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녀-임상수의 위험한 도발

무거운 빈가방 2010. 5. 4. 03:48

10-05-03 하녀(메가박스 코엑스)

시사회 보고 술에 취해 블로그 적고 다음날 수정하려니 수정도 잘안되어 일단 블로그를 비웁니다. 오늘 밤이나 재정리하여 다시 올리겠습니다. 혹 보신 분 기시면 사과드립니다. ㅠㅠㅠ

 

처음 하녀를 본 뒤 제목을 ‘임상수의 위험한 도발’이라 잡았다. 이 생각은 변함이 없으나 그래도 임상수 만이 가지는 매력이나 고민들을 보지 못하고 실망에만 집착한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도 해 본다.

처음 시나리오를 집필한 김수현 작가가 자존심 등의 정황으로 빠지고 사과하는 임상수 감독에게 "사과 받고 싶지 않고, 야단칠 의욕 없고, 용서할 수 없다"는 강한 거부를 표현했다 한다.

난 이런 임감독이 좋다. 감독으로서의 자기 자존과 생각들을 끝까지 밀고갈 수 있는 힘. 비록 상대가 우리나라 최고의 드라마 작가인 김수현이라 할지라도 생각을 꺾지 않는 모습을 보인 그가. 그리고 어쩌면 둘의 결별은 당연할지 모른다. 임감독은 부드러운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정성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회적 계급의 모순들을 그의 해학으로 풀어내려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녀는 이런 장점을 잘발휘 한 것 같다. 적절한 노출과 개성 강한 배우들의 연기를 바탕색으로 그 안에 재벌의 오만과 정신병자적 생활을 전면에 배치하고 하위 계급의 저항에 대한 아픔을 마무리 색으로 처리했다.

그렇지만 기존 원작에 대한 부담은 임감독도 가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러니 배경을 현대로 잡았고 내용을 달리 할 수밖에 없었겠다 싶다.

현대 배경을 잡으니 하녀를 둘로 늘였고(집이 너무 크기에 둘도 부족하게 보인다. 그러면 더욱 복잡해지니 단순화 시킨 것이 둘이다.), 이 선택은 전도연의 부담을 들어주어 자기 연기에 집중하게 해 주는 힘이 된 듯하다.

그러나 지금의 하녀라 불릴 수 있는 사람과 이전의 하녀는 비슷할까? 이전엔 전장의 상흔이 아물기 전이라 먹고 살기 힘들어 집집에 가정부로 들어갔고, 월급이 없어도 먹여주고 재워준다는 이유로 고맙다 큰 절 받든 시대였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도 가정부 출신이다. 하녀였다. 지금을 가정하면 월급이나 일신상의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영화가 계급의 모습에 일정 초점을 맞추다 보니 시대에 맞지 않고 엉기적 거리는 것들이 몇몇 보인다. 큰하녀(병식: 윤여정)의 ‘아더매치’가 가장 대표적인 것 같다. 말은 재미가 있으나 현실과 떨어질 수 잇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충성하는 자들을 너무 잘안다. 지금 고개 숙이고 돌아서서 타령하는 사람을 잘골라내는 훈련을 쌓았기 때문이다.

 

 색계는 친일파에게 온몸 바치는 위험성을 감수 하였기에 본토에서는 배척당했지만 영화적으론 성공을 거두었다. 임상수의 선정성은 이미 ‘처녀들의 저녁식사’에서 잘 보여줬다. 그래서 그 점 기대가 컸다. 그런데 여기선 또 다른 문제를 노출한다. 영화를 보면 왜 이리 긴장이 생기지 않을까? 인간적으로 성욕이란 어떤 시대, 어느 장소, 어떤 갈등이 있거나 말거나 생기기 마련이고 긴장감을 동원한다. 그런데 왜? 이정재의 몸은 훌륭한 도구 역할을 하면서도 방해를 한다. 그리고 여러 마리 토끼를 쫓고 싶은 감독의 욕구가 이를 가린다.

CG가 긴밀감을 떨어뜨리는 것도 다른 영화에서 보는 것과 비슷하다.

참 좋은 작품이 될 수 잇엇으나 '하녀'이기에, 대작을 리메이크 하면서 뛰어보려한 시도. 시도는 좋았으나 그 그림자가 너무 깊어  무모한 도전이 되어버린 것이 ‘임상수표 하녀’라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