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말리 - 무대의 체게바라

무거운 빈가방 2012. 11. 7. 00:30

 

말리 (2012) Marley

 

 

Bob marley "no woman no cry" 1979

http://www.youtube.com/watch?v=jGqrvn3q1oo

 

 

http://www.youtube.com/watch?v=IJ7U_3bJoBk

 

One Love

http://www.youtube.com/watch?v=eu9fF4_rnPo&feature=related

 

Jamming.(Live

http://www.youtube.com/watch?v=5WlCdiU9IzA

 

Bob Marley buffalo soldier

http://www.youtube.com/watch?v=Yql9I2zARd4&feature=related

 

 

bob marley - three little birds - subtitulado

http://www.youtube.com/watch?v=ec33MYsFYRg&feature=related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69539&videoId=38204&t__nil_VideoList=thumbnail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69539&videoId=38326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47087&videoId=15021&t__nil_VideoList=thumbnail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말리의 노래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뭔가에 취한 듯 그의 읊조리는 노랫말은 일상의 대화처럼 사람의 마음을 비집고 들어온다.

 

그의 가사는 더욱 더 그렇다.

 

자신이 느낀 또는 당한 울분도 노래에 토해내고 다른 이들의 아픔도 동화되어 읊조리며

 

그 어떤 이든 망설이지 말고 평화를 노래하라 외치는 그의 힘은 고스란히 음악으로 울린다.

 

 

말리가 공연했거나 인터뷰 했던 과거 기록물과 현재 가까운 사람들이 말리에 대해 회고를 이야기 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말리'란 영화는

 

일반 영화 만큼이나 극적이다. 그리고 감동적이다.

 

백인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자메이카 사회에서는 혼열이라 미움받고 늘 외톨이 였던 그가

 

음악을 통해 일어서고 힘차게 나아가며

 

죽음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에도 오로지 음악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직접 대면하는 방식은 보통 사람이 할 수 잇는 것이 아니다.

 

최루가스로 사람들이 쓰러지고 코를 막고 같은 밴드가 무대뒤로 숨는 현재에도 그냥 정신나간 듯 노래를 부르는 그는 얼쭈 신의 모습과 닮은 듯 보였다.

 

말리의 인터뷰를 통해 그가 사랑하는 음악이나 종교에 대한 생각들을 보여주고

가족과의 인터뷰로는 가족엔 매우 무심하지만 모든 이들과 함께 하려는 공동체적 사고를

동료들과의 인터뷰에서는 그의 사상 고민 행동 반경 그리고 커나가기 까지의 과정 등등을 이 짧은 시간에 아주 샅샅이 훑어 나간다.

 

그리곤 그의 정열과 음악 무대를 보여주며 발리에 대한 가치를 극대화 시켜준다.

물론 영화는 이러한 순차적 편집이 아니라 그냥 수수히 일생을 쫓는 방식을 취하지만

오히려 가슴에 전해 지는 감동은 더욱 큰 듯하다.

 

그가 노래 부르는 모습은 아무 과장도 없고 거대한 힘도 없는 그냥 그렇고 그런 사람이  약간은 수줍은 듯 좀은 취해 있는 듯 읊조리는 듯 자기 도취에 빠진 매우 평범하다.

이 작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용맹성은 체게바라와 통할까! 

 

1. 이전에 시네마테크에서 엘리스프레슬리 LA 실황 공연을 본 적이 있다. 가사에 대해 아무런 번역도 없었지만 그가 땀을 흘리며 부르는 노래만으로도 감동의 전달이 충분했다. 대가수가 된 것이 그냥 된 것이 아니라는 강한 느낌.

 말리의 경우도 그렇다. 그냥 그렇게 운으로 탄생되는 대형스타는 없다. 준비되고 참고 나아갈 때 나아가는 사람만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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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정보 다큐멘터리 | 미국, 영국 | 120 분 | 개봉 2012-08-02 |

감독 케빈 맥도널드

출연 밥 말리 (본인 역), 지기 말리 (본인 역), 리타 말리 (본인 역)

 

 

 

줄거리

레게의 전설, 밥 말리를 만나다

 

1945년 자메이카 출신인 ‘밥 말리’는 레게음악의 전설이자 대표적인 싱어 송 라이터이다.

17세 때 첫 녹음을 시작하며 뮤지션으로 데뷔, ‘웨일러스’라는 그룹을 결성했다.

 

‘밥 말리’의 음악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흑인 해방 사상을 표방한 신흥 종교인 라스타파리안교(Rastafarian)의 이해가 필요하다. ‘웨일러스’ 활동을 하던 중 밥 말리는 1972년 영국의 레코드사와 계약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이 전 세계에 알리기 시작한다.

