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 49재 - 남은 사람들의 저녁
순동형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통도사에서 49재를 지낸다. 초재가 1월2일이다.
통도사는 불보사찰로 크기도 한국 최고다.
1월1일 신년 바로 뒷날이라 관광객과 신도들로 엄청 분비고 오가는 차들로 절 안 길도 막힌다. 주차 안내요원들이 부지런히 움직이지만 워낙 복잡하여 주차하려는 차들을 완전 통제하지 못한다. 빈틈 하나라도 있으면 몇대의 차가 서로 경쟁이다.
재를 지내는 '명부전'은 '금강계단' 바로 옆이다. 우리나라 삼보사찰 중 최고인 '불보사찰'인 통도사. 통도사 대웅전은 '불상'이 없고 부처님이 입으셨다는 가사를 모셨는데 이 곳이 '금강계단'이다. 새해 신도들이 이 계단에 절((법당에서 계단 바라보고 절한다) 올린다고 엄청나게 붐비는데 바로 옆 명부전까지 사람들이 밀리고 지나 가는 사람들 소리와 명부전 참배하려는 신도들이 합해져 소란스러워 재에 집중이 안된다. 그래도 '이 많은 사람들이 어머니 재에 인사라도 올리는구나' 생각하면서 절을 했다.
2월 12일은 막재다.
설연휴 마지막 날이니 초재 때와 마찬가지로 붐빈다. 통도사 홍매화가 꽃망울을 트뜨리고 향을 내어놓으니 사진 찍으러 오는 관광객들과 참배하려는 신도들이 넘친다.
재를 지내는 명부전은 문을 닫고 ' 49재 진행중이니 참배객은 재 끝난 후 참배하시기 부탁드립니다'라는 안내판까지 걸어 두었다.

막재라 초재 때 보다 식구들이 더 많이 참여하여 안에도 자리가 제대로 없다. 난 밖에서 합장하여 서서 기도한다. 날이 많이 풀렸으나 그래도 손이시리고 발바닥이 찹다. 정진한다는 생각으로 손을 모우고 눈을 감으니 편안하다. 명상하듯 호흡에 집중하고 잘들리지 않지만 염불소리 들으려 애쓴다. 아는 구절있으면 따라 한다. 몇번 안으로 들어가라는 안내도 있었으나 그냥 있겟다 하고 끝날 때 까지 서있는다. 날씨의 영향인지 마음이 더 차분해 지고 내가 나에게 집중해진다.
안에선 재단 앞에 가족들이 번갈아가며 절을 하고 절마치면 안내에 따라 스님에게도 절하고 자리로 가네. 어머니 영전 앞 재단에 돈도 놓는다. 초재 때도 형수께서 동서들에게 돈을 미리 나눠줘 재단에 놓게 하던데 이번에도 같이 한다. 제사 지낼 때 가끔 돈이 놓이는데 우리집에선 장남이 챙기던데 절에서는 누가 챙길까?
명부전 안에서 지낸 재가 끝나고 근처(이름을 뭐라하는지?)에서 옷을 태우고 마무리 기도를 한다. 상 앞에 복전함이 있다. 가족들은 그 곳에 또 돈을 넣는다. 명부전 앞에서는 기도에 집중했는데 여기서는 돈통에 자꾸 눈이 간다. 7번의 재 동안에 가족들이 재단에 둔 돈이 얼마나 될꼬?

복전함이 눈에 가장 많이 들어온다. 내 탐욕인가? 이제 절을 할 땐 부부가 같이 하면 더 좋지않겠나는 생각한다. 남자와 여자가 따로 하는게 버려야할 것 중 하나로 느껴진다. 시간 낭비이기도 하고.
여기서도 돈, 저기서도 돈. 돈이 제일이지. '돈.. 도온돈 악마의 그으음전..' 갑자기 노래도 떠오른다.
아뭏든 점심을 먹고 49재가 완전 마무리되었다.
형님 내외와는 이틀 뒤 저녁 약속이 있어서 가볍게 인사하고 헤어진다.

끝난 후 점심 공양장소. 우리도 귀빈이다 ㅋㅋ

자장암 잠시 들렸더니 영취산 맑은 하늘이 우릴 반긴다.
강도사에게 재 지내는 모습 사진을 보냈더니 '막재 전문이시니 수고했심더'라고 답이 온다. 강도사 부모님, 장모님 막재 때도 내가 당연 참석했으니 그리하는 말이다.
제법 걷는다. 범어사 상마마을에 주차하고 내원암까지 걸었다. 비가 제법 오는 산길이 운치가 더 있고 마음도 차분해 진다. 마눌님은 사진을 찍고 일 때문에 톡을 보고 하는데 얼굴에 피곤기가 가득이다. 그래도 미끄러운 길, 발을 조심 디디면서 잘걷네. 돌아올 때는 그냥 찻길을 걸으려다 여전히 산길을 택한다. 이른 봄비가 나리는데, 산내음과 숲내음 비내음 마저 몸으로 들어오는데 어이 놓치랴.


비가 많이 오니 한가족이 같이 자리를 덮어쓰고 걷는다. 오손도손 친밀감이 더 생기겠다. 오른쪽 노인은 범어사에 가면 자주 보는 사람이다.

