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훔친욕정(마스무라 야스조 감독)

무거운 빈가방 2010. 3. 24. 00:36

 

10-03-23(화) 훔친욕정 (씨네마테크 서울)

작년 시네마테크부산에서 했던 ‘마스무라 야스조 감독’ 특별전. 대부분의 영화를 놓쳤다. 서울에서 지금하고 있네. 이것도 거의 못본다. 오늘 겨우 본(3시시작이라 내 시간대로는 무리다. 뒤에 상영은 다른 일들 때문에 또 무리다.) 훔친욕정. 사실 만지를 보러 허겁지겁 갔는데 날짜를 잘못안거다. 시작 첫장면 아! 부산에서 유일하게 본 그 영화. 내가 욕정하고 무슨 큰관계가 있는지 야스조감독의 그 많은 작품 중 와 이 작품만 보게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덕분에 영화를 조금 더 자세히 보게 되었고 놓친 장면들도 보게 되니 참 좋다. 좋은 영화는 한번만 볼것이 아니라 두세번은 봐야 할 것 같다. 무슨 영화 관계자인감?

다음 검색에서 찾은 감독 소개와 내용이다. 일단 참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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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소개

 일본 외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마스무라 야스조 감독은 로마의 영화실험센터에서 영화를 공부한 후, 1957년에 첫 영화를 만들고 1982년에 마지막 영화를 만들었다. 그의 영화는 인간 본성에 대한 치열한 탐구, 속발성 대사, 과잉감정의 배제, 빠른 전개를 특징으로 한다.

일본 문화의 순응적 본성에 대한 비판과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 소외에 대한 두 가지 테마는 모든 그의 영화에 반복되어 등장한다. 1950년대에 로마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일본인 감독에게는 이례적인 선택이었고, 마스무라 야스조 감독이 일생동안 서구적인 개인주의 성향을 보였던 것도 젊은 시절을 로마에서 보냈던 데에서 비롯된 듯하다. 그는 개인주의 가치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표현하기 위해 사회적 속박에 저항하는 고집있고 욕망에 충실한 여성 주인공을 선택하였다. 또한 성과 폭력을 이해하기 않고서는 인간의 본성을 이해할 수 없다고 믿었고, 이에 따라 그의 영화들 대부분은 섹슈얼리티와 폭력에 대한 생생한 묘사로 가득하다.

 

 마스무라 감독은 영화에 대한 많은 글을 쓰고 영화사에서 자기 위치를 자각한 지성인이었다. 그는 카와바타 야스나리, 타니자키 준이치로, 오에 겐자부로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을 각색한 영화를 만들었던 동시에, 다이에이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대중영화 시리즈를 통해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영화는 영화적 스타일과 관습에 대한 거부라는 측면에서 국제적인 관심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다.

 

훔친 욕정 (1962) 爛 Stolen Pleasure(다음 검색)

감독 마스무라 야스조

출연 와카오 아야코 (마스코 역), 타미야 지로 (아사이 역), 미즈타니 요시에 (에이코 역), 탄아미 야츠코 (유키코 역), 후나코시 에이지 (아오야기 역)

 

미시코는 유부남인 아사이와 동거하다시피 살고 있다. 어느 날 결혼하기 싫어 도망친 조카 시게코가 미시코를 찾아온다. 한편 시게코의 매력에 이끌린 아사이는 시게코와도 은밀한 관계를 가지고, 우연히 미시코는 그 장면을 보게 된다.

미시코 역을 맡은 와카오 아야코의 강렬한 연기와 존재감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빼앗긴 애인에 대한 집착과 질투심으로 짓무를 대로 짓물러버린 관계를 탁월하게 보여준다. 마스무라 야스조의 영화를 통해 대배우로 거듭난 와카오 아야코가 보여주는 확고하고 일관된 여성상을 이 작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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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1960년 70년 대 영화와도 비슷하다. 재미있는 것은 주인공 마스코는 문희를 정부 아사이는 김진규를 부인 에이코는 엄앵란을 많이 닮았다.(조카 유키코도 누굴 많이 닮앗는데 배우 이름은 기억이 나지않는다. 별들의 고향의 안인숙이 이전 하던 조연 역할과 비슷하다.) 같은 동양인이기도 하겠지만 그 시대의 인물들은 이런 모습의 배우들을 좋아한 모양이다. 지금의 한일 배우는  모습에서 제법 차이가 나는데 여기서는 차이를 거의 느끼질 못하겠다.

