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키비 - 죄수들이 직접 참여하고 출연한 새로운시도의 영화

무거운 빈가방 2010. 12. 20. 01:28

미키비 - 죄수들이 직접 참여하고 출연한 새로운시도의 영화   -  아트모모 이대

 

 

아래 소개하는 영화는 '감옥으로 부터의 영화'라는 부제를 단 죄수들의 영화 '미키 비'이다.

실제로 감옥에서 죄수들을 직접 출연시켜 만든 영화이니 그냥 볼꺼리는 아닌 것 같다. 감독의 목적성이 뚜렸한 죄수들에 대한 의도성으로 찍은 영화이다. 감독 자신도 교도소 생활을 거치면서 갱생한 사람이니 그는 갱생의  방법으로 영화를 택했다.

 이 실험영화는 큰 성과를 거두고 출연한 죄수들의 갱생도도 매우 높은 모양이다.

 이를 통해 우리 교육의 현실과 방법도 일정 생각하거나 빌릴 수 있는 것들이 제법 있는 것 같다.

 '미키  비'는 교도소 내의 암투와 갈등 등을 어두운 화면으로 계속 끌고나가면서 그들의 움직임과 대화를 포착한다. 영화적 재미도 제법 많다.

 

아래 글을 읽으면 이 영화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고 우리도 배우고 응용하고할 많은 것들이 잇음을 발견하리라 생각한다.  특히 학교에서 활용할 수 있는 것도 제법잇으리라.

혹 이 글을 보는 사람은 지겹더라도 아래 글을 읽어주면 좋겠다. 영화와 토론회를 마치고 관계자에게 '내용을 메일로 볼 수 없느냐 글이 작아서 볼 수 없다'고 떼를 쓰듯하여 메일로 받은 내용이다. 그래도 소중한 것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oFKMIswx5VY

 

Mickey B documentary

http://www.youtube.com/watch?v=eLsizQXrgl0&feature=rel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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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키 비’ (원제: Mickey B)는 강력범 수용소인 영국 북아일랜드의 맥하베리 수용소에서 수형자들이 직접 출연하고 제작에 참여한 영화로 사회적 파문과 우려로 인해 BBC 방영이 취소되어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특수한 상황에서 제작된 영화 ‘미키 비’ (원제: Mickey B)의 상영과 함께 강연과 토론이 어우러진 워크숍 ⌜L감옥으로부터의 영화⌟L가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개최됩니다.

본 행사는 교정시설과 전국의 사회기반시설 그리고 학교에 예술 강사들을 파견하여 문화예술교육의 지반을 넓혀가고 있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예술영화관 아트하우스 모모를 운영하는 (주)영화사 백두대간이 함께 진행합니다.

 

 

영화 소개: ‘미키 비’ (원제: Mickey B)

화는 북아일랜드의 맥하베리 1급 죄수 및 강력범 수용소에서 촬영되었고, 실제 수형자들과 교정

공무원들이 42개의 캐릭터 연기 및 세트 구성 등 영화제작의 전반적인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영화는

2006년에 제작되었고,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재소자들은

영화제작 과정을 통해 자신의 폭력, 살인, 배신, 죄책감, 야망 등에 대한 동기를 스스로 대면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제작에 참여한 이들은 출소 후, 영화제작사 ESC에서 일을 하는 등 새로운

삶을 찾아 나가고 있습니다.

 

 

행사 일정

15:00 ~ 16:00 영화 MICKEY B 관람

16:00 ~ 16:45 영화감독의 영화 소개

 

진행: 톰 맥길(Tom Magill, ESC 대표)

15세에 학업을 그만 두었던 톰 맥길은 10년간의 방황 끝에 연극을 통해 삶의 길을 찾고 배우 생활을 거쳐 연극·영화연출가가 되었습니다. 포럼 연극 전문가인 그는

셰익스피어 작품을 기반으로 하여 소외계층 참여 영화를 만드는 ESC를 설립하고 각종 워크숍과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 스스로 전과자였던 자신이 예술을 통해 변화하게 된 경험을 살려,

재소자를 대상으로 영화제작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16:45 ~ 17:30 인문학 강의로 짚어보는 영화 속의 범죄

진행: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 톰 맥길

 

누구나 개인적 욕망과 사회적 요구가 대립하는 순간을 경험하듯이, 사회 부적응자로서 낙인찍힌 범죄자들도 자신의 순간적인 범행에 대해 복수심과 후회, 갈등 사이에서 복잡한 심경을 안고 살아갑니다. 영화속 인물들과 우리 주위의 범죄자를 인문학적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조광제 교수가 흥미롭게 풀어나갑니다.

 

17:30 ~ 18:00 관객과의 대화

 

 

영화 비키 비(Mickey B) 제작일지

- 북 아일랜드의 최고로 경계가 삼엄한  교도소에서 촬영된 맥베스의 현대판

 

      톰 맥길(Tom Magil), 제니퍼 마르퀴스-무라다즈(Jennifer Marquis-Muradaz)

 

 

험을 부정하기 보다는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교육해야 한다.

(프리에 Freire, 2004: 5)

 

 

매거베리 교도소의 ‘대부’와 함께 맥베스를 각색하여 영화를 제작하기로 한 것은 매우 위험한 아이디어였다. 교도소 내에서 어떤 것이든 위험한 시도를 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교도관들의 저항에 맞닥트리게 된다. 경비가 엄중한 교도소에서는 위험한 것을 싫어한다. 두려움과 불신에 기반을 두고 대부분 결정이 이루어진다.

