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5일
태풍이 온다면서 비가 내린다.
태풍이야 와바야 알지만 비 내리니 마음이 괜히 동한다.
수산국수에 전화하니 국수가 없단다.
보통 비 내리는 경우, 날이 축축한 경우는 국수 말리기 어려워 없는 경우가 많은데, 수산국수는 한번 사 먹기 참 어렵다.
갑자기 수산에서 바라보는 낙동강이 떠올라 밥먹고 나선다. 마눌님도 같이 나선다.
진영으로 하여 옛날 수산다리를 건넌다.
수산다리는 내가 학교 다니기 전에 교과서에도 실렸단다. 원래 다리가 없어서 배로 사람들이 건너다가 다리를 놓게 되어 주민들이 편리 해졌다는 형태로.
강폭이 제법 먼데 마이크로 버스라도 건너게 하려면 참 힘들었겟다.
근데 힘든 사공에게 무슨 사정이 있었나? 아님 공사 중에 억울한 죽음이 많았나?
수산 장날에 이 다리를 지나다 버스가 몇 번 떨어졌다.
수산 다리는 보면 장날에 추락이 늘 떠오른다.
다리를 지나면 어릴 때 추억이 몇가지 파편처럼 다가온다.
왼쪽으로 들어가면 정수장 고종누님, 오른으로 내려가면 수산버스정류장.
이 정류장은 거의 바뀐게 없다. 그리고 수산국수,
조금만 가면 어릴 때 아버지께서 천일정기화물 하든 곳이 건물은 다르지만 여전히 있고, 맞은편 양조장은 위치도 가물거린다.
천일정기화물 건물 뒤로 가면 어릴 때 살았던 집이 있는데 변화가 심해 정확한 위치가 가물거린다. 이 골목 안 이 집이 맞을 것이라 생각해 보지만 100% 확신이 안든다.
입구로 들어가면 외양간과 변소가 있고 돌아 마당이 있다. 그리고 일자형의 초가집.
방은 3칸.
부엌에서 아버지 환갑 묵을 쑤엇다.
어느 여름날 마루에서 누나와 물과 밥, 고추만 으로 점심을 먹은 기억이 난다.
환갑 잔치 때 사람들이 노는 모습과 노래 그래, “노새 노새 젊어서 노새,” 그 때 이 노래를 참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논다는 것, 참 중요할 것인데, 힘들게 살면서 놀지도 못하면 무슨 소용잇겠노!
어릴 때 기억으로도 사람들은 힘들게 살면서 계를 모아 가끔 놀러도 다닌 것 같다. 시장 사람들도....60년도 이야기인데, 지금 택배 노동자나 일부 노동자들에겐 휴가의 시간조차도 제대로 주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 산업의 발전이란 대목에서 발전은 어떤 의미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초가 지붕에 올라 감나무에 오르고, 이웃집 큰 기와 담벼락을 기어 오르면 놀았었다.
방학 때 수산 온 누나의 걱정스런 목소리도 떠오르는 듯...
밖올 나오면 새로 생긴(옛날에) 약간 큰길에 성기(재종질)네가 목욕탕을 했다. 공짜로 목욕 한번 못했다.
<왼쪽 폰 대리점 곳이 옛 천일정기화물 자리, 형이 고딩 때 정기화물 차 타고 부산으로 돌아가다가 차가 가술에서 논으로 짜바라졌삤다. 나 중 나도 따라가보니 논에 옆으로 누운 트럭, 형은 버스 타고 가고 난 수산으, 맞은 편이 양조장이었는데 양조장은 동네 유지 아닌가! 친구 아버지인 사장은 운동회 때 마지막으로 교장과 같이 뛰었다. 친구하고는 5학년 때즘 수산강 모래 사장에서 싸울 뻔 했다. >
< 왼 골목안이 살던 집이었던 것 같다... 세상에 같다라니! ..>
내가 자란 수산 집의 기억은 대부분 여기서 인데, 그 곳을 찾기 어려우니 ... 긋참.
복개천으로 가면 큰집 우물은 여전히 있다.
원래 우리집인데 옆의 큰집과 바꾸었다 한다.
이재에 밝은 아재와 곧은 아버지와의 거래라 어떠 내용이 있었는지 난 모른다.
큰집은 워낙 자주가니 기억이 훨신 더 많다.
안에 아지매(재종형수)가 아직 살고 계신데 들어가질 않는다.
약간이 기억이 있는 우리 집은 문이 잠겨 있다. 초가였으나 바뀐지는 꽤 오래 되었다.
길 맞은 편으로 창기 집이 있었는데 이것도 참 오래전에 바뀌었고.
제일 변화 없는 곳이 큰집이다.
꼬마 때 범이하고 자치기 놀이 했는데 지금 보면 이 좁은데서 어떻게 했지? 싶다.
복개한 곳은 원래 제법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 개천이다. 겨울이면 얼어주어 앉은뱅이 스케이트를 즐기곤 했다. 얼음이 얕아 종종 빠지기도 했지만.
둑위로 가면 큰 도랑이 있었다. 이 도랑은 식민지 때 만든 것 같은 데 수산제하고는 관게없다.
5~10 미터 쯤 되는 폭으로 상당히 멀리(몇키로는 되었던 듯) 까지 흘렀는데, 여긴 수영 금지 구역이다. 아마 위험해서 그럴거다.
하지마라 한다고 안하면 아이가 아니지.
물에서 놀다보면 물관리 하는 아저씨가 자전거 몰고 가다가 우리 옷을 몽땅 가져간다.
아이들은 부랄 잡고 따라 간다. “아저씨 다신 안할테니 옷 좀 주세요...”
내 기억들은 파편이고, 몇가지 웃음도 짓지만 많은 아픔들도 떠오른다.
추억은 부질없는 경우가 많다. 떠오르니 생각해 볼 뿐!
내 삶의 두려움과 비겁함도 여기에 다 있었다.
쪼림 피리 튀김을 먹고 싶은데 수산하고 삼량진 쪽은 다 없단다.
소방관 만에게 전화하니 아프단다. 아파 그만 두었다고, 검은 얼굴, 씩씩하게 말하는 그야말로 촌놈 같은 모습이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강따라 가면 콰이강의 다리로 건널 수 있겠지. 언덕에 오르니 바로 옆이 콰이강의 다리다.
근데 강으로 길이 끊겨 돌아도 돌아도 길이 안나온다.
논을 돌고 돌아 겨우 큰길 만나 가다 보니 IC다. 아이씨, 근처 입구에서 순대국수 한그릇하고 바쁜 마나님 때문에 부산으로.
그림 한점이라도 그려야는데.
게으런 몸이 수산강가에 잠시 머문 것으로 끝난다.
코로나의 상처가 강 공원을 만들어 놓고선 출입도 금지 시켰다.
* 학형의 추억 중 집에서 벌 키운 이야길 들으면 재미있다. 마눌님 친구하고도 가가운 사이 였다니 두 가족의 추억이 하나로 합쳐져 한참 웃은 적이 있다.
*** 어릴 때 이야기 하면 호룡 도사를 떠올린다. 자라고 농사 짓고한 이야기는 책으로 내어도 아무 손색이 없다. 그에겐 추억이라기 보다 삶이었다.
***** 재봉도사는 외갓집 함안에서 대단했던 모양이다. 싸돌아다니지 않은 곳이 없다하네.. 안그랬겠나.... 담에 자세히 들을만 하겠다.
갑자기 수산이라니! 늙음의 반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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