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얀리본 -아이는 어른의 거울, 그렇기에 순수하지만은 않다.

무거운 빈가방 2010. 7. 7. 00:26

10-07-05 하얀리본 -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다.

 

 어른과 아이들의 이야기.

  어른은 어른의 세계를 아이들은 아이들의 세계를 펼친다. 매우 담담하게 화면에 담아내는 것들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아이들의 표정에서 뭍어 나오는 스릴러이다. 사람을 죽여야만 스릴러가 되는 것이 아님을 ‘하얀리본’에서 보았다. 내 몸 전체를 감싸는 불길한 기운 속에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보이는 잔혹함은 한둘이 아니다. 나도 그 속에 있었다. 가장 많이 사용한 듯하면서 끔찍한 말 ‘ 사랑하는 너희를 믿는다.’ 내가 말했을 때는 몰랏는데 영화 속에서 이 대사를 들었을 때는 믿음으로 가장한 숨겨진 ‘강요’를 비로소 보게 되었다.

 

 하얀리본을 아이의 팔에 달아주는 부모의 심정은 어떠할까? 진정으로 아이들이 단 리본처럼 순수하기를 바라는 마음인가? 아이에 대한 외부로의 자존심 때문에 그것을 지켜려는 발부둥은 아닌가? 아이들에게 순결은 강요하는 것은 사실은 내 아이를 믿지 못해서가 아닐까? 그로 인해 내 체면이 깍여지기 때문은 아닐까? 그 체면도 내가 만든 역사적 세계이겠지만.

 

 몇가지 사건이 일어난다. 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든 의사의 낙마, 아이가 메어달려 채찍을 맞은 일, 눈이 도려지는 아이, 피리를 불다 물에 빠지는 아이, 목재소에서 일하는 여인의 죽음, 그리고 화재와 자결한 듯한 죽음. 이 모든 사건들은 연관이 있으면서 미스테리하다. 범인을 알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아닌 것도 있다.

 즉 아이들이 한 짓도 있고 어른들이 한짓도 있다. 그러나 하나의 범죄가 밝혀지지 않았을 때 이어서 다른 범죄가 쉽게 생기고 모방까지 탄생하는 범죄의 법칙이 나타난다.

 밝혀지지 않음에 자신감이 생겨서인가? 사회에서 저질러지는 ‘자본’의 논리에 의한 범죄는 갈수록 도를 더해가고 지능적이며 이상한 설득력으로 법망과 국민의 눈을 피하거나 당당히(?) 맞서거나(이상한 이론으로) 하는 것들이 한번도 단죄하지 못한 역사적 비극과 연관될 것이다.

 

 독백을 하는 교사는 자기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하면서 기억을 들려준다. 이 기억 속에는 아이들의 이상한 행동들이 나타나고 영화 속의 아이는 순수하다고 믿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과 함께 그들만의 세계에서는 또 다른 세계가 있는 ‘파리대왕’의 모습도 보여준다.

 

 그러나 ‘하얀리본’은 절대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유추만을 허용할 뿐이다. 감독은 매우 냉정하게 이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엔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을 다시 독백으로 들려준다.

 

 왜 전쟁이 났다고 할까? 하얀리본을 멘 아이들은 이 전쟁 이후 하얀리본 대신에 나치당의 완장을 차기 때문일꺼다. 어른들의 파시즘적 계율 속에 자란 아이들의 변화가 어떠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이들의 표정에서 아이들의 걸음걸이에서 그 모든 움직임에서.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란 말이 이 영화에 딱 어울린다.

 

감독이 흑백을 택한 이유는 사람들의 다양한 해석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왜 이러한가를 정확히 이해하라는 지침이다. ‘사람들이 흑백논리로 세상을 바라 볼 때 생기는 것들은 흑백일 수밖에 없다’ 하듯이.

 

1. 예술, 잘 만든 영화, 감독의 의지, 보여주고픈 자신의 명확한 철학, 과거의 반성.

 

2. 아이에 대한 영화 속 어른들의 모습은 내 가슴을 후벼판다. 나의 모습이다. 무슨 변명이 필요하겠노. 내 새끼들에게 사과한다.

   잘고쳐지지도 않으면서, 여전하면서도.