'안전'이라는 이름하에 운영되는 빈틈없는 절차는 사람을 둔감하게 만드는 단조로움을 야기하며, 운명론적인 부정주의가 만연해 있다. 회의론자가 긍정론자보다 훨씬 많다. 이 세계에서, 권위주의는 쉽게 파멸로 치닫는 의존성과 저항의 원인이 된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었는데, 그는 진보성향의 부지사로 교도소 문화가 어떤 것인지, 우리가 어떤 저항에 부딪치는지를 정확히 이해하며 영화제작 아이디어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여 주었다. 그는 우리가 어떠한 교육이나 작업에도 참여하지 않는 수감자들을 제작과정에 참여시키길 바랐다. 이와 같은 도전은 교도소의 보안 부서에 골칫거리를 안겨주었는데, 교도관들은‘나쁜 녀석들’을 하나로 뭉쳐놓고 그들을 영화배우로 만드는 특혜를 주는 것에 반대했다.

 

 

개요

우리 버전의 맥베스인 Mickey B의 배경은 약물과 폭력이 통용되며 폭력배들이 난무하는 버남Burnam 이라는 이름의 허구의 사설 교도소이다. 곧 출감을 앞둔 던칸 Duncan은 제 1의 마약상이다. Mickey B는 그의 오른팔로, 그의 명의로 돈을 징수한다. 3명의 마녀들은 3명의 마권업자 역할로 각색되었는데, 이들은 자신의 몫을 위해 배당률을 고친다.

 

레이디 맥베스는 Mickey B의 애인이자 증오의 여왕인 Ladyboy로 각색되었다. 그녀는 일인자의

자리를 꿰차려 책략을 꾸미지만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나중에 깨닫는다. Mickey B는 더퍼Duffer의 일원을 살해한 뒤 죄책감을 극복하지만 Ladyboy는 그녀의 감방에 있는 창살에 목을 매게 된다.

 

C구역의 벽이 무너질 때 Mickey B의 세상도 붕괴되는데, 이는 버남 숲이 던시네인Dunsinane 성 앞으로 오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역주: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 마녀가 “버남 숲이 던시네인 성으로 움직일 때 맥베스는 패망하리라”라고 예언한 내용을 인용한 것임).

 

더퍼Duffer와 말콤Malcolm은 교도관과 함께 편을 짜고 Mickey B의 감방을 에워싸 결국 대형해머로 그의 감방벽을 뚫는다. Malcolm은 승리를 외친다. 그가 교도소의 새로운 1인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승리의 대가는 교도관들이 C구역을 다시 지배하는 것이다.

 

영화 각색제작에 우리가 대면한 장애물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어떤 간수들은 배역에 가톨릭 신자들이 너무 많으며 개신교도들은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다. 어떤 이들은 욕설 언급, 약물 인용 및 살인을 문제 삼으며 대본을 싫어했다. 특히, 최근 교도소에서 일어난 자살 사건 때문에, 맥베스 부인의 자살 장면이 문제가 되었다. 영화가 감옥에서 제작된다는 사실 때문에, 영화 내용이 매거베리 교도소의 현실 생활을 반영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일었다. 수감자가 감옥을 장악한다는 줄거리는 실제로 최근에 수감자들이 자신들의 구역을 스스로 운영했던 Maze 교도소의 상황과 매우 흡사했다.

 

이런 우려들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는 개신교도들을 더 캐스팅하고 영화의 배경을 버남Burnam이라 불리는 허구의 사설 교도소로 설정했다. 우리는 또한 욕설부분을 줄이고 약물 관련 부분을 삭제하는 한편, 폭력을 실제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히치콕 영화에서와 같이 암시만 하기로 약속했다. 수감자들은 자신들이 검열 받는다고 느끼고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우리는 프로젝트를 중지하면 결국 교도소의 회의론자들만 환영하게 만들 것이라며 그들을 설득했다. 교도관들이 만족하도록 그들의 입장에서 단호하게 밀고 나갔다.

 

실행계획에 문제가 뒤따르기도 했다. Ladyboy(레이디 맥베스 역)를 맡은 제이슨은 그 해 안에 출소하기로 되어있었다. 우리는 다른 이를 캐스팅 하든지, 촬영스케줄을 앞당겨야만 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계획보다 8주정도 빨리 촬영을 시작했고, 감독과 출연자들에게는 5일간의 리허설 기간만이 주어졌다.

교도소 내에서 촬영을 제대로 하려면 어쩔 수 없이 다른 수감자들에게 방해가 됐고, 안전상의 위험 역시 문제가 되었다. 다행히도, 영화 촬영 중 스태프와 배우들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은 교도관인 존 데이비스가 점자, 미술, 목공예, 벽돌 쌓기 등과 같은 기술을 배우는 교도소 내의 워크숍 장소에서 촬영할 것을 제안해 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었다.

 

워크숍 공간의 장점은 감옥과 복도를 만들기 위한 약간의 작업만 해주면 특별히 손볼 데 없다는 점과, 엑스트라 역할을 할 수 있는 이들이 많다는 점, 그리고 배우들의 간식을 위한 매점이 있다는 점이었다.

촬영이 실제로 시작되자, 간수들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영화와 우리들의 존재에 대해 노골적으로 무관심해 하거나 더할 수 없는 적대감을 드러내는 식으로, 의심스러워하거나 비협조적인 반응을 보였다. 영화제작으로 인해 자신들의 권위를 잃게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듯 보였다. 영화에서 몇 가지 작은 역할을 담당하기로 했던 한 몇몇 간수들은 중도 하차했다. 촬영팀은 수감자 대우를 받았으며 소도구, DVD, 카메라 등이 몰수되기도 했다.

