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를 정리하다 보니 20년 전 캐나다 여행기가 있다.
당시 이민 또는 아이들 유학을 보내려고 직장도 그만 두고 캐나다엘 갔다.
영어 안되는 내가 용기내어 횡단을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엄두도 안날 일이다.
당시는 전화카드를 사서 집하고 통화를 해야 했고, 컴퓨터방에 가서 메일을 올려야 햇다. 한국인 민박집에선 컴퓨터를 빌려 메일을 잠시 올리는데 자판이 거의 다 영어라 글 치긴 참 어려었다. 그런 내용들이 편지 형식으로 적혀 있네....
물론 세상도 많이 바꼈다. 지금은 이민이 어이되는지? 간 분들이 어이사시는지 전혀 모른다.
나중 정리하려고 간단 메모 형식도 있지만 대체로 그렇듯 결국 메모로 끝났다.
옛 기억이 많이 희석화되었지만 띄엄띄엄 떠올라 마음도 기분도 미소로 다가온다.
거칠지만 그냥 올려 본다. 20년이 지난 사진 추가하여. 사진엔 당시 한인들이 있다. 이 때는 초상권이 없었기에 그냥 올린다. .......
캐나다 여행기
일정 : 2001 5월 10일 - 5월 27일
지역 : 벤쿠버 - 반프 - 캘거리 - 에드먼턴 - 사스케툰 - 위니펙 - 토론토
주교통수단 ; 그래이하운드 1주일 패스 + 왕복패스(위니팩-토론토) + 비행기(토론토-위니팩) + 다리품
출발은 이러하였다.
반갑습니다. 당신을 너무 사모하는 민병창이라고 합니다. 때로는 당신의 마음을 상하게도 하고 가슴 아프게도 하지만 당신에 대한 나의 너무도 사무치는 사랑은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일 것입니다. 내 주변에 일어나는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자그마한 일들은 일체 신경을 쓰지 마세요. 나의 의지와는 아무 관계 없이 생기는 일들이고 그것은 또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까요. 10일 정도를 혼자서 캐나다에서 배회를 할 것인데 매우 두렵고 걱정이 됩니다. 전에는 주경광이란 막연하지만 아는 사람을 만난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냥 나 혼자니 얼마나 걱정이 되었겠소. 두통이 생기고 힘이 없었던 이유로 이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나 싶소. 잘 지내 보리라. 그리고 나서 우리 캐나다에서 반갑게 만납시다. 모텔에서 보면 그냥 남이 있건 없건 껴안고 찐한 키스 한번 합시다. 건강하시오. 아침마다 산에 오르는 것 잊지 마시오
혼자 여행이라 그것도 아는 사람이 전혀 없는 곳으로의 여행은 너무도 두려웠다. 그래도 남들에게 큰소리쳤으니(실제 그런 적은 없지만 남들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왜냐면 나는 한번도 대중 앞에 자신감을 가진 적이 없는 나약한 사람인데 많은 사람들은 내가 소신 있고 자신감 있는 사람으로 보기 때문이다. - 물론 그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가야만한다. 그래서 비행기에 올랐다.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언어에 대한 열등감을 가지고!
10일 밴쿠버행 비행기안
지난번 캐나다의 왕복 비행기에서는 참한 아가씨를 만났다. 그래서 주로 내가 말을 시피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이번엔 웬 재수(?) 굵직한 사내가 앉아있지 않는가? 어쩔 수 없지 남녀 불문하고 대화를 나눔은 즐거움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강윤석(vkang@ivl.com 250-544-4091)이란 이 친구는 삼성전자에 있다가 이민 온지 3년 정도 된단다. 내가 만난 삼성 출신 이민자만 하더라도 너무 많다. 대우나 현대나 이런 사람들은 한사람도 보지 못했다. 삼성이 다른 회사 보다 외국 출장을 많이 보내어 삼성 출신자들
이 외국에 대한 동경이 큰 이유일까?
