옮겨가는 것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팝아트는 미니멀아트의 토양에서 자란 미국적 아트이다. 하나의 기성품은 먼저 그린다는 고전적인 미술행위의 종식을 의미하는 하나의 수단이 되지만, 동시에 팝적인 사물로서의 목적이 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레디메이드를 방법정신으로 계승발전하려는 데서 액션패인팅이 나타나고, 반대로 레디메이드를 목적으로 바라보는데서 팝이 성립된다. 팝의 작가들이 zospel의 뉴프론티어나 케네디, 킹복사의 암살, 반전시위와 같은 시세를 배경으로 그 존재이유를 가졌다면, 이들 하이퍼 리얼리즘의 작가들은 그것의 종말, 이를테면 월남전의 악몽으로인해 모든 미국적인 이상에 대한 환멸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념적인 것, 의미에서는 모든 보수적인 세계관에 대한 반동으로서 하이퍼는 탄생되는 것이다. 하이퍼가 일체의주관성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 사진기를 선택하는 이유는 그때문이다.인상파 화가나 하이퍼 작가들이 한결같이 주관성을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같은 풍경이 되는 것이다.그러나 그들은 이미 있는 것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본래의 것을 확대시킴으로써 일상적인 용품과 관계되었건 팝이 주관성을 배제 한다는 점에서 이미 진보적인 성격을 띤다. 팝의 작가들은 기성품을 크게 모작하여 유럽인의 낡은 문명을 거부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그러나 그 거부의 수단은 어느사이엔가, 은근히 거부의 몸짓이 아니라 긍정의 몸짓으로 수용한다. 하이퍼는 이제 모방하여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그대로 보게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하이퍼는 팝의 후기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주관을 적극 배제하고 어디까지나 중립적 입장에서 사진과 같이 극명한 화면을 구성한다. 팝아트와는 달리 극히 억제된 것으로 극사실주의는 미국적 즉물주의의 발상, 또는 미니멀 아트의 물개성주의와 서로 통한다고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종래의 추상미술로부터의 완전한 이탈이라는 의미와 사진 그자체와 양쪽에 대한 아이러니의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작가들은 팝 아트의 작가들보다 대체로 한 세대쯤 젊은데 작품제작에 사진이나 슬라이드를 직접 간접으로 이용하는 척 클로즈, 하워드 캐노비츠, 맬 컴몰리 등과 사진을 이용하지 않고, 직접 자연의 풍경이나 모델만을 대상으로 하는 필립 펄스타인, 시드니 틸림 등의 두 계열로 나뉘어진다.

 

극사실주의가 조각에 적용될 때는 삼차원이라고 하는 조각의 기본 요건에 따라 한층 실물에 가까워진다. 1960년대 초 에드워드루셔가 제작한 유화와 사진집이 그 선구적인 작품이다. 1972년 도큐멘타전과 미국의 하이퍼리얼리즘 작가전을계기로 정점을 이루었고, 시대의흐름에 대한 역행이라는 비판도 받았으나 대주에게는 어는 미술보다도 인기가 높았다. 듀안 핸슨과 존 드 안드레아의 작품의 한치의 헛갈림도 없는 충격적인 실물을 제시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1. 고잉스 (Goings, Lalph 1928 ~ /미)

 

대학 졸업 무렵까지 추상표현주의 작업을 하던 랠프 고잉스는 1961-62년, 자신에게 추상회화가 맞지 않음을 깨닫고 잡지에 실린 사진을 모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내 팝아트 적이라고 생각한 그는 1967- 68년경부터 직접 촬영한 사진을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2. 리처드 에스테스

 

에스테스는 1967년부터 도심 풍경을 찍은 사진으로 작업해왔다. 거리의 상점을 정면에서 촬영한 사진을 이용했던 추기 작품은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내부 모습과 유리창에 반사되는 반대편 거리의 이미지들이 함께 재현되어 있기 때문에 한 화면에 두 공간의 임지가 뒤섞여 시각적으로 복잡하고 혼돈스럽기까지 했다.