약물과 무기를 찾는 수색견들이 올 때까지 촬영이 오랜 시간 불필요하게 지연되기도 했다. 그러나 수감소를 뒤집어 놓는다든지, 탤컴파우더를 복도에 뿌린다든지, 지정된 운동시간과 산책시간을 없애는 등 간수들의 도발적 행동에도 불구하고, 수감자들은 그들에게 보복을 하거나 던지는 미끼를 물지 않았다.

 

4주간에 걸친 촬영기간 동안, 우리의 영화에 참여한 수감자들에 의해서는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촬영팀원은 수감자들에 대해 많이 배울 것이라 생각하고 교도소에 들어갔다. 그 대신에 우리는 우리를 힘들게 했던 죄수들을 돌보는 사람들, 우리 사회의 가장 연약하고 폭력적이고 상처 입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매우 많이 알게 되었다.

 

이는 수감자들이 소년 성가대원처럼 행동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때로는 약물에 취해 오기도 하며, 항상 대사를 외우고 있지도 않았다. 개인 옷을 입고 있겠다고 계속 고집해서 필름콘티가 엉망이 되기도 했다. 촬영 중에 조용히 해야 하는 것에 분개하기도 했으며, 몇몇은 우리가 그들을 모욕하고 있다고 느끼고 중간에 나가버리기도 했다. 그들은 끊임없이 음식과 보수에 불평했다. 또한 촬영 팀원이 흔치 않은 긴장 속에서 작업하며 고생하는 동안, 메이크업 담당의 팀원이 살인 종신형을 받은 재소자와 심각한 연애행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때까지도 가장 최악의 상황이 닥칠 것을 알지 못했다. 촬영이 끝난 1달 후, 중요한 배역의 멤버가 특별휴가로 집에 보내진 후 다시 감옥으로 복귀하지 않았다.

 

끔찍한 그의 죄질이 상세하게 언론에 보도되었으며 교도소는 비난 여론에 당황했다. 우리의 ‘폭력’영화에 그를 비롯한 다른 수감자들이 참여했다는 사실이 대중에게 알려질 경우 격렬한 항의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해 영화에 관한 BBC의 방송 보도가 취소되었으며, 벨페스트Belfast에서의 첫 상영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

그 동안 저질 신문사들은 메이크업 스태프가 임신했으며, 우리가 총과 탄약 등을 감옥으로 가져갔고, 우리가 실제 살인자가 살인자 역할을 하는, 더럽고 뒤틀어진 ‘드릴러 킬러’를 만들었다며 선정적인 이야기를 떠들어댔다. 우리는 결국 북아일랜드 전역에 이 영화를 상영하지 않기로 교도소와 협의했다. 연극 단원은 다른 일반 수감자들이 그들의 권력에 대해 자만하기 시작할 것을 우려해 해체되었다. 감옥에서 몇 달간 나가있던 Ladyboy역을 맡은 수감자는 다시 붙잡혀 교도소로 보내졌다. Mickey B와 더퍼Duffer, 그리고 다른 이들이 교도소의 권위에 대항하였고, 교도소 질서를 위한 32조항에 의해 다른 수감자들과 분리되었다.

 

 

우리가 왜 영화를 통해 수감자들과 함께 했는가.

ESC(The Educational Shakespeare Company)는 2003년부터 매거베리 교도소에서 영화를 제작하였는데, 몇몇의 연극분야 관계자들은 왜 맥베스를 적절치 않은 장소에서 제작 하는지 계속해서 궁금해 했다. 첫째로, 교도소에는 공연을 위한 전용 무대가 없기 때문이다. 보통의 수감자들은 연극과 셰익스피어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지만, 23시간동안 텔레비전과 함께 감옥에 갇혀 시간을 보낼 수는 있다. 그들은 영화에 대해 많이 안다. 그들은 영화를 보고, 좋아하며, 영화에 대해 논의한다. 그들의 생각과 관찰은 종종 통찰력이 있다.

 

맥베스 촬영은 특정 인물에 대해 유난히 비현실적이고 높은 끈기와 기량을 요구한다. 영화 제작은 여러 날에 걸친 여러 개의 짧은 촬영들과 오랜 카메라 세팅 시간을 포함하며, 이는 수감자들의 집중력, 청취력 및 암기력, 독해력 개선에 영향을 준다.

 

촬영은 법조인 및 가족의 방문, 재판일, 경보, 직업훈련 등의 피할 수 없는 촬영 중단과 지연을 불가피하게 수용하게 했으며, 영화에 배우로서 출연하기 꺼려하는 이들에게는 카메라맨, 음향사, 메이크업 스태프, 마이크 담당자등과 같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었다.

 

우리는 또한 무대연기가 제공하는 자신감, 협동심, 협동작업 등의 ‘소통기술’에 투자가들이 흥미로워하는 것과 더불어, 수감자들에게 영화제작에 필요한 정보기술과 멀티미디어 기술을 제공하는 것에 특히 관심을 가졌다. 게다가, 우리의 영화와 다큐멘터리인 ‘makings of'는 수감자들이 가진 학습 및 문맹 문제 해결을 위한 견고한 물리적 증거를 제공한다. 더불어 필름은 비디오로 작업한 드라마보다 보관기한이 더 길며 높은 제작 가치를 지녔다. 이 보관기한은 작업의 표현과 작업을 위한 가시적 증거의 필요를 얻기에 충분했다.

