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2-12 고속버스
이대역에서 무엇을 탈것인가 갈등이 생겼다. 472번을 타면 한번에 가나 비록 늦은 시간이라도 길이 막혀 늦을 수도 있고 2호선은 너무 둘러 간다. 게다가 선릉에서 갈아 탈 때 시간 소요가 많다. 두명이 서로 다른 차를 타서 누가 먼저 도착하는가 비교 해 본 적이 없기에 선택은 언제나 그날의 기분이다. 전철을 탔다 한티에 늦게 도착하면 고속버스터미날 가는데 택시를 타야한다. 집에 들려 짐 챙기는데 15분 정도는 걸리기 때문이다. 내가 서둔다 한 들 차가 빨리 가지 않으니 그냥 차에 맡겨둘 수 밖에.
하필 성수까지가는 차란다. 서있는 것보다 낫겠다 싶어서 탔다. 몸살림 책을 본다. 성수에서 내려 갈아타고 선릉에서 다시 갈아탄다. 전철이 늦어 선릉에서 소요되는 시간이 너무길 듯 하다. 얼른 3번출구로 나가서 버스 정류소까지 뛰어갔다. 버스를 빨리 타면 집까지 거리가 전철보다 훨씬 가깝기에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늦으면 할 수 없고. 짐을 챙기고 정류소에 다시 나가니 12시5분이다. 15분 정도를 더 기다리니 340번 버수가 온다. 이것타고 뱅뱅사거리에 내려서 2234번으로 갈아타면 고속터미널까지 택시 타지 않고도 갈 수 있다. 버스가 있을지? 부산 보다는 버스가 일찍나서고 늦게 까지 다녀서 일반인들에겐 좋다. 밤새도록 일하라는 중앙의 바쁨이기도 하겠지.
버스는 끊어진 모양이다. 4432 차만 우짜다가 한번씩 지나간다. 택시를 탄다. 택시 타고도 갈등이다. 서울엔 가까운 거리는 차를 잘 태워주질 않는다. 처움엔 무시하고 타고 내리지 않고 버텼다. 가까우면 택시는 오만 소리 다해서 손님을 내리게 한다. 요리 몇 번하고 나니 나도 힘들다 그래서 조금 가까우면 이젠 그냥 타지 않고 어디 간다고 미리 말한다. 서울 사람 다 되었다. 태워주면 감지덕지다. 이럴 때 카드로 계산하면 기사는 군시렁거린다. 그래서 가까운 거리 택시타면 카드와 현찰을 번갈아가면서 만지작 거린다. 어떤 놈의 회사는 카드수수료를 기사에게 내게 한단다. 우리에겐 부조리가 구석구석에 늘려있다. 게다가 이리 조그만 일에도 소심하게 갈등하는 내겐 언제나 고민의 연속이다. 걸어도 누워도 뭘 타도 고민이다. 치매는 오지 않겠다. 늘 고민으로 긴장하면서 살고 있으니...
1시 차를 타려고 하는데 모두 매진이고 1시50분 차 밖에 없단다. 1시간 반 가까이 남은 시간 소주한병에 컵라면 하나면 배고픔과 술고픔을 함께 달래겠다 싶다.
몇일 전 강대장과 구서전철역 앞에서 남은 시간 10~15정도의 빡빡함에도 불구하고 소주 한병 사서 길거리 오뎅으로 후다닥해 치운 덕이 있다. 그 때 술맛은 추위와 다급한 시간 좋은 친구 3박자로 인하여 거의 절정의 맛이었다. 내가 담은 술 다음으로 맛있는 술이었다. 이 후 차를 탈 때면 으레 혼자라도 소주 사서 마시고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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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가는 버스 어데 데이요?’
토요일 밤이라 버스들이 매진이 많이되어 1시50분 차를 구한 나는 1시간 반 정도를 기다려야한다. 그래서 소주 한병과 컵라면 하나로 1시간 정도는 떼우려고 편의점에서 계산하고 있는 중이다.
' 터미날 안으로 들어가 바로 왼쪽으로 쭉가면 매표소 있고 그 근처에 있심다.'
조금 전 그곳에서 표를 구한 나는 나름 길을 상세히 잘설명했다 생각하고 소주는 베낭옆에 꼽고 가방을 뒤로 다른 가방은 옆으로 차고 끓인 물 넣은 컵라면을 손에 들었다. 짐이 많으니 매우 부자연스럽다.