 

3. 독일영화는 ‘울리히 터커’없으면 안되나? 올해만 네 번째, 작년 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벌써 다섯 번째다. 내가 가장 많이 만난 올해의 배우이다. 여기선 남작으로 나온다. 본의 아니게 사건을 키우게 되는 사회적 가해자이면서 또 다른 희생자이기도 하다.

 

4. 화재에 동원된 소방수레. 꼬마 때 수산소방서에는 저 수레 하나 있었다. 난 그것이 불자동차인 줄 알았다. 세상에 차도 못 본 아이처럼.

   그 만큼 둔감했다. 노는 것 외에는 어떠한 것도 관심이 없었던 시기였다. 거의 혼자서 놀았지만.

 

5. 악의, 무관심, 시기심, 불안, 협박, 뒤틀린 복수심 등등 나레이터는 마지막 가까이 가면 사용하는 용어가 거칠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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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outube.com/watch?v=2aaapMYGBJs

 

여자아이 다섯명이 걷는데 대한 나레이터의 독백은 매우 인상적이다. '항상 저런 대열을 유지하는 것이 신기하다'

 

http://www.youtube.com/watch?v=JUj9gDtA9HQ&feature=fv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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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영상은 꼭 보라.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51332&videoId=28205&t__nil_main_video=thumbnail

장면은 가장 다양하게 많이 나온다.

그러나 노래가 영화감상을 오히려 방해한다. 위의 동영상과 비교해 보라. 아름다운 소리가 어떨 땐 아름답지 못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실예 - 화면과 노래의 이상한 조합을! 그래서 일부 뛰어난 감독들은 영화에 가급적 음악을 넣지 않으려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것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어떻게 이리도 영화 해석을 마음대로 하나하는 생각이 드니, 슬그머니 화가 치밀어 오른다. 아무리 뮤직비디오라도 이리 쪼대로 만들 수 있나하는! 감독이 이것 봤으면 다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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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레이터가 가장 신기하고도 이상하게 바라 본 여자아이들의 걸음대열

 

 

 

 아버지의 가장 착한 아이

 분노로 배추를 다 베어버린다.

 

 

 

 

 

 

 울리히 터크^^

 목사다. - 많은 아이들의 아버지며 하얀리본을 달아주는 장본인이고 아이의 멍에이기도 하다.

 

감독이다.

 

요약정보 드라마, 전쟁 | 오스트리아, 프랑스, 독일 | 144 분 | 개봉 2010-07-01 | 제작/배급 영화사 진진(배급), (주)피터팬 픽쳐스(수입)

 

감독 미카엘 하네케

출연 마리사 그로왈트, 야니아 파우츠, 미카엘 크란츠

 

1913년, 독일의 한 시골마을에서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기이한 사건들의 근원을 쫓는 영화로 고요하고 평화로운 보이는 작은 마을에서 드러나지 않은 사람들의 추악한 본성과 그것이 어떠한 제재도 없이 되물림 되는 것의 공포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누군가의 의도적 장치로 동네 의사가 부상을 입는 사건을 시작으로 마을 사람들과 아이들에게 의문의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한다. 누가 자행한 짓인지 밝혀지지 않은 사건들은 점차 강도 높게, 연쇄적으로 일어나며 마을 사람들을 공포에 빠뜨린다.

 

82회 아카데미시상식(2010) 후보촬영상(크리스챤 버거), 외국어영화상(미카엘 하네케)

63회 영국아카데미시상식(2010) 후보외국어영화상

30회 런던비평가협회상(2010) 후보작품상, 외국어영화상, 감독상(미카엘 하네케), 각본상(미카엘 하네케)

67회 골든글로브시상식(2010) 수상외국어 영화상

44회 전미비평가협회상(2010) 수상촬영상(크리스챤 버거)

35회 LA비평가협회상(2009) 수상촬영상(크리스챤 버거)

22회 유럽영화상(2009) 수상유러피언 작품상(미카엘 하네케), 유러피언 감독상(미카엘 하네케), 유러피언 각본상(미카엘 하네케)

후보카를로 디 팔마 유러피언 촬영상(크리스챤 버거)

14회 부산국제영화제(2009) 초청월드시네마(미카엘 하네케)

62회 칸영화제(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