 

결국 우리는 영화가 매우 특별한 자기 평가 도구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화면에 나오는 그들의 습관(내러티브 내에서의 연기자로서든, 아니면 혹은 다큐멘터리 속의 그들 자신으로서든)을 본 것이며 다른 도구를 통해서는 알 수 없는 ‘객관적인’ 3인칭 시점으로부터 배운다. 우리는 이것을 ‘비디오 피드백 고리’라고 부른다. 영화는 대면 미팅 전에 가상으로 서로를 만날 수 있도록 하므로, 갈등이 있는 그룹과 작업할 때 매우 도움이 된다.

청소년들과의 공동체 작업을 통해 우리는 비디오 피드백을 통해 청소년들이 화면에 나오는 자신들의 모습을 보고 연기를 향상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그들의 습관을 자신들의 리듬에 맞춰 변화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목격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방법론

아우구스트 보알은 교육과 교육학을 구분했는데, 이들의 차이는 근본적으로 전자는 정보의 축적이고 후자는 발견의 과정이라는 점이다. 전통적인 교훈교육의 대안으로서 우리는 '소크라테적 방법론: 질문을 이용한 대화법'을 사용한다. (Boal, 1998:128) 우리는 이 방법이 특히, ‘매우 위험’이란 꼬리표가 붙고 권위에 대항적인 태도를 보이는 수감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는 영화에서 맡은 역할을 통해 수감자들이 주체적으로 자신들의 책임 정도를 선택하도록 독려한다. 우리는 그들의 자신감과 능력 향상을 위해 그들의 강점을 살릴 수 있도록 노력한다. 이런 노력이 그들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도록 내적동기를 강화시킨다. 자기 단련이 자기 존중으로 변하는 것이다. (McLaren, 2000:79)

 

왜 Mickey B인가?

왜 우리가 Mickey B를 만들었는지는 돌이켜볼수록 더 명확해진다. 관행을 따르지 않는 종신형 수감자는 영화에서 역할을 맡음으로써 그들의 폭력적인 범죄의 영향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자신들의 범죄를 인정하는 것이 준비되지 않은 수감자들에게는 그들이 스스로의 폭력과 관계된 고유한 동기를 살펴보고 이해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한다.

 

종신 수감자였던 Tommy는 또 다른 짧은 영화프로젝트를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데, 그는‘17년 동안 간직해왔던 이야기를 지금은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영화는 그가 다른 사람을 살해한 날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를 통한 스토리텔링은 그를 자유롭게 한다. 그는 이야기를 털어놓고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낀다. 전과 비교할 수 없는 평온이 있다. 나는 그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으며, 그가 실제로 편안해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에게 교도소에 있을 때 왜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그가 ‘나는 내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한 일에 대해 나 자신이 어떻게 느꼈는지는 말해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가면을 쓰고 나를 보호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내가 그에게‘범죄자 교화 프로그램을 활용하지 않았나요?’라고 묻자, 그는‘가면을 쓰고 있어야 합니다. 진실을 말한다면 다른 수감자들이 약하게 볼 것이기 때문이죠.’라고 대답했다. 교도소 집단은 약물 복용과 탈출을 강요하며, 잘못된 자존심의 가면 뒤에서 거부하는 태도로 삶을 살도록 만든다. 이는 Tommy와 같은 이들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용납과 용서에 대한 이해를 통해 내적 여정을 하고 자신의 범죄를 대면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우리와 함께 영화작업을 한 수감자 중 50%는 출소한 뒤, 1년 안에 다시 교도소로 돌아갈 것이었다. 70%의 성인 남성 죄수들은 글을 읽고 셈하는 법을 몰랐고 66%는 약물 남용 문제를 안고 있었으며, 51%는 수감생활로 인해 직업이 없었다. 또한 50%는 그들의 범죄로 인해 공동체 안에서 구타와 종파의 공격 및 협박을 겪었으며, 50%는 출감 후 숙식을 할 곳이 없었고, 49%는 재정적인 문제가 있으며, 40%는 정신병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덧붙여 34%는 아동처럼 대우받았다.(Promoting healthy Prisons, 2006)

 

수감자들은 또한 스스로에게 낙인을 찍는데, 이는 다른 이들에 의해 낙인찍히는 것보다 자존감과 자족감에 더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 Mickey B를 제작하기 전에 참여하기로 한 수감자들은 스스로를 ‘골빈 놈, 인간쓰레기, 양아치’라 불렀다. 구체적 질문을 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멍청하며 어떤 가치 있는 것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말했다.

 

대부분이 전통적인 교육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들의 자격요건과 언어구사 부족은 특히, 집단 내에서 자신감, 신뢰감, 및 소통 능력 저하를 야기했다.

수감자들은 죄책감과 회한의 감정을 억누른다. 표현되지 못한 감정들은 화, 좌절감, 후회, 분노, 증오와 폭력을 만들어 낸다. 약물은 이런 감정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지만, 이는 일시적인 해방일 뿐 또 다른 악순환이 시작된다. 동료 집단의 사회적 압력은 ‘수감자 교화 프로그램’에서 그들이 자신의 범죄에 대해 느끼는 죄책감과 회한을 차단해 버린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교도소라는 장소에서 Mickey B를 제작하는 것이 옳다고 느낀 대표적인 이유다. 맥베스의 교훈은 범죄는 대가를 치른다는 것이다. 수단이 결과를 정당화시키지는 않는다. 부정하게 얻은 이득이 주는 기쁨은 순간적인 것일 뿐이다. Mickey B 영화의 참여를 통해, 허구를 통해 범죄 행위를 표현하는 것이 동료집단 사이에서 허용될 수 있게 되었다.