 

6~70년대의 멜로는 남자 하나를 두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는 내용이 많다. 아무래도 남자 중심의 사회에 여자들은 대체로 남자에 의해 인생이 결정되어지는 경우들이 많았고 영화는 이런 것들을 강조하다 보니 비슷한 영화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는 것 같다. 당시는 우리에 비해 문화의 선진국인 일본이엇으니 아마도 일본 영화들을 카피도 많이 했을 것이고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긴 마스무라 야스조 감독의 영화면 카피해 보고픈 생각도 절로 일어났을 법도 하다.

 

 표현이 그렇는가 몰라도 영화 내용 중 여자로 장사하는 집이 잠깐 나오는데 여성들로 우글거린다. 기모노를 빌려주고 돈을 착취하는 주인의 배짱장사도 시대를 불문하고 여전한 것 같다. 제법 부자집 여성이 독신남인 척하는 남성에게 ‘처녀를 잘간직해야 시집을 잘가지, 키스는 괜찮아요’하는 처녀성을 지킬려는 모습은 옛날 '피'(처녀성)로 판단되어지는 여자의 신혼에 대한 향수(?질곡이겠지만)가 떠오른다.

 

 무엇보다 압권은 마스코역의 마카오아야코의 연기가 아니겠나 싶다. 60년대 영화는 주로 여배우의 표정에 초점을 맞추니 여배우의 얼굴은 언제나 밝게 조명을 준다. 그 조명 속에서 웃음과 안타까움과 비웃거나 광기를 내어 보이는 아야코의 몸은 참으로 빛난다. 야스조 감독에 의해 개발된 배우라고 소개는 하고 있으나 어디 개발만 가지고 되것나? 그녀는 야스조 감독의 영화를 더욱 빛나게하는 배우라 보면 되겟다.

 

 몇가지 당시 풍토를 보게 되었는데 일본에서는 몸파는 여성들은 아이 못낳도록 수술을 하는 모양이다. 아이를 낳아야 남자의 집안에서 멸시하지 않는다는 친구의 말에 아이 낳을려고 재수술을 받는 모습. 이혼을 당한 부인 에이코가 이혼 도장을 찍고 난 이후 ‘ 오랜 시간 신세 많이 졌다’고 큰절하는 모습은 과거 여성들의 남자에 얽힌 비애를 보게 된다.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이야기들이지만 조금만 각색한다면 지금 내어놓아도 어디에 뒤지지 않을 영화이다. 이런 것을 보면 감독의 신념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것을 잘알 수 있다. 감독을 멸하고 가볍게 취급해 버리면 영화는 죽을 수 밖에 없고 좋은 영화가 나올 수가 없다. 우리나라 영화가 언제부터 제법 세계에서 알아주는 영화가 되었노? 이런 세계적 영화를 만들어낸 감독들은 대부분 영화아카데미 출신들이다. 그들이 가진 영화에 대한 정렬, 깊이 있는 토론과 연구 등의 성과가 만들어 낸 것 아니겠나?

 자기들 마음에 뭔가 차지 않는다 하여 좋은 감독들의 영화에서의 사형을 내리려고 하는 일들, 영화를 대한뉴스 정도로 정책 홍보물로 취급하려는 행위, 이 시대를 꺼꾸로 돌리려는 움직임은 이제 자리잡기 시작하는 우리의 문화적 성장의 싻을 자르는 역사상 가장 큰 죄악을 짓는 것이다.

 그 시대에 머물지 않고 미래를 바라보면서 새로운 사회상이나 변화를 꿈꾸고 화면에 담아내는 장인정신. 이런 분위기들이 스필버그나 카메론을 탄생 시키지 않았는가? 남의 공만 탐내지마라. 그 공의 아래에는 나와 달라도 인정해 주는 끈기가 있었음을 제발 상기해주면 얼마나 좋을련가?

마스무라 야스조 감독. 그의 비타협적 정신이 멜로에서라도 빛을 발한다.

 

 

 

 

 

 

아바타 같은 영화가 3D 산업을 육성한다 하여 나올 영화가 아니다. 죽엇다 깨어나도 나올 수 없다. 이건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인식을 크게하는 문제이다. 책상이나 정치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닌 그들 사고의 규제없는 자유를 통해서만 이뤄지는 문제이다. 그냥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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