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5-11 하하하 - 나를 하하하 하게 한 홍상수(아트모모)
영화를 보기 시작한 몇 년 전에 처음으로 홍상수영화를 접한 것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였다. 영화는 재미있었는데 내용은 뭔가 아리송했다. 그 뒤 본 홍상수 영화들이 다 그랬다. 자극적인 것을 찾는 나에게 일상을 담담히 보여주는 감독의 작품은 평범하면서도 입맛만 다시게 만들었다. 그래도 묘하게 남아 있는 여운은 사람의 모습을 조금은 영화적이지만 거의 평면에 두고 조용조용 뒤 따라가면서 보거나 즐길 수 있는 꺼리였다.
요사인 영화를 제법 보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너무 복잡하고 극적인 요소를 강하게 두는 영화 보다는 일상을 그린 담담한 영화가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오고 내가 경험하는 듯한 감정이입 까지 되니 더 즐기는 편이다. 원래 단순 무식을 좋아하는 점도 있지만 영화 많이 본다고 부족한 인문학적 소양이 갑자기 높아지거나 기본 스타일이 변하진 않기 때문일게다.
씨네 21에 절반을 할애한 홍상수의 예술에 대한 기사들은 많은 사람들의 기대가 담겨있겠지만 내가 다 이해할 수 있는 세상도 아니다.
어찌되었던 홍감독이 나는 좋다. 그날그날 시나리오 가다리는 배우는 입술이 탈란가 몰라도, ‘이 장면에 이런 깊은 뜻이 있는데’ 라 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난 그냥 편안하게 볼 수 있게 해주고 이해 잘안되어도 답답할게 없으면서 그들의 일상을 담담히 즐기면 되기에.
‘하하하’는 제목도 기막히다. 보는 내내 ‘하하하’했다, 또 전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한 동선에 두고 만나게 하니 멀리 내다 볼 필요도 없다. 시작도 ‘즐거운 이야기만 하자’ 했으니 그들의 바람끼 조차도 즐겁게 받아들여진다. 심각한 시인이나 우울증을 앓는다고 생각하는 그의 선배도 즐겁다. 이순신 장군님 조차도 그리하시니.
그렇다하여 즐거운 것만 있다고 할 순 없겠지. 왜냐면 좋은 것만 이야기하자 햇으니 나쁜 것은 생략했다는 역설도 있을 순 있다. 주인공들의 만남이 어떻게 마무리되었을까? 문경과 성옥의 관계는 강우의 통화 내용에서 잠시 엿볼 수 있고 중식과 연주의 일은 어느 정도 상상이 가능하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만 알면 충분해'하는 대사는 사랑의 힘이겠지만 사랑이 자리잡지 못할 때는 또 다른 성질로 변할 수 있음을 잘안다. 그들의 관계들은 어쩌면 처음 시작 보다 더 꼬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기분좋다.
둘이서 막걸리를 영화가 끝날 때 까지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놈의 안주가 줄지 않는다. 이들은 막걸리와 이야기에 목말라서 안주를 전혀 먹지 않는 걸까? 그들이 먹지 않은 묵을 내가 다 먹고 막걸리까지 얻어먹어 기분 좋을 정도의 얼큰함으로 엔딩을 맞이하니 참 산뜻하기도 했다. 내내 친구들과 한잔하고픈 욕구도 꿈틀대고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떠오른다.
그러다 보니 이창동 감독의 ‘시’를 ‘우찌 보노’ 하는 걱정도 생긴다. 이건 만만찮을테니. 내가 시를 거의 안읽는 이유하고도 비슷할테니.(하긴 소설은 언제 읽었나만은) 그래도 봐야지. 아마 두사람을 산행시키고 만나게 하여 막걸리를 마시게 한다면 하하하의 이들과 비슷할 것이다. 홍감독은 웃으면서 이야기 할끼고 이감독은 그 큰 얼굴을 좀 찌푸리고 이야기 하겠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겠지만 사실은 같은 이야기이겠지. 아~ 이 장면의 감독은 내가 하까?
** 소고기 파동으로 재판가지 당했던 김민선은 괴로움 때문에 원래 이름인 김규리로 바꾸었다. 저 이쁘고 갸날픈 몸에서 거대정치 세력과 거대 수입업자에게 사자성을 토했으나 그 후유증이 너무 크다. 엔딩엔 옛 이름 김민선이 나와서 그냥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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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홍상수
출연 김상경 (조문경 역), 유준상 (방중식 역), 문소리 (왕성옥 역), 예지원 (안연주 역),
김강우 (강정호 역) , 김규리(노정화 역), 윤여정(문경 모 역)
줄거리 (씨네21에서 가져옴)
두 남자가 이야기하는 여름 통영의 이야기들
"캐나다로 이민을 결심한 문경(김상경)은 선배 중식을 만나 청계산 자락에서 막걸리를 마신다. 둘 다 얼마 전 통영에 각자 여행을 다녀온 것을 알게 되고, 막걸리 한잔에 그 곳에서 좋았던 일들을 한 토막씩 얘기하기로 한다.
문경의 이야기. 통영의 관광 해설가, 성옥
"통영에 계신 어머니(윤여정) 집에서 묵게 된 문경은 통영을 쏘다니다가 관광해설가인 성옥(문소리)을 만나 그녀를 쫓아다니기 시작한다. 성옥의 애인이고 해병대 출신인 정호(김강우)와 부닥침이 있지만, 끝내 성옥의 마음을 얻는데 성공하고 같이 이민을 가자고 설득까지 하게 된다.
중식의 이야기. 통영에 같이 온 여자, 연주
중식은 결혼했지만 애인 연주(예지원)가 있고, 함께 통영에 여행을 왔다. 애인은 중식에게 이혼하고 자신과 결혼 할 것을 요구하면서 중식은 괴로워한다. 통영에 내려와 있는 시인 정호와는 친한 사이라 거의 매일 같이 술을 마시고 어울려 다니면서 정호의 애인인 아마추어 시인 성옥과도 알게 된다.
안주 삼아 여름의 인연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던 두 남자, 그러나 알고 보니 그들은 같은 사람들을 만났던 것! 오직 좋았던 일만 얘기하겠다는 두 남자의 만담 같은 코멘트가 청량한 통영에서 일어난 두 커플과 우울한 시인의 만남을 미묘한 댓구의 그림으로 완성해나간다.
요 아래 가운데 놓인 것이 얼쭈 도토리 묵일거다. 저거 끝날 때 까지 그대로다. 군침돈다. 부딪치는 잔소리에 입맛다시고 남은 안주에 눈간다.
슬픔의 표현이 참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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