 

연극과 영화제작은 공동작업을 전제로 한다. 연극은 수감자들을 수치심으로부터 자긍심에 이르는 과정으로, 변화를 이끄는 힘이 있다. 맥베스와 같은 고전소설은 수감자들이 그들의 범죄를 안전하고 함축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적당한 거리감을 만들 수 있다. 비록 그것이 허구의 피해자 일지라도, 피해자에 대한 공감을 형성한다. 우리는 수감자들이 인과관계를 이해하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을 보았다.

 

창의력 또한 수감자들이 쉽게 접하는 요소이다. 창의력과 범죄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둘 다 독창적인 방식으로 행함으로써 무언가를 창조한다. 하나는 합법이고 다른 하나는 불법이다. 범죄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충동이다. 창의력 역시 비슷한 충동이다. 하지만, 근본이 다르다. 범죄는 빼앗지만 창의력은 제공한다. 범죄는 생명을 앗아가거나 우리 소유가 아닌 것을 탈취한다. 창의력은 우리 소유인 것을 취하고 그것을 나눠준다. 이런 나눠줌의 과정은 우리 스스로가 행동의 주체로서 통제력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해준다.

이것은 우리에게 빼앗는 자에서 주는 자로, 변화의 기회를 제공한다.

 

피해자들은 수감자들의 회한을 보거나 듣기 어렵다. 허구를 통한 진정한 회한을 그려냄으로써 이런 과정을 시작할 수 있다. 우리는 피해자와 함께 영화를 제작하는 경험을 통해 피해자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제작하여 표현할 때 가해자의 유령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비록 허구일지라도, 영화를 통해 가해자들이 자신의 회한을 풀어낸다면 그들은 피해자의 유령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Tommy는 그의 이야기를 실감나게 들려주었다. 하지만 17년이나 간직한 후 들려주었다. 모든 사람이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는 않다. 배역의 가면을 통해 영화로 풀어내는 것은 그들의 범죄의 동기와 의미를 표현하는 한 걸음이다. 어떤 방법이든 나는 이것이 궁극적인 치유로 나아가는 정화과정이라 믿는다. 폭력적인 범죄자를 변화시키고 스스로 치유하게 하는 것은, 아마도 재범률을 줄이고 그에 따른 결과로 피해자 수를 감소시키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수감자가 된다는 것은 본인이 평생 했던 행동들 중 가장 나쁜 것만을 기준으로 판단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수감자들과 이 영화가 성취한 것을 북 아일랜드 사람들이 볼 수 없다는 점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사람들은 매번 ‘왜 수감자들에게 영화를 찍게 하는가? 피해자들이 얻는 것이 무엇인가? 말이 안 되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한다. 만약 우리가 단지 극을 상영하는 것에서 끝났다면,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도 영화제작의 결과물이 대중에 선보여졌을 때 수감자들의 노력에 대한 인정이 이루어질 가능성에 노골적인 분노를 터트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개인적 자아와 사회적 자아가 씨름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피해자들은 어떤가? 우리가 어떻게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가?

 

국가내분 기간 동안 의학적인 이유로 퇴직한 교도관과 과부의 이야기를 영화화 한 ‘동전의 양면’으로 우리는 이미 피해자들과 작업을 시작한 바 있다. 그들은 인질로 붙잡혔던 이야기와 교도소에서 잔혹하게 고문을 당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그들은 나중에 이런 고백 과정을 통해 가해자의 환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제작 착수 한 달 전, 우리는 수감자들이 (치료 과정 중이든, 아니든 관계없이) 그들의 폭력적인 과거에 대해 얘기하지 않으려는 것을 보았고 그래서 우리는 교도관들과 후원자들이 흥미 있어 하고 감명 받을 만 한 작가가 쓴, 폭력과 폭력의 영향에 관한 연극을 골랐다. 안타깝게도, 교도소의 권한에 의해 그룹이 와해되어 우리는 이들에게 더 이상 접근할 수 없게 되었다.

 

 

후기

우리는 지난 4주를 되새겨 본다. 생산적이고 책임감 있으며, 헌신적인, 놀라운 예술작품을 만들어 냈던 팀을 수감자들과 함께 이끌어나갔던 길고도 힘들었던 4주간의 촬영이었다.

4주간동안 단 한 명의 수감자도 문제를 야기하거나 처벌소로 보내지지 않았다. 위험한 4주가 지나고 새로운 기술도 익히게 되었다.

 

이것은 ‘당신이 노력하는(reinforce) 것은 그만큼 더 얻게 될 것이다’는 Win Wenger의 효과의 법칙을 상기시킨다. 교도소 시스템에서 보통 수감자들에게 지속적으로 강요되는(reinforce) 것은두려움과 불신이다. 그들의 능력과 잠재력에 대한 기대의 결핍은 강한 부정적 성향과 결합된다.

 

2006년 11월부터 12월까지 매거베리 교도소에 있던 4주간, 우리는 존중, 신뢰, 책임감의 강화 대신 이러한 가치에 도전했다. 우리는 출연진들에게 영화 내의 배역을 통해 교훈을 배우면서 Mickey B라는 허구를 통해 스스로를 재창조할 수 있도록 안전한 공간을 제공했다.

이런 교훈을 그들의 일상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기회와 도구와 제공하면, 그들은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고 결정하기 위해 이것들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출: Magill,T and Marquis Muradaz, J, ‘he Making of MickeyB,a Modern Adaptation of

Macbeth in a Maximum Security Prison in Northern Ireland’in Drama therapy and Social

Theatre: Necessary Dialogues, edited by Sue Jennings (London: Routledge, 2009), pp.