 

그는 등 민중을 핍박하는 사회 현실을 비판한 곡들이 수록된 두 번째 앨범 <내티 드레드>(Natty Dread)를 발표하면서 흑인 민중의 행동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던진다. 시대의 아이콘이 되고 있는 그를 자메이카 정부가 그대로 놔둘 리가 없었다. 1976년 자메이카 총선을 앞두고 인민국가당을 지지하는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던 중, 밥 말리는 아내와 매니저 그리고 자신의 팔이 크게 다치는 총기 테러를 당한다. 그 사건으로 2년 동안 그는 영국에서 망명 생활을 보낸다. 1978년 내전 상태에 돌입하려는 자메이카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그는 고국으로 돌아와 평화콘서트에 참여해 앙숙이던 두 정치지도자인 인민국가당의 마이클 만리와 자메이카 노동당의 에드워드 시가의 화해를 주선한다. 대립 중이던 두 지도자의 손을 맞잡은 밥 말리의 사진은 아직도 유명하다.

 

 

<말리>는 자메이카 나아가 핍박 받고 있던 아프리카 민중의 권리를 위해 노래를 부른 밥 말리의 생애를 그린 다큐멘터리이다. 그의 옛 모습을 담은 뉴스클립, 가족과 동료들의 인터뷰를 따라가다 보면 ‘저항의 아이콘’으로서의 ‘밥 말리’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아버지에 관한 많은 작품이 있었지만 이 영화가 더 특별한 건,

밥 말리라는 레게 전설이나 신화적 인물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의 인생에 사람들을 더 감정적으로 이어주기 때문이다”

_지기 말리 (뮤지션, ‘밥 말리’의 아들)

 

 

 

이영화의 키워드 : 음악

태그라인            나의 음악은 울음으로 시작되었다. - Bob Marley

 

 

 

 

 

 

 

 

 

 

 

 

 

 

 

 

 

 

 

 

밥 말리 - 엑소더스 77 (2007) Bob Marley: Exodus 77

 

 

 

 

 

 

요약정보 다큐멘터리 | 영국 | 93 분

감독 안소니 월

출연 밥 말리

 

 

 

<밥 말리-엑소더스 77>은 자료 영상을 사용하는데 있어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1977년부터의 뉴스 및 텔레비전 자료화면들과 밥 말리의 음악과 언어들이 펼쳐지면서 과거를 매혹적으로 되살린다. 이미지와 소리 사이의 때때로 초현실적이기까지 한 관계는 우리들에게 자료 영상과 밥 말리의 친숙한 음악, 특히 그 가사들을 함께 볼 수 있도록 해준다. 또한 시대 분위기를 표현하는 중요한 뉴스들을 명쾌하고 섬세하게 배치함으로써 영상자료의 연구와 효과적인 사용이라는 결실을 거두고 있다.

(제4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전설의 기원 <말리>씨네21|김효선|입력 2012.08.04 05:01

 

 

 

자메이카의 한 시골마을에서 "붉은 애송이"로 태어나 신화로 남은 예술가. 영화 < 말리 > 는 전설적인 레게 뮤지션 밥 말리의 생애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2011년 국내 개봉작 < 라이프 인 어 데이 > 의 케빈 맥도널드 감독은 사진과 뉴스클립, 콘서트 영상, 그리고 친지들의 인터뷰를 토대로 밥 말리의 탄생부터 죽음의 순간까지를 연대순으로 좇아간다. 기교를 거의 배제한 채 간소한 형식으로 일대기를 재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 말리 > 는 주변 사람들의 기억으로 쌓아올린 소박한 헌사와 같은 작품이 되었다.

 

 

 

 

 

 

 

 

 

 

 

 

 

 

 

 

 

< 말리 > 는 혼혈이라는 이유로 흑인과 백인 모두에게 배척당했던 밥 말리의 유년기와 밴드 '웨일러스'를 결성하고 라스타파리아니즘에 심취해 음악적 전환을 맞는 과정에 특히 주목하며, 전설의 기원을 개인사적인 차원에서 되짚는다. 인간 밥 말리는 여인들 사이를 자유로이 떠도는 방랑자이자 무뚝뚝한 가장이었고, 타인을 쉽게 믿지 않는 현실감을 보이는 반면 테러의 위협 속에서도 무대에 올라 평화를 설파하는 이상주의자기도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전 인류의 통합을 촉구하는 그의 메시지가 결코 추상적인 유토피아주의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신념이 개인사를 관통하는 고단한 전투의 결과물임을 영화를 통해 목격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전투의 배경에는 수없이 많은 자메이카인들, 더 나아가 캐리비안 해역으로 긴 여정을 떠나야 했던 아프리카 선조들의 격통이 가로놓여 있다.