 

70년대 들어 그는 점차 촬영가도를 다양화하고 시야를 넓혀 공간을 확대 시켰고, 70년대 말부터는 작품의 가로 길이를 늘인 파노라마식 화면을 구사하기 시작하며, 그 첫 작품이 바로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이다. 작품의 전형적인 특징인 상점 유리창의 반사이미지를 볼 수 있는 <타임즈 광장, 오후 3:53, 겨울>은 그가 즐겨 이용하는 사각寫角으로 촬영하여 공간이 하나의 소실 점을 향해 사라지는 매우 고전적인 구성을 보이고 있다.

 

 

3. 클로즈 (Close, Sharles 1910 ~ /미)

 

클로즈는 가장 대표적인 극사실주의 작가로서 인물, 특히 얼굴 사진만을 소재로 일관하고 있다.대형 캔버스에 그려진 이 그림들은 증명사진처럼 머리 부분만 확대되어 마치 거인의 초상 같은 이미지로 상당히 압도적이며, 머리카락 한올, 모공, 솜털들과 미세한 부분을 극명하게 노출시키고 있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진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클로즈의 동료 미술가인 조 주커(Joe Zucker)로, 미국 중서부의 자동차 영업사원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일부러 셔츠와 넥타이 차림에 머리가지 단정하게 손질하고 촬영하였고, 클로즈는 이 사진을 그대로 이용하였다.이렇게 클로즈는 인물을 그저 치밀한 묘사의 대상으로 여길뿐 클로즈는 자신의 작업을 '초상화'가 아닌 '머리'라고 부르고 있다.

 

cutedrum | 2006.05.16 10:21 |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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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보드리야르(프랑스어: Jean Baudrillard, 1929년 7월 27일~2007년 3월 6일)는 대중과 대중문화 그리고 미디어와 소비사회에 대한 이론으로 유명한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미디어 이론가이다.

1929년 7월 27일 프랑스 랭스(Reims)에서 태어났다. 그가 한 인터뷰에서 밝힌 바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농민이었고 부모는 공무원이었다.[2] 1956년 그는 고등학교 독일어 선생으로 일하기 시작했고 1960년대 초반에는 프랑스 출판사 쇠이유에서 편집 일을 맡게 된다. 애초 독일 연구자로 출발한 그는 1962-63년 독일 문학에 대한 글들을 발표했고, 독일 극작가 페터 바이스(Peter Weiss), 베르톨트 브레히트, 카를 마르크스, 빌헬름 에밀 뮐만 등의 작품을 프랑스어로 번역했다. 이즈음 앙리 르페브르를 만나게 되면서 그의 영향을 받게 되고 구조주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도 이 때부터 연구하게 된다.[3]

1966년 파리 낭테르 대학에서 르페브르의 조교를 하며 언어, 철학, 사회학 등을 공부한다. 또 그해 10월부터 이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게 된다. 1968년 《사물의 체계》 발간을 시작으로 일련의 중요한 저작을 발표했다. 그는 기호학,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소비사회 사회학을 결합해 현대 사회를 탐구하는 필생의 연구를 시작하게 된다. 1970년 낭테르 대학 전임강사가 된 그는 마르크스의 혁명론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마르크스의 상품 생산 비판을 바탕으로 한 자본주의 비판을 이어나갔다. 이 시기 그의 학문 경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학파, 특히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와 가까운 면을 보였다.[3] 1981년 대표적인 저작인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한국어판 제목: 시뮬라시옹)를 발표했다. 1987년 낭테르 대학을 그만둔 그는 1994년 유럽대학원(EGS)이 설립되자 교수로 참여하여, 숨을 거둔 2007년 3월까지 재직했다.[4]

학문 배경[편집]

그의 사상적 행적은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1968-71년의 포스트마르크스주의 경향, 둘째는 1972-77년의 사회언어학 경향, 그 이후의 기술 관련 예언적 경향이다.[4]

그에게 영향을 끼친 학자들로는 프랑스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 구조주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 독일 철학자 카를 마르크스 등 다수가 있고, 학문적 계파로는 흔히 포스트모더니즘 계열로 분류된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과 거리가 있다는 반론도 있다.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학자는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이며, 보드리야르는 뒤르켐의 지적 전통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5] 미디어 이론과 관련해서는 캐나다 이론가 마샬 맥루한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보드리야르의 이론은 많은 분야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지만, 특히 미국의 현대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앨런 소칼 등에 의해서, 수학·과학 용어를 부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6] (소칼 사건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