109-116)

 

 

 

 

화로서의 연극

    샘 맥클린(Sam McClean, HMP 매거베리 장기 복역자, 특수강도 행위로 20년 복역)

 

 

하루는 여느 재소자가 그렇듯 내 자신에만 집중하며 교도소 복도를 걷고 있었다. 그러다 복도에서 ESC(Educational Shakespeare Company)에서 온 톰 맥길(Tom Magill)을 만났다.

그는 나에게 연극 그룹에 합류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확신이 가지 않았다. 그의 동기가 의심스러웠고 그가 연극 수업을 빙자한 사회복귀 심리치료를 소개하려는 심리학자 중 하나일 것이라고 계속 생각했다. 나에게는 친한 친구가 몇 명 있었다. 교도소 내부 집단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 외의 사람들의 경우는 아침인사를 하는 정도를 제외하고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모두를 의심하고 누구도 신뢰하지 않았으며 사람들을 멀리하며 지냈다. 그러나 그와 대화를 나눈 후 연극 그룹이 어떤 것인지 보기로 했다. 일단 수업에 가서는 별로 하는 일이 없었고 시간 때우기 용으로 생각했다.

다른 재소자들도 이 그룹에 합류해서 연극 수업은 시작되었고 우리는 매주 목요일에 모였다. 처음에 우리는 매우 의심이 갔고 톰이나 그의 동료 사이먼(Simon)을 별로 신뢰하지 않았다. 두 번째 시간에 톰은 우리 모두가 깜짝 놀랄 말을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이 하고 싶은 것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프로젝트를 구상해서 진행해보십시오.”

 

 

생각의 전환

톰과 사이먼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교도소에서 원하는 것을 하게 내버려두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교도소에서는 정해진 틀에 맞춰 생활해야 하므로 자신만의 선택을 한다는 것은 이례적이고 유쾌한 충격이었다.

우리는 교도소 이야기를 만들기로 했다. 교도소에 수십 년 동안 갇혀 지내는 재소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그러다 마음을 바꾸어 그들 중 한 사람을 집중조명하기로 했다.

결국 우리는 사기로 감금당한 은행간부를 극중 인물로 선택했다. 우리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고 점점 자신감을 얻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때 비로소 톰과 사이먼을 신뢰하게 되었다.

 

 

책임

나는 각본을 쓰라는 요청을 받았다. 사실 취미로 글을 좀 써보기는 했지만 내가 재미있으려고 썼지 다른 사람을 위하여 쓴 적은 없었다. 수개월 동안 각본 쓰는 일에 매달렸다. 이 일을 맡자 기한에 맞추어 글을 쓰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각본작가는 세상에서 가장 힘든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본을 계속 수정해가며 어떤 것은 남기고 어떤 것을 뺄 것인지에 대한 지적을 계속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때 우리가 그룹으로 뭉쳤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전에는 서로 화를 내다 싸우기가 일쑤였지만 이제 우리는 건설적인 논쟁을 하며 프로젝트에 올인 했다. 연극 그룹을 결성하기 전에는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었다. 단속반이 와서 말려야 싸움이 그치곤 했다.

 

 

자신감과 성공

사람들을 대할 때 새로운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의 ‘내부 집단’외의 다른 재소자들도 더 배려하게 되었다. 연극 그룹 모두가 자신감을 가졌고 폭력에 의지하지 않고도 충분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이 각본을 토대로 영화를 만들었고 완성된 영화는 2004년 아서 쾨슬러(Arthur Koestler) 대회에 출품되어 대상을 수상했다. 이제 뭔가를 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더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트레이시(Tracey) 교도소장은 재소자들이 교도소에 와서 가족들에게 끼치는 악영향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것을 제안했다. 우리 그룹은 젊은 재소자들이 출소 후에도 계속해서 교도소에 오는 것을 봤으므로 이 다큐멘터리를 기꺼이 제작하기로 했다. 그룹 내 재소자 대부분은 장기 복역자였지만 단기 복역자도 일부 있었다.

우리는 그룹의 젊은 재소자들을 아꼈고 이들을 통하여 젊은 상습 재범자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우리는 다큐멘터리 제목을 ‘중대한 질문’으로 했다. 그 질문은 “교도소에 다시 오시겠습니까?”였다.

 

 

계속되는 성공

이 다큐멘터리도 큰 성공을 거두었고 2006년 쾨슬러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에는 자막이 붙여져서 다른 유럽 교도소에서도 상영되었다. 우리가 얼마나 기뻤는지는 상상이 갈 것이다. 우리는 완전히 자신감을 회복했고 톰과 사이먼을 포함한 그룹 전체를 신뢰하게 되었다.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선택권이 주어졌고 이를 통하여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잘 처리할 수 있었다.

 

 

셰익스피어라는 친구와 뉴욕대학교 학생들

톰은 ‘맥베스’를 교도소 상황에 맞추어 각색한 영화를 제작해보자고 했다. 사실 셰익스피어라는 친구가 쓴 연극은 하나도 읽어 보지 못했었다. 그래서 현대어판 ‘맥베스’를 읽었는데 엄청나게 재미있었다. 이런 연극이 있다니! 이 연극에 나오는 배반, 충성, 욕심, 야망은 교도소 생활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했다. 고어판도 읽어봤다. 셰익스피어의 천재성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나, 제이슨 외 재소자 한 명은 ‘맥베스’를 각색하여 롱애비(Longabbey)라는 가상의 교도소를 배경으로 각본을 썼다. 첫 대본 낭독은 2006년 8월 4일 금요일 매거베리 교도소 예배당에서 했다. 미국 뉴욕대학교에서 연극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40명이 참석했고 일부는 각본에 있는 등장인물 대화 부분을 읽어주었다. 미국 영사관 소속 공무관 캐시 L. 허스트(Cathy L. Hurst)는 일부 교도소장들 및 제프 무어(Geoff Moore)가 이끄는 교도소 교육담당직원들과 함께 참석했다.