레게음악을 이끌어낸 정신도 마찬가지다. < 말리 > 는 레게의 경쾌한 리듬이 전복적인 유머와 아득한 환영으로 이루어진 사실상의 울부짖음임을 보여준다. 그 때문일까. 영화의 담담한 화술이 남기는 꽤 긴 여운 속에서, 한 지독한 예술가의 열망에 끝내 고개를 숙이게 된다

 

 

 

 

 

씨네21 관련기사

 

전설의 기원 <말리>

 

 

 

 

밥 말리

 

 

 

위키백과사전.

 

출생 1945년 2월 6일 자메이카 세인트 앤 주(州) 나인 마일

사망 1981년 5월 11일 (36세)

국적 자메이카

장르 레게

활동 시기 1962년~1981년

 

웹사이트 BobMarley.com

 

밥 말리(Robert Nesta "Bob" Marley, OM, 1945년 2월 6일~1981년 5월 11일)는 자메이카의 싱어송라이터이다. 레게 음악의 가장 대표적인 가수이자 작곡가이며 기타리스트이기도 하다.

 

[편집] 생애

본명은 로버트 네스타 말리이고, 1945년 2월 6일에 자메이카의 세인트 앤에서 태어났다. 17세에 첫 녹음을 시작하였고, 1963년에 버니 리빙스턴과 피터 토시를 포함한 "웨일러스"라는 그룹을 결성하였다. 그는 이 그룹의 리드 기타리스트였고, 결국 리트 보컬리스트가 되었다. 1968년에 그는 라스타파리안으로 개종하였다. 그의 음악은 그의 신앙이 강하게 나타나있다.

밥 말리의 명성은 1972년에 영국의 레코드사들과 계약을 맺은 후에 전세계로 번져나갔다. 말리는 세계의 정치적 대항의 메시지에 레게 음악을 퍼뜨렸다.

 

밥 말리의 대표곡으로는 에릭 클랩튼이 불러 널리 알려진〈I Shot the Sheriff〉, 그를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만들어준〈No Woman, No Cry〉등이 있다. 정치적 대항에 관한 곡으로는 〈Exodus〉, 〈Zimbabwe〉, 〈Rebel Music〉등이다. 그의 기념비적 앨범인《Legend》(1984)는 전 세계적으로 12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으며, 가장 많이 팔린 레게 음악 음반이기도 하다.

밥 말리는 1981년 4월 자메이카 최고의 훈장인 자메이카 메리트 훈장을 받았고, 그해 5월 11일에 폐암으로 사망하였다.

1994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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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 프로파일 25탄 - 밥 말리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2년 10월 16일, 뉴욕의 메디슨 스퀘어가든에서 거행된 밥 딜런(Bob Dylan)의 음악 인생 30주년 기념 공연에서 벌어진 일이다. 본래 밥 딜런의 ‘I Believe in You’를 부르기로 예정되어 있던 아일랜드 출신의 여성 싱어-송라이터 시네이드 오코너(Sinead O’Connor)가 무대에 등장하자 일순간에 장내는 야유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의례히 행해졌던 공연 전의 미국 국가 부르기를 거부하고 걸프전의 주동 국가인 미국을 공공연하게 비난했으며, 급기야 전 미국 국민이 시청하는 유명 토크쇼에서 교황의 사진까지 찢는 등 끊임없이 미국의 패권주의와 보수적인 종교의 권위에 저항했던 여성 뮤지션에게 그 자리는 애초부터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더욱이 미국을 대표하는 뮤지션 밥 딜런을 기념하는 자리였으니 상황은 더욱 좋지 않았다.

 

 

관객들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직감한 시네이드 오코너는 어떻게 해서든 공연을 지속시키기 위해 연주를 맞춰나가던 세션 멤버들을 저지하며 무반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어떤 인종은 우월하고 어떤 인종은 열등하다는 철학이 완전하게 사라질 때까지 전쟁은 항상 존재할 것이다, 인종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이 평등해지는 그날까지 나는 전쟁에 대해 말할 것이다.” 그녀가 처한 상황을 그보다 더 극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노래가 또 있을까? 바로 밥 말리가 1976년에 발표한 앨범 [Rastaman Vibration]에 수록된, 그의 노래 중 가장 직설적이고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담은 명곡 ‘War’였다. 노랫말은 아프리카의 근대화에 평생을 바쳤던 에티오피아의 마지막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의 유명한 연설문을 기초로 한 것이다.