한국인의 사기 : 이 친구의 이야기는 꽤나 재미있다. 한국인이 사기를 치는 이유는 한편으로 타당성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초창기 이민자와는 달리 지금의 이민자들은 어느 정도 돈과 지식을 가지고 온다. 그런데 막상 그것을 활용하려니 언어 장벽부터 시작하여 쉽지가 않다. 그래서 손쉽게 시작하는 것이 구멍가게(grocery,laundry)이다. 그런데 고생은 심하고 휴식은 별로 없고 하다 보니 이민에 대한 회의 등도 생기게 된단다. 그러다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면 돈도 약간 되고 하니 다른 일을 하고픈게 사람의 심정.
이 때 부터 문제가 된단다. 장사가 잘되는 곳은 그래도 괜찮은 편인데 건물 임대의 방법이 우리와 다른 구조(전세 개념은 전혀 없고 5년 계약에 5년 연장 가능 식의 방식이 캐나다의 계약이다. 그런데 장사가 잘안되어 중간에 나간다 하더라도 5년 계약 만료까지는 달세를 무조건 내어야한단다. 이것이 캐나다 법이다. 그리고 단점일 수도 있다. 왜냐면 이것은 땅을 가진 사람을 철저하게 보호해 주는 중세식의 계약 방법이요, 철저한 자본주의의 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를 가지고 있어 장사가 잘 안되는 상점을 구입
(이 때 언어장벽 때문에 주로 한국인 부동산에게 상점을 구하게되고 또 팔려는 사람도 한국인 부동산에게 제법 많은 복비를 주면서 물건을 팔려는 조건 등이 성립된다.)한 사람은 그만두지도 영업을 하지도 못하게 되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래서 다시 팔게되는데 우리 한국식으로 권리금은 받고 싶고 손해는 보기 싫으니 새로 이민 온, 캐나다에 아직 적응이 안된 사람에게 상점을 비싼 값에 팔게된다. 이것의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는 것이 현재 이민 사회의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이트에 한국 사람을 조심하라는 희한한 내용들이 많은 이유도 이것이다. 사람들은 이제는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속는 사람이 바보가 아니냐는 식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민자 중 상당수가 사업이민이고 사업이민은 2년 내에 반드시 사업(10만불-약 1억 정도 이상의 돈을 들여)을 해야 하는데 처음에는 사회에 적응도 하고 파악도 한다는 명목으로 놀고 지내다 세월이 지나면 조건 충족을 위해 서둘 수 밖에 없는 것이 이민의 현실이기도 하니 알게 모르게 속기가 쉽다는 이야기이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속고 속히는 이 사슬의 고리를 누가 어떻게 끊을 것인가. 평소에는 남의 떡이 크게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내 떡이 지나치게 보이는 자만심과 자존심을 가지는 것이 인간 아닌가? 한국인들은 너무 많은 갈래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 대해 흔히들 조선시대의 당쟁에서 비롯되고 한국인의 습성이 아닌가 하는 주장을 펴는데 나는 결단코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것이 100% 맞다. 모두들 진실을 모르고 아는 자는 감추는 이야기일 뿐이다. 현대 우리의 갈래는 분단과 독재에서 나왔다. 분단으로 인해 반공주의자(극우)나 친일파들이 득세하고 이들은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독립
운동 세력이나 죄익들을 극단적으로 몰아 부친다. 여기서 생겨난 것이 사상의 탄압이고 서로가 타 사상을 인정하지 못하는 극단적 사회 분화가 일어나게 된다. 거기에다 박정희 같은 독재자들은 지역 감정을 이용하여 남한을 분리 통치하는 방식을 택하고 지역 발전에 대한 안배도 경상도를 중심으로 행한다. 여기서 지역의 불균형과 선거시의 지역 감정 자극 등이 10년 이상의 세월 속에서 완전히 자리잡게 되고