우리는 영화를 매거베리에서 제작하고 싶고 연극도 만들고 싶다. 영화의 부분 부분을 연극으로 만들어 무대에 올릴 계획이다. 연극의 경우 출소 예정인 단기 복역자들이 순회공연을 하면 좋을 것이다.

 

 

뭔가 다른 교육

이 연극 수업은 참여자에게 선택권이 주어진다는 점에서 일반 교육 프로그램과는 달랐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 우리만의 교육과정을 만들었고 이를 통하여 우리 자신의 교육에 대하여 책임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 예로 각본 작성에 대한 온갖 종류의 책을 구해야 했다.

연극수업에서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교사의 개념이 없었다. 학생들 앞에 서서 “입 닥치고 들어!”라고 말하는 인물이 없었던 것이다. 건설적인 논쟁과 공동의 문제해결이 있을 뿐이었다. 흡연, 그룹 내 행동, 쉬는 시간, 역할, 책임에 대한 수업 내 규칙도 우리 스스로 정했다. 누구도 수업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무언의 규칙도 있었고 이 규칙은 잘 통했다.

일반적인 수업에서는 권한이 교사에게 있다. 그러나 이 연극 수업에서는 권한이 그룹 구성원들에게 있다. 우리는 상호 합의를 바탕으로 모든 결정을 내렸다. 톰 맥길과 사이먼 우드(Simon Wood)는 전체 과정을 원활하게 했다.

 

 

현재의 나

이제 나는 매거베리에 있지 않다. 벨파스트(Belfast)에서 ‘행동’ 프로젝트에 참여중이다.

주중에는 ESC 일을 하고 주말에는 가족들이 있는 집에 간다. 내가 ESC의 사무실을 관리하고 이 회사 비즈니스 세미나에 참석하고 뉴욕대학교 학생 40명 앞에서 나의 영화 프로젝트에 대하여 이야기할 거라고 3년 전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면 그 사람 면전에서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그 교도소 복도에서 톰을 만난 이후 나의 삶은 완전히 변화되었다.

과거에는 사람들을 쫓아버리곤 했지만(내가 그것을 원했으므로) 이제 사람들을 섬기게 된 것이다(그들이 나의 섬김을 필요로 하므로).

 

 

영화감독 톰 맥길

- 어떻게 예술교육에 눈 뜨게 되었는가

 

내 이름은 톰 맥길이고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 있는 ESC(Educational Shakespeare Company Limited)의 공동창립자이자 현재 예술감독으로 재직 중이다.

ESC는 연극과 영화를 통하여 재소자들과 전범자들 등 소외계층에게 공인된 교육 트레이닝을 제공하는 교육 자선단체이다.

 

예술교육과정이라는 말을 들으면 나의 지난 여정과 그 과정에서 나에게 영향을 미친 사람들이 떠오른다. 따라서 공식석상에서 절대 받지 않는 질문은 바로 “왜 지금 하는 일을 하는가?”이다. 즉, 왜 예술 교육을 하는지 그리고 왜 교도소에서 셰익스피어 작품을 활용하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나의 배경에 대하여 조금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나는 영국의 북아일랜드 합병을 지지하는 벨파스트 북부에서 태어났다. 나의 가족은 내가 13세 때 분쟁을 피해 잉글랜드로 이주했다.

잉글랜드에서 한 교사는 내가 아일랜드인이라는 이유로 나를 신체적으로 괴롭혔다. 나는 내가 영국인이라고 주장했다. 그 교사는 나의 억양을 놀리며 반 전체가 나를 따돌리게 했다. 아일랜드가 싫었다. 학교가 싫었다. 교육이 싫었다. 교사들이 싫었다. 결국 졸업장도 받지 못하고 15세 때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경험을 통해 나는 내 자신을 증오하게 되었다.

19세 때 폭력 행위로 3년형을 선고받았다.

 

우리 갱단이 고자질쟁이(경찰에게 우리의 범죄행위를 알리는 사람)라고 낙인찍은 사람에게는 복수의 공격이 기다렸다. 그 시점에 나는 내가 속한 집단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었다.

또한 내가 가지고 있던 증오와 분노를 전가할 구실도 되었다. 다른 불쌍한 녀석이 내가 느꼈던 것을 맛보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렇게 폭력을 쏟아낼 때 쾌감을 느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해치고 나서 느끼는 죄책감에 대해서 나에게 이야기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러한 죄책감을 스스로 발견했다. 나는 재소자들이 죄책감을 느끼고 있지만 그 감정을 표출할 길이 없다는 것을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이었다.

 

베드퍼드(Bedford) 교도소 내에서 내가 머물던 방은 나의 적의 방 옆이었다. 바로 아일랜드공화국군(IRA) 단식투쟁자였다. 또 다시 나의 증오와 분노를 쏟아놓을 구실이 생긴 것이었다. 방에서 층계참에 내놓은 빈 식판을 모았다. 그러고는 딜레마에 빠졌다. 이 자를 찌를까 아니면 뜨거운 것에 데게 할까?

내가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체중이 31.7 킬로였다. 마치 어른 옷을 입은 아이 같았다. 나의 증오는 긍휼로 변했다. 그를 구해주고 싶을 뿐 해칠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내 인생을 허비하지 말고 교육을 받으라고 했다. 나의 적은 나의 스승이 되었다. 그랬다.