 

 

 본명은 로버트 네스타 말리(Robert Nesta Marley), 레게 음악의 전도사이자 억압받는 인종을 대변하는 정신적인 지주였던 밥 말리의 인생은 평범한 대중 음악 뮤지션의 삶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치열한 저항과 투쟁의 역사이기도 했다.

 라스타파리아니즘에 입각한 그의 음악적 가치관을 공고히 표출하는데 있어, 그에 반발하는 기득권층과 보수주의 세력들의 위협에 항상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1976년에는 자메이카 킹스턴에서 정체 불명의 괴한들에게 습격을 당해 총상을 입는 큰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럼에도 불과 이틀 후에 예정되어 있던 공연(밥 말리가 이 당시 부른 오프닝 곡이 또한 ‘War’였다.)을 감행할 만큼 그가 음악을 통해 대중에게 설파하려 했던 신념과 철학은 확고한 것이었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그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조국을 잠시 떠나있어야 했지만 1978년에 다시 복귀하여 역사적인 'one Love Peace Concert'를 주최했고, 이를 통해 서로 대립하던 정치권 지도자들의 화해를 이끌어내면서 내전으로 인한 분열 직전이었던 자메이카를 위기로부터 벗어나게 만든 (뮤지션으로서는) 전대미문의 업적을 남기게 된다.

 

 1977년에 치명적인 암세포가 발견되었음에도 병세의 치유는 뒷전으로 제쳐두고 공연 활동과 음악 창작에만 몰두하던 밥 말리의 건강은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했다. 1979년에 발표한 정규 앨범 [Survival]에서는 ‘So Much Trouble in the World’와 ‘Zimbabwe’, ‘Survival’과 ‘Africa Unite’와 같은 더욱 노골적이고 강경한 메시지를 담은 곡들을 통해 건재함을 과시했지만, 1980년 뉴욕의 센트럴 파크를 산책하던 중 쓰러진 그는 다시 일어서지 못했고 결국 1981년 5월 11일 뇌암으로 인해 36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이후 대중 음악의 흐름과 역사에 침투한 밥 말리의 지대한 영향력 또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레게 스타일을 대중적인 팝 음악으로 정착시킨 UB40가 가장 먼저 떠오르겠지만, 솔로로 독립하면서 월드 뮤직에 심취하기 시작한 폴 사이먼(Paul Simon)으로부터, 뉴 웨이브 팝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했던 ‘Down Under’와 ‘Who Can It Be Now’로 빌보드 차트를 점령했던 멘 앳 워크(Men At Work)의 음악 스타일에서도 그 영향력을 감지할 수 있다.

 1990년대의 대중 음악에서 밥 말리가 남긴 흔적들은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빅 마운틴(Big Mountain)과 이너 서클(Inner Circle)이 빌보드 싱글 차트를 점령한 것은 물론, 공격적인 래핑에만 경도된 장르의 관성화에 경각심을 일깨우는 자의식적 힙합을 주창한 어레스티드 디벨로프먼트(Arrested Development), 레게 장르 특유의 그루브를 얼터너티브 록으로 승화시킨 서브라임(Sublime)과 노 다웃(No Doubt)에 이르기까지 그 추종 세력들의 계보는 지속적으로 이어져오고 있다. 단순하게 장르의 방법론을 계승하는 차원을 벗어난다면, U2와 시네이드 오코너를 비롯한 정치, 사회적인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의식있는 뮤지션들의 멘토로까지 그 역할은 더욱 확대된다.

 

 밥 말리가 공식적으로 남긴 정규 앨범은 10여장 남짓에 불과하다. 게다가 그의 사후 벌써 3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기까지 했다. 그러나 비슷한 경력을 지닌 뮤지션들과 비교했을 때, 밥 말리라는 존재는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그 영속성에 무게를 더해가고 있다. 과연 그의 음악에는 어떤 힘이 담겨있기에 그것이 가능할까? 우리가 가장 낙천적인 스타일의 음악으로 인식하고 있던 장르가 실제로는 가장 치열한 삶의 정서를 반영한 음악이었다는 사실,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렇게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이어갈 수 있는 매개체임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서두에 언급한 노래 ‘War’의 구절처럼, “어떤 인종은 우월하고 어떤 인종은 열등하다는 철학이 완전하게 사라질 때까지”, 밥 말리의 음악은 영원히 후대에 전해질 것이다.

 

Legend Exodus Natural Mystic Rebel Music Burnin'

 

100비트 | 이태훈 (뮤직랜드 기획팀장)

모름지기 남자라면 공학과를 나와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잘못된(?) 전공을 택하게 되었고, 덕분에 지긋지긋하게 싫어했던 수학, 물리에 기초한 각종 역학 과목들과 씨름하며 보낸 4년 간의 대학 생활은 어떤 의미에서..

 

http://100bea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