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1-05
우리는 길에서 이야기 나눴다.
강도사는 장원장의 퇴직금으로 카메라를 장만했다. 평생 숙원이랄까
완전 이룬건 아니지만 어릴 때 부터 카메라를 다루고 찍고 현상하고 깊이를 느꼈던 그였기에 가장 각별한 날이었을거다.
사진을 찍으니 완전 다르단다. 돈이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좋은 장비는 좋은 작품을 만든다. 물론 더 더 좋은 것으로 가려면 그건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감각을 더 끌어올려야겠지. 강은 충분히 그러리라 생각한다.
<첫작품이라 보냈다. 난 수산국수? 하려다가 그리 멀리 갔겠나 싶어서 구포국수? 하니 수산국수란다. 내 고향 수산엔 내 어릴 때 부터 국수만드는 저 집이 있었다. 강과 나는 종종 저집에서 국수를 주문하여 먹는다. 집에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가락이 상당히 굵고 식감이 좋다.>
매우 오래전 진동 바닷가에 1박을 했다. 바닷가에서 내 가족 사진을 찍어주고, 새우를 잡고, 즐거운 시간 보냈다. 근데 배를 묶어 둔 줄에 걸려 강도사는 넘어지면서 카메라를 빠뜨렸다
< 이 사진이 당시 강도사 카메라의 마지막 작품이다.>
죽어가는 카메라를 살리려 얼마나 힘을 쏟았겠노. 인공호흡을 하고 가슴을 눌리면서 소생하길.. 안간 힘으로 몸 전체가 땀으로 흠뻑 젖었겠지.
하지만 자신이 아끼는 것이 허무하게 사라졌다.
내가 가지고 있는 카메라. 난 이것을 강도사에게 주기로 결심했다. 근데 집에 가 만지작거리다가 마음이 바뀐다. 나도 매우 가끔이지만 사진을 찍어야는데...
그 카메라는 그 때부터 지금까지 대로 방에 장식품으로 걸려 있다.
<먼지가 카메라에 한가득, 구석진 방이라 잘들어가지 않는 곳에 쓸쓸히 있다. 이젠 닦고 밖으로 옮겨줘야겠다.>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카메라는 그저 사물에 불과하다. 내겐 방을 꾸미는 소품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강도사에게 갔으면 영혼을 얻어 춤을 추었을거다.
난 소품을 아끼느라 강도사의 혼을 채워주지 못했다. 그러니 카메라 볼 때 마다 마음이 쓰리다. 옹졸함을 자책한다. 방 가득 옹졸함이 싹을 피워 지금도 가득하다.
강이 새카메라 장만하니 나도 기분 좋다.
강도사에게 필요한데 못싼 소품 있으면 사라 한다. 강도사는 백만원 넘는단다.
패스... ㅋ
강은 정정하여 비싼 메모리 하나 갖고 싶다한다. 좀 있으면 가격도 내릴거라 한다.
난 필요할 때 사시라고 말한다.
겨울 저녁 길에서 나누는 대화는 과거도 소환하고 현재도 연결하는 즐거운 대화가 되었다.
강도사는 앞으로 찍을 것들에 대해, 렌즈의 감도가 얼마나 큰가에 대해.. 즐거움 가득한 목소리로 말한다. 나도 즐겁다.
좀 있으니 전화가 온다. 강은 근처이니 곧 들어가겠다 한다.
난 부탁한 프린터 물을 받고 강은 얼마 후 받을 카드로 마음을 채우고 우린 헤어진다.
아. 내일 아침 아이가 태어난다. 강도사 손녀의 탄생.. 올해는 정말 많은 것들이 다 풀리시길 빈다. 가까이 있는 나도 그러하길 간절히 빈다.
낮에 일광 바닷가 다방에서 그의 오랜 벗이 출간한 사진집을 본다. 호롱도산 글이 참 좋다 한다. 사진 보고 글 읽는다. 멋진 글이 사진 한 장에 간단간단 적혀있다. 근데 내겐 글이 너무 어렵다. 그러다 보니 사진 보는 걸 방해한다. 그래서 글 안보고 사진 본다. 하지만 사진 바로 옆에 붙은 글들이 눈에 걸거적거린다. 멋진 사진과 아름다운 시들, 그러나 둘이 충돌한다.
사진이 태어난 지역적 특성은 시작에 전체적으로 간단 설명하고, 사진 옆엔 작가의 감상이 있다. <사진시집>이니 이리 발간되는 건 당연하겠지. 총기있는 독자는 둘 다 얻을 수 있겠으나 내겐 내 감상조차 허용되지 않는 작품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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