그런데 길 묻던 이 아자씨 편의점 알바에게
' 진짜 맞아요?' 라고 다시 묻는다.
' 못믿을거면 말라꼬 물었소!' 짜증이 난 가볍게 받아치고 나가려니 문안으로 고개만 내밀고 있던 아자씨와 부딪치는 자세가 되었다. 그 아저씬 옆으로 약간 비켰으나 나가는 나와 가벼운 충돌이 일어나면서 베낭옆에 대충 꼽아둔 소주가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깨어버린다.
다시 짜증이 난다. 컵라면을 계산대에 도로 두고 진로 빨간딱지를 한병 들고오니 이 아저씨 소주값 계산을 하고 있다.
'뭐하요? 내가 잘못 보관하여 깨어졌는데 아저씨가 말라꼬요.' 말기며 게산을 하려하자
' 괜찮심다. 그라면 같이 묵으면 안되능교.'
그것 참. 그림이 이상하게 되었다. 나는 선듯 '그랍시다' 하고 같이 터미날 안으로 들어갔다.
반대편 부산가는 버스 대합실은 불이 훤하나 여긴 얼쭈 영업마감인지 불이 꺼져잇다. 노인한명과 여자로 보이는 두명이 모두 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 앉아서 자고 있다. 노숙자로 보이진 않고 차를 놓쳤서 아침에 탈 차를 기다리는 사람으로 보인다.
보통 편의점에서 서서 먹어야하는데 요놈의 편의점은 라면 먹을 자리도 없이 좁은 곳이다. 인사동 식당엘 가면 화장실이 예술이다 할 정도로 좁은 공간을 기가막히게 활용하여 남녀공용으로 변기 하나 세면대 하나를 가지고 있는 대궐같은 이상한 집들도 많더만. 서울은 요술같은 도시다.
짐은 의자 뒤로 두고 양쪽으로 앉았다. 누가 두고 갓는지 빈구두박스가 눈에 띄여 술상삼아 가운데 두고 라면을 올리고 한잔씩 종이컵에 그득 부엇다.
'와이래 많이 붓능교'
'술은 가득채워 마시는기 제맛이지요.' 술도 제대로 못먹는 나는 얼쭈 술고래마냥 큰소리다.
배도 고프니 한잔 입에 가득물고 우루룩 한번 한뒤 마시고 라면 한젓가락 한다. 그리고는
' 토요일 밤으로 표가 별로 없습디다. 혹 모르니 표 끊고 와서 한잔 합시다. 기다리고 있으께요.
5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아저씨는 얼굴에 주름이 많다. 농부일까? 이 늦은 밤에차를 탄다고.
'일단 술 좀 먹고 천천히 가지요'
' 차 떨어지면 여기서 잘라꼬요?'
' 자면 되지 뭐.'
그것 참. 이 아저씨 막무가내다. 그런데 소주는 마시지도 않는다.
'어디 사요?
'부산요. 아저씨는요?'
'대구'
'대구 어디요?'
'그라는 아저씨는 어디요?' '구서동요. 범어사 가까이 있는'
'그래요?'
자기는 어느 동네라는데 어딘가 몰라 꼬치꼬치 물엇는데 그래도 모르겟다. 그래서 어느 구냐고 물으니 달서구란다. 달서구는 많이 들어본 구가 아닌가?
'대구 가도 버스 기다릴라믄 한참인데 우짜지?' 걱정스러운듯 말하다가 ' 마 부산 같이 가뿠까?'
이거 왠 거머리. 갑자기 이상한 사람만나 이상한 사람과 여행하는게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든다.
' 12시 넘었으니 대구가면 바로 버스있을낍니다.'
'그럴란가?'
대책없는 아저씨다. 갑자기 한숨을 쉬더니
'내가 서울에 형님 만나러 와서요, 신경질이 나서 고함지르고 마 나왔붓다 아인교, 택시를 타고 여기저기 어딘지도 모르는 길을 다니다가 대구갈라꼬 여기가지 왔심더'
'와 형님하고 싸웠는교?' 한숨을 다시 크게 쉬더니
'그랬지요. 뭐 대문에 싸웠을꺼 같소?'
갑자기 퀴즈놀이 버전으로 간다. 대답은 해야제 같이 한잔하는 자리에 그냥 혼자 묻게할 수가 있나?