집으로 돌아와 잠시 쉬었다가 부산대학교에 마눌님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 떼러 간다. 원래 걸어가려고 했는데 피곤해 하셔서 버스를 탔다. 3천원 손실이 났다. 증명서 발급하려는데 생년월일이 안맞단다. 근처 기계로 호적초본을 떼 오란다. 동사무소처럼 기계에도 지문을 확인하는 구조다. 마눌님 지문은 고생으로 많이 지워져 잘안나온다. 동사무소에서도 지문이 안나와 신분증 확인하고도 온갖 질문지를 작성하고 겨우 서류하나 떼는 경우가 많다. 본인이 버젓이 있고 신분증으로 확인도 되는데 왜 이리 심하게 불편하게 하는지 이해가 안간다. 가끔 다른 사람이 서류를 떼서 사기를 치는데 사용했다는 뉴스를 듣긴 했는데 이건 확인을 제대로 안했거나 권력을 활용하여 위압으로 한 정치적 사고 아닌가! 이런 것을 빙자하여 실제 본인을 힘들게 하고 자신들은 확인에 최선을 다한 양하니 참으로 웃기는 일이다. 어찌어찌 하다가 지문을 읽었는지 서류가 나온다. 안나오면 동사무 찾아 가야하는데 그렇지 않아도 좀 피곤한데 참 다행이다 싶다.
옛날에 학교에 입학했을 때 주민번호를 적는데 자기 번호를 제대로 몰랐다 하네. 생년월일도 제대로 모르고 주민번호도 엉터리로 적었다 하니 이런 사람 잘없을거다. 앞에 생년월일도 틀리고 뒷 번호도 틀렸다하네. 근데 대학에서는 확인 없이 학생이 적은 것을 그대로 옮겼으니 이것도 참 웃기는 일이다. 요즘 처럼 컴푸터가 아니라 손으로 직접 작성하다 보니 행정오류가 생기는 경우도 종종 있었던 것 같다.
서류를 받아 우체국에 가서 등기로 보낸다. 도착하는 곳은 '사이버 명상대학'이다. '사이비'가 아니라 '사이버'. 칠십이 다되어 가는데 다시 공부한다니. 3학년 편입이라지만 마눌님 학구열은 대단하다.
대학안 다방,운죽정에 앉아 차한잔한다. 밖을 보는 대나무 풍경이 참 멋진데 번잡하고 매우 시끄러워 정신이 없을 정도다. 차는 이미 받아 왔으니 마시고 가야제. 차 마시는 동안 학생들이 많이 나가고 다방 안은 약간은 조용해 졌다. 구석자리도 비어 그리로 옮기니 훨씬 낫네. 난 연휴 동안 제대로 읽지 못했던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게속 읽고 마눌님은 폰으로 이것저것 보고 시간을 기다린다. 저녁에 순동형 부부와 식사를 하기 위해서다.
부산대에서 걸어서 장전역 근처 '금정아구찜'엘 가 저녁 묵는다. 이틀전 통도사 막재 때 같이 점심먹었으니 밥을 여러번 같이 먹는거다. 아구찜 먹고 내 단골다방으로 가서 차한잔.
22년도 가을 몹쓸놈의 병을 인정하고 병원으로 찾아간 이후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않았다. 정치에 관련된 것들도 귀를 막고 뉴스를 보지 않으면서 내 스스로에 대한 분노도 컸고 나라가 무너지는 꼴을 날마다 걱정하다가 내 몸이 더 망가질 것 같아서 애써 외면했다. 그런데 처절하게 가족이 분해되어버린 '조국'이란 사람이 신당을 만들었다하니 이건 많이 궁금하다. 그래서 형에게 '조국신당'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형은 긍정성이 많다고 답한다. 형은 평소에 세상 모든 것에 대한 분석력이 매우 탁월하고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면을 많이 보는 사람이다. 형의 답은 상당히 설득력 있다. 지금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도 '덤'으로 들으니 내가 다시 속세로 내려온 느낌이다.
정치에 형수님도 한 일가견있으니 오랜만에 우린 긴시간 두분 이야기를 들었다.
순동형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로 60여일 정도, 형과 여러가지 교감을 하고 이제 마무리 한다. 난 생명이 명을 다하면 그것으로 끝이다는 생각을 하는데 49재라는 긴 추모 덕분에 형하고는 좋은 시간을 가졌다. 여러가지 일로 신경을 많이 써, 살이 홀쪽하게 빠진 형수님과 형님 얼굴보고 고견도 들으니 좋네. 인사 나누고 헤어진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 연휴 편안한 휴식을 가지다. (0) | 2024.02.14 |
---|---|
묵은지들의 모임: 첫직장인들과 함께. (0) | 2022.08.27 |
심수환화백 크로키전 : 그림과 글은 하나다. -전리단갤러리 (0) | 2022.05.05 |
최앤최 갤러리 : 꽃 (0) | 2022.04.28 |
소녀상 - 김을파손죄 - 꽃비(송주웅 작가 등) (0) | 2022.04.26 |