보수 언론들은 이런 상황들을 이용하여 국민들의 감정을 자극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여 온 것이 우리 나라의 실정인 것이다. 즉 현대 한국이 가지는 구심점을 잃고 단결되지 못한 모습은 결코 과거의 유제가 아니라 현대에 들어와 분단과 독재가 만든 작품에 불과한 것이다. 이것을 진실된 언론이 거의 없으니 국민들은 들어 본 적이 없고 어쩌다 들어도 지역 감정에 빠지면 아무런 소용이 없게되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 정치의 잘못을 비판하더라도 감정적이 차원에서 비판하게 되고 잘못을 저지른 많은 상부 인사들은 조선시대의 붕당 정치에서 생긴 것이기에 조선은 생겨서는 안되는 나라라고 주장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조선이 붕당 정치를 할 때는 견제가 있었기에 그 엄청난 왜란과 호란 속에서도 정부가 유지되고 힘들었지만 사회가 발전을 가질 수 있었다. 일본에 통신사를 파견해 주면 하나라도 배울 것이라고 일본 사람들은 이들을 환대하고 그저 접촉하려고 노력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세도 정치기에 접어 들면서 이 모든 것은 다 무너지고 만다. 16세기 조선이 타사상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면서 알게 모르게 사상에 대한 경직성을 가졌는데 이제 세도 정치는 사상의 경직성 뿐만 아니라 사회 모든 것에 대한 부정부패가 판을 치게 되고 그 어떤 배타적 적대 세력도 용납 못하는 시대로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이 때의 사상은 탄압은 이전의 탄압의 도를 넘어선다. 결국 사회가 서로의 사상이나 행동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고착화된 현상을 가지니 발전은 끝날 수 밖에 없지 않는가? 조선의 무너짐은 여기에 있다.
또 어디 그 시대에 조선만 무너졌는가. 아니다 아시아의 모든 나라는 무너진다. 일본이 무너지지않았다 하여 무너진 책임을 조선에게만 돌리는 것은 세계 역사의 흐름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만약 조선이 일찍 개항을 했다면 하는 헛소리를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절대 그럴 수 없다. 왜냐면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경직된 타 세력과의 공존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 무슨 개항? 그러면 이렇게 개항만 했더라면 하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현재 정치에서 북한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다른 사회의 모습을 과감히 받아드리는 것을 찬성하는가? 전교조를 하는 그래도 좀은 괜찮은 사람들도 김대중하면 이빨을 간다. 마
치 지금 그러는 것 처럼하지만 사실은 이전에도 이를 갈았다. 그가 한 때 이 나라 민주화를 위한 상당 부분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다는 것 자체를 완전히 부정한다. 오로지 그는 거짓말만한 사람이다 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물든 지역 감정으로 인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말을 계속할려니 준비성이나 말빨 부족 때문에 힘든다. 그래서 이 문제는 여기서 20000
캐나다에서 놀면서 먹고 사는 방법
- 이 친구의 이야기는 참 재미있다. 10억만 있으면 놀면서 지낼 수 있단다. 5억은 은행에 넣어두고 5억은 집이나 차등을 사서 지낸단다. 수입이 18,000불(18,000만원이라 생
각하자) 이하이면 세금도 없고 낸 세금도 모두 환불 받는단다.(은행 이자로는 이 수익에 미치지를 못하니 무조건 가난한 사람이 된다.) 그리고 아이들 부양비로 1년에 1인당 2,500불 정도 받고 은행 이자 2000불 정도 생기고 하니 1년에 만 이천불 정도의 수익이 생겨서 그냥 먹고 사는대는 아무런 지장이 없단다. 계산이 정확하지를 않는데 어쨋던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복지가 잘되어 있으니 말이다. 병원비는 무료 인데 내가 만난 어떤 사람은 1개월 정도 입원했단다. 그런데 가족 면회도 재한이 되어 있어서 함부로 가지를 못하고 6명에 간병인이 1명 꼴로 반드시 지키고 있으니 간병인 걱정도 전혀 없단다. 1달
입원 끝에 경비는 0원 이란다. 그냥 몇번 (이 사람은 3번 아내를 면회 했단다. 애정이 없어서가 아니고 바쁘고 면회 시간이 맞지를 않아 면회를 못했단다.) 왔다갔다한 교통비 정도가 경비의 전부란다. 캐나다인들은 처음 부터 세금을 계속 내어왔는데 우리는 이민 시점 부터 세금을 내면서 혜택을 같이 받으니 세금을 많이 내어도 어쩌면 이민자들은 혜택이 더 많은 거 같다.
