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량 이바구길 – 어떤 이야기가 더 재미있고 유익할까?
20-03-01
전날 비석마을에 비석찾기 하느라 제법 많이 걸었다. 덕분에 감천마을도 잠시 들렸고.
일욜은 이바구길을 가보자 하신다.
점심으로는 근처에 ‘돼지 불백’니나 ‘복순네’에서 하는 걸로 하고 간다.
부산역 근처에 차를 두고 역안을 지나는데, 올리브영에서 <마스크 노마진> 행사를 하는데 줄이 제법 길다.
<이바구길 사진관>을 시작으로 <백제병원>을 지나 초량 이바구길로 접어든다.
시작 골목 벽엔 옛날 사진들이, 계단에는 가위바위보 동상이 있다.
초량초등학교 담에는 이바구길 지도와 동구 지역 유명인사들이 사진으로 붙어있다.
독립운동가(장건상,박재혁,허정,박순천), 시인(유치환,김민부), 유명연예인(나훈아, 이경규, 박칼린) 등의 사진과 설명이 있다. 이 분들의 업적은 매우 훌륭하지만 여기서는 그 누구보다 압권은 <장기려>박사이다. 다른 분들도 한명한명 다 소중하고 훌륭하지만 어느 지역에 가더라도 또 훌륭한 다른 분들이 계신다. 그런데 장기려 박사 같은 분은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한분 밖에 없다,
한강이남에서는 최초의 교회라는 <초량교회>도 초량초등학교 담과 마주하면서 3.1운동 신사참배거부하신 목사님들 명단과 사진 등이 전시되어있다.
초창기에 세워진 한국교회는 사회적 운동을 많이 한 것으로 보인다. 광주, 목포에서의 교회들이 그랬다. 20년대 이후 교회들과는 결이 많이 다르고 민족운동에 이바지한 바는 크지만 해방이후 이 정신을 계속 이어간 곳은 그리많지 않아 보여 매우 안타깝다. 지금 한국에 일어난 코로나 사태를 볼 때도 그 구심에 개신교가 있으니 마치 개신교도들이 좀비처럼 변해가는 것으로 착각될 정도이다.
< 민족혼을 깔아먹기로 다카키 마사오와 궤를 나란히 하는 이승만도 여기서 연설했다>
조금 더 오르니 <168>계단이 보인다. 입구에 <168 도시락국>이란 가게가 있으나 코로나 사태로 문을 닫았다. 이 지역의 건축 주제가 <녹슨 쇠>인 모양이다. 건물이나 가게 장식, 동상 등이 녹슨철로 만들어졌다. 이타미준의 <석박물관>은 세월이 지나면서 변하는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다보니 처음 붉었던 것이 점점 녹슨 모습으로 자연산화되어 변했는데 이곳은 처음부터 <녹>을 강조한다.
이바구길의 최고 압권은 <168모노레일>이다. 다른곳에서 보기 어려운 풍광 중 하나이고 이 길에 닥히 포인터가 없기에 더 그렇다. 그런데 사진을 찍을 포인터에 몽땅 차들이 장사진이다. 적어도 게단 시작은 보여야는데 가까이에 바짝 붙어있는 차 때문에 첫시작계단에서 위에 가지 사진 찍는 것은 불가능하다. 주차가 힘든 지역이라는 것은 이해는 가지만 이리 만들어 놓은 지역이 차 한 대 때문에 방해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관리부실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다. 최소한의 공간은 확보해줘야 하는 건 아닌가! 이 정도는 관리해줘야 이것이 바로 구청이해야할 일이지!
모노레일 주변으로 카페와 전망대 <김민부전망대> <빵>파는 곳 등 다양한 장소가 있다. 물론 코로나 사태로 모두 문을 닫았다.
원래 지역 안내를 하는 분들이 있었으나 이 분들도 당분간 아나온다 한다. 그래도 모노레일은 움직인다. 우린 내려올 때 타본다.
차들 때문에 전체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제일 뒤 차는 너무 심하다.
적어도 저 차정도에는 금지를 시켜야는데 만들긴 해도 관리는 안한다는 소신이라도 가진 듯>
<김민부 전망대에서 그의 시 기다리는 마음을 노래하고 게시는...>
<별을 따는 소녀....>
< 모노레일 전동차가 올라온다>
모노레일 위쪽에도 몇 개의 카페와 <당산> <이바구길공작소>가 있으나 휴점.
<물통에 그림이 있으니 보기가 훨 낫다.>
<옥상이 참 이쁘다. 전월세도 있네... 그런데 아래로 조금 내려 가보니>
<전망좋은 방 ㅋㅋ , 저 꼭대기 최고의 전망이겠다. 옥상을 잘가꾸었다.>
장기려는 한국의학사에 전말 두드러진 존재 아닌가! 한국의 의료보험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세게에서 제법 나름 잘정비되고 운영되는 그 기초가 장박사님한테서 비롯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의 삶이 철저히 아래로 향하면서 베푼 의술은 세계의 귀감이다. 그 어디에도 없는 분인데, 그 분ㅇ[ 대한 테마로 꾸며도 이바구길 전체 보다 클 수도 있을 것인데 너무 약소하다. 작아도 아름다울 수 있지만 관광자원에 그렇게 목말라 하고, 많은 돈을 들여 테마를 만들어 <이바구길>이란 이바구를 만들어 내면서 엄청난 테마는 최소로 보여준다?
