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시위
동일이 형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 이전에 <민주화운동 관련자 증서>를 받았는데
정부는 증서만 주고 희생에 대한 보상은 안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서울 경기 등 몇 개 지방자치에서는 조례를 만들어 보상을 하고 있단다.
경북 대구는 긁힘이 장악하여 가능성이 0이란다.
부산은 일정 가능하니 시장에게 보상을 하라는 일인시위를 해야겠단다.
난 금요일 배정 받았다.
시간은 1시간~1시간 20분 정도 점심시간 사람 이동이 많으니 공무원들에게 알리기 위해 피켓을 든다는 것.
난, 과거를 많이 잊었다. 직장은 떠난 지도 오래되어 관계된 일을 전혀 안했기 때문이고, 관련자들과 교류도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잠시 몸담고 투쟁하고 했던 것은 그 시대의 매우 작은 역할로만 상정하고 덮어버린 셈이다.
이 일 한달 전에 윤선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리의 투쟁을 백서로 만드니, 중요 투쟁의 하나인 관계자들과 인터뷰를 좀 하자고.
박선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용을 좀 적어서 톡으로 보내달라고..
난 잘나지 않는 기억을 쥐어짜보지만 진척이 없다. 달라붙어야 하는데 그것이 잘안된다.
당시 학생들에게 연락하여 자기 활동 기억을 좀 보내달라고 했다.
내가 몸 담았던 곳은 학생들의 투쟁이 가장 컸고 길었다.
당시 아이들은 선생님들을 지킨다는 의지로 학교 측과 사회에 대해 싸웠다. 그러나 그들을 억압하는 관리자들과 선생들도 많고 친구들 간에도 나눠지니 힘듬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거다.
학생회 간부들은 사퇴하라는 억압을 늘받고 나중엔 결국 징계도 받았다.
투쟁하는 중에는 다른 것을 하기가 쉽지 않다.
학업에도 많은 방해가 되었을 것이니 대부분 재수를 했다.
나도 종종 나의 삶에 후회가 많은데 아이들은 더 그랬을 것 같다.
이리 저리 아이들 전번을 찾아가고 통화를 하고 만나면서
이들이 가졌던 아픔을 이제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난 당시 투쟁에만 눈이 멀어 사람 하나하나를 못 본 거다.
모두를 살피긴 어렵다 하더라도 적어도 싸워야 한다는 당위 만큼이나 아플 것이라는 현실에도 눈이 갓어야 했다. 다독이고 격려가 필요한 시간에 난 그곳에 없었고, 눈에 보이 지 않았으니 별 갈등도 없었다.
처음 통화한 아이(지금은 어른이지만)도 있다.
이들은 가장 정열적인 나이에 가장 치열하게 산 덕분인지 모두 나름 자리를 잘잡고 있는 것 같다. 뒤늦게 다시 공부를 한 아이도 있다.
당시 어려움이 이들에겐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도록 했을 가능성이 큰 것 같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조만간 만나자고 했다.
아무튼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한다.
시청 공무원이 그리 많은지 몰랐다. 끝임없이 사람들이 나온다. 봉팔형님 말로는 1만명이 넘는다네...
힘든 사람 지원금은 별로 안주면서 내년 공무원 월급은 올리겠다 하니 내 세금이 억수로 아깝게 느껴진다. 의료보험, 전기세도 올린다. 직일놈들...
근데 점심 먹고 돌아오면서 사람들은 손에 뭔가 들고 온다. 70% 정도는 다 들고 잇다. 그래 냉커피 플라스틱이나 온커피 종이컵이다. 엄청난 숫자다. 공무원들만이라도 자기 컵을 들고 다니게 한다면 프라스틱공화국이란 불명예도 좀은 가라앉겠다.
환경문제도 강제성을 띄지 않으면 사람들은 지키지 않는다. 귀찮기 때문이다.
내가 입구쪽 가까운 도로가에 있는데 사람들은 다 문에서 나오자 마자 오른쪽 아니면 왼쪽으로 가버린다. 식당 방향이다. 그래서 위치를 문가까이로 옮겨 있으니 경비직급이 좀 높게 보이는 사람이 도로가입구쪽을 권한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에게도 다 그리 권하고 다 그리하는데 당신만 여기서 하면 형평성 문제가 된다 한다.
참 웃긴다. 어이 이런 일에만 형평성을 따지는가?
난 내 있는 곳에 있다가 마무리 짓겠다 했다.
그 사람도 1인 시위는 강제성이 없으니 그리 하라 한다.
이리 인정할 것을 .... 일단 자기 편한 쪽으로 밀어 부쳐 보는 거다. 나쁜 습성이다.
서 있는 거야 어렵지 않은데 사람들 반응이 매우 놀랍다.
눈으로 살짝 보는 사람도 잇지만 대부분은 다 보도 안한다.
공무원도 노조가 있을 건데 잠깐 목례를 한다든지, ‘수고하십니다’라 인사치레라도 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다. 그래서 매우 놀랍다.
상대에 대해 철저한 무관심. 공무원이지만 국민 보다는 그냥 내 눈앞의 일만 처리하고 끝이라는 복마전의 느낌.
그래, 그래도 이런 사람들이 다 촛불을 들어서 세상을 바꾸었지. 지금은 지쳐있는거야. 단지 지쳐있을 뿐이라고....
다른 쪽에서 피켓을 든 철문형이 가잔다. 맛있는 점심 사주겠다고..
형이 있었던 곳엔 국회의원 ‘최인호’가 ‘이낙연’ 후보와 같이 시청 방문을 했단다.
그렇다는거지... 우린 옛이야기를 좀 나누며 복국 한 그릇하고 헤어졌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왕십리 김종분>과 <ST송탄 갤러리> (0) | 2021.11.09 |
---|---|
진구청: 하성흡의 윤상원전, 상상마당 : 라오미등 10100전시회 (0) | 2021.10.05 |
내 생각에 잠긴다. (0) | 2021.09.27 |
인사동 코트에서 커피 한잔 (0) | 2021.09.23 |
09-15 오화진, 갤러리 세인 , 이창효, 데이비드 레만 (0) | 2021.09.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