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고호석>에 대한 책 <당신 참 좋은>을 읽다.

무거운 빈가방 2021. 1. 4. 12:36

<고호석>에 대한 책 <당신 참 좋은>을 읽다.

 

난 고호석 선생을 잘모른다. 전혀 몰랐다.

살다보면 여러 일들이 누구에게든 일어난다. 내게도 몇차례 변동이 있었고 변동 속에서 살았다. 거성중학교에 올라갔을 때 비로서 고호석 선생을 만난 것 같다.

눈이 나쁜 듯 도수 높아 보이는 안경을 걸친 비쩍 야윈 고선생은 뭔가 차가운 느낌의 사람이었다. 그냥 그런 정도다.

이 후 종종 만남은 있었으나 내가 늘 그렇듯 쓰쳐 지나가는 인연 정도다.

내가 직장을 떠난 뒤 부터, 고선생은 활동영역을 점점 높였다. 내가 주변에 없었고 친밀도가 낮으니 그의 활동력에 대해서도 알 수가 없었다. 나하고 별 관계없으니 더 그랬다.

 

(고호석)이 몸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한번 나를 청했다.

그 날도 참 추운 날이었다. 개금 꼭지에 가서 차를 대고 골목을 내려가 형집으로 갔다.

야윈지만 여전히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형과 몸에 대한 상담을 하고 간단 교정을 해 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운동하는 곳에 직접 와서 교정을 받고 가시라 했다.

내 원칙이 그렇다. 한번은 가지만 다음엔 아픈 이들이 나를 찾아와야 한다고.

 

억수로 건방시럽게 보일 수 있지만, 내가 하는 몸살림운동은 남이 병을 낫게 해 줄 수 없음을 명확히 한다. 그래서 스스로 노력해야만 가능한데 대체로 사람들은 가만히 있으면서 낫게 해주길 원한다. 내가 교정을 하러 계속가면 상대는 가만 있어도 되니 노력없이 성과를 거두려 할 것이다. 그런데 성과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원하지 않는데도 오니까 교정 받는다는 식으로 빠질 수 있다. 그것을 늘경계한다. 물로 내 게으름도 있다.

이런 기본 원칙이나 내가 생각하는 모든게 어쩌면 나의 헛지랄일 수도 있다.

상대가 어이 하든 내 성의를 다해야는데 그러기엔 게으르고 상대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못가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건 갈등을 일으키는 요인인데도 잘안된다.

상대에 대해 자세를 낮추고 애틋한 마음을 가져라나를 보실 때 마다 하시는 김철 사부님의 말씀이지만 막상 상대를 만나면 새겨야할 말씀은 사라져 버린다.

 

호석형은 딱 한번 찾아왔다.

교정하고 이야기 나누고 갔다.

그 뒤에는 나름 다른 방법을 하겠다 한다.

 

대체로 내가 하는 몸살림운동을 적극하는 경우는 더물다.

몸살림운동의 최고 희망은 모든 병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다.”이다.

반대로 가장 큰 약점도 네 스스로 해야만 병이 낫는다이다.

스스로 하려면 각오, 작심해야는데 이게 잘안되고 귀찮다. 게다가 어느 세월에? 시간을 기다리기도 어렵다. 그래서 병원에서 돈과 시간과 약과 주사 뽀게먹기를 한다. 평생을 그리 살고 있는데도 1주일, 한달, 1년을 못기다린다.

 

다음에 형을 병원에서 만났다.

형은 내가 니 말안들었고 이리 누워 있으니 꼬시다고 생각하제

물론 농담이지만 나도 웃고 형도 웃는다. 그러면서 몸을 좀 만져 달라고 한다.

아파서 제대로 눕도 못하는 형을 만지는 것은 흔히 말하는 맛사지 뿐이다. 난 어깨와 등 그리고 팔을 만졌다. 친구 호롱 등이 하는 <양생> 팀들은 돌아가면서 방문하여 헌신적으로 한다고 들었다. 나는 왜 저런 헌신성이 부족할까?

<형의 고통스런 모습을 올리는 것은 누가 봐도 나를 비난할 것이다. 그런데 난 형의 이 사진으로 경계로 삼으려 한다. 오만함에 대한 형의 꾸짖음이라 생각하고.  이 모습은 형의 삶속에 녹아있는 투쟁의 한컷이라고도 생각한다. 이리 누워있음에 대해 세상 모두 조금씩 형에게 덕을 봤다. 이전 보다 약간이라도 좋아진 점이 있다면.>

 

형 때문에 사부님께 전화를 드렸다. 증세를 말씀드리고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사부님은

니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몸이 틀어진지 오래되고 굳을 대로 굳었다. 게다가 모든 부분이 약해져서 뼈가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데 니가 교정 한다고 몸에 힘을 가하면 틀어진 몸에 변형이 이뤄진다. 그러면 니가 상상하지 못하는 통증을 상대가 느낀다. 그리고 교정되지 않는다.”

 

내가 상상하지 못하는 통증.....

그건 형이 받았던 고문 보다 더 아픈 고통일까?

 

아무튼 병원에 있는 형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묵묵히 몸을 만졌다.

형은 날잡아 사진을 좀 찍어야 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와서 사진 찍어달라한다.

나는 강도사를 추천한다. 통화를 하고 바꿔주고 하면서 날을 잡았다.

토요일 날 강도사와 같이 오니 주선생이 있었다. 밤을 같이 보냈단다.

저런 분들이 천사다. 진정한 사람이다.

가족들 사진을 강도사가 찍는다. 나도 찍고 찍히고....

사진이 참잘나왔다.

사진도 잘찍지만 사진 속엔 강도사가 호석형을 대하는 마음도 같이 들어있다.

아이들에 대한 따뜻함도.

모자를 쓴 독사진은 형의 인생이 다 묻어있는 듯하다.

그것이 마지막이다.

형은 죽었고 이승에서 몸을 감추었다.

 

시간이 흘러 형에 관한 책을 만든다 했고 책이 나왔다.

상석형이 주어 이제 읽는다.

 

난 정말 제대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형의 삶이 저리 투철한 투쟁이었고, 세상을 향한 열정이었음을 전혀 몰랐다.

그리고 그가 고문으로 상처투성이가 되고 몸과 정신이 망가지는 속에서 버티고 버텼다는 사실을 이제 겨우 한줄 글로 본다.

 

얼마전 서울에서 은퇴한 종일선생을 만났을 때 그는 호석형이 얼마나 따뜻하고 주변 사람들을 안아가는지 이야기 해 주었다.  그냥 투쟁가 한명이라 생각했던 형이 차원이 다른 사람임을 들었다.

 

미안하고 눈물이 나온다.

지금도 고통 받는 이들을 모른 채하고 넘어가면서 잘먹고 잘살고 있는 나를 본다.

책 마무리에는 그날 강도사가 찍은 사진들이 제법 있다. 그 날이 기억난다. 겨울이지만 병실로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 같은 분위기와 아이들과 경애샘의 웃음과 미소들도.

강고한 힘은 어디서 나올까?

중학교 때부터 생각한 세상에 대한 의문이 어떤 연유로 바뀌지 않고 생을 이어왔을까?

투옥과 고문 속에 생기고 자라나는 분노를 어떻게 눌리며 살아왔을까?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형의 영향을 받고 자란 많은 이들이, 다시 새 영향을 뿌리고 있을 것이니 형의 삶이 진정한 세상살이인 것 같습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당신 참 좋은 (고호석이 쓰고 고호석을 쓰다) 도서출판 빛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