 

굶주려 죽어가면서도 그는 나에게 좋은 충고를 해주었다. “교육을 받아라. 너의 문화에 대해서 배워라. 네 자신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여기서 세월을 낭비하지 말라.” 그의 충고였다. 그가 전해준 가치는 나에게 도전의식을 심어주었고 내 자신을 뼛속까지 흔들어놓았다.

나는 그 사람, 프랭크 스태그(Frank Stagg)의 말을 깊이 새겨들었다.

 

그날 저녁 지하 3층 층계참에 있는 교도소 도서관으로 갔다.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를 읽고 그 책에서 묘사된 인간애에 흐느껴 울었다.

나의 예술교육은 이때 시작되었다. 중요한 삶의 전환기가 찾아온 것이다. 스타인벡의 등장인물들을 통하여 내 자신의 인간애도 발견할 수 있었다.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파괴적인

사람에서 창조적인 사람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젊은 재소자들이 있는 교도소로 옮겨진 나는 얼마 안 있어 프랭크 스태그의 죽음에 대한 글을 읽었다. 내가 시작한 창작의 길을 계속 걷겠다고 다짐했다.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읽었다. 머리가 아팠다. 그러나 그때를 계기로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빠져들게 되었고 오늘날에 이른다. 셰익스피어는 어떤 것이 사람들에게 동기의식을 부여하고 왜 사람들이 특정한 일에 열정을 보이는지 알았던 작가였다.

 

나는 교도소에서 ‘O'레벨(교육 자격증)을 세 개 취득하고 출소하여 다른 동네로 이사했다.

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예술교육을 통하여 내 자신을 재창조했다. 나는 'A'레벨을 취득했고 연극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교에서 희곡과 연극 특히 셰익스피어는 부유층만의 여가활용수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성장한 배경과 전과는 이러한 새로운 세계에는 맞지 않았다. 이방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뭔가 다른 것을 원했다. 나는 교도소에 있을 때 경험한 내 자신의 변화를 통하여 예술교육의 힘이 뭔지 알았다. 뭔가 새로운 것이 더 있을 것이 분명하다는 것도 알았다.

 

변화를 이루어내고 싶었다.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나의 경험을 공유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다 아우구스토 보알(Augusto Boal)과 ‘억압받는 자들의 연극’(TO: Theatre of the Oppressed)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수동적인 관객들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리허설을 통하여 능동적인 연기자가 되도록 용기를 불어넣음”(보알, 1979)

그것은 해방을 위한 예술교육이었다. 예술, 특히 연극은 중산층의 여가활용수단으로만 사용되기에는 너무나 중요하다고 본다.

 

보알은 수감되었다가 브라질에서 추방되었다. 그를 통하여 배웠고 그와 나의 수감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는 나를 그의 북아일랜드 대표로 임명했고 그는 내가 소외계층에게 예술교육을 제공하기 위하여 1999년 공동창립한 회사 ESC의 후원자가 되었다.

 

 

 ‘미키 B'(Mickey B)는 이러한 노력의 예이다. ‘미키 비’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장편영화로서 경계가 최대로 삼엄한 교도소에서 생활하는 재소자들이 배우로 출연한다. 재소자들에게 죄책감을 표출할 기회를 주고 싶었다.

 

이들이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느끼는 죄책감은 나도 직접 겪어봐서 잘 안다. 이러한 죄책감을 픽션을 통하여 창의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가해자들이 범죄로 인하여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첫 번째 단계이다.

‘미키 비’를 통하여 재소자들은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느끼는 죄책감을 고전작품의 등장인물들을 통해 안전한 환경에서 표출할 기회를 얻는다. 이러한 창의적인 표현은 치유 과정이다.

 

‘미키 비’는 지금까지 우리 단체가 실시한 프로젝트 중 가장 야심적이라고 할 수 있고 사실 이러한 영화는 세계 최초이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장편영화에다 촬영지는 경계가 최대로 삼엄한 교도소인데다 배우들은 가장 ‘다루기 어려운’ 장기 수감자들이기 때문이다. '미키 B'를 제작하는 데는 꼬박 2년이 걸렸다.

 

영화제작에 참여한 15명은 이들의 참여로 인하여 ASDAN 능동시민상을 수상했다. 이들 중 다수에게 이는 난생 처음 받는 교육 자격증이었다. 글을 읽고 쓰지 못한다고 해서 자격증을 얻는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ASDAN이 동영상 자료를 성과 증거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었다.

 

‘미키 비’ 파생상품으로는 이 영화를 기반으로 한 교육 패키지가 있다. 교육에 흥미를 잃은 젊은 층을 위하여 고안된 이 패키지는 연극과 영화를 활용하여 맥베스 이야기에 친숙하게 다가가게 하는 한편 상호교류가 가능한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이 자료는 영화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범죄 가능성이 높은 반항 청소년을 참여시키기 위한 경험적 학습방법이 적용된다. 등장하는 재소자들을 긍정적인 교육적 역할모델로 제시함으로써 이러한 청소년들의 창의 잠재력을 일깨우는 것이 본 교육 자료의 목적이다.

 

 

우리가 실제 적용을 통하여 개발한 ‘해방시키는 예술교육 방법들’은 다음과 같은 특성이

있다.

- 사람들을 존중하고 신뢰를 구축한다.

- 사람들을 선택 및 결정권이 있는 개인으로 대한다.

- 사람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책임감을 북돋운다.

- 사람들에게 자신이 속한 세계를 규명하고 변화시킬 수단을 제공한다.

- 문제제기를 통한 탐구방식이다.

- 대화를 전제로 한다.

- 학습자들의 체험에서 출발한다.

- 지식, 권위, 권력 사이의 연결고리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