< 박사님의 시를 보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절로 고개숙여지고 마음은 숙연해진다.>
초량 골목에 대한 설명에 <한사람 겨우 지나갈 골목>이란 글도 제법 보인다. 근데 어제 간 비석마을의 골목을 보고 나니 이 지역골목은 골목도 아니다 ㅋㅋ
모노레일 타고 내려온다.
배가 그리 고프지않아 점심은 지난번에 못간 <초량밀면>으로, 아뿔사! 그새 가격이 올랐다. 4천원이라 들어 매우 관심이 가져졌는데 5천원이다. 근처 가게에 힘든시기 힘내라고 <2천5백원>하는 곳도 있고 60년 가까이 된 집도 마다했는데. 이집에 길게 줄 서서 먹은 이유는 가격 경쟁력이 제일 컸을 것이다. 먹어 보니 그맛이 그맛이다. 특별 내용없고 특별이 줄 서야할 이유도 없다. 이제 5천원이니 더 그렇다. 근처 육전밀면이 오히려 낫겠다. 다시 메고밀면이 절로 떠오른다. 괜히 곱빼기 시켜서 배만 부르다. ㅠㅠ
부산역 안을 경유하여 차로 가는데 어마마. 마스크 줄이 이젠 어마무시하다. 대략 1키로 정도는 되는 것 같다.
<건강한 사람은 마스크 쓸 이유가 없다. 손 자주씻어라> 이런 이야기는 우이독경이다. 하긴 길에 마스크 안쓴 사람은 거의 우리 둘 밖에 없으니...
< 아래 오른쪽이 마스트판매대, 가운데 사진이 출발점. 이 줄이 역사를 삥둘러서 위에 줄로 연결되고 그런 뒤 마스크를 산다.
거의 1키로쯤 되어 보인다. 엣날 명절날 기차표 서려는 서울역 줄 같다.>
일욜 낮은 이렇게 시간이 간다.
와인이 다떨어져 사러 가는 길에 뱅숙누님 댁에 들려 제주도서 사온 젓갈 건네주고 두분 간단 교정해 드리고 마무리.
******** 다음 사전에 장기려박사님 간단 내용
장기려 張起呂
출 | 1909, 평북 용천 |
---|---|
사망 | 1995. 12. 25, 서울 |
국적 | 한국 |
요약 평생 사회봉사와 의료사업 발전에 헌신했다. 감동적인 그의 인술활동이 전세계로 알려져 1979년에는 필리핀 정부가 주는 막사이사이 사회봉사상을 수상했다.
월남한 뒤 1950년 6·25전쟁 중 발생한 전상자와 극빈환자에 대한 무료치료를 시작으로 인술을 통한 인간애를 실천해왔다. 부산에 정착한 그는 1951년에 피난민들을 위해 영도에 복음병원을, 1958년에는 행려병자를 위해 토성동에 행려병자 진료소를 차려 무료진료를 하는 한편 1959년에는 기독의사회를 조직해 인술의 전파에 노력했다. 1968년에는 국내 최초의 민간주도 의료보험조합인 '청십자운동'을 창시하여 가난한 환자들을 구제했다.
1932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전신인 경성의학전문학교를 마치고 일본 나고야대학[名古屋大學]에서 의학사학위를 받았다. 1940년 3월부터 평양의과대학 외과 교수와 평양도립병원장을 지내다 1950년 1·4 후퇴 때 평양에 부인과 2남 3녀를 남겨둔 채 차남만을 데리고 피난하여 이산가족이 되었다. 월남한 뒤 6·25전쟁중 발생한 전상자와 극빈환자에 대한 무료치료를 시작으로 인술을 통한 인간애를 실천해왔다.
부산에 정착한 그는 1951년에 피난민들을 위해 영도에 복음병원을, 1958년에는 행려병자를 위해 토성동에 행려병자 진료소를 차려 무료진료를 하는 한편 1959년에는 기독의사회를 조직해 인술의 전파에 노력했다. 1953년부터 20여 년 동안 부산대학교 의과대학 및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산 복음간호대학,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등에서 의학을 가르쳤다.
1968년에는 국내 최초의 민간주도 의료보험조합인 '청십자운동'을 창시하여 가난한 환자들을 구제했다. 1975년에는 부산 수정동에 청십자병원을 설립해 직접 환자들을 진료했으며, 1976년 한국청십자사회복지회, 1985년 장애자 재활협회 부산지부를 창설해 영세민과 장애인의 복지향상에 힘썼다. 간질환자 치료모임인 장미회, 생명의 전화 등 사회봉사단체를 창설·운영하는 등 평생 사회봉사와 의료사업 발전에 헌신했다.
감동적인 그의 인술활동이 전세계로 알려져 1979년에는 필리핀 정부가 주는 막사이사이 사회봉사상을 수상했다. 한국청십자사회복지회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대통령상, 국민훈장 동백장, 부산시민상, 국제적십자사기장(봉사 부문), 호암상을 비롯해 타계를 앞둔 1995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가 주는 제4회 인도주의실천의사상을 받았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철선생님 방문 3. (0) | 2020.03.04 |
---|---|
방 옮기다 - 시사인 읽다. <편을 가를 것인가 합쳐서 이길 것인가> (0) | 2020.03.04 |
아미동 비석마을- 좁디좁은 골목과 계단으로 이뤄진 마을 (0) | 2020.03.01 |
7층 이쁜이 (0) | 2020.02.25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지구상에 노인 천국인 K 라는 나라. (0) | 2020.0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