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하연화 공연: 응시, 마주침 - 잠시 응시하고 마주치진 못하고 돌아오다.

무거운 빈가방 2020. 10. 19. 02:00

2020-10-18 하연화 공연: 응시, 마주침

하연화공연소식을 페이스북에서 보고 이번엔 함 가보자 싶었다.

<응시, 마주침>이란 제목으로 이기대에서 하는 일종의 거리 공연이다.

다른 일들과 겹쳐 2시 공연 하나만 보고 오자 생각하고 이기댈 간다.

이기대 도로 중간중간에 관리 아저씨들이 쫘악 깔렸다.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고, 이기대에 사람이 많이 몰리는 이유도 있을거다.

 

마눌님 먼저 광장엘 내려가니 준비팀 한둘만 있고, 이기대 입구에서부터 공연하면서 온다한다.

마중 나가듯 입구 쪽으로 가니 너른 바위 쪽에서 누군가 춤을 추고 있다. 악기 소리 보다는 파도 소리가 더 크다.

<이 분은 공연하는 분이 아니다. 한 때 바깥아내였고, 모델이었다. 지금은 내가 그림 안그리니 모델도 아니고 집에 있으니 바깥아내도 아니다.>

 

 

하필이면 상담 전화가 온다.

춘천에 사시는 목사님 전화다.

따님이 오래 전부터 아팠는데 뇌가 잘못되어 근육을 제대로 못쓰고...

근육을 제대로 못쓰니 뼈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한다. 나이는 아직 어리다 한다.

이제 수술을 하라는데 몸살림운동이 생각나서 전화했단다.

 

병과 관계된 문제는 선택이 늘 따른다.

몸살림운동에서 하는 이야기는 매우 단순하지만 진리다.

그런데 나에겐 진리가 맞는데 다른 사람에겐 개뿔일 수도 있다.

개뿔은 아니다 하더라도 병원 보다는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대체로 생각한다.

동시에 나를 만나면 당장 모든 병이 해결될 듯 생각하고, 지금 해결 안되면 바로 돌아선다. 평생 고치질 못하고 전전긍긍하다가 겨우 한두번 만났는데 어이 병이 낫겠나?

게다가 몸살림운동의 철칙 중 하나는 <병은 절대 남이 낫게 해 줄 수 없다>이다.

약간의 도움(교정)은 줄 수 있지만, 그 도움 이후 자신이 몸을 바로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만 병이 나을 수 있다. 이 노력엔 세월이 걸린다. 묵묵히 열심히 하다보면 어느날 병이 사라질 것이다.

 

그런게 어딨노? 하면서 피식 웃을 수 있겠다.

그런데 돈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그냥 노력하는 것이니 밑져야 본전이다.

그래서 안할 이유가 없다.

 

대체로 사람들은 노력하지 않고 남에게 돈을 주고 그냥 병을 낫게 해달라고 메달린다.

낫지 않는다. 나으면 기적이다.

그런데 내겐 돈을 절대 쓰진 않는다.

 

이명과 이석을 앓는 사람에게 전화가 왔다.

어떻게 하면 낫느냐고!

참 대략 난감이다.

병원 가서도 안낫는다고 하는 것을 내겐 전화 한통으로 다해결하려고 한다.

와서 상담해야 한다하니 시간 없단다.

난 이리 시간을 허비하며 살고 있다.

 

목사님에겐 몇가지 말씀을 드린다.

1. 지금 당장 죽을 병 아니라면 수술을 몇 달 늦추면 좋겠다.

2. 만나서, 왜 그런 병이 왔는지 이야길 듣고, 간단 교정 받고, 가르치는 운동을 집에서 열심히 하면 좋겠다.

3. 운동을 열심히 했다는 전제하에 다음에 다시 만나 점검하고, 그 때 수술 여부를 다시 판단하면 어떻겠느냐..

4. 그리고 이 부분에선 내가 부족하니 내 스승님을 만나 뵙자. 춘천에 계시니 11월 초에 내가 그리로 가겠다.

 

목사님은 당장 만나면 좋겠다하지만 부산 사람인 내가 그냥 춘천까지 바로 올라가긴 힘들다. 통화 다 하고 나니 직접 딸은 아니라 한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 딸이란다.

누구든, 판단을 내리고 다시 연락달라고 했다.

 

통화 끝나니 춤은 거의 마무리다.

이제 장소를 옮긴다.

따라 나선다.

 

처음 왔을 때 가야금을 든 여자가 있다.

그래서 어디로 가느냐 물어봤었다.

그 사람이 넓은 바위 가운데쯤 앉아 있다. 곧 가야금 가락이 들리겠지.

< 오른 위에는 가야금을 탈 준비를 하고 있고 왼 아래는 아주머니가 고동을 딸 준비를 하고 있다.>

자리를 잡으니 누군가 몸을 움직인다.

그런데 건너에 나이든 아주머니가 고동을 채취 한다고 일어섰다 앉았다 한다.

<마치 세사람이 한 팀인양 같이 움직인다. 근데 가야금과 안무 사이에 조그만 머리 하나 낚시꾼이다. 4명이 공연을 한다. 예술과 생존과 취미의 >

가야금과 파도가 어울져 자연과 인공이 구분없이 하늘을 나르는데

춤과 생존이 어울져 하나의 동작처럼 펼쳐진다.

 

묘한 장면이 되어 버렸다.

 

난 공연과 고동캐는 아주머니를 같이 담아 본다.

나는 공연을 응시 했지만 그 곳에서 생활과 마주쳤다.

 

저 분들은 고동을 팔아 얼마나 받을까?

집에 들고 가서 손주들을 먹일까?

 

공연은 짧게 마치고 이기대 광장으로 가고

고동캐는 아줌마들도 사라지고

우린 다음 약속을 위해 집으로 돌아온다.

 

3시 이후부터 하연화 공연이 있다는데, 가장 중요한 공연을 뒤로 하고 돌아온다.

머리 속에는 하연화의 점프점프가 떠오르고 그의 사진 한 컷,

무대 뒷배경은 검은데 하얀 빛을 내는 옷은 하늘로 나는 그 장면.

그의 웃음 머금은 표정은 늘 좋다.

안 봐도 본 듯 돌아온다.

 

<오른쪽 위에 두명이 공연자다. 머차고 잠시 쉬는데 멀리서도 포즈를 취한 듯한 표정이다. 관객에게 최선을 다하는 예술가의 정신! 앞은 곧 이름 날 유명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