캐나다에서 먹고 살려면 - 정말로 뚜렷한 직업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큰 사업체를 가지고 있지 않는 다음에는 대체로 부부가 열심히 일해야 먹고 산단다. 돈을 번다는 개념은 캐나다에서는 어렵단다. 한국인은 그러한 루터도 잘 모르고 언어장벽 땜에 쉽지가 않단다. 부부가 빠듯하게 일하여 거저 먹고 사는 정도란다. 의료비나 교육비가 상대적으로 부담이 없어서 그래도 괜찮단다. 캐나다인들이 돈을 벌어 그때 그때 다 써버리는 이유는 복지 문제와 관련이 있단다. 그래서 어느 한국인(토론토 부분에서 이 사람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할 것임)은 이런 캐나다인의 생활 패튼을 읽어서 한국인들이 함께 사업을 해야 캐나다에서 빨리 자리잡고 부자로 어깨에 힘주면서 2세들에게 희망을 주면서 살 수 있다고 주장을 한다.
밴쿠버 도착 - 너무도 힘이 들었던 민박집 찾아가기. 버스 파업의 장기화. 민박의 불편함, 빅토리아 섬(부촌-백인 마을과 인디언 집단촌, 부쳐가든, 승용차 400대를 싣는 페리, 밀랍 인형관, 소인국),
다운타운의 가게들, 스탠리 공원, 거리의 표정, 민가에 심겨진 꽃들, 어머니 날의 복잡한 중국집, 반성해야 할 사람들의 큰소리와 한국 비판
반프 - 아름다운 경치, 독일계 여관 아저씨의 친절, 상권을 가지고 있는 일본인들
켈거리 - 평원의 도시(카우보이의 도시), 다운타운이 하나로, 신도시-
캘거리, 따뜻하고 친절했던 민박집,
속아서 온 캘거리 생활, 우리 부동산 업자의 무식과 사업성
<캘거리서 만난 일본인, 참용감한 여성이었다. 나중 토론토 가는 버스에서 만난 한국인 학생 두명도 이 여성과 함게 차를 빌려 벤트까지 갓다 왔다한다.>
에드먼턴 - 바람이 적은 도시, 학교 체육 시간의 모습, 호텔에서 만난 한국인 아저씨, 떠나기 직전 만난 젊은 중계인, 세계 최대의 쇼핑몰, 동창회가 엄청 많은 한국인 주소록
<당시 10만원 가까이 주고 하루를 잔 호텔, 내 생애 최고가격이었다. 이 호텔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이 한국인이고 나하고 항렬이 같다. 내가 형님이라 불렀는데 이 분은 그 가게를 내게 넘기고 싶어했다. 한국에 왔을 때 새벽에 전화가 와 빨리 이민 오라고 제촉하는 배려도 보였다. ㅎ>
사스캐툰 - 토요․목요 시장의 상큼한, 아름다운 강변, 너무도 조용한 토요일의 다운타운 -그래서 지겹고 힘들었던, 적은 한국인 그래서 단결된 한국인
위니팩 - 고객에 대한 서비스 정신이란? 개인적으로 성실하면서 캐나다를 제일로 치는 권선생님, 청주 정도의 위니팩, 매우 추운 그러나 여름에 아름다운, 대저택으로 느껴지는 은퇴한 한국인의 집, 구몬 수학이 4군데나.
