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신사협정

무거운 빈가방 2010. 4. 27. 11:22

10-04-22 신사협정(씨네마테크)

 

감독 엘리아 카잔

출연 그레고리 펙 (필 그린 역), 존 가필드, 도로시 맥과이어, 제인 와이어트, 셀레스트 홈

 

촉망받는 작가 필립은 ‘스미스 주간지’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뉴욕으로 온다. 편집장 미니피는 필립을 매우 신뢰하며 새롭게 기획하고 있는 "반 유태주의 연재" 기사를 그가 맡아주기를 희망한다. 유태인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인식이 좋지 못한 상황에서 유태인들을 옹호하는 글을 연재한다는 것이 모험인 것은 알고 있지만 필립은 그 일을 맡기로 한다.

한편 미니피의 집에서 그의 조카인 캐시를 만난 필립은 한눈에 그녀에게 사로잡히고 둘은 곧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한편 글의 구상이 떠오르지 않던 차에 그는 결국 자신이 유태인의 입장에서 글을 쓰기로 결심한다. 어머니와 캐시, 그리고 편집장, 친한 유태인 친구 데이브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이 유태인이라고 속이고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직접 체험한 경험을 글로 적어나간다. 유능한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유태인에 대한 크고 작은 멸시와 부당함을 피부로 느낀 그는 점점 이 일에 빠져들어 간다.

그러나 그런 필립에게 불만이 쌓여가는 캐시와 학교 친구들로부터 유태인이라고 놀림 당하는 아들 톰을 보자 그는 당초 6개월로 예정했던 기간을 8주로 마감하고 글을 발표한다. "나는 8주동안 유태인이었다"라는 제목의 글은 사람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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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를 본지 일주일이 다되어간다. 부산엘 내려가면 대체로 2주만에 가는 것이라 일처리하고 만나고픈 사람 만나고 하면 시간이 거의 허겁지겁이다. 그래서 정리가 언제나 미뤄지고 그만큼 감흥도 좀 멀리 가 있다.

 

엘리아카잔의 초기 작품이다. 아직까지는 많은 액스트라를 펼쳐서 그들끼리도 뭔가 연기하는 듯한 넓은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주인공에게 충실하게 카메라를 대고 그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단순하다는 뜻은 아니다. 이후 영화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다.

 

‘신사협정’은 누군가 두 당사자간의 협정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 협정은 ‘불의가 일어나더라도 모른척 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사람간의 암묵적 사회적 약속임을 이를 통해 알았다. 당시는 유태인에 대한 차별을 뜻한다.

미국에도 많은 차별이 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음은 모두 안다. 그러나 1950년 전후에는 유태인에 대한 차별이 있었다는 것은 처음 알았고 놀라웠다. 지금의 미국(유태인 천국이랄까?)을 보면 상상이 안되어서다.

영화의 기본 내용은 위의 줄거리와 같아 사실 추가할 것이 그리 많지 않다. 가짜 유태인으로 행세하는 순간부터 차별이 일어나고 특히 아이에게 행해지는 동네 아이들의 왕따는 가장 분노하는 일로 다가온다. 특히 이 영화는 은근슬쩍 이 대목을 강조한다. 모두가 아이에게는 약한 법이다.

 

제일 문제는 결혼하길 약속한 약혼녀다. 약혼녀는 ‘진짜 유태인은 아니니 괜찮다’는 전제하에 혹 ‘곤란한 자리에 가게 되면 유태인이 아니란 것을 슬쩍 흘리면 된다’는 식이고, ‘차별을 받아도 다음에 유태인이 아니었다고 고백하면 이 차별이 없어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대한 그린(그레고리펙)의 생각은 단호하다. 내가 유태인이든 아니든 관계없이 차별은 없어져야 하고 차별에 대해선 싸워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신사협정’ 파기의 그날까지 싸워야 한다는 입장이니 이 강렬함을 누가 말길 수 있겠는가?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만나자마자 불이 붙었으나 ‘기사 작성을 위한 가짜’의 문제로 언제나 냉담함으로 돌아선다. 그러다 사과하고 후회하고, 다시 싸우고 전화가 먼저 오길 기다리고..... 사랑 싸움은 시대와는 아무런 관계없다.