' 다 돈 때문 아닝교? 돈 아니면 요새 싸울일이 뭐 있겠소?'
'그리 생각하요?'
'나도 형하고 좀 그런데, 자존심이나, 부모문제, 돈 이런것 때문에 그런 경우가 많은데요.'
' 소리 지르고 나오고 보니 내가 쬐게이 잘못했단 생각도 들고..'
'그라면 대구가지말고 가서 잘못했다 해야지요.'
그냥 또 한숨이다. 뭔가 외롭고 쓸쓸한 사람이 지나는 사람을 붙잡고라도 하소연하고픈 표정이다. 그런데 진도는 더 이상잘안나간다. 하고는 싶지만 뭔가 입이 안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얼굴에 핀 주름들은 살아온 세월을 느낄 수 있는 듯하다. 시골할배의 완고함도 주름만큼 깊게 베여있다.
' 표 부터 끊고 오지요?' 걱정이 되어 다시 말했다.
' 뭐 안가면 되지요.'
'안가면 돈도 못돌려 받는데 말라꼬 아저씨 보다 잘사는 버스회사에 돈 보태주요? 가서 돈돌려받고 술이나 계속하입시다.'
'그럴까요?'
그 때서야 가방을 그냥 두고 표 끊으러 간다.
'가방 안가지고 가요?'
'어디 도망갈끼요? 그냥 두소 내 금방 갔다올테니'
잘먹지도 못하는 소주를 큰컵에 한잔 마시니 조금 알딸달하기 시작한다. 어차피 기다리는 시간 이 아저씨 만나 짧지만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다.
금방 돌아 온 아저씨는
'3분 차라네요.'
그것참. 지금이 1시니 3분차면 곧 가는 차다. 안갈듯이 하던 양반이 표 끊어오라니 바로갈 차를 끊은 모양이다.
'3분요?' 그라믄 지금 바로인데' 그런데도 이 아자시 다시 자리에 앉는다.
'뭐 안타면되지.' 참으로 재밌는 사람이다. 마음이 오락가락하는지 떼를 쓰는지...
' 천천히 갈라면 표 바꾸소'
'안할라요. 그냥 안타면되지뭐.'
'안타면 돈도 안돌리주는데 우리같은 사람이 고속버스회사 같은 부자들 한테 말라꼬 돈 보태줄낀교 바까오소'
요 말 녹음기 튼듯 또 했다.
'그런가요?' 이제야 내 말을 들을 듯이 하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난다.
'갈라요. 건데 이것도 인연이라는데 우리 언제 다시 만나겠능교'
아주 짧은 잠시의 시간인데 참 오래동안 본 친구마냥 눈물까지 글썽인다.
'친하게 지내던 어릴 때 친구들도 헤어진 뒤 죽을 때 까지 못보는 경우도 많은데 뭐 언제 보겠습니까? 앞으로 못본다 봐야지예'
이 아저씨 내 손을 덮석 잡더니 힘을 꽉 준다.
'혹 운좋아 이런 곳에서 보면 제가 알아보고 인사하끼요. 곡 기억해 둘낑게...'
' 그럽시다. 잘가소. 난 갑니다.'
가방을 들고 대합실 저편으로 잠시 보이던 아저씨의 뒤모습이 금새 사라진다.
오로웠던 모양이다. 누군가에게 말이라도 아무 말이라도 하고팠던 모양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 아닌가? 대합실에서 볼려고 준비해 둔 것도 있지만, 사람 얼굴 많이 가리는 나지만 지나다가 만난 아무 부담없는 사람에겐 삶의 구석구석을 이야기해도 괜찮을 것 아닌가?
진짜로 부산간다면 같이 갈려고도 잠시 생각했던 나니 나도 처지가 비슷한 모양이다.그야말로 말그대로 잠시 스쳐지나간 아무일도 없엇던 인연이지만 모처럼 사람사는 또 다른 모습을 경험한 것 같다.
소주를 비우고 라면을 치우고 대합실 안 가운데 24시간 운영하는 롯데리아에 잠시 앉앗다. 곧 차를 탈것이다. 그러나 갑자기 옛 생각이 떠오른다.
너무도 좋아했던 아이스크림 이제는 거의 먹지않는 단맛.
난 연거푸 2개를 먹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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