<당시 캐나다 운전 시험이 참 재미있었다. 한글로 시험이 가능한데 그 자리서 같은 것을 몇번이나 친다. 문제를 보여 주고, 시험은 안보고 치는데 점수가 안나오면 다시 문제 보여주고 같은 것을 다시 쳤다. 떨어질 사람 거의 없다. 그렇다. 교통법규 문제는 같은 것을 자꾸 보고알아야 하는 것이고, 엔진 등의 문제는 고장나면 정비소에 가면 된다. 한국시험의 아무 생각없는 비능률적 행태에 대해 많이 생각나게 했다. 한번으로, 그 자리서 사진찍어 만들어 주더라. 참 속전속결이고 합리적이다.>
다시 토론토 - 주경광, 게브랄 리; 캐나다의 불합리(유니언, 교수직,산업 구조 등등), 한국인이 돈을 벌려면, 창업학교, 한국인이여 단결하라!
<토론토 입구, 그레이하운드가 이제 여행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드뎌 버스 여행은 막을 내린다는 기쁨으로 찍은 사진>
반갑습니다. 당신을 너무 사모하는 민병창이라고 합니다. 때로는 당신의 마음을 상하게도 하고 가슴 아프게도 하지만 당신에 대한 나의 너무도 사무치는 사랑은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일 것입니다. 내 주변에 일어나는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자그마한 일들은 일체 신경을 쓰지 마세요. 나의 의지와는 아무 관계 없이 생기는 일들이고 그것은 또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까요. 10일 정도를 혼자서 캐나다에서 배회를 할 것인데 매우 두렵고 걱정이 됩니다. 전에는 주경광이란 막연하지만 아는 사람을 만난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지금
은 그냥 나 혼자니 얼마나 걱정이 되었겠소. 두통이 생기고 힘이 없었던 이유로 이 두려움 때문이 아
니었나 싶소. 잘 지내 보리라. 그리고나서 우리 캐나다에서 반갑게 만납시다. 모텔에서 보면 그냥 남
이 있건 없건 껴안고 찐한 키스 한번 합시다. 건강하시오. 아침 마다 산에 오르는 것 잊지 마시오
여기는 벤쿠버입니다. 오늘 계획에도 없는 섬을 둘러봤는데 경치는 그저 그렇더군요. 정이 묻어있지 않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뉴질랜드에 갔어도 그 점은 비슷했지요. 문제는 사람이 중요한 것인것 같습니다. 14일 00:30에 출발하는 그래이하운드를 예약했지요. 1주일 패스를 끊었는데 손짓으로 겨우 가격알아내고 발짓으로 표를 끊었지요. 끊는 순간 두근거려요. 여러 도시를 도는데 저님들 하시는 이야기는 한마디도 모르겠으니 이거 어디 사람이라 할 수 있을지... 동부 쪽으로 장거리 여행을 하게되는데 짐승이 인간 속에서 어찌 살아남을련지. 이 동네 사람들은 대부분 돈없으면 오지말라라고 준엄하게 이야기 하더군요. 고생이 몸에 베여 때로는 짜증으로 비쳐지기도 하더군요. 그래도 난 이제 돌아갈 곳도 직장도 없는데, 이제는 무우라도 베고 그만 두어야할 심정인데... 오히려 나이 든 노인네가 용기를 주더군요. 다양한 삶의 모습이 짧은 순간에도 너무많이 들어나니 여행은 이래서 좋은 것이라 싶더군요.(사실 외로움으로 몸부림 치고 있습니다만.) 모레 밴프에 들려 유스호스텔에 묶을 계획인데 손발이 안아파야 말이 통할낀데 걱정이네요. 오늘 하루도 소리를 지르지 않으니 입에 가시가 생겼는데 내일 까지는 참고 모레는 밴프의 무슨 산인가에서 마음껏 고함이나 지르다 내려올까 생각 중입니다. 음파신공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이 땅의 모든 분들에게 축복을! 우리의 아이
들에게 축복을!컿펨wv?틤丹?!--mailbody end-->
막 민박 집에 도착했소. 매우 고되네요. 난 당신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소.