 

억지로 갖다 붙일 대목 하나. 6개월 작성할 기사를 아이가 당하는 고통 때문에 8주로 줄여 급히 마감한 원고. 이것도 보이지 않는 거대한 압박에 주인공이 약간은 굴복했다는 것으로 해석해도 될련지? 카잔의 이후 행적 때문에 해보는 말이다.

 

가장 가벼운 이야기 하나 하자면 엣날 영화는 당시의 삶의 모습이 나름 담겨있어서 재미있다. 지금은 대부분의 회사가 출입 카드를 가지고 있는데, 손님 방문시 쪽지를 전달하고 접수 받고하는 아날로그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기사를 쓰기 위해 머리를 싸메고 있는 그린에게 캐시(도로시 맥과이어)는 전화를 걸어 ‘전화가 방해 되지 않느냐’는 애정어린 표현을 한 모양이다. 이에 대해 그린은 ‘전화 안와도 기다려지니 방해되는 것은 마찬가지다’는 말을 한다. 옛날 영화의 표현은 점잖으면서 참 본받을 만하다. 우찌 저런 표현으로 감정을 나타내 보일 수 있는가? 지금은 정말 빠르고 거친 시대에 산다.

 

이런 류의 영화는 언제나 가슴 쓰리다. 현재의 내 처지, 그리고 우리의 현실 때문이다. 간첩 아닌데 간첩으로 빨갱이로 덧칠해져 일가족이 피신하면서 살아 간 우리의 현대사와 너무 닮아있다. 아니 우린 더 처참하고 끝이 없다.

대구에서 태어난 아이의 아버지가 당시 출마한 후보가 ‘김대중’이라, 대통령 출마했으면 훌륭한 사람이겠지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아이 이름을 ‘김대중’(김씨이니 아마 박씨였으면 박정희라 했겟지)이라 이름지었다. 그 아이는 인식이 가능한 순간부터 빨갱이, 전라도놈 이란 놀림과 왕따로 정신병까지 앓게 되어 결국엔 자살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이 시대에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에 대해 나는 손 놓고 지낸다. 신사협정을 묵과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냥 나를 놓아둬’ 하면서 절규하듯 .......

탄압을 받던 유태인들이 ‘2천년전에 내 땅이니 땅 내어놓아’ 하면서 들어간 지금의 이스라엘. 2천년 동안 잘 살다 어느 날 쫓겨나 겨우 조그만 땅덩이에서 살아가면서 생존에 위협받는 팔레스타인들. 유태인에 관한 그 모든 것은 관대한 미국의 정치인들. 역차별 받는 아랍인과 오바마 시대에도 여전히 유색인종인 유색인종뿐인 것을(ㅠㅠ).

 

영화는 행동을 촉구한다.

‘신사협정’은 절대 행동하지 않는 비겁의 상징이라는 전제하에 대신 싸워 주길 애쓰도 안되며, 우리 신념을 조롱하는데 그냥 있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사람들과 뭉쳐야 한다. 그리고 빨리 움직여야 한다.시간이 얼마 없다’ ‘ 이건 좀 다른 종류의 전쟁이다.’고 행동의 전쟁을 선포한다.

이 시대의 우리에겐 어떤 신사협정이 있으며 대부분의 사람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우리에게 엄청난 편견을 부술 시간은 과연 얼마나 남았을까?

걸핏하면 신문상에 “좌파”라는 주홍글씨가 실리는 ‘언론협정’의 시대에 있진 않는가?

혹 그런 일이 있다면 그런 언론 관계자들과 그들과 짝짝쿵인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권하고 싶다. (아무 소용이 없겟지만....혹 상영금지 시킬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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