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비올라들의 공연 - 세계유일한 그들 - 자부심 가질 이유없는

무거운 빈가방 2011. 3. 19. 00:00

오랜 친구 덕에 비올라만으로 구성된 연주회를 보러 갔다. 교수가 중심이 되어 팀을 구성했단다. 매우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세계에서 유일한 팀이라고.

 

작년에 이 친구 덕분에 한예종 교수들의 연주회를 본 적이 있다. 그 때도 지금도 이 친구는 표를 많이 사서 주변에 나눠주었다.

 

천사 같다고?

 

절대 아니다. 한국이란 사회에서 예술활동을 한다는 거. 교수 중심의 에술활동이 가지는 엄청난 부조리들.

 

예술대 교수들은 도제를 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노예를 사육하면서 자신의 배를 불릴 따름이 아닌가는 생각이 든다.

 

내 친구는 의무적으로 비싼 표를 사줘야 하는 것 같다. 교수관계 연주나 학생 연주일 지라도.

 

그 표를 주변에 나눌 수 밖에 없다. 씹어 먹을 수도 없고 판다고 해서 살놈도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물론 친구 덕에 귀를 즐겁게 하는 일은 좋은 일이다. 한놈만 희생하면 되니까.

 

왜 세계에서 유일할꼬?

 

난 음악을 잘모린다. 그렇지만 내 귀에 들리는 음은 부드럽지만 너무 단조로운 것 같다.

빠일롱의 고음들은 사람의 애간장을 태우고 더블베이스의 저음은 저 아래 심연의 바닥을 울리듯 가슴을 쉬게한다.

 

그런데 비올라는 언제나 중간 음일 수 밖에 없고 그들만의 집합이기에 힘도 드라마틱한 음도 없다. 그냥 부드러울 뿐이다.

 

그러기에 어느 나라도 이런 팀을 구성하지 않을 것 같다.

 

이것은 음악이 아니라 교수 중심의 에술계에서 교수가 자기 중심의 뭔가 업적을 남기기 위한  만든 악단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대부분 배우는 학생들이고 강사라 하더라도 자기 연마를 많이 해야 하는데 다른 악기들과 팀을 짜서 조화로운 음의 완성에 더욱 매진해야 하지않을까?

 

얼마전 TV 라디오 등에서 후진양성을 위해 잘나가는 외국에서의 자리를 마다하고 한국에 온 사람들의 인텨뷰를 보고 들은 적이 있다.

 

왜 한국인들은 외국에서 잘나가다가 교수 자리만 준다하면 귀국할까?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후진양성을 위해서라한다.

 

대단한 변명들이라 생각한다.(이런 부드러운 말이 잇는데 '개쉐이 보다 못한'이란 표현을 섰다가 고친다. 그들을 이리 표현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순간 표현이 격하다. 늘 이렇네. 글은 종종 훑어보면서 정화시킬 필요가 잇는 것 같다. 며칠전 꾸중들은 것도 이런 이유다. 그래도 개쉐이라 표현할 넘들은 너무도 많다. 이들은 그런 것은 절대 아니지만)

 

그들은 외국에서 보여 주는 프로 보다 철밥통과 신처럼 힘 주면서 아무나 제자들이라면 노예로 부릴 수 있는 무소불위의 힘들을 쫓아 귀국을 하는 것이 봐 진다.

 

얼마전 TV서 본 남자 무용수, 프랑스에서 영구 무용수로  계약하자는대도 뿌리치고 왔단다. 교수할라꼬.

 

몇달전 FM 방송에서 잘나가다가 후진양성의 욕구 땜시 들어왔다는 음대교수, 교수할라꼬 왔단다.

 

그들에게 후진이란 노예로 부릴 수 있는 귀여운 것들....(이 분들이 이런식으로 생각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예술계에 교수들의 군림이 고착화 되어 잇어서 자기 머리 속에 지존의 교수 모습이 절로 그려져 잇을 것이다. -  무의식은 이런 경우에 쓸 수 있는 말인 것 같다.)

 

노무현정부 때 예술계에서 전횡되는 교수 중심의 놀음에서 벗어나고자 극단, 악단 등에 예산을 줬기에 약간의 독립이 있었지만

 

다시 30년 전으로 돌아간 이 시국에 여전히 부모는 허리가 휜다.

 

내 친구에게 용학형 잘 쓰는 말로 ' 욕본다. 근데 허리는 괜찮나?'

 

이 땅의 욕심 꾸러기 중 또 다른 하나는 교수든 교사든 '교'자 붙은 사람들의 교만함. 한 일 보다 몇배나 더 큰 복을 누리고 있는 그들이다.

 

 

1 연주회에서 들은 것들 중 가장 좋앗던 것은 비틀즈도 아니고 배토벤도 아니며 막스부르흐도 아니다.

 

앵콜로 들은 탱고와 미션의 가브리엘 오보에 소리가 최고였다. 내 귀에 익숙해 잇으니 더욱 그럴 것이다.  앵콜곡이라 그런지 이 두곡을 할 때는 형식 보다는 좀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연주해 주어 마음도 편했다. 탱고를 연주할 때 줄리아드 출신의 남자연주자(친구가 그리 이야기 하더라)는 발로 탱고 스텝을 크게 밟아 더욱 즐겁게 해주엇다. 미션의 오보에야 감미로움과 황홀함 그 뒤 폭격을 받을 원주민에 대한 애틋함 등의 오묘한 결합이니 말할 필요도 없겠다.

 

2. 서울 역삼동에 있는 엘지예술관에서 발표회를 했는데  이런 발표회는 학교 강당에서 하면 안될까? 한예종엔 예술관이 없는가? 부모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 예술가들이 해야할 일인지?(친구 말로는 엘지 에술관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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