버스가 파업 중이라 다리 품을 지나치게 팔게되어 매우 피곤하오. 몇 사람 못 만났지만 모두 걱정들을 많이 하더이다. 위니펙에서 봅시다
대로가 컸으니 대로 메일로 해야지 왜 엄마 메일이요. 이제 대로도 대로 메일을 사용하도록 하세요.
안되면 지금 이 순간에 다시 만들어서 사용하도록! 오늘 집에 전화하니 아무도 없네요. 어딜갔을까? 난 모레 새벽에 대륙 횡단을 하는 버스 표를 끊었소. 두렵지만 가는 거지요. 벤쿠버- 밴프 - 켈거리 - 에드먼턴 - 리자이나(이곳은 그 선생이 가는 주의 수도요.)-위니펙 순이요
하운이가 아팠다는 메일을 뒤에 봐서 다시 보내오. 병원에 가야하는 것은 아닌지. 아버지 없다고 저래 보고싶어 코피를 흘리니 나도 가슴아프오. 둘다에게 메일을 보내라고 하시오. 그냥 자기 기분들을 자기 감정을 넣어서. 모두 돈 없으면 오지마라라고 난리요. 자세게한 이야기는 가서 해 드리리라.
켈거리 민박. 좋은 분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있슴. 이민은 당신이 언제던지 안해 하면 안할 각오는 되어있음. 당신의 마음이 중요하니 그렇게 고민을 하시면 될 일임. 나도 많은 생각이 듬. 여기 있는 사람은 고생을 많이 하고 그를 통해 아이들의 미래(불확실하지만)를 보장 받고 있음. 나 보다 당신이 갑갑할 가능성이 너무 높다고 생각이 됨. 힘든 한 주 내가 있었으면 조금은 나았을 것인데 정말 너무너무 미안함. 손님이 온다길래 이만. 나중에 다시 정리하여 치겟음. 사랑.
바쁜 모양이지요. 이곳 켈거리에서는 사람을 너무 잘만나 이틀 밤이 아쉽네요. 기분 같아서는 더 묵고 싶은데 이 분들이 에드먼턴 칭찬을 너무 많이 하여 에드먼턴에 가보아야겟네요. 에드먼턴에서 혹시 계획을 약간 수정할지 모르니, 그리고 한국인 집에서 묵는 마지막일지 진짜 모르니 이제 메일은 못보낼 가능성이 높네요. 사실 메일을 날마다 보내고 전화 자주하니 감흥이 별로지요. 우리 오래 떨어져 있어도 잘살란가 모르겠네요. 어제 전화는 당신이 별루 반가워 하지도 않으니 잘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준비물이니 챙겨 오세요. 민 - 모자(어디서 잊어버렸음), 비옷, 소주, 구두, 양복, 세영이네 카메라(반드시 빌려 오세요) 당신 - 알아서 가져오되 우산도 추가로 챙겨 오시길, 그리고 따뜻한 사랑. 끝. 안녕
사랑이란?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 토론토.
대로에게! 답장을 받으니 정말 기쁘다. 한국인이 친절하지 않는 것은 아닌데 인상이 사실 좀 그런 것 같다. 이제는 찡그리는 인상을 버리고 타인에게 친절한 모습을 띄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여긴 샤스캐치원의 한국인 집인데 너무 친절히 대해 주신다. 나머지는 만나서 이야기하자. 한글이 없어 너무 글 치기가 어렵다.
대로야 보고 싶구나. 하운아 보고싶구나. 메일이던 다른 것이던 앞으로 조금 길게 적는 버릇을 들이는 것이 좋겠구나. 수학 여행 때 사진을 한장도 안 찍었다는데 왜 그랬는지 둥금하다. 마음껏 찍어라고 필름도 많이 사 두었는데? 일요일 밤에 도착할 예정